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235화 (235/250)

235. 거울의 군주 ― 1

* * *

“어느 정도 남은 것 같아?”

느낌이 온다.

왠지 거의 끝나가는 느낌……. 이런 쪽에서의 감은 내가 클레타보다 더 좋았다.

“음……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단지 함정이나 미궁의 갈림길들을 보면 점점 마지막으로 치닫는 느낌은 있어요. 하지만 장담은 못 해요.”

클레타는 슬쩍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흐음…… 그럼 일단 계속 앞으로 전진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네. 전에도 말했지만 이 미궁에는 지름길이나 비밀 통로가 전혀 없어요. 그리고 길도 오로지 하나뿐이에요. 결국 길을 잘못 들면 전에 그랬듯이 다시 뒤로 돌아 나와서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는 거죠.”

프로젝트 S가 거울의 미궁에 들어온 건 약 20일(게임 시간) 전이었다.

20일 동안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차근차근 거울의 미궁을 공략했다.

이제는 도플갱어들의 습격을 가볍게 막아내고 각종 함정도 가볍게 해체하는 건 물론이고, 길도 한 번에 잘 찾아가는 중이었다.

물론 처음엔 모든 게 다 잘되지 않아 많이 헤맸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거의 일주일을 전진했건만 아직도 거울의 미궁은 끝나지 않았다.

길고 긴 미궁의 미로.

그 끝을 알고 있다면 덜 힘들 텐데, 끝을 모르기 때문에 힘이 들었다.

“조금만 더 힘내자. 분명히 조만간…… 끝을 볼 수 있을 거야.”

난 클레타의 어깨를 두들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미궁에 들어와 가장 힘든 건 클레타가 이끄는 전문 도적 유저들이었다.

그들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각종 함정을 해체하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았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면 보조 딜러로서 전투에도 참여했다.

당연히 휴식을 취할 틈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요즘 거의 폐인처럼 보일 정도로 피로에 절어 있었다.

“네!”

클레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막바지로 치닫는 거울의 미궁 공략.

난 모든 이들을 다독이며 계속해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자칫 여기서 조금이라도 늘어졌다간 앞으로의 일정에 큰 차질을 입힐 수도 있었기 때문에 절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전진 또 전진.

프로젝트 S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 * *

거울의 미궁.

그 끝은 과연 어떨까?

우리는 그저 미궁이 끝나면 테르코나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했다.

물론 그 끝에 보스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하긴 했었다.

그렇지만 그 보스 몬스터가 어떤 종류의 몬스터인지는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어떤 이는 도플갱어들이 다수 등장할지도 모른다고 했고, 어떤 이는 도플갱어와는 전혀 관계없는 보스 몬스터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맞을 수도, 그리고 틀릴 수도 있었다.

거울의 미궁을 돌파하고 도착한 그 끝, 그곳은 거대한 광장이었다.

거울의 광장.

그 말이 어울릴 것 같은 장소.

광장 끝에는 거대한 문이 존재했다.

본능적으로 그 문은 테르코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드디어 테르코나로 들어갈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우리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다.

“썅! 막아!!”

다급한 외침.

탱커조의 유저 중 한 명인 다크오크가 황급히 동료에게 가로막기 계열 스킬을 사용하며 외친 말이었다.

꽈광!

간신히 세이프.

체력이 낮은 힐러 유저였기에 이 공격에 직격으로 맞으면 크게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젠장…….”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막긴 했지만 위험한 순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외침.

생각지도 못한 곳에 만난, 생각지도 못한 적들(?) 때문에 우리는 큰 위기에 빠졌다.

92명.

정확히 우리와 똑같은 숫자의 도플갱어들이 동시에 나타났다.

거울의 광장에 나타난 92마리의 도플갱어. 프로젝트 S를 그대로 복사한 것 같은 한 무리의 도플갱어들은 등장과 동시에 우리를 포위했다.

하나하나가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한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나왔던 도플갱어들보다 훨씬 강력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능력을 더욱 섬세하게 복제했으며, 기본적인 능력치 자체도 전보다 더 높은 것 같았다.

갑자기 등장한 강력한 도플갱어들.

아무리 봐도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했던 최상급 도플갱어와 다른 종류의 몬스터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전보다 더 강해진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조금 의심이 가는 게 하나 있긴 했다.

바로 거울의 광장 천장에 맺혀 있는 검은색 구체.

그 구체에서 뻗어 나온 실처럼 가느다란 검은색 선은 92마리의 도플갱어에 꽂혀 있었다.

그 가는 선은 마치 도플갱어들에게 새로운 힘을 공급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우린 그걸 알아차린 즉시 그 선을 강제로 끊어보려고 했지만 그 선은 형체만 보일 뿐 공격이 가능하지가 않았다.

결국 우리가 이 위기를 빠져나가는 방법은 도플갱어들을 모조리 해치우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딜러조, 난입한 놈들을 빨리 처리해!”

92명의 유저와 92마리의 도플갱어가 얽히고설킨 상황.

도플갱어들은 영악하게도 한 번의 기습으로 전투를 완벽한 난전(亂廛)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되자 우리가 미리 정해놓은 암구호 확인 방법도 소용이 없게 되어버렸다.

난 다급히 연합 채팅을 이용해 유저들은 붉은색 천을 오른팔에 감으라고 명령했지만 도플갱어들은 심지어 그런 유저들의 행동마저 따라 했다.

결국 뭐가 뭔지도 모르게 뒤죽박죽인 상황이 되었고, 이제는 유저와 도플갱어를 구분해 싸우는 것조차 쉽지 않게 되었다.

[암구호는 ‘킬러’, 앞으로 딱 5분간 이 암구호를 유지한다!]

겉으로 표식을 남기는 건 도플갱어들이 금세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결국 난 최후의 방법으로 암구호를 선택했다.

물론 이 암구호조차 완벽한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엄청난 인공지능을 지닌 도플갱어들은 유저들이 암구호를 말하는 걸 듣고 곧 자신들도 그 암구호를 공유해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는 귀찮더라도 5분마다 한 번씩 계속해서 암구호를 바꾸면서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콰광!! 퍼퍼펑!

“크악!”

“커어억!”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비명들.

처음 봤을 땐 무척이나 멋져 보이던 거울의 광장은 완벽한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츠츠츳!

콰드득!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었다.

엘레멘탈 블레이드에 의해 허리가 두 동강 난 클레타.

물론 내가 벤 클레타는 진짜 클레타가 아니었다. 진짜 클레타인 척…… 나에게 접근한 도플갱어였다.

기감(氣感)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나에게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걸까?

나는 거의 100%의 확률로 도플갱어와 진짜 유저를 구분해 낼 수 있었다.

정확히 어떻게 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는 없었다.

단지 느낌으로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느낌으로 아는 것이었기에 다른 이들한테 이 방법을 알려주거나 나를 믿고 도플갱어를 구분하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느낌을 확실히 믿었다.

도플갱어에게서 느껴지는 칙칙한 느낌.

이것은 결코 유저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감각이었다.

그렇게 또 한 마리의 도플갱어를 해치운 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너무나 뼈아픈 기습.

그것도 그냥 몬스터들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한 몬스터들에게 당한 기습이라 그 충격이 몇 배는 컸다.

이대로 계속 난전을 치르고 나면 프로젝트 S의 피해는 너무나 클 것이 뻔했다.

방법이…… 뭔가 이 난국을 헤쳐나갈 방법이 필요했다.

‘찾아야 해…….’

그렇다고 마갑과 자이언트를 꺼내 들 수는 없었다.

이제야 겨우 테르코나에 들어서게 된 것인데 벌써부터 우리가 가진 최강의 패를 보일 수는 없었다.

물론 이대로 큰 피해를 입는 것보단 아예 최강의 패를 이용해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이 나을지 몰랐지만, 난 그렇게 허무하게 그 패를 날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빠르게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도플갱어…… 도플갱어…….’

보통의 도플갱어들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당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놈들이 전과 다르게 더 강해졌다는 것이었다.

‘놈들이…… 강해진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강해진 게 문제라면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하면 된다. 그리고 난 이미 그 원인을 파악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난 본능적으로 천장을 쳐다보았다.

검은색 구체.

도플갱어들의 변화의 중심엔 저 구체가 있었다.

구체에서 연결된 선들이 아닌 구체 자체를 없애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 결국 답은 저거였어.’

최종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남은 건?

바로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결론을 내린 바로 그 순간 난 이미 천장을 향해 뛰어오르고 있었다.

파팟!

지이이이잉!

내 손에 들려 있던 엘레멘탈 블레이드에 강력한 오러가 맺히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단 한 방에 끝날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이 검은색 구체를 제거하고 힘을 잃은 도플갱어들 역시 정리할 생각이었다.

츠츠츠츳!

검은색 구체를 향해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난 오러가 집중되어 맺혀 있던 엘레멘탈 블레이드라면…… 어느 정도 검은색 구체에 타격을 입힐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검은색 구체에 엘레멘탈 블레이드가 닿은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아아아앗!

갑자기 팽창하는 검은색 구체.

그 순간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흑백의 세상은 마치 정지된 것처럼 멈춰 버렸다.

도플갱어들과 피 터지게 싸우던 유저들은 그 모습 그대로 흑백으로 변해 정지했다.

도플갱어들 역시 마찬가지로 똑같이 정지했다.

세상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변하여 정지했다.

오로지 나만이 색채를 유지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 이게…….”

바닥에 착지한 난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로 그 순간 검은색 액체가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스르르르.

그리곤 곧장 사람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나와 똑같은 모습을 지닌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단지 다른 것이라면, 그는 나와 다르게 주변과 똑같이 흑백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분명 도플갱어였다.

그런데 확실히 보통의 도플갱어와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이는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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