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암흑지대 ― 2
* * *
아마도 이 소식을 프로젝트 S에서 정보를 유출한 이들도 들었을 것이다.
아니, 분명히 들었다.
내가 클레타에게 의도적으로 이 정보를 프로젝트 S의 팀원들에게 흘리라고 말해놨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정보를 유출한 이들은 예상보다 많은 숫자가 죽음의 산맥에 난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히 뜨끔했을 것이다.
자신이 쉽게 생각한 작은 정보 유출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앞으로는 정보 유출을 더 이상 하지 않거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중요한 정보는 절대 유출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되라고 일부러 클레타를 시켜 고생스럽게 소식을 전파한 것이었다.
암흑지대, 정확히 테르코나로 가까이 갈수록 이들이 얻는 정보는 많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이들의 입단속을 해두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아직 한 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은 상태.
이 상태가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되길 빌며 난 조용히 테르코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보통의 사냥터들은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최상급 유저들이 즐겨 찾는 사냥터 중 하나인 무지개 성소.
그곳엔 일곱의 보스 몬스터가 있다.
무지개란 이름에 걸맞게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각기 다른 색을 지닌 일곱의 다크 엔젤.
이들은 일종의 타락한 천사로서 하늘에서 지상 세계로 쫓겨난 존재들이었다.
600레벨의 하이 마스터 급 보스 몬스터인 다크 엔젤.
각자 지닌 색에 따라 그 특성이 달라 공략법도 완전히 달랐지만…… 어쨌든 이들은 정해진 장소에서 벗어나지 않고 유저들을 기다렸다.
입장하는 입구는 단 세 개였지만 그 안에서 갈라지는 길은 무려 70갈래.
각 통로는 또 서로 통했기 때문에 일곱의 각기 다른 다크 엔젤에게 가는 방법은 거의 무한할 정도로 많았다.
이게 기본적인 사냥터의 구조였다.
물론 대미궁 같은 특수한 구조의 사냥터도 있었지만 그건 예외적인 특별한 몇 개의 사냥터일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산맥도 하나의 사냥터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가는 테르코나는 결국 사냥터의 최종 목적지인 보스가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 죽음의 산맥 자체가 거대한 통로라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특별한 입구도, 길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지만 어떤 곳을 선택하든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죽음의 산맥 전역에 퍼져 있는 암흑의 힘이 유저와 몬스터 모두에게 영향을 미쳐서 생긴 디버프와 버프는 유저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몬스터들은 버프를 얻어 더 강해졌고 반면 유저들은 디버프가 생겨 약해졌다.
대부분의 유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이 잘 모르고 있던 것은 이 버프와 디버프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무모하게 죽음의 산맥으로 뛰어든 유저들이 더 많았을지 모른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테르코나를 향해 몰려드는 유저들.
아쉽게도 그런 유저들 중 대부분이 죽음의 산맥에 들어와 단 삼 일(게임 시간)도 버티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지만, 그래도 그들 덕분에 우리 프로젝트 S는 매우 은밀하게 테르코나가 있는 암흑지대 근처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아마 드래곤들도 갑자기 몰려든 일반 유저들에 신경이 분산되어 우리의 존재를 알지 못할 것이다.
모든 건 내가 의도한 대로 됐다.
이제 남은 건 암흑지대로 들어가 테르코나를 찾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암흑지대를 바로 코앞에 놔둔 현재 문제가 하나 생겼다.
지금까지의 일정이 매우 순조로워 한 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 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첫 번째 위기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함정 해제도 안 된다고?”
“네. 모두 달려들어서 해봤는데 아예 어떤 구조인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이건 함정이 아닐 것이라는 쪽에 모두가 동의한 상태예요.”
고개를 가로젓는 클레타.
이 녀석이 해제하지 못하는 함정이라면 누가 와도 못 한다.
‘One’ 최고의 전문 도적 클레타가 안 된다면 진짜 안 되는 것이었다.
“으음…… 마법 쪽은 어떻습니까?”
물리적인 함정이 아니라면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난 대마법사 가웨인에게 마법적인 요소에 대해 살펴달라고 부탁해 놓았었다.
“적어도 제가 느낄 수 있는 마법적인 요소는 전혀 없습니다.”
가웨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함정도 아니고 마법 트랩도 아니었다.
물론 진법도 아니었다. 진법과 같은 경우는 내가 직접 확인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똑같은 모양의 숲.
이게 문제였다.
사실 여기서부터는 암흑지대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똑같은 좌표에서 계속 빙빙 돌고 있었다.
마치 뭔가 함정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난 우리가 암흑지대와 평범한 죽음의 산맥 지역의 경계에 들어섰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길이 보이는 건 아니었다.
길은 우리가 직접 찾아야 했다.
문제는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으음…….”
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대로 이곳에 발이 묶여 있을 수는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암흑지대, 테르코나로 이동해야 했다.
‘분명 뭔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찾지 못한다. 왜 그런 걸까?’
난 조용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98명의 유저들도 모두 똑같이 이 현상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힘을 한곳에 집중해 폭발시켜 보는 건 어떨까요?”
“마법을 이용해 공중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어떤가요?”
“땅굴을 파보죠.”
“일단 뒤로 빠진 후 다시 다른 길로 우회해 보죠.”
“블링크 스킬을 이용해 마법사가 길을 뚫어보죠. 길만 뚫리면 마법진을 이용해 파티원을 소환하면 될 것 같은데.”
…….
…….
수많은 의견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중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모두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되지 않았다.
무려 네 시간 동안 고생했지만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막막한 상황.
바로 그때 클레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형, 이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옛날부터 내려오던 오래된 격언이 하나 생각나서요.”
클레타는 마가레타와 함께 현실에서도 무도(武道)의 길을 걷는 이였다. 그쪽 바닥에선 꽤 유명한 두 남매였기에 난 클레타의 말에 약간의 기대감을 가졌다.
“응? 뭔데? 얘기해 봐.”
이미 깊은 수렁에 빠져 버린 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하는 입장이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라. 내 손의 감각을 너무 과신하지 마라. 내 두 다리를 너무 맹신하지 마라. 때론 모든 감각을 버리고 내 마음으로 길을 봐라.”
“마음의 길…….”
난 조용히 클레타의 말을 몇 번이고 되새겨 보았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면?
내가 느끼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설마…….”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 난 클레타를 바라보았다.
“가능성은 충분해요.”
클레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었다.
클레타 말대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그럼 이건 어떻게 빠져나가지?”
아무래도 이런 것에 대한 경험은 나보다 클레타가 더 많았기에 난 그에게 물었다.
“간단해요. 이렇게…… 하면 될 거예요.”
천천히 눈을 감는 클레타.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모든 사람이 그런 클레타를 바라보았다.
터벅터벅.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가는 클레타.
한 50걸음을 걸어 나갔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틀린 건가?’
살짝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 너무나도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다.
스르르.
마치 마술처럼 사라지는 클레타.
그 순간 나를 포함한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역시!! 형, 우리 생각이 맞았어요.”
파티 채널을 통해 들려오는 클레타의 목소리.
그는 우리와 같은 공간이면서 또 다른 공간인 곳에 진입해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다니…….”
너무나 간단해 허무할 정도였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어렵게 생각되었던 것 같기도 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아직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몇몇 사람들이 나를 향해 물었다.
그들의 얼굴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간단합니다. 함정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외부에 존재하는 육체적인 함정이 아니었습니다.”
육체적인 함정이란 표현이 웃겼지만 현재로선 그보다 좋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다.
“육체적인 함정? 그게 무슨 뜻이죠?”
“함정은 바로 우리들의 정신에 펼쳐졌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인식 장애’라고 얘기해야 하나? 언제 걸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린 일종의 정신 마법에 걸려든 것이었습니다.”
“아!!!”
“그런…….”
“허!!”
이제야 모든 유저가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걸 빠져나가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눈을 감고…… 현재 느끼는 모든 감각을 무시하세요. 그리고 곧장 앞으로 걸어 나가세요. 그럼 끝입니다.”
클레타의 설명을 들은 이들은 모두 천천히 눈을 감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 역시 그대로 똑같이 행동했다.
눈을 감고.
모든 감각을 무시한 채.
그저 앞으로만 걸어 나갔다.
그렇게 약 70걸음 정도를 걸었을까?
갑자기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감각이 완전히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자, 이제 모두 눈을 뜨고 앞을 봐요.”
생생히 들리는 클레타의 목소리.
난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솨아아아!
100m도 안 걸어왔는데…… 배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 그리고 산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강력한 어둠의 기운.
그 기운은 너무나 강력해 육안으로도 식별이 가능한 검은색 오러를 뿜어내고 있었다.
“암흑지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클레타는 마치 암흑지대를 안내하는 NPC처럼 장난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우리를 맞이했다.
“와우…….”
“지저스…….”
“헐, 망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경악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이 광경을 목격했다면 똑같이 반응했을 것이다.
당장에라도 천둥 번개를 뿜어낼 것 같은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
사방을 짓누르는 어둠의 기운이 방출하는 거대한 검은색 화산.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하고 괴상한 몬스터들.
여긴 언젠가 내가 가본 팔열지옥(던전)보다 더 암울한 곳이었다.
“테르코나…….”
세상의 중심이라는 그곳이 드디어 보인다.
저곳이야말로 우리들의 마지막 싸움터가 될 곳이었고, 그 싸움 한 번으로 세상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두근두근하는데.”
내 옆에 서 있던 에스카가 미소 지으며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게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찬 얼굴들.
확실히 이들은 평범한 유저들이 아니었다.
도전을 즐기는, 아니, 아예 삶 그 자체가 도전이었던 ‘One’의 최상급 유저들.
그들은 겁을 내기보단 기대를 먼저 가졌다.
이것이야말로 이들을 이 자리에 있게 한 원동력.
난 왠지 모르게 듬직한 기분이 들었다.
이들과 함께라면……
불가능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