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232화 (232/250)

232. 암흑지대 ― 1

* * *

뿌우우우~

테르코나 전체에 울려 퍼지는 뿔피리 소리.

그 소리와 함께 테르코나로 올라가는 통로를 막고 있던 거대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쿵쿵.

그 문을 통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

평범한 몬스터들이 아니었다. 드래곤들은 변종 키메라라는 강력한 한 수 이외에도 보통의 몬스터들에게도 암흑 마력의 정수를 쐬게 해 강제로 돌연변이 현상을 유도했다.

그렇게 탄생한 변형 몬스터들.

그들은 평소보다 약 20~50% 정도 더 강해진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물론 하나하나를 비교하면 감히 변종 키메라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 수가 아주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변종 키메라가 가진 힘과 비슷해질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변형 몬스터 군단.

그리고 그 군단을 지배하는 변종 키메라 부대.

이것이 바로 드래곤들이 유저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만들어낸 최종 병기들이었다.

태곳적부터 내려온 절대 규칙에 의거해 자신들의 힘이 제한된 이 세상에서 일종의 편법을 이용해 최대한 강력한 힘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당분간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강력한 암흑의 군단을 얻었다.

이 모든 건 칼슈타인이 계획하고 실행했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아주 간단하게 위기를 위기가 아니게 만들었다.

수만 년 동안 계속해서 해온 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는 이미 모든 경우의 수를 꿰고 있었다.

다소 예상치 못한 다른 초월적인 존재들의 간섭이 있었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손바닥 안에 올려놓고 내려다보는 것처럼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했다.

칼슈타인.

그는 과연 위대한 고룡이라 불릴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둠의 마력은 얼마나 모였지?”

칼슈타인은 테르코나의 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로드의 방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테르코나를 빠져나가는 변형 몬스터 군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현재 약 60% 정도가 모였습니다.”

칼슈타인 앞에서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절제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은빛 머리칼의 남자가 대답했다.

“60%? 그럼 변형 몬스터들과 변종 키메라들은 얼마나 만들어낸 거지?”

“목표했던 양의 절반 정도를 만들었습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앞으로 세 달(게임 시간) 안에 목표량을 충분히 넘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깍듯이 대답하는 은빛 머리칼의 남자.

그는 칼슈타인이 가장 신뢰하는 에이션트 실버 드래곤 이세리노였다.

칼슈타인을 제외하고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온 드래곤인 그는 칼슈타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 그를 대신해 드래곤 로드의 권리를 행사하는 일종의 부로드 같은 존재였다.

“세 달이면 너무 늦다. 놈들이 움직이지 않았을 리가 없어. 우라노스와 가이아, 그리고 레아라는 이 지구의 신까지 모두 만만하지 않은 놈들이다. 무조건 앞당길 수 있는 데까지 앞당겨.”

칼슈타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명령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몇몇 드래곤들은 드래곤 하트를 잃고 소멸될 수…….”

“상관없어! 설사 희생이 크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오랜 세월 동안 치밀히 준비했던 놈들이다. 이번만 넘긴다면 아마 앞으로 우리를 막을 존재는 거의 없을 거야. 그러니 무조건 무리를 해서라도 이겨내야 해.”

칼슈타인은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일족을 지키기 위한 희생이었기에 한 발자국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고신(古神)들이 모든 걸 걸고 나섰다. 아무리 대부분의 힘을 잃었다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강하다. 절대 무시할 수 없어…….”

탁 트여 있는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던 칼슈타인은 몸을 돌려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앞으로 두 달…… 그 안에 이 대륙을 집어삼킬 만한 무적의 군세를 만들어라. 이 대륙을 암흑 마력으로 가득 채우는 그날…… 융합의 최종 단계가 결행될 것이다.”

최종 목적은 지구.

현재 인간이라 불리는 종족이 살고 있는 423298차원이었다.

늘 그렇듯 칼슈타인에겐 이 지구도 자신의 주인에게 바칠 제물일 뿐이었다.

비록 방해하는 존재가 대거 등장해 약간의 위기감을 느꼈지만, 그는 주인이 자신에게 내린 권능을 이용해 모든 변수를 제거한 후 늘 해왔듯이 이 차원을 통째로 주인에게 바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로드의 뜻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이세리노는 군말 없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는 칼슈타인이 명령한다면 그것에 대해 의문 따위는 갖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드래곤 일족은 그렇게 칼슈타인의 손발이 되어 이 세상을 멸망시킬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 * *

“그러니까…… 이 정보 진짜 확실한 거죠?”

얼굴에 가득 찬 불신감.

그는 아직도 자신들을 이끌고 죽음의 산맥이라는 무시무시한 곳으로 향하고 있는 길드 마스터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아~ 진짜 몇 번을 말해야 해. 너 내 불알친구가 ER 레이드 팀의 정예 유저인 거 알지? 걔가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어제 전화로 알려준 정보야.”

“그건 아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건…….”

유저들 사이에서 죽음의 산맥은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금지(禁地)처럼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서 남자는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 답답하네. 도박하지 않고선 위로 올라갈 수 없어. 언제까지 이류로 만족할래? 일류가 되려면 모든 걸 걸어야 해.”

단호한 길드 마스터.

길드 마스터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남자는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으음…….”

“이번 기회를 잡고 기필코 탑(TOP) 팀 중 하나가 되고 말 거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정신 바짝 차리고 최대한 집중해. 메인은 기대도 안 한다. 친구 말로는 주변 부스러기만 얻어도 대박이라고 했으니 무조건 살아남아서 그 부스러기를 얻자.”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는 길드 마스터.

‘One’의 세상에서 무수히 많은 상급 길드 중 하나를 이끄는 그는 기필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는 그럴 것이라 자신했다.

이 귀한 정보를 얻은 건 오로지 자신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에겐 당연한 자신감일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모르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이미 그와 비슷한 시기에 움직인 길드만 수십 군데가 넘었고 움직이려고 준비하는 길드 역시 수십 군데가 있다는 걸…… 그걸 모르고 있었다.

은밀하게 요동치는 ‘One’의 세상, 그 움직임은 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서로 숨기려고 애썼지만 한 번 새어나간 정보는 끊임없이 빈틈을 찾아 계속 퍼져나갔다.

물론 그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인만큼 그들 스스로가 최대한 입단속을 했기에 조금씩, 조금씩 퍼져 나갈 뿐이었다.

모든 건 신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제물들의 개입.

그것으로 인해 프로젝트 S의 움직임은 더욱 자연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돌격조 후퇴, 곧바로 방어조 투입해!”

나는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크게 휘둘러 오우거의 목을 날려버리며 클레타를 향해 외쳤다.

한 무리의 오우거 무리를 만나 가볍게(?) 전투를 시작한 우리는 일단 돌격조를 이용해 오우거 무리를 양분시켰다.

대략 400여 마리는 될 것 같은 오우거 무리는 순식간에 프로젝트 S의 돌격조에 의해 둘로 나뉘었고 난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곧장 방어조를 이용해 진형을 굳혀 버릴 생각이었다.

사실 말이 방어조지 워낙 다들 한가락 하는 방어형 유저들이라 어지간한 돌격조의 공격력만큼은 뽑아주는 이들이었다.

힘으로 오우거들을 밀어내 버리는 방어조의 유저들.

그사이 돌격조의 유저들은 잠시 숨을 고르며 다시 한번 폭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딜러조 투입!! 원거리 딜러들은 최대 사거리 유지!! 힐러조 방어조 폭힐!!!”

방어조의 유저들이 각기 가진 도발 기술로 모든 오우거들이 자신을 보게 만든 그 순간 난 폭딜, 폭힐 명령을 내렸다.

이 정도 오우거 무리는 한 방에 쓸어버릴 능력을 지닌 이들이기에 굳이 쓸데없는 전략 같은 건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힘으로 쓸어버릴 뿐이었다.

꽈과광!

쿠과과광!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강력한 폭발음.

딜러들이 딜링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오우거 무리가 순식간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크어어엉!

커허헝!

줄줄이 쓰러지는 오우거들.

마치 융단폭격이라도 맞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돌격조 투입!! 마무리합시다!”

아주 잠깐 숨을 돌린 돌격조를 투입하며 단, 5분도 되지 않았던 오우거 무리와의 전투를 마무리 지었다.

보통의 레이드 팀이나 파티 연합이었다면 몇 시간이 넘게 싸워야 할 정도였겠지만 프로젝트 S는 격이 달랐다.

탱킹과 딜링, 그리고 힐링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98명의 유저 전원이 마갑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84명이 자이언트도 소유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정말 놀랄 수밖에 없는 전력이었다.

물론 상대해야 할 적은 더 대단한 놈들이었지만 그래도 프로젝트 S는 유저들이 가질 수 있는 최강의 전력을 구축했다.

이 모든 게 내 노력 때문에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예전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확신은 못 하지만 미래에도 그럴 것 같은…… 나와 함께하는 행운.

난 이젠 이걸 행운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건 어쩌면 운명일지 몰랐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것들에 의해 엮어진 나의 운명.

그리고 그 운명을 돕는 알 수 없는 힘.

난 이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레타야, 대충 드랍 아이템 정리하고 곧바로 이동하자.”

클레타는 전투 능력은 약했지만 특유의 은신 능력과 이동 능력을 이용해 정찰 및 명령 하달 임무를 맡고 있었다.

오우거 무리를 사냥한 속도만큼이나 정리도 빨랐다.

대충 전리품들은 그 자리에서 필요한 사람들이 나누어 갖고 나머지는 모두 분해하거나 버렸다.

어차피 쓸데없는 아이템에 욕심을 낼 만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앞으로 계속해서 필요하게 될 여러 소모성 아이템을 버리면서까지 전리품을 챙기는 이도 없었다.

이 정도 전리품에 눈이 돌아갈 유저였다면 애초에 데리고 오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빠르게 정리를 끝낸 우리는 다시 암흑지대를 향해 움직였다.

클레타에게 시켜 은밀히 양 대륙의 소식을 알아본 결과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죽음의 산맥으로 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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