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자이언트 ― 2
* * *
“뭐? 오리온 놈들이 쳐들어왔다고?!”
듀블랙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장난 아니에요. 오리온 놈들…… 자이언트 오너를 투입시켰어. 외성이 뚫리는 건 시간문제야. 형, 빨리 비상 연락망 돌려서 길드원 정예들을 불러들여요. 놈들을 최소한 내성에선 막아야 해요.”
라이지는 다급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듀블랙과 라이지가 몇 년 동안 열심히 세력을 모아 서대륙의 작은 마을 중 하나인 ‘카로’를 차지한 지는 벌써 일 년(게임 시간)이 흘렀다.
그들은 그 마을을 기점으로 TOP 길드를 최고는 아닐지 몰라도 어느 정도 전통 있는 상급의 길드로 키워냈다.
그런 그들에게 카로는 아주 중요한 거점이었다.
대략 반년 전부터 근처의 다른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오리온 연합이 카로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TOP 길드는 충분히 오리온 연합의 공격을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원래 공성보다 수성이 훨씬 쉬운 시스템을 지닌 ‘One’이었기 때문에 오리온 연합보다 세력이 약한 TOP 길드더라도 충분히 지킬 만한 힘을 지닐 수 있었다.
그런 지지부진한 대치가 이어온 지 반년.
오리온 역시 적대시하는 세력이 여기저기 꽤 많았기 때문에 요즘엔 아예 카로에 대한 관심을 접은 것처럼 보였었다.
그런데 갑자기 습격이라니…… 그것도 무려 자이언트 오너를 앞세운 기습 공격.
이건 평상시의 수비 병력으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는 수준의 공격이었다.
“젠장! 운영진 전부 소집하고 TOP 정예팀도 모조리 접속하라고 해. 마갑 유저 다섯이라면…… 아무리 자이언트라고 해도 막아낼 수 있을 거야.”
듀블랙과 라이지, 그리고 세 명의 운영진은 모두 마갑을 얻은 마갑 유저였다.
물론 그들은 마갑을 통해 자이언트를 얻으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다시 자이언트를 얻을 수 있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준비하는 중이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마갑은 자이언트를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마갑이 어느 정도 모인다면 등급이 낮은 자이언트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 자이언트가 부디 하급 이하이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상대가 중급 이상의 자이언트를 동원했다면 이번 전투는 필패(必敗)였다.
아무리 수성이 공성보다 유리하다고 해도 그건 상식이 통하는 상대들에게 적용되는 법칙이었다.
자이언트는 상식 파괴의 선봉에 선 존재였다.
그렇기에 더욱 얻고 싶은 존재.
듀블랙도, 라이지도, 그 밖에 모든 유저도 그 자이언트를 구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 중이었다.
“근데…… 오리온 놈들이 어떻게 자이언트를 얻은 거죠? 분명히 놈들에 대한 정보는 계속 신경 쓰고 있었는데…….”
라이지가 파악하고 있던 오리온의 마갑 유저는 총 일곱 명.
그리고 그 일곱 명 모두 자이언트를 얻지 못한 마갑 유저였다.
분명히 이번에 등장한 자이언트 오너는 그 일곱 명의 유저와는 전혀 다른 유저일 것이다.
한 번 자이언트 획득에 실패하면 재획득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건 확실했다.
그렇다면 갑자기! 어디서! 이 자이언트 오너가 등장한 것일까?
라이지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용병이겠지. 들리는 소문에 자이언트를 얻은 몇몇 유저들이 아주 큰 액수의 돈을 받고 길드전이나 대형 레이드에 용병으로 활약해 준다고 하더군. 물론 그래 봤자 어쩌다 재수 좋게 자이언트를 얻은 허접한 랭커들 얘기겠지만. 어쨌든 허접해도 자이언트는 자이언트니까…… 그게 문제인 것이겠지.”
듀블랙은 이미 어느 정도 현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 역시 자이언트 유저를 용병으로 고용하는 게 어떨지 생각해 봤기 때문에 더욱 정확하고 빠르게 분석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크윽! 그럼 우리도 고용해요. 길드 자금을 모두 동원하면 분명 고용할 수 있는 돈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라이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자이언트 오너를 용병으로 고용했다면 우리도 하면 된다는 간단한 생각.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불가능해. 우리에겐 당장 계약을 맺어줄 자이언트 오너가 필요한데…… 지금 우리 눈앞엔 자이언트 오너가 없잖아. 그렇다고 하이퍼넷을 뒤져서 용병 자이언트 오너를 찾는다고 해도 그가 여기까지 오는 시간 동안 모든 게 끝나 버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우린 방심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거야.”
오리온을 너무 쉽게 봤던, 자이언트 용병을 오리온에서도 고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은 결과가 바로 이 현실이었다.
“젠장!!”
라이지는 목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려는 쌍소리를 억지로 참았다.
그래도 명색이 길드 마스터이자 친한 형인 듀블랙 앞에서 그런 소리를 내뱉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듀블랙과 라이지.
TOP 길드를 이끄는 그 두 사람이 크게 좌절한 바로 그때.
그들의 귓가로 너무나 갑작스럽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진짜로 눈앞에 자이언트 오너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스으으.
어둠에서 등장하는 한 남자의 그림자.
듀블랙과 라이지는 자신들의 바로 옆에 다른 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며 그 낯선 그림자를 경계했다.
“누, 누구냐?!”
그들의 반응은 매우 기민하고 빨랐지만 그래 봤자 이미 완벽하게 뒤를 잡힌 후였다.
“워~ 흥분하지 마시고…… 저는 당신들의 적이 아닙니다.”
손을 들며 듀블랙과 라이지를 진정시키는 남자.
그는 천천히 어둠에서 벗어나 듀블랙과 라이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군요.”
“헛!!”
“크음…… 이미르 님?!”
듀블랙과 라이지는 그 남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꽤 오래전에 잠깐 이어졌던 인연이었지만 둘은 정확하게 이미르를 기억해 냈다.
어쩌면 기억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할지 몰랐다.
이미르의 도움으로 대미궁에서 상상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던 그들…… 그렇기에 나중에 대미궁 이벤트가 끝나고 백방으로 이미르를 찾기까지 했었다.
그랬던 그들이었기에 이미르를 한 번에 기억해 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동안 많이 찾았었는데.”
“아~ 사정이 좀 있어서 다른 지역에 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TOP 길드의 소식은 계속 듣고 있었습니다.”
이미르, 아니, 신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린과 함께 지옥 훈련을 계속하던 그가 갑자기 왜 여기에 나타난 것일까?
프로젝트 S의 활동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20일(게임 시간).
아직 시간이 꽤 남은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그가 왜 여기에 이렇게 나타난 건지는 쉽게 예상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방금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자이언트 오너가 눈앞에 있다니요? 혹시 아시는 자이언트 오너가 근처에 있는 건가요?”
라이지는 눈빛을 반짝이며 신에게 물었다.
그의 입장에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간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네, 맞습니다. 근처에 자이언트 오너가 있습니다.”
“정, 정말입니까?”
“어디 있습니까? 지금 당장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는 분입니까?”
듀블랙과 라이지는 마치 절망 속에서 구원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자이언트 오너는 바로…….”
슬쩍 뜸을 들이는 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접니다.”
담담히 자신을 자이언트 오너라고 소개하는 신. 그의 말이 끝나자 라이지와 듀블랙의 두 눈은 커질 수 있는 만큼 커졌다.
“헉!!”
“으헛!!”
그들은 꿈에도 이미르가 자이언트 오너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 머릿속에서 이미르는 실력이 매우 뛰어난 골수 모험가 계열 유저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자이언트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원하신다면 도움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단, 이번 전투에서 어떤 것을 보더라도 무조건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듀블랙과 라이지를 바라보며 조건을 얘기하는 신.
그는 더 이상 이들에게 골수 모험가 이미르의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거라면 당연히…….”
듀블랙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한 것이라고 얘기하려 했다.
하지만 신은 보다 더 확실한 것을 원했다.
“그래서 아예 계약할 때 이 최상급 계약의 서를 이용해 비밀 보장까지 모두 한꺼번에 계약을 하겠습니다. 물론 전 두 분을 믿지만…… 확실한 게 서로에게 좋겠죠?”
“상관없습니다. 자이언트 오너와 계약만 할 수 있다면…… 비밀 보장 계약 따윈 열 번, 아니, 백 번도 할 수 있습니다.”
라이지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만큼 그들이 처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계약을 하도록 하죠.”
신 역시 지지부진 시간 끄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이였기 때문에 계약 얘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위기의 순간 나타난 신(이미르).
대미궁에서 TOP 길드를 최상위권 길드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 모험가 이미르. 그가 이번엔 자이언트 오너로 나타나 TOP 길드에 큰 도움을 주었다.
듀블랙과 라이지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 고마운 은인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도대체 신은 왜 이번 전투에 끼어든 것일까?
정말로 순수하게 도움을 주기 위해?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신은 명확한 이유가 없다면 쓸데없이 움직이지 않는 매우 실용적인 이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도움을 자처하고 나섰다면…… 그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곧 밝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