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자이언트 ― 1
* * *
마갑에 이어 공개된 자이언트.
이것은 모든 유저를 흥분시킬 만한 요소였다.
쉽게 얻을 수 없기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마갑과 자이언트. ‘One’에 존재하는 그 어떤 아이템도 이것들과 비교될 수 없었다.
아예 A급 마갑은 레전드급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아이템들과 같은 등급으로 취급되었고, A급 자이언트는 등급이 존재하나 사실상 등장하지 않았던 갓(God) 급의 아이템으로 취급되었다.
자이언트의 경우엔 B급만 되어도 레전드급 아이템들과 같은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될 정도였다.
모든 유저가 얻기를 꿈꾸는 마갑과 자이언트.
하지만 극소수의 유저만 얻은 그것들…… 알려진 바로 현재까지 마갑의 경우는 0.008% 정도가 얻었고 자이언트는 겨우 0.0004% 정도만 얻은 걸로 알려졌다.
극히 낮은 수치.
하지만 그럼에도 연일 하이퍼넷에는 마갑과 자이언트에 대한 정보나 소식이 올라왔다.
한 유저가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를 자이언트에 탑승해 혼자 잡아내는 동영상.
평범한 길드전에서 갑자기 마갑 유저가 나타나며 기울었던 전세를 한 방에 역전시키는 동영상.
자이언트에 탑승해 홀로 대형 길드와 전면전을 펼치는 유명 랭커의 모습.
일곱 명의 마갑 유저가 파티를 맺고 현존하는 최고 레벨의 사냥터인 검은 와이번 둥지를 싹 쓸어버렸다는 소식.
…….
…….
일반 유저들은 이런 것들을 보고 더욱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마갑과 자이언트만 얻으면 나도 특별해질 수 있다는 희망.
이것이 그들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힘 중 가장 강력하고 원초적인 갈망인…… ‘욕심’.
그것이 ‘One’을 플레이하는 모든 유저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 * *
“좋지 않아.”
난 허공에 떠 있던 모든 홀로그램 창을 종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열풍, 아니, 이 정도면 광풍이라 말해도 될 것 같았다.
옛말에 과한 것보단 차라리 모자란 것이 낫다고 했다.
마갑과 자이언트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게 과한 것 같았다.
“이 현상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르지만…… 왠지 불안하네.”
유저들이 강해지는 건 좋다.
하지만 그 효과로 융합이라 불리는 그 현상이 더욱 빨라질지도 몰랐다.
과연 우라노스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이런 건 그도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어떤 것이 진실일지는 나도 몰랐다.
단지……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할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지옥으로 출근하는 건가?”
지옥, 다른 이들은 단순히 게임에 접속하는 것일지 몰라도 나에겐 아니었다.
린이 자신의 자이언트인 다크 문(Dark Moon)을 얻으면서부터 시작된 린과 나의 지옥 훈련.
남들은 자이언트를 하루(게임 시간)에 한 시간 기동시키는 것도 엄청나게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는 최소 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연속해서 기동 훈련을 강행했다.
그렇게 네 시간 동안 엄청난 강도의 훈련을 계속한 후에 린은 완전히 퍼져서 거의 두 시간가량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난 린이 쓰러져 있는 두 시간 동안에도 계속해서 자이언트를 타고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현재 내가 자이언트를 타고 움직일 수 있는 기동 시간은 최대 열 시간.
하지만 그렇게 기동할 경우 후유증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안정적인 기동 시간은 대략 여덟 시간 정도였다.
물론 난 절대 안정적인 기동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
지옥이란 표현…… 그것을 괜히 사용한 게 아니었다. 나 역시 린과 마찬가지로 한계에 가깝게 내 몸을 혹사시켰다.
늘 끝까지 내 모든 힘을 쥐어짜서 바닥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의 마력까지 모두 소진시켰다.
그리고…… 쓰러졌다.
이것이 바로 지옥.
린과 내가 하루하루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지옥 훈련의 전부였다.
자이언트로 모든 힘을 소진한 후…… 약간의 회복 시간을 가진 후 다시 마갑을 이용해 극한까지 몸을 혹사시키는 훈련.
당연히 이 훈련 일정을 계획한 건 내가 아닌 린이었다.
처음에 난 린이 계획한 이 무식한 훈련 일정에 반대했었다.
어디까지나 난 최고의 효율이 나올 수 있는 훈련 일정을 짜 깔끔하게 수련을 하는 스타일이었지, 린처럼 무지막지한 훈련 양을 통해 최고의 효율을 뽑아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만 같이 해보자는 린의 간절한(?) 부탁 때문에 시작한 이 훈련이…… 자이언트에 적응하는 데에는 최고의 효율을 보여주었다.
닥치고 타고 또 타는 것이 최고였던 자이언트.
덕분에 난 어쩔 수 없이 린이 계획한 그 무시무시한 훈련 일정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지옥 생활.
프로젝트 S의 활동이 대략 40일(게임 시간) 앞으로 다가온 현재 난 하루하루를 지옥에서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쿠쿵.
바닥에 쓰러지는 동체.
동시에 난 더 이상 레드 크로우(Red Crow)의 소환을 유지하지 못했다.
띠링, 구동 마력 고갈로 레드 크로우의 소환이 강제 해제됩니다.
촤르르륵! 철컥!
순식간에 사라지는 레드 크로우.
“헉…… 헉…….”
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마력이 완전히 바닥났기 때문에 레드 크로우가 사라질 때 아수라 역시 같이 소환이 해제되었다.
“받아요.”
린은 그런 나를 향해 시원한 마나 포션 하나를 던져주었다.
탁!
마력이 완벽하게 제로(0)가 된 이 상태에서 마시는 마나 포션의 맛은…… 그 어떤 청량음료보다 맛있었다.
퐁! 꿀꺽, 꿀꺽.
“캬아아!”
지옥 생활 중 유일하게 즐거운 순간이었다.
“어때요?”
잔뜩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린.
그녀는 요즘 한창 다크 문을 조종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에 내가 먼저 경험하고 해주는 조언 하나하나에 엄청나게 집중을 하고 있었다.
“……한 0.2초 정도 줄인 것 같다. 근데…… 아직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바로 영혼 동화율이 올라가면서 지연 시간이 늘어나. 아무래도 집중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 그나저나…… 진짜 지연 시간 2초의 벽은 깨기가 너무 힘들다. 현재까진 영혼 동화율 85%, 지연 시간 2.1초가 한계야.”
요즘 나와 린은 자이언트의 구동 시간보다 영혼 동화율과 지연 시간에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단순히 구동 시간을 늘리는 건 자이언트를 계속 탑승해서 익숙해지면 가능했다.
하지만 이 영혼 동화율과 지연 시간은 아무리 자이언트를 연속해서 탑승해도 좋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아예 이것을 줄이기 위한 몇 가지 훈련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에 집중하며 계속해서 두 가지 수치를 올리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휴~ 그래도 저보단 훨씬 좋네요. 전 아직 영혼 동화율이 겨우 70% 정도에 지연 시간이 4.5초가 한계예요.”
린은 그녀답지 않게 살짝 우울한 표정까지 지으며 중얼거렸다.
“실망할 필요는 없잖아. 처음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좋아졌으니까. 계속 좋아질 거야. 그리고…… 넌 아직 발전 속도가 빠르잖아. 난 단 1%, 0.01초를 올리는 것도 미칠 정도로 힘겨워.”
난 린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사실 린의 감각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자이언트 조종 능력은 내가 볼 땐 최상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나를 따라올 수는 없었다.
순수하게 자이언트 조종 능력만 놓고 본다면 나와 그녀의 차이는 거의 없었지만…… 중요한 건 내가 가지고 있는 한 가지 타이틀이었다.
또 하나의 SS급 타이틀 ‘우라노스의 마지막 축복’.
이 타이틀은 적어도 자이언트와 마갑에 관해서는 나를 최강으로 만들어 주었다.
타이틀 [‘우라노스의 마지막 축복’]
: 우라노스가 내리는 마지막 축복. 그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합니다. 어쩌면 이건 그가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일지도 모릅니다.
스킬: 없음
능력치: 자이언트와 마갑의 동화율이 10% 늘어납니다. 또한 구동 시간이 50% 증가합니다. 이 효과는 타이틀을 활성화시키지 않아도 적용되는 패시브 효과입니다.
특수 효과: ‘알 수 없는 효과[1]’
특이 사항: 오로지 당신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타이틀입니다.
등급: SS급
이 타이틀…… 이것이 존재하는 이상 린은 나를 능가할 수 없다.
다소 요상한 타이틀인 건 사실이었지만 어쨌든 SS급답게 상당히 큰 능력 상승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지속형 효과로…….
덕분에 난 최고의 자이언트 조종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자이언트 조종 능력도 꽤 좋은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영혼 가속이라는 건 뭘까요?”
린과 나는 그동안의 지옥 훈련을 통해 자이언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도 전혀 알아내지 못하게 한 가지 있었느니…… 그게 바로 영혼 가속이었다.
일단은 일종의 자이언트용 특수 기술일 것이라고만 막연히 추측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그건 그저 추측일 뿐 정확한 사실이 아니었다.
“글쎄…… 일단은 동화율과 지연 시간을 최대한 줄이며 기동 시간을 늘리는 것밖에 할 수 없으니 그것들에 집중하면서 변화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괜히 답도 나오지 않는 것에 골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네, 그럼…… 그런 의미에서 또 시작해 볼까요?”
“으음…… 아직 다 쉬지를…….”
이제 겨우 약간의 마력을 회복했을 뿐이다. 물론 마력의 절대량이 남들에 비해 월등했던 나였기 때문에 조금만 쉬어도 꽤 많은 양의 마력이 회복되는 건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분명 더 휴식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 정도의 페널티는 딱 적당합니다.”
웃으며 나를 강제로 일으키는 린.
그녀의 미소, 이 미소에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크으~ 날 죽여라, 죽여.”
말로는 죽는 소리를 하는 나였지만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린과의 지옥 훈련.
어쩌면…… 이 지옥에 린이 있었기에 난 더욱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