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223화 (223/250)

223. 확실한 준비 ― 1

* * *

확실히 한림은 한림이었다.

그는 내가 누군지, 그리고 어떠한 의뢰를 가져왔는지 이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쓴 건 딱 세 가지.

첫째, 무림맹에서 보낸 의뢰의 조기 종결 확인서.

둘째, 내가 의뢰한 의뢰의 대가.

셋째, 내가 의뢰를 한 이유.

이렇게 세 가지를 차례대로 들은 한림은 망설이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의뢰를 받아들였다.

생각보다 쉽게 한림을 프로젝트 S에 끌어들인 꼰정이 추천한 마지막 유저.

신궁 킬링타임을 찾아 나섰다.

킬링타임은 한림과 달리 꼰정도 정확히 어디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난 열심히 정보 길드들에 돈을 뿌리며 그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찾았다.

그렇게 삼 일(게임시간)을 찾았을 때 드디어 킬링타임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죽음의 숲 언저리에서 각종 마수(魔獸)를 사냥하며 자신의 솜씨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던 킬링타임.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떠도는 소문처럼 그가 현실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사냥꾼이라는 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킬링타임을 만난 난 거대한 사냥에 동참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에게 프로젝트 S에 대해 설명했다.

얘기를 모두 들은 후 킬링타임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사냥에 미친 남자 킬링타임.

그에게 이번 제의는 일생일대의 거대한 사냥을 경험하게 해줄 수 있는 매우 좋은 제의였을 것이다.

한림에 이어 킬링타임도 손쉽게 동료로 만들었다.

이제 남은 건 단, 3명.

난 이 3명은 일단 남겨둘 생각이었다.

어차피 프로젝트 S가 활동하려면 7개월(게임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

남은 3명은 그 기간 동안 천천히 구할 생각이었다.

7개월.

길다면 길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내가 볼 땐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난 프로젝트 S에 동참하기로 한 모든 유저에게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개개인의 실력을 올려놔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들에게 모두 최대한 ‘마갑’과 ‘자이언트’를 얻으라고 충고했다.

대부분의 유저가 마갑에 대해서는 잘 알아들었지만 자이언트에 대해서는 생소해했다.

난 그런 이들에겐 친절하게 자이언트의 존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물론 나 역시 자이언트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나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었기에 당연히 잘 모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을 얘기하며 얻을 수 있다면 얻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해주었다.

이걸로 대충 기본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건 프로젝트 S에 참여한 모든 유저가 최후의 결전을 기다리며 각자의 실력을 갈고닦는 것뿐이었다.

당연히 나 역시 그럴 생각이었다.

특히 난 꼭 자이언트까지도 얻을 생각이었다. 우라노스가 남긴 최후의 병기라는 자이언트!

마갑을 얻었을 때 새로운 세계를 보았듯이 이 자이언트를 얻을 수만 있다면 또 다른 힘의 경지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쉽게 얻을 수 없기에 더 특별해지는 자이언트.

그나마 다른 유저들보다 훨씬 더 그것에 가까이 접근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축복받은 것이었다.

앞으로 7개월.

거짓 평화가 유지되는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난 기필코 내가 원하는 것들을 완성시킬 것이다.

* * *

수련.

때론 혼자 하는 수련이 좋을 수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엔 파트너가 있는 것이 좋다.

나 역시 그 점엔 동의했다.

그래서 난 같이 수련을 할 파트너를 구했다.

이미 나와 같이 수련한 경험이 있는 유저.

바로 린이었다.

린과 나는 수련의 장소도 특별한 곳을 선택했다.

죽음의 산맥 안쪽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해가 뜨지 않는 숲’ 평균 레벨이 600 이상의 상급 몬스터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그곳이 나와 린의 수련 장소였다.

린과 나 모두, 하려면 제대로 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어중간하게 수련을 할 생각은 없었다.

지옥 훈련?

아니다.

이건 아예 진짜 지옥에서 훈련하는 것이다.

“뒤!!”

번쩍!

린의 검이 섬광처럼 빛나며 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가 내 등 뒤의 몬스터를 꿰뚫었다.

나와 린은 우리를 둘러싼 한 무리의 변종 늑대인간들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레벨이 대략 650 정도 되는 이놈들은 보통의 경우엔 무리를 지어 다니지 않지만 이곳은 죽음의 산맥이었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가 통용되지 않았다.

벌써 거의 100여 마리의 변종 늑대인간을 쓰러트려 이젠 10여 마리 정도만 남아 있었다.

이 정도라면 식후 디저트 정도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한 방에 가자!”

스릉!

난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뽑으며 린에게 외쳤다.

린 역시 들고 있던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꽈과과과광!

사방에 몰아치는 강력한 마력의 힘.

나와 린은 가볍게(?) 강력한 광역 공격 기술을 사용해 남은 열 마리의 변종 늑대인간을 깔끔히 정리해버렸다.

슈우우우우~

남아 있는 건 오로지 몬스터들이 떨어트린 아이템들뿐이었다.

“수고했어.”

“신 님도 수고하셨어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린.

누가 보면 화라도 난 줄 알겠지만 난 지금 그녀가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언뜻 보면 표정 변화가 전혀 없는 그녀였지만 아주 자세히 신경 써서 보면 입꼬리와 눈매가 매우 조금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린과 오랫동안 만나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변화.

난 그 변화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린과 친해졌다.

물론 그전에도 길드 채팅을 이용해 종종 얘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린에게 편하게 말 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아쉬운 건 아무리 편하게 말하라고 해도 절대 편하게 말하지 않는 린이었지만 오래 그녀와 알고 지내며 그것이 그녀의 변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되었다.

“자, 그럼 바로 이어서…… 대련으로 갈까?”

몬스터 사냥과 대련, 그리고 명상 수련.

이 세 가지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대련이나 명상 수련을 할 땐 내가 주변에 몬스터의 접근을 막아줄 수 있는 몇 가지 진을 설치했다.

몬스터 사냥을 통해 실전 감각을 익히고.

대련을 통해 스킬 숙련도나 운용 능력을 올리고.

명상을 통해 새로운 스킬 조합이나 공격 패턴을 연구했다.

휴식 시간 따위는 없었다.

싸우고, 연습하고, 생각하고, 이 세 가지 패턴의 반복이었다.

“네!”

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대답했다.

물론 여기서 ‘밝게’라는 뜻은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표현이었지만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파파파팟!

미리 어느 정도 준비를 해놓은 진법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진법강침 몇 개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곧장 활성화가 될 수 있었다.

지이이잉!

순식간에 분리되는 공간.

몬스터들의 인식 속에서 이 공간에 대한 모든 감각을 지우는 진법과 거기에 본능적으로 무의식 속에 두려움이 생겨나 이 공간을 피하게 만드는 진법, 그리고 마력의 방출을 완벽하게 막아주는 보호 진법까지. 총 3가지 진법이 활성화되었다.

이 진법들이라면 보스급의 강력한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절대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이번엔 마갑을 입고 대련하자.”

나에게 아수라가 있다면 린에겐 다크스타가 있다.

아수라를 제작하며 연구했던 다크스타. 난 그 다크스타를 재조립해 린에게 주었다.

“네!!”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끄떡이며 밝게(거듭 말하지만 내 기준이다) 대답하는 린.

그녀는 대답과 함께 곧장 다크스타를 소환했다.

파파팟!

그녀의 몸을 감싸는 검은 갑옷.

난 그런 린의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아수라를 외쳤다.

‘아수라!!’

지이잉!

영적으로 나와 연결되어 있는 아수라는 곧장 내 부름에 응했다.

휘리릭!

내 몸을 휘감는 검은색 그림자.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마갑 아수라의 등장이었다.

철컥!

마지막 한 조각까지 확실히 소환된 후 검은 그림자가 사라졌다.

다크스타를 착용한 린.

그리고 아수라를 착용한 나.

둘 다 검은색 빛깔의 마갑을 착용하고 있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내 쪽은 살짝 붉은색 기운도 느껴지는 검붉은색의 마갑이었고, 린은 완벽한 검은색을 지닌 마갑이었다.

“자, 시작하자!”

스릉!

허공에 나타난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뽑은 난 린을 향해 외쳤다.

그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린은 미련 없이 나를 향해 자신의 검을 뻗었다.

평소의 대련보다 더 살벌하고 화끈한 마갑 대련.

그렇기에 더욱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대결이었지만 워낙 살벌하게 진행되는 게 문제라 하루에 한 번 정도밖에 하지 않는 대련이었다.

확실히 린은 강했다.

에스카와는 또 다른 강함.

에스카가 끝없는 투지를 바탕으로 전투를 펼친다면 린은 빈틈없는 완벽함을 바탕으로 전투를 펼쳤다.

또 한 명의 강자인 천위강과는 싸워본 적이 없어 정확히 얘기할 순 없었지만 어쨌든 린과 에스카는 거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강한 이들이었다.

물론 린의 경우는 내 도움으로 마갑과 여러 아이템을 얻었기 때문에 에스카보다 한발 앞서 있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에스카도 분명 조만간 마갑을 얻을 것이다.

그의 그 열정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누가 더 강하다고 단정하기 힘들 것 같았다.

어쨌든 강자와의 대결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깨달음도 주었다.

나와 대결하며 발전하는 린.

린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내가 얻는 것도 많아졌고, 그 결과 나 또한 강해질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윈윈(Win Win) 수련이었다.

아마도 강도 높은 수련을 하고 있는 건 나와 린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미 난 프로젝트 S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이번 프로젝트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전부 알려줬기 때문에 다른 유저들도 지금쯤 미친 듯이 수련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강해지는 시간.

그렇게 거짓 평화의 시간은 정처 없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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