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믿기 힘든 진실 ― 2
* * *
난 조용히 천위강을 향해 물었다. 그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얘기를 해야 할 엄청난 진실을 과연 천위강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 그게 걱정이 되었다.
하나씩 천천히 알아간 나조차 진실을 알고 나서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그 사실들을 한 번에 알게 된다면?
아마 믿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제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믿는 겁니까? 잘못 보았을 가능성은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전, 누구보다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합니다.”
천위강.
아니 프로게이머 이강민.
그의 프라이드는 생각보다 상당히 높은 것 같았다.
“좋습니다……. 그럼 인정하죠. 맞아요. 그때 그 장소에 있던 사람은 바로 접니다.”
난 어깨를 으쓱이며 간단히 인정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데 숨기고 싶지 않았다.
“저, 정말입니까? 당신…… 무적자 님이 그때 그 몬스터들을 상대한 겁니까?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현실에서 게임 속 능력을 발휘한 겁니까? 그게 가능한 일이었습니까?”
갑자기 깨어진 포커페이스.
하긴 진실을 알게 되는 마당에 포커페이스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는 아예 없을지 몰랐다.
“휴우……. 진정 진실이 알고 싶습니까? 어쩌면 진실을 알게 된 것을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말.
바로 가이아가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런 건가? 알게 되면 후회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알고 싶은 게 진실이란 놈인가?’
“네, 설사 후회를 한다고 해도…… 내 스스로 선택을 한 후 하고 싶습니다.”
확고한 천위강의 의지.
그런 그의 모습에 겹쳐 보이는 나의 모습.
천위강의 이 대답은 결국 나의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알려드리죠.”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곤 곧장 차가 담긴 주전자를 들어 비어 있던 내 잔을 채웠다.
쪼르르르륵.
“앉으세요. 이 얘기는 무척 깁니다.”
믿기 힘든.
하지만 믿어야 하는 진실.
지금부터 천위강에게 내가 할 얘기는 그런 얘기였다.
* * *
난 적당히 나에 대한 중요한 비밀 몇 가지만 제외한 모든 사실을 알려주었다.
차원의 융합과 초월자들의 개입.
그리고 ‘전이’와 그 수하인 드래곤들.
하나하나가 충격적인 얘기였기에 얘기가 거듭될수록 천위강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만 갔다.
아마 지금 그는 머릿속으로 내가 완전 미친놈이라 이 황당한 얘기를 지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천위강이 결론을 그렇게 내리고 나와 상종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 모든 건 천위강이 선택한 것이고 받아들이는 것 역시 천위강이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의 사태까지 오게 된 겁니다. 프로젝트 S는 그러한 놈들의 계획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세계를 구할 영웅들의 모임입니다.”
마지막 말은 가벼운 농담이었지만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
침묵하는 천위강.
확실히 그에겐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모든 걸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던지…… 뭐가 됐건 시간은 필요했다.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천위강도 나도 입을 열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천위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찻잔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건가요?”
“……그렇겠죠.”
“다른 세상…… 다른 차원…… 다른 인생…….”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는 천위강.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TV에 나온 ‘The One’의 광고 카피처럼 이곳은 제2의 인생이 존재하는 다른 세상일 뿐입니다.”
그 광고는 단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그런 카피를 썼겠지만 참 웃기게도 그 말은 진실이었다.
탁.
찻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천위강.
어느새 그의 눈빛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시 인사를 드리죠. 이강민이라고 합니다.”
천위강은 모든 걸 받아들이고 인정한 것 같았다.
“네, 반갑습니다. 신이라고 합니다.”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거 진실을 알고 나니 더 두근거리는군요. 환상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이 힘이 실제로 존재하는 힘이라니……. 게다가 그 힘을 내가 얻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하지만 그래 봤자 한정된 힘일 뿐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거의 신(神)이라 불러도 좋을 놈들입니다.”
“그런가요? 그런데…… 전 이 힘이 진짜 존재하는 힘이고 그걸 내가 지니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즐겁습니다.”
투신 천위강, 아니 프로게이머 이강민은 힘에 대한 욕구가 대단히 강해 보였다.
어쩌면 그가 게임 속에서 늘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강한 욕구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뭐가 됐건 놈들을 막기 위해선 우리 유저들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미약하지만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미는 천위강.
이로써 동대륙의 최강자인 투신 천위강도 프로젝트 S에 합류하게 되었다.
천위강을 팀에 합류시킨 후 난 곧장 동대륙 최고의 괴인(怪人)이라 소문난 불사마군 한림을 찾았다.
그가 동대륙 최고의 괴인으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그 스스로 정해놓은 규칙 때문이었는데 그 규칙은 이러했다.
1.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면 어떤 일이라도 해결해 준다.
2. 합당한 이유가 없는 의뢰는 절대 받지 않는다.
3. 대가와 이유가 적절하다면 PK 의뢰를 받아준다. 단, 반복, 중복 의뢰는 받지 않는다.
4. 한 번에 한 가지 의뢰만 받는다.
5. 모든 종류의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다. 단,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자는 합당한 응징을 당한다.
불사마군 한림은 용병이었다.
그것도 보통 용병이 아닌 초특급 용병.
그는 모든 종류의 일을 가리지 않고 다 했다. 심지어 물건을 배달하거나 저레벨 유저들의 사냥을 도와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가만 지불한다면…….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무조건 일을 처리해 준다.
물론 그 대가는 결코 싸지 않았다.
그리고 이유 역시, 한림의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었기에 어떨 땐 너무 까다롭게 굴며 거절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아무렇지도 않게 승낙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괴인이라 불렀다.
어쨌든 그는 술법과 암기술을 동시에 최고 수준으로 익힌 랭커로서 더블클래스 유저들에겐 전설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놓고 하이퍼넷에 늘 위치를 알려주며 의뢰를 받는 그였기 때문에 그를 찾는 건 매우 쉬웠다.
하이퍼넷에서 그의 위치를 확인한 난 곧장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현재 그는 무림맹의 의뢰를 받아 죽음의 산맥 초입에 있는 몬스터들 5만 마리를 사냥하는 중이었다.
일반 유저들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난 꼰정을 통해 그 사실을 들은 상태였다.
무림맹이 그에게 의뢰하며 준 대가는 2만 골드와 상급 술법 스킬북 2개였다.
일개 용병에게 지불하는 보상치고는 대단히 큰 보상.
하지만 불사마군 한림이 움직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생각하면 그렇게 큰 보상도 아니었다.
그가 움직이면 동대륙의 다른 용병 유저들도 움직인다.
한림은 은연중 동대륙 용병 유저들의 우상이 되어있었다.
물론 한림이 그렇게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는 남들의 사정이나, 남들의 관심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오로지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괴인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용병 유저들을 챙기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한림의 무관심이 용병 유저들을 더욱 자극했다.
그래서 용병 유저들은 당당하게 용병왕 한림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했다.
무림맹에선 그 점을 주목하고 한림을 정식으로 고용했다.
동대륙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용병 유저들을 몬스터들과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해 큰 대가를 치루며 한림에게 의뢰를 맡긴 것이었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꼰정에게 듣기론 한림에게 의뢰를 한 것이 약 두 달(게임시간) 전이었는데 현재는 동대륙에 존재하는 용병 유저들 중 80% 이상이 백호성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한림을 움직여 용병 유저들을 끌어들인 이 아이디어는 확실히 좋은 수였다.
어쨌든 그러한 이유로 죽음의 산맥 초입에서 미친 듯이 사냥을 하고 있는 한림.
꼰정은 날 위해 며칠 전에 한림에게 현재 의뢰 진행 상황을 물어봐 주었는데 놀랍게도 한림은 정확히 55일(게임시간)만에 4만 마리가 넘는 몬스터를 제거한 상태였다.
팀을 짜서 활동하는 것도 아닌데 한림의 사냥 속도는 정말 대단했다.
원래는 하나의 의뢰가 끝나기 전엔 다른 의뢰를 절대 받지 않는다는 한림.
하지만 꼰정이 특별히 힘을 써준 결과, 무림맹 측에서 한림에게 의뢰의 조기 종결을 부탁하는 문서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대가는 그대로 모두 지급하고 단지 의뢰만 조기 종결하자는 식의 정식 문서였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내가 한림에게 의뢰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림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로지 의뢰뿐이다. 의뢰가 없다면 한림은 아무리 대단한 일이 있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게 한림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원칙이었다.
그렇기에 난 아예 한림을 개인적인 용병으로 고용할 생각이었다.
대가는 무려 10만 골드와 최상급 술법 스킬북 1개, 상급 술법 스킬북 3개, 상급 암기술 스킬북 3개.
의뢰 내용은 나를 도와 약 두 달(게임시간) 후 있을 프로젝트 S의 히든 퀘스트 공략에 참여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뢰를 하는 합당한 이유는 동대륙과 서대륙의 구원.
이유가 조금 거창했지만…… 어쨌든 이 정도라면 충분히 한림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