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모여드는 실력자들 ― 1
* * *
그랜드 크로스.
그 기술의 원주인은 바로 에스카였다.
난 단지 그 기술을 흉내 내어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신성력과 암흑마력이 서로 교차되어 만들어진 십(十)자 모양의 강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 진짜 그랜드 크로스는 얼마나 강력할지 궁금했던 난 일부러 방패를 들어 그 공격을 막아보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완벽하게 공격의 주도권을 에스카에게 빼앗겼다.
전투의 흐름을 잘 알고 있는 에스카.
그렇기에 한 번 잡은 주도권을 절대 놓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꽈과광!
유수행을 사용하며 아슬아슬하게 그랜드 크로스를 피했다. 전투가 시작된 지 10분이 지났지만 에스카는 좀처럼 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물론 억지로 틈을 만들고자 한다면 내가 가진 몇 가지 사기(?) 스킬을 사용하면 됐다.
하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스킬들을 모두 배제하고 순수한 전투 능력만으로 에스카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그런 스킬들을 배제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능력치는 에스카보다 높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면 적어도 같은 유저의 등급에서는 싸울 수 있었다.
일단 내가 봉인시킨 스킬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난 유저의 등급을 초월했기에 내가 에스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여기까지였다.
꽝! 꽝!
그랜드 크로스를 피한 난 곧장 에스카를 향해 두 발의 마력탄을 쐈다.
중심이 흐트러진 상태에서의 사격이었지만 정확하게 에스카의 급소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에스카 역시 그리 호락호락한 이는 아니었다.
츠릿! 꽈과광!
손에 들고 있던 검과 방패로 정확하게 마력탄을 터트리는 에스카.
반응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괜히 랭킹 1위가 아니었다는 건가?’
정말 대단한 감각이었다.
솔직히 에스카와 모든 조건을 동등하게 해놓고 싸운다면 왠지 이길 자신이 없어졌다.
그만큼 에스카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스스슷!
공격을 가볍게 막은 에스카의 몸이 또 흐릿해졌다.
정확히 어떤 스킬인지는 몰랐지만 그의 신법은 상당히 독특하고 뛰어났다.
마법사의 블링크와 비슷한 이동 능력.
대신 이동하게 될 장소에 하얀색 빛기둥이 생겼기 때문에 미리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게 블링크보다 좋지 않은 점이었다.
물론 이동과 동시에 검은색 안개가 생성되며 시야를 흐리게 하는 점은 블링크보다 좋은 점이었지만 어쨌든 상대하기 참 까다로운 기술인 건 분명했다.
“쳇!”
이미 관찰스킬을 극성으로 사용하고 있던 난 곧장 하얀색 빛기둥이 생성된 지점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다시 마력탄을 난사했다.
퍼퍼펑!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검은색 안개의 효과로 인해 마력탄은 모두 땅바닥을 때렸다.
꽈과과광!
검은 안개가 광역 회피 기능이라도 지닌 것일까? 아무리 빠르게 반응해도 에스카를 명중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쳇!”
예상은 했지만 또 빗나가자 괜히 오기가 생겼다.
그 순간 빛기둥에서 한 줄기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내 심장을 노리는 빛의 섬광.
순간 난 레드와 이글을 교차시키며 섬광을 막았다.
쩌쩌정!
“큭!”
막긴 막았지만 완벽하게 막지는 못했다.
에스카가 이런 종류의 기술을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덕분에 틈을 찾는 게 아니라 아예 틈을 만들어주었다.
살짝 충격을 입고 흔들린 나를 향해 쏟아지는 에스카의 연속 공격.
확실히 그는 공격의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스킬 융합, 상급 보조 마법 블링크(Blink) + 중급 주술 은월몽(隱月影) + 상급 주술 축지(縮地) + 중급 보조 마법 일루젼 섀도우(Illusion Shadow).
퀵 블링크(Quick Blink).
일단 공격권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난 퀵 블링크를 이용해 에스카의 폭풍과도 같은 연속 공격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에스카는 그리 호락호락한 이가 아니었다.
츠리릿!
퀵 블링크가 발동되는 그 순간 에스카의 방패가 진동하며 몇 가닥의 검은색 촉수가 나를 덮쳤다.
휘리릭!
피한다고 피했지만 결국 촉수 중 하나에게 다리를 잡혔고, 그 결과 퀵 블링크는 절반의 효과만 발휘했다.
쿠쿵!
어설프게나마 공격권에서는 빠져나왔지만 촉수의 간섭으로 제대로 스킬을 완성시키지 못 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렇게 내 움직임을 제한시킨 에스카는 다시 빠르게 방향을 바꾸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쏟아지는 그랜드 크로스!
이거, 진짜 장난이 아니었다.
스킬 발동, 빛의 폭발!!
번쩍!
일단 난 빛의 폭발을 사용하며 에스카의 시야를 제한시켰다. 어설픈 회피동작으론 에스카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주 잠깐 시야가 제한된 지금.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장비 4번!”
스르릉! 찰칵!
난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뽑으며 곧장 에스카를 향해 천지횡단의 술을 사용했다.
술법의 효과로 나와 에스카 사이의 공간이 사라지며 난 순식간에 에스카와의 거리를 좁혔다.
스킬 융합, 화검(火劒) + 빙검(氷劒) + 철검(鐵劒) + 목검(木劒) + 지검(地劒).
오행신검 극한비기(極限秘技) 오행강기(五行罡氣).
츠츠츠츠츳!
엘레멘탈 블레이드에서 피어나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기운들. 오행신검의 모든 힘을 집대성한 조합 스킬이었기 때문에 거의 오행신검으로 낼 수 있는 한계 수준의 힘이라고 보면 되었다.
꽈르릉!
마치 폭풍이라도 몰아치는 것 같은 기세로 에스카를 휩쓰는 오행강기.
하지만 에스카는 시야가 제한된 상태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방패를 가슴 언저리로 끌어당기며 검을 들어 머리 위를 막는 에스카.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어 자세를 잡았다.
쩌저저정!
나의 공격과 에스카의 방어.
창과 방패. 하지만 에스카에겐 미안하게도 창 쪽이 좀 더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에스카의 방어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나와 에스카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었다.
주르르르륵!
뒤로 밀려나는 에스카.
“크윽!”
시야를 회복한 에스카는 살짝 눈을 찡그리며 들고 있는 방패에 더욱 힘을 불어넣었다.
우우우우웅!
하얀빛을 토해내는 방패.
하지만 아쉽게도 그 하얀빛은 엘레멘탈 블레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색의 빛을 제압하지 못했다.
오히려 오색의 빛에 눌려 방패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쩌정! 쩌저정!
그래도 에스카는 꿋꿋이 방패를 이용해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막았다.
확실히 끈질겼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 정도 힘의 차이를 느끼면 포기할 만도 했건만 에스카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눈빛이었다.
그런 그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이제 그만 마무리를 해야 할 때였다.
“하압!”
츠리리릿!
강한 기합소리와 함께 다섯 줄기의 오행강기가 에스카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난 곧장 ‘고속이탈’ 스킬을 이용해 뒤로 빠져나왔다.
꽈과과광!
오행강기 폭(爆)자결.
오행신검의 극한비기인 오행강기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그 기술이 에스카의 몸 전체를 집어삼켰다.
보통의 유저라면 이 한 방으로도 거의 게임 아웃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천무칠성의 일원이자 서대륙의 최강자 중 한 명으로 분류되는 에스카.
나는 마지막 결정타 한 방을 준비했다.
스킬 조합, 정령빙의 셀리스트(Salist) + 정령빙의 운다인(Undain).
연계발동, 스킬조합 정령빙의 노임(Noim) + 정령빙의 실라페(Silafe).
추가 연계 발동, 뇌전의 정령 썬더(Thunder).
특수 스킬 조합 엘레멘탈 버스터(Elemental Buster) 데스(death)!!!!
쩌저저저정!
땅바닥을 가르며 쏟아지는 강력한 정령의 폭풍!!
콰과과과광!
에스카가 서 있던 자리에서 또 한 번의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끝인가?’
오행강기 폭자결과 엘레멘탈 버스터 데스에 연달아 적중당하고 온전히 서 있을 만한 유저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절대 방심을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를 위기감을 느낀 난 다음 기술을 준비했다.
바로 그 순간!
폭발로 만들어진 연기구름이 갈라지며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에스카!
온몸이 검게 그을린 그의 모습은 한눈에 보아도 정상이 아니었지만 그의 눈빛과 그리고 그의 손에 잡혀 있는 검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아니, 정상적인 걸 뛰어넘어 아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까가가가가가강!
허공에서 멈춘 에스카의 검.
다행히도 난 긴장을 늦추지 않았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신의 방패’를 사용할 수 있었다.
덕분에 에스카의 검은 내 가슴 바로 앞에서 황금빛 장막에 가로막혔고, 최후의 일격을 실패한 에스카의 눈빛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크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