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프로젝트 S ― 2
* * *
최상위권의 유저라고 해서 다 진짜 실력마저 뛰어난 건 아니었다.
물론 평균적으로 대부분 뛰어난 건 사실이었지만 가끔은 자신의 실력보단 동료들의 실력 덕분에 랭커가 된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은 처음부터 배제하는 게 좋았다.
사실 차라리 이런 건 동대륙이었다면 더 편하게 작업을 했을 것 같았다.
투기장이라는 시스템이 서대륙보다 더 발전한 동대륙은 어지간한 랭커들은 투기장 컨텐츠를 즐기곤 했다.
하지만 서대륙은 투기장 컨텐츠보다 레이드 컨텐츠가 발전한 곳이었기에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가 더 애매모호했다.
결국 난 몇 시간을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서대륙에선 아예 ‘프로젝트 S’에 영입을 할 유저들을 팀 단위로 선별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실력 있는 솔로잉 유저라면 당연히 받겠지만 나머지 랭커들은 도저히 객관적으로 실력을 파악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팀 단위로 실력을 평가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프로젝트 S’에는 모든 능력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실력 있는 레이드 팀의 정예라면 충분히 동료가 될 자격이 있었다.
* * *
“지금 말한 게 전부입니다.”
난 프로이드를 바라보며 길다면 길 수도 있었던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으음…….”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아끼는 프로이드.
확실히 그는 내 얘기를 전부 이해한 눈치였다.
“10명, 헬 레이드 팀의 최정예 10명을 뽑아주세요. 거듭 말하는 것이지만 이 퀘스트는 단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게 끝납니다. 무조건 프로이드 님이 가장 믿을 수 있는 10명을 뽑아주세요.”
서대륙에서 70명의 동료를 모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중 10명은 프로이드와 그 동료들로 채울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프로이드를 찾아온 건 그만큼 내가 그를 믿고 있다는 뜻이었다.
사실 현재 서대륙에서 가장 실력 있는 레이드 팀을 꼽으라면 무조건 언급되는 헬 레이드 팀이었기에 굳이 실력을 검증할 필요도 없었다.
서대륙에서 레이드 하면 헬과 에볼루션 이 두 팀을 최고로 인정했다.
사실 프로이드와 얘기를 끝낸 후 에볼루션의 마스터인 다크오크도 만날 생각이었지만 다크오크에겐 5명의 동료를 뽑아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만큼 난 프로이드를 배려해주었다.
그의 실력과 그의 안목을 믿었기에, 그리고 그가 대미궁에서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희생을 잊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배려였다.
“……정말 엄청난 퀘스트이긴 하네요.”
히든 퀘스트다.
그것도 등급이 무려 SS급이었다.
이 퀘스트는 ‘One’을 즐기는 유저라면 누구라도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프로이드는 지금 내 제의를 수락할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내가 말한 10명의 유저를 어떻게 선별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10명입니다. 프로이드 님이 딱 10명의 헬 레이드 팀을 짠다고 생각했을 때 데리고 가고 싶은 10명을 뽑으면 됩니다.”
“후후…… 그런가요? 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그 10명의 명단을 알려드려야 하는 건 아니죠?”
“당연하죠.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을 내리면 무물 길드를 통해 연락을 주세요. 그때 제가 그 10명과 피의 맹약을 나누러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휴~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결정이 되겠네요. 근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미르 님이 무적자였다니…… 대미궁에서 평범하지 않은 분이라는 건 눈치채고 있었지만 설마 그 소문의 무적자이실 줄이야.”
“아! 그러고 보니 프로이드 님한테는 아직도 제 본명을 말하지 않았군요. 이미르는 가명이고 본명은 신입니다. 앞으로 신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대미궁 때는 본의 아니게 가명을 썼지만…… 뭐, 이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요.”
“역시 그랬군요. 네, 알겠습니다. 최고의 헬 레이드 팀 정예를 뽑아서 연락드리겠습니다.”
프로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프로이드를 보며 웃었다.
이로써 10명의 자리는 채워졌다.
이제 남은 건 90명. 그중 세 자리는 마가레타와 클레타 그리고 이나로 채울 것이다. 그리고 된다면 린도 합류시킬 생각이었다.
그럼 남는 건 86명.
아직도 모아야 할 동료는 많이 남아 있었다.
* * *
팀 에볼루션의 다크오크 외 4명.
PUSAN 길드의 검은해골 외 3명.
헬스크림 연합의 부동명왕 외 3명.
Kiss 레이드의 듀블랙 외 2명.
초전박살 팀의 천마도 외 2명.
팀 엔시니아의 쿠딘외 2명.
ER 레이드팀의 열혈쿡 외 2명.
노블레스 길드의 아콘외 2명.
블랙로즈 연합의 블랙로즈 외 2명.
…….
…….
한 달간 서대륙 전체를 열심히 돌아다니며 수많은 유저와 만났다.
한 레이드 팀을 이끄는 마스터도 있었고 실력이 좋기로 소문난 연합이나 길드의 장도 있었다.
모두가 실력을 인정받은 랭커들.
난 그들에게 일반 유저들은 모르고 있는 몇 가지 정보를 공개하며 히든 퀘스트를 함께 클리어하자고 제의했다.
물론 모든 걸 전부 얘기하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거절할 경우를 감안해 일정 수준의 정보만 제공했다.
하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다.
내가 선택해서 얘기를 나눈 유저 중 내 제의를 거절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SS급 히든 퀘스트!
이것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는 ‘One’을 플레이하는 유저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모은 유저가 정확히 51명.
헬 레이드 팀의 유저 10명을 합치면 61명. 거기에 다시 그림자 남매와 이나, 그리고 린을 더하면 65명.
이제 앞으로 5명의 동료만 더 구하면 될 것 같았다.
남은 5명은 팀 단위로 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 5명만큼은 통합 랭킹이 100위권 안에 들어오면서 특별한 세력에 소속되지 않은 솔로잉 유저로 뽑을 생각이었다.
통합 랭킹 100위권 안이라면 최상위권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유저로 인정받고 있는 유저들이었다.
그런 경지를 세력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 힘만으로 이루어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파티 사냥이나 레이드 팀 사냥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들도 가끔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사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을 밀어주는 세력 자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레이드 팀이나 길드, 연합들은 체계적으로 랭커를 밀어준다.
그렇게 하는 것이 랭커가 아닌 유저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몰랐다.
하지만 개인플레이를 즐기는 랭커들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랭커의 자리를 유지하는 게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100권의 랭킹을 유지한다는 건 보통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난 지금 그런 유저들 사이에서도 전설이라 불리는 이를 만나고 있다.
물론 최근엔 나 때문에 한 끗발 밀려버린 인물이었지만 아직도 그는 솔로잉 유저의 완성체라 불리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암흑의 성기사 에스카.’
내가 통합 랭킹 1위로 치고 나가기 전까진 이 에스카가 무려 몇 년 동안 통합 랭킹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소속되어 있는 길드라곤 거의 친목 수준의 길드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절대 통합 랭킹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에스카.
그 사실이 공개된 건 불과 일 년(게임시간) 정도 전이었지만 그 뒤의 파장은 굉장했다.
최상위권의 세력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도 랭커가 될 수 있다! 그것도 무려 통합 랭킹 1위의 랭커가!
많은 솔로잉 유저들은 그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그 유저들에게 전설이 되었다.
“대단하군요.”
조용히 내 말을 듣던 에스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 ‘The One’의 유저인 이상, 이 제의를 거절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네요.”
에스카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퀘스트에 대한 얘기를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이 퀘스트의 엄청난 가치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래도 그냥 덥석 제의를 받아들이는 건 뭔가 아쉽지 않겠습니까?”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에스카.
“원하시는 것이라도 있는 건가요?”
나 역시 웃으며 에스카를 바라보았다.
“네, 있습니다.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닌데…….”
에스카는 슬쩍 뜸을 들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얘기해보세요.”
“간단합니다. 저와 한 번…… 딱 한 번만 싸워 주시면 됩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에스카의 눈빛은 활활 타올랐다.
아마도 에스카는 오래전부터 나와 싸우고 싶었던 것 같았다.
혹시 통합 랭킹 1위 자리를 빼앗아간 나의 실력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것일까?
이미 서대륙의 S급 투기장에서도 대단한 실력을 발휘하며 몇 번의 우승까지 차지한 경험이 있었던 에스카.
그렇기에 더욱 나와 싸우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
진정한 서대륙의 최강자.
이미 대외적으로는 에스카가 패배한 상태였지만 에스카 본인은 그걸 직접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눈치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나는 흔쾌히 허락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카의 말대로 별로 어렵지도 않은 부탁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통합 랭킹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에스카의 진짜 실력이 궁금하기도 했다.
암흑의 성기사와 무적자의 대결.
만약 게임방송에서 했다면 엄청난 시청률을 자랑할 수도 있었던, 혹은 관중을 모아 약간의 입장료만 받았어도 매우 큰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던 대박 매치였지만 아쉽게도(?) 그 모든 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단지 나와 에스카.
그리고 우리가 싸울 한적한 공터.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어쩌면 이게 더 좋을지 몰랐다.
쓸데없이 복잡한 것보단 이렇게 단둘이 마음껏 싸울 수 있는 환경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건 에스카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