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프로젝트 S ― 1
* * *
일주일간의 휴식, 아니 일주일간의 간단한 수련을 끝낸 난 다시 미녹성으로 복귀했다.
단지 일주일이 흘렀을 뿐인데 미녹성은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일단 미녹성에 있는 유저들의 총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덕분에 아예 성 외곽에도 수많은 가건물이 들어서 아예 성 자체가 엄청 커진 느낌이었다.
기존의 미녹성도 서대륙에서 첫 번째로 손꼽히는 유저 밀집 지역이었는데 이젠 아예 서대륙 유저의 30~40%가량은 미녹성에 기반을 두고 생활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난 천천히 미녹성을 돌아보았다.
어차피 마가레타와 클레타를 찾아가도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그저 며칠 동안 남매에게 대략적인 드래곤의 작전계획서에 대한 얘기를 하고 그에 관련되어 몇 가지 일을 시키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나선 바로 미녹성을 떠날 생각이었다.
네 달…… 난 이 시간 동안 진정 믿을 수 있는 동료를 구해볼 생각이었다.
최상급 유저, 흔히 말하는 고수들은 많다.
하지만 아무나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정말 내 등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믿을 만해야 했고, 거기에 실력까지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난 아예 직접 내가 발로 뛰어서 동료를 구해볼 생각이었다.
대륙은 넓고 랭커는 많았다.
그 수많은 랭커 중 나와 세상을 구할 영웅이 될, 물론 그들은 단순히 게임 속에서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아주 희귀한 히든 퀘스트라고 생각하겠지만, 어쨌든 내가 만든 ‘프로젝트 S’에 영입할만한 이들은 꽤 많았다.
무려 1억 5천만 명에 가까운 유저가 즐기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The One’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몰랐다.
그렇게 천천히 미녹성을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미녹성의 가장 외곽지역까지 오게 되었다.
이곳은 몬스터의 습격이 잦은 곳이라 일반 유저들은 잘 오지 않는 곳이었다.
간혹 미녹성의 NPC들에게 퀘스트를 받은 유저들이나 몬스터를 잡아 실적을 올리려는 용병들이 이곳을 찾아오곤 했지만 그마저 요즘은 서유연을 통해 단체로 몬스터 사냥을 하게 되며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썰렁하네.”
사실 이곳은 내가 다른 유저들과 함께 몬스터 군단의 중앙을 꿰뚫었을 때 만들어진 경계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몬스터 군단 쪽에도 큰 소란이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나와 함께 현실에 떨어진 4마리의 보스 몬스터들은 몬스터 군단을 이끌던 놈들이었던 거 같았다.
어쨌든 그 혼란을 틈타 유저들은 이곳까지 몬스터 군단을 밀어낼 수 있었고, 그 뒤 이곳에선 유저와 몬스터가 치열하게 치고박고 싸웠다.
지금이야 몬스터들이 거의 죽음의 산맥 쪽으로 다 물러났지만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여기는 하루하루 혈투가 계속되던 곳이었다.
대충 미녹성과 그 주변까지 다 살펴본 난 다시 발걸음을 미녹성쪽으로 옮겼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놀았으니 이제 다시 본업(?)에 충실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어찌 보면 다소 웃긴, 또 어떻게 보면 조금 황당하기까지 한 일이었다.
“어이~ 어딜 가시나.”
갑자기 나타난 한 무리의 유저.
딱 봐도 절대 좋은 의도로 나타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위험한 곳을 그렇게 혼자 다니면 되나.”
정말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한 유저.
“이거 뭐 길게 얘기해봤자 피차 시간만 아까우니까, 내가 본론만 말할게. 뭐 예상은 했는지 모르겠는데 사실 우린 그리 질 좋은 사람들이 아니야. 원래 본업은 적절한 비매너 플레이를 이용해 유저들을 벗겨 먹는 건데, 요즘 너무 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중 PK도 하고 있는 중이야. 뭐, 그러다 살인자 타이틀 달고 지명수배되고 하면 대충 몇 달 근신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주절주절 잘도 떠드는 남자.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어 놓고 마치 설교를 하듯 떠들고 있었다.
“근데 말이야. 솔직히 좀 귀찮긴 하잖아? 그래서 생각을 했어. 어떻게 하면 ‘우리도 이기고 너 같은 일반 유저들도 이기는 방법이 있을까’하고 말이야. 그러던 중 마침 우리 멤버 중에 그나마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 하나 있는데 그 녀석이 좋은 아이디어를 하나 냈어. 아주 간단해. 우리가 너를 아주 곱게, 그리고 안전하게 저기 보이는 미녹성까지 보호해줄 테니 넌 우리한테 소정의 대가를 지불하면 되는 거야.”
내 옆의 남자가 본론을 얘기하기 시작하자 그의 일행들은 슬금슬금 나를 향해 다가왔다.
마치 나를 압박이라도 하려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얼씨구.’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일단은 계속 남자의 말을 들어주었다.
“이 얼마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야! 별로 비싸지도 않아. 한 500골드? 뭐 현금이 없으면 유니크 아이템 같은 걸로 때워도 돼.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PK 당해도 아이템 같은 걸 별로 안 떨어트릴 것이라 믿고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면 말이야.”
스윽.
남자는 뒤를 보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철컹!
그러자 뒤에 있던 한 유저가 손에 감고 있던 쇠사슬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크어어엉!]
그러자 등장하는 한 마리의 오우거.
매우 흥분한 상태인 것 같은 오우거는 두 다리의 끝만 빼고 쇠사슬에 꽁꽁 묶여 있었다.
“우리한테 죽는 게 아니라 쟤한테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만 알아둬.”
오우거를 제압해서 이렇게 끌고 다닐 정도의 실력이라면 적어도 마스터급의 유저들이라는 뜻이었다.
“500골드라…….”
난 슬슬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500골드. 사실 요즘 500골드가 어디 돈이냐? 안 그래?”
“하긴 그렇지 그깟 500골드쯤이야.”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를 해주었다.
“호오~ 이거 말 좀 통하는데. 아주 좋아~ 내가 특별히 혹시라도 다음에 다시 만나면 절반만 받을게. 정말 마음에 들었어.”
탁탁.
어깨를 치며 즐거워하는 남자.
확실히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실 마스터급의 실력이라면 정당한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골드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유저를 털어먹을 때만큼 쏠쏠하게 벌지는 못할지 몰라도 자기가 열심히만 한다면 충분히 많은 양의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제일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내가 서유연을 만들며 가장 먼저 쓸어버릴 이들로 꼽은 게 이런 양아치들이었다.
얘들은 사실 라트마나 기무보다 더 쓰레기들이었다.
하다못해 야망도 없는 쓰레기.
게임 속에서 전혀 존재할 가치가 없는 놈들.
“근데…… 우리가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
“하하, 사람 인생이란 게 원래 예측할 수 없는 거잖아. 살다 보면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겠어?”
“그런가? 뭐 나는 상관없는데 너희들이 날 다시 만나고 싶어 할지 그게 궁금하네.”
“푸하하!”
“푸풉!!”
“크크큭…… 크하하하.”
갑자기 사방에서 들려오는 웃음.
이들에겐 지금 상황이 무척 재미있는 거 같았다.
“하하하하하, 이거 간만에 빵 터지게 해주는데.”
남자는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웃고 있었다.
“자~ 이제 됐으니까…… 유머는 여기까지만 하고 후딱 일부터 끝내자고.”
내 앞에 내밀어진 손.
이 녀석은 정말 내가 500골드를 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래…… 후딱 끝내자.”
파팟!
우드드득!
“크아아아아악!”
난 내 앞에 있는 손을 잡고 그대로 뒤로 꺾어 버렸다.
순간 괴상한 형태로 부러지는 남자의 팔.
난 남자의 팔을 박살 내며 곧장 오른발로 남자의 두 자리를 쳐올렸다.
휘이익! 퍼퍽!
“커억!”
허공으로 떠오르는 일 번 쓰레기, 그리고 쓰레기가 낙하하는 그 순간 나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빠각!
그의 머리에 정확히 명중하는 내 오른쪽 무릎.
스킬? 이딴 건 스킬도 아니다. 그저 간단한 몸짓일 뿐이었다.
쿠쿵!
멀리 날아가 바닥에 처박히는 일 번 쓰레기.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나머지 쓰레기들은 그저 멍하니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자…… 500골드, 딱 500골드만큼의 힘만 써주마.”
이딴 쓰레기들을 상대로 화려한 조합스킬 따위를 쓸 필요는 없었다.
쓰레기를 처리할 땐 그에 맞는 방법이 따로 있는 법이었다.
어쨌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휴식을 끝낸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미녹성 주변의 쓰레기들을 치우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 * *
보통 통합 랭킹 10,000등 안쪽의 유저들은 최상위권 유저들로 인정받는다. 어떤 이들은 100,000등까지도 최상위권이라 말하곤 했지만…… 사실 10,000등 안쪽의 유저들과 100,000등 안쪽의 유저들 간의 실력 차이는 꽤 컸다.
어쨌든 10,000이라는 숫자는 분명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 10,000명 중 대략 7천 명가량이 서대륙의 유저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6,844명이었는데, 또 이 중 3천 명가량의 유저들이 미녹성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무물 길드에서 몇 번에 걸쳐 조사한 내용이니 어느 정도 정확성이 있는 정보였다.
난 일단 그 3천여 명의 명단을 입수해 나름의 기준을 두고 선별작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