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청소 ― 1
* * *
모두가 크게 동요하던 그 순간.
기무는 동요와 함께 강한 분노를 느낀 것 같았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에 잠입한 걸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는 마치 나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는 것처럼 호기롭게 외쳤다. 이곳은 반몬연의 사적인 공간이었기 당연히 난 반몬연 소속의 모든 유저에게 공격을 당할 수 있는 상태였다.
즉, 길드전을 활성화시키지 않아도 전투가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이건 무조건 반몬연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기무의 눈빛은 매우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유리한 것과 떨리는 건 별개인 것 같았다.
“척살조!!”
쾅!
기무의 외침과 함께 회의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한 무리의 유저들.
붉은색 망토를 두르고 있는 그들은 반몬연의 척살조들이었다.
사실상 반몬연의 척살조는 위너스의 정예와 그밖에 기무를 지지하는 여러 세력에서 지원한 정예들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사실상 기무의 사조직처럼 운영되던 반몬연의 척살조.
그렇기에 이러한 급작스러운 사건에 누구보다 빨리 반응할 수 있었다.
반몬연의 척살조에 대한 소문은 서대륙 전체에 퍼져 있었다.
반몬연의 강력한 무력단체.
마음만 먹으면 일개 길드는 한 번에 쓰러버릴 정도의 정예 유저들이 모여 있는 곳.
정확한 인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략 70~100명 정도로 예상.
평균레벨 600대.
조원 모두가 하이 마스터급 유저들.
이게 바로 대외적인 반몬연 척살조에 대한 소문이었다.
한 마디로 노련한 게임 고수들이란 얘기였다.
그래서일까? 문을 박차고 들어온 척살조의 움직임은 매우 깔끔했다.
기무의 외침과 동시에 나를 포위한 20명의 척살조원들.
그들은 마치 나를 제압이라도 한 것 같은 기세등등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개들이 늘었어.”
난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웃었다.
개가 늘었다.
물론 대장 개는 그대로 있었고 졸병 개들이 늘었다.
“건방진 놈, 네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상대를 잘못 골랐다.”
기무는 척살조가 들어오자 아까보다 좀 더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스윽.
난 기무를 보며 웃으며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움찔! 움찔!!
순간 기무부터 나를 포위하고 있는 척살조원들 모두가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쫄지 말고…… 그래서 어떻게 한다는 건데?”
정작 포위를 당한 난 여유가 있었건만 포위를 한 기무와 그 떨거지들에게서는 약간의 여유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이익! 저놈을 제압해!!”
그래도 명색이 최상급 레이드 팀 위너스를 이끌고 있는 기무였다. 아마도 이런 굴욕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척살조 역시 약간 위축된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몸이 굳은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기무의 발악과도 같은 외침을 듣자마자 곧장 나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아마도 자기들 나름대로 최선의 공격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엉터리 연합 공격은 맞아주려야 맞아줄 수가 없었다.
‘여러 길드나 레이드 팀에서 정예들만 모을 줄 알았지, 정작 훈련은 하나도 안 되어있군.’
물론 강한 유저들을 모으면 강한 파티가 되고 강한 레이드 팀이 된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서로 호흡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이들은 그게 부족했다.
검을 뽑아 나를 향해 달려드는 척살조의 한 유저. 그는 자신이 같은 척살조 동료인 마법사 유저의 캐스팅을 은근히 방해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뿐인가? 작은 손도끼를 나를 향해 던지는 유저는 다른 근접 공격을 하는 동료 유저의 접근을 방해했다.
그밖에도 많았다.
동료들이 나에게 접근하는 걸 무시하고 광역 스킬을 날리는 캐스팅 계열의 유저.
서로 같은 방향으로 공격을 시도해 엉켜버린 근접 공격 계열의 유저들.
한눈에 봐도 호흡이 전혀 맞지 않았다.
물론 기본적인 실력이 있는 이들이라 겉보기엔 상당히 위력적인 연합 공격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그저 빛 좋은 개살구처럼 보일 뿐이었다.
스으윽.
난 두 눈을 크게 뜨고 몇 발자국을 내딛었다.
자연스럽게 유수행이 발동되며 마치 물이 흘러가듯 내 몸도 매우 자연스럽게, 그리고 빠르게 이동했다.
파팟! 파팟! 꽈과광!
이 연합 공격은 위력은 좋을지 몰라도 피할 수 있는 공간은 너무 많았다.
공격의 동선과 동선 사이.
난 그 사이로 아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아마 누가 지금 내 모습을 본다면, 마치 산책 나온 사람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이게 바로 유수행의 위력이다.
모든 공격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척살조의 유저들은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한다.
이 틈은 그들 스스로가 나에게 만들어준 것이다.
“장비 1번.”
스릉, 채챙!
내 양손에 두 자루의 검이 잡혔다.
그리고 난 그 검들을 휘둘렀다.
치잉! 파파파팟!
틈과 틈을 파고드는 아쿠아와 소울 블레이드.
제대로 호흡을 맞춘 팀이었다면 지금 이 공격을 막아주는 방어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척살조의 방어조는 엉뚱하게 다른 캐스터의 앞을 가로 막으며 방패를 세웠다.
아마 내가 가장 화력이 강력한 캐스팅 계열 유저들을 먼저 해치울 것이라고 생각한 거 같은데, 그들의 판단은 너무 뻔해서 읽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크아악!”
덕분에 한 명의 근접 공격형 딜러가 무참히 공격당했다.
두 자루의 검을 이용해 1초에 16번의 칼질을 했다.
정확히 5초.
5초 동안 그 유저의 몸을 80가닥의 오러 블레이드가 그 유저의 몸을 폭풍처럼 휘감았다.
물론 80가닥 모두 정확하게 급소에 치명타로 적중했다.
방어는 당연히 하지 못했고 아예 자신이 어떻게 당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쿠쿵!
힘없이 쓰러지는 척살조의 유저.
레벨이 600정도가 되는 하이마스터 유저를 5초 만에 처리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 나에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각종 타이틀과 스킬로 인해 일개 유저가 낼 수 있는 파워를 능가한 나였다.
굳이 예를 들자면 보스 유저라고 해야 하나?
몬스터들 중 가장 강력한 놈들을 보스 몬스터라 부르듯, 그리고 그 보스 몬스터들은 같은 레벨이라고 해도 보통의 일반 몬스터보다 수십, 수백 배는 강력한 능력을 보여주듯 나 역시 일반 유저와 엄청난 힘의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뭐 사실 방금 전 쓰러진 유저 같은 경우는 조금만 더 집중하고 조금 만 더 옆에서 도와줬다면 5초 만에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어쨌든 난 제대로 걸리면 더 레벨이 높은 유저라고 해도 한 방에 끝내버릴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있었다.
“허억!”
“크으!!”
“으음!!!”
척살조의 유저들, 그리고 이 방 안에 있는 반몬연의 운영진들 모두가 놀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난 이들을 더 놀라게 해줄 수도 있었다.
최초 미녹성에 반몬연이 입성할 때 선봉에 섰던 의문의 유저.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두고 설왕설래(說往說來) 많은 얘기를 했지만 결국 정확한 정체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유저들 중 반수 정도가 그 유저는 ‘무적자’일 것이라고 추측했고 또 나머지 반수 정도는 ‘무적자’가 아닌 새로운 강자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들이 서로 근거로 내세우는 것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런 의견 충돌 속에서도 모든 유저가 공통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선봉에 선 그 유저가 반몬연의 대표일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당연한 것일지 몰라도 반몬연그 사실을 굳이 확인시켜주지도,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마치 무언의 긍정을 표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재미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반몬연의 대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반몬연의 정예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니…….
이 상황에서 내 정체를 밝히면 어떻게 될까?
아마 여기 있는 유저들은 전부 지금 놀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크게 놀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더 쉽게 현재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별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일단 이 시끄러운 개들을 정리하는 게 먼저였다.
스스슷!
난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단지 한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난 어느새 또 다른 척살조 유저의 등 뒤를 잡았다.
이 보법, 정확히는 보법인 동시에 술법인 이것은 보법 유수행과 최상급 술법 축지법이 만나서 만들어진 천지횡단(天地橫斷)의 술이었다.
난 이 술법을 이용해 단 한 걸음으로 약 20m의 거리를 움직였다.
덕분에 나를 포위하고 있던 척살조의 유저들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너무나 간단히 포위망을 뚫고 후방에 있는 마법사 유저의 등 뒤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패스트가딩!!”
한 방어조의 전사가 재빨리 마법사 유저를 향해 가로막기 계열 스킬을 시전했다.
가로막기 계열 스킬이란 튼튼한 방어 특화 유저가 연약한 딜러들을 위해 대신 공격을 맞아주는 스킬이었다.
즉, 전사가 빠르게 마법사의 앞으로 이동하며 방패를 이용해 공격을 막아내는 스킬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스킬이 만능 스킬은 아니었다.
분명 효율적으로 캐스터를 보호하며 파티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때론 방어보다 공격이 빠를 때도 있었다.
방어 특화 유저의 반응이 느리거나, 아니면 공격하는 쪽의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늘 예외는 생기는 법이었다.
물론 지금과 같은 경우는 무조건 후자 쪽이라 볼 수 있었다.
방어 전사의 반응은 아주 빨랐다.
하지만 내 공격은 인간의 반응속도 따윈 무시하는 전광석화와도 같은 공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