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승리의 뒷면 ― 2
* * *
커다란 회의장.
그곳에 약 30명에 가까운 이들이 각각의 자리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 이상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이 기회에 철저히 응징해야 합니다.”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연 남자. 그는 반몬연에 존재하는 16명의 집행위원 중 한 명이자 레이드팀 헬의 팀장 프로이드였다.
“휴~ 말이야 쉽죠. 그 녀석들을 전부 잡으려면 척살조 이외에도 다른 병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남는 병력이 있나요? 그나마 척살조를 운영하는 것도 빠듯한데…… 더 이상추가 병력을 늘릴 수가 없습니다.”
위너스를 이끌고 있는 또 한 명의 집행위원인 기무, 그리고 동시에 연합위원장이기도한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얘기했다.
“그럼 저들을 그냥 놔두겠다는 뜻입니까? 유저들의 단합을 깨고 각종 사기와 PK함정을 파는 놈들입니다. 저들을 그냥 두면 결국 유저들의 단합은 깨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미녹성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아, 알아요. 저도 압니다. 하지만 진짜 그놈들을 잡을 사람이 없는 걸 어찌합니까? 헬 레이드팀 상황은 좀 괜찮나요? 괜찮으면 척살대에 인원 좀 보내주시겠습니까?”
기무는 짜증이 잔뜩 실린 표정으로 프로이드를 향해 말했다.
“으음…….”
사실 기무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몬스터들의 대규모 반란을 유저들이 훌륭하게 막아내고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완벽하게 몬스터들을 제압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약 50일 전에 있었던 미녹성 전투를 기점으로 분명 유저들이 만든 연합이 몬스터들을 밀어낸 건 사실이었지만 전쟁자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매우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특히 반 몬스터 연합의 핵심 세력들은 그 치열한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우는 중이었다.
반몬연에서 고용한 용병들은 기껏해야 미녹성 외곽에서 벌어지는 비교적 크지 않은 전쟁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현재 전황이 얼마나 치열한지 잘 모르고 있었다.
아직도 치열한 전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이따금 들려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몬스터들의 마지막 발악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전부였다.
또한 실제로 아직 몬스터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해도 적어도 미녹성과 서대륙은 안전하니까 상관없다는 의견이 매우 많았다.
실제로 가장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 되는 곳은 죽음의 산맥의 입구 근처였다.
몬스터들이 대륙으로 진출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동대륙의 무림맹과 서대륙의 반몬연은 동시에 양 방향에서 죽음의 산맥 쪽으로 대규모 병력을 투입시키고 있었다.
“음지에 피어나는 독버섯은 아무리 계속 없애도 또 생겨나는 법입니다. 솔직히 저도 놈들을 한꺼번에 깔끔하게 처리하고 싶지만 그래봤자 시간이 좀 지나면 그 자리를 다른 놈들이 차지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대충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놈들만 잡으면 되는 겁니다. 그 정도라면 지금의 척살조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니까요.”
기무는 차근차근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이드는 결코 그의 말에 찬성을 할 수 없었다. 이곳에 모여 있는 30명의 유저들은 반몬연의 핵심 간부들이었다.
16명의 운행위원과 4명의 집행위원.
그리고 10명의 연합운영진.
집행위원 4명을 제외한 26명 모두 각각의 세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중 프로이드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는 안타깝게도 단 두 명뿐이었다.
한 명은 16명의 운행위원 중 한 명인 무물 길드의 클레타,다른 한 명은 집행위원 중 한 명인 에스카였다.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 군.”
에스카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며 인상을 구겼다.
집행위원은 특별한 세력은 없지만 그 개인의 실력이 뛰어나 대표로 뽑힌 일종의 얼굴마담이었다.
그렇기에 사실상 반몬연에서의 영향력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반대를 신경 쓰는 이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다른 위원들이 신경 쓰이는 건 반몬연의 모든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클레타였다.
“이건 좀 아닌데…….”
클레타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한 달(게임시간) 전 갑자기 사라진 신이 만약 이 자리에 있었다면 왠지 몇 명은 목이 날아갔을 것 같았다.
클레타가 보기에도 반몬연은 조금씩 썩어가고 있었다.
사실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핑계일 뿐이었다.
인력이 부족하다면 외부의 유저들을 저극 활용하면 되는 것이었고 그것도 안 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반몬연에 들어오길 희망하는 몇몇 대형 세력들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반몬연, 정확히 반몬연을 장악하고 있는 대부분의 위원은 그걸 반대했다.
이유는 많았다.
‘그동안 잘 갖춰놓은 명령 체계가 무너진다.’
‘몬스터들과의 대규모 전투가 익숙하지 않은 일반 유저들을 핵심 전장에 투입했다간 자칫 대패를 당할 수도 있다.’
‘가장 위험할 때 모른척하던 놈들을 동료로 받아들일 수 없다.’
‘어차피 핵심 전장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전투에 일반 유저들을 투입하는 걸로도 충분히 현 상황을 유지시킬 수 있다.’
수많은 핑계를 만들어내며 더 이상의 유저 충원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클레타는 이 주장들이 다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쏟아지는 각종 이득에 정신이 팔린 쓰레기들.’
물론 사람인 이상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클레타 역시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심.
적당한 욕심은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가 너무 심해지는 게 문제였다.
현재 프로이드와 클레타 그리고 에스카는 꾸준히 새로운 유저들을 대거 받아들여 한 번에 죽음의 산맥을 토벌하자는 의견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 셋을 제외한 모두가 그 의견을 반대하고 묵살했다.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들을 포함해, 말이 되지 않는 것들까지 여러 가지였다.
그들은 이 전황이 나빠지는 것도, 그렇다고 좋아지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계속 이 상황이 유지되길 원하는 이들.
그렇기에 클레타는 시간이 지날수록 짜증만 늘어갔다.
‘아…… 썅…… 진짜 확 탈퇴할까?’
사실 마가레타는 이미 오래전에 반몬연과의 모든 관계를 끊었다.
원래 이 운영회의도 마가레타와 클레타가 번갈아 가며 나오던 회의였는데, 마가레타가 회의장에서 칼을 뽑아 기무의 목에 가져다 댄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는 클레타가 계속 참여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가레타는 클레타에게 반몬연에서 완전히 빠지자고 얘기하고 있었다.
사실 클레타 역시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신.
그때문이었다.
사실상 반몬연을 만들어지게 한 당사자인 신.
클레타는 그가 반몬연에 심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클레타는 함부로 반몬연에서 나갈 수 없었다.
사실 자신의 이득만 생각하는 여러 위원들이야 한 세력이라도 반몬연에서 빠지겠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 분명했다.
클레타도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반몬연에서 빠질 수가 없었다.
‘어휴 답답하다.’
결국 오늘도 클레타는 답답함을 억지로 참으며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유저들을 연합에 받아들여 그들에게 척살조 임무를 맡기면 되지 않겠습니까?”
프로이드의 의견.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치, 이대로는 절대 회의를 끝낼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계속 의견을 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또 그 의견입니까? 외부 유저 영입은 당분간 보류하기로 결정한 거 아닙니까.”
“거참, 결국 또 이 얘기를 하시려고 한 건가요? 답답하네요.”
“반몬연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더 이상 유저를 받는 건 효율적으로 문제가 있어요.”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위원들도 외부 유저 영입 얘기가 나오자 속사포를 쏘아대듯 반대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에스카와 클레타는 슬며시 고개를 가로 저었다.
‘또 시작이군.’
‘아, 지겹다.’
두 사람 모두 이제는 더 이상 말다툼을 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힘 낭비라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프로이드 역시 답답한 표정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뭐라고 다시 반박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거기까지 하시죠. 이미 결론이 난 얘기로 쓸데없이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는 않네요. 이상 제 47차 운영회의를 마치도록 하겠…….”
기무는 프로이드의 말을 자르고 재빨리 회의를 끝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말을 전부 끝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개소리.”
갑자기 들려온 한 마디의 말.
그 말은 아무것도 없는 기무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누구냐!”
기무는 본능적으로 마법을 활성화시키며 뒤로 돌았다.
꽝!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한 줄기의 빛나는 창은 허공에 멈춰 있었다.
홀리렌스, 중급의 공격형 신성마법인 그것을 이렇게 빠르게 활성화시키는 것만 보아도 기무가 최상급 유저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마법은 허공에 멈춰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잡혀 있는 것처럼…….
스르륵.
그리고 나타나는 한 사람.
검은색 망토를 두르고 회색 후드를 눌러쓰고 있는 그는 맨손으로 홀리렌스를 잡고 서 있었다.
“라트마 녀석이 사라져서 한동안 개소리가 안 들려 좋았는데…… 오늘 또 개소리를 들었네.”
빠지직! 퍼펑!
홀리렌스가 허공에서 소멸되었다.
30명의 반몬연 운영진의 이목을 속이고 회의장에 숨어든 것만으로 놀라운데, 중급의 신성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잡고 또 그것을 가볍게 소멸시켰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평범한 이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더 놀라운 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얘기였다.
분명히 ‘라트마’라는 이름이 또렷이 들렸다.
‘One’에서 라트마란 이름을 가진 자는 오로지 대군주 라트마뿐이었다.
그 한마디의 말로 인해 모든 사람은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라트마를 사라지게 만든 이.’
‘대군주 라트마를 무너트린 남자.’
‘엠페러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자!’
“서, 설마……!!”
한 순간에 회의장 안의 모든 이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러고 보니 눈앞에 있는 남자의 모습은 매우 평범하면서 또 한편으로 매우 낯익은 모습이었다.
하이퍼넷에 떠도는 동영상에 자주 등장한 한 사람과 거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남자.
그 순간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남자의 정체를 눈치 챘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이가 입을 열었다.
“천살성(天殺星)!”
“천무천좌(天武天座)!!”
“무, 무적자!!!”
천무칠성 중 가장 특별한 천좌를 차지한 남자.
무적자 신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