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승리의 뒷면 ― 1
* * *
몬스터들은 강하다.
하지만 그들은 한계가 있다.
유저들은 약하다.
하지만 그들은 한계가 없다.
현재 동대륙과 서대륙에는 이 기본적인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저들은 몬스터들을 계속 밀어붙였다.
몬스터를 죽이고 그 대가로 얻은 아이템과 경험치를 통해 더 강해지는 유저.
서로 대치중인 상태에서 그 기본적인 법칙이 적용되기 시작하자 몬스터는 도저히 유저를 밀어낼 수 없었다.
“상급 마정석 팔아요! 방금 구해온 따끈따끈한 놈입니다!”
“5서클부터 7서클까지 다양한 종류의 마법 스킬북 팔아요. 특히 화염 계열 마법이 많으니 구경부터 하세요.”
“엘리트 한 손 검 구합니다. 가격은 후하게 쳐드리니 귓 주세요.”
“탱커 체력 장신구류 구해요. 다른 옵션은 필요 없고 체력만 많이 붙으면 됩니다. 최소 유니크급 이상만 구합니다.”
“중고 고스트아머 팝니다. 등록정보만 리셋시키면 새것처럼 사용할 수 있는 옵션 좋은 놈입니다.”
“중급 마갑 팝니다. 옵션은 근접 딜용 옵션입니다. 중급의 캐스터 딜용 마갑과 교환 가능합니다.”
“각종 스킬북 구입합니다. 하급도 구입하니 일단 문의 주세요.”
……
……
매우 소란스러운 현장.
이것은 미녹성의 중앙 광장의 현 모습이었다.
미녹성은 엄청난 숫자의 유저가 몰려들어 서대륙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가 되었다.
물론 동시에 가장 위험 도시이기도 했지만 그 위험 속에 존재하는 달콤한 보상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유저가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유저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미녹성의 중앙 광장.
이곳은 이제 우타와의 명물인 만물상(萬物商)보다 더 유명한 노점상 지역이 되었다.
일명 혈전상(血戰商)이라 불리게 된 이곳.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없는 게 없는 현존하는 최고의 노점상 지역이었다.
사실 원래 미녹성은 그 다지 번화한 도시가 아니었다.
근처 죽음의 산맥에 광맥이 많아 광산의 도시라 불렸던 미녹. 이곳은 기껏해야 대장장이 유저들이나 광물을 캐서 돈을 버는 광부 유저들, 그리고 죽음의 산맥에서의 모험을 즐기던 몇몇 소수 모험가 유저들이 주로 찾던 도시였다.
그랬던 도시가 이렇게 변했다.
성벽은 더 높아지고 심지어 원래 있던 성벽 바깥쪽으로 새로운 외성벽도 생겨났다.
이 모든 건 미녹성을 지키는 반 몬스터 연합에서 이루어낸 결과였다.
몬스터들의 습격으로부터 미녹을 지켜낸 반 몬스터 연합은 아주 자연스럽게 미녹성을 장악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 미녹성에서 거두어지는 세금은 모두 반 몬스터 연합이 가져갔다.
워낙 많은 수의 유저들과 길드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연합이었기에 그 과정에서 여러 얘기들이 많이 흘러나왔지만 결국 몇 번의 마라톤 회의 끝에 나름 투명한 자금 운영 방책을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24시간 전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미녹성의 세율은 다른 성들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약 10%. 다른 성들이 4~5%의 세율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세율이었다.
하지만 유저들은 끊임없이 미녹성으로 몰려들었다.
높은 세율을 감안하더라도 미녹성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다른 곳에서 얻는 이득보다 더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몬스터는 죽음의 산맥으로!
유저는 미녹성으로!
이게 요즘 크게 유행을 하고 있는 구호였다.
그리고 마치 거울을 놓고 보는 것처럼 동대륙도 서대륙과 똑같은 현상을 겪고 있었다.
서대륙의 반 몬스터 연합, 줄여서 ‘반몬연’. 그리고 그들의 거점인 미녹성.
동대륙의 무림맹. 그리고 그들의 거점인 백호성.
현재 ‘The One’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의 관심은 이 두 세력과 두 장소로 몰려 있는 상태였다.
“근데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
뚜비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앞서 가던 두덴에게 물었다.
“아~ 진짜 왜 자꾸 이래. 글쎄 아무 문제없다니까.”
두덴은 짜증난 표정으로 뚜비를 나무라며 옆에 있던 다른 동료들에게 손짓을 했다.
“전부 모여 봐.”
뚜비, 두덴, 듀트라, 이데아, 히게이아, 유하, 카즈
이 일곱은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같이 보낸 친한 동료들이었다.
그들이 10년 동안 같이 뭉쳐 다닌 이유는 그들 모두 게임 속의 아이템이나 골드를 팔아 생활을 하고 있는 다크 게이머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다크 게이머도 아닌 프로 다크 게이머.
그래도 그 바닥에선 나름 잘나간다고 소문난 이들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One’에서도 최상급은 아니어도 상급에는 속하는 유저들이었다.
“자꾸 너희들이 불안해하는 거 같아 다시 한번 말하는 시스템 메시지…… 솔직히 이번 일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건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또 매우 질이 좋지 않은 일이란 것도 잘 알 거야. 하지만…… 우린 프로 다크 게이머야. 돈이 되는 일이라면 그 일이 뭐라도 해야 한다는 뜻이지.”
두덴은 동료들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남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면 우린 결국 이류밖에 되지 않아…… 일류가 되려면 고정관념을 깰 필요가 있어,”
두덴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동료들에게 얘기했다.
“하지만…… 금지된 거잖아. 반몬연에서 미녹성 주변과 죽음의 산맥 근처에서는 PK를 금지시켰잖아. 그리고 특히 죽음의 산맥 근처는 이미 유저들 사이에서 상호불가침 구역이 된 지 오래됐는데…….”
뚜비는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반몬연은 보통의 길드가 아니었다. 현재 서대륙에서 반몬연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또한 예전 엠페러처럼 단순히 세력의 힘을 이용해 유저들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에 따라 움직였기에, 반몬연에 소속된 유저들이 아니라도 반몬연을 지지 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 상태였기에 서대륙에선 굳이 반몬연의 눈 밖에 나려는 유저들이 없었다.
“아~ 이 멍청한 놈. 너 장사 하루 이틀 하냐? 반몬연? 그놈들은 이미 미녹성을 장악하고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걸 모르겠어? 녀석들은 이 상태가 오래 유지되면 될수록 이득이기 때문에 절대 몬스터들을 완전히 물리치고 예전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 거야. 뭐, 죽음의 산맥 안쪽에선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절대는 놈들도 있는데…… 내가 그걸 믿을 거 같아? 절대 아니지. 이런 상황에서 놈들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들으면서 계속 손해만 보면서 살라고? 나 두덴은 절대 그렇겐 못 산다.”
두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큰소리로 얘기했다.
“우리들의 주 수입원이 뭐였는지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레인보우PK단’이 활동을 못한지 벌써 두 달은 다 되어 가는 거 같다. 덕분에 우리 수입은 70% 이상 줄어버리고…… 그 손해액을 메우려고 어이없게 몬스터를 사냥하는 용병 일이나 하고 있었다. 한때 서대륙에서 제일 잘나가는 PK팀이었던 우리가 이게 무슨 꼴이냐?”
두덴과 그 동료들은 겉으로는 잘나가는 용병팀처럼 꾸미고 다녔지만 사실 그들은 유저들을 교묘하게 털어먹는 아주 질이 안 좋은 악질 PK팀이었다.
“하긴 요즘 너무 수입이 적어서 짜증났던 건 사실이야. 덕분에 마누라한테 실컷 바가지를 긁혔다고.”
“맞아, 휴~ 난 여자친구한테 사주기로 했던 선물도 못 사줘서 그거 달래 주냐고 일주일이나 걸렸었어.”
유하과 카즈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 우린 음지에서 악(惡)을 먹고 살아가는 놈들이라고. 그런데 그걸 못하게 했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 솔직히 나도 반몬연 같은 거대 단체랑은 척지기 싫어. 내 생활 신조가 뭔지는 너도 잘 알잖아?”
“분수에 맞게 살자…….”
뚜비는 작게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맞아, 그거야 그런 내가 반몬연과 척을 지기로 결졍한 건 모두 이대로 가다간 굶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야.”
두덴은 이제 이해했냐는 듯이 얘기를 했다. 하지만 뚜비는 아직도 살짝 이해를 못 한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영업을 꼭 여기서 할 필요는 없잖아. 너 기억 안나? 얼마 전에 ‘One’ 통합 랭킹 11433위의 랭커가 여기서 사사로운 감정에 의해 PK를 했다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내가 얼마 전에 확인하니까 랭킹이 무려 2만등 밖으로 밀려 났더라. 들리는 소문엔 반몬연의 척살조는 대형 길드들도 하루 만에 밀어버릴 정도로 강력하데.”
뚜비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PK를 꼭 여기서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PK를 하다 적발 되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휴~ 참 답답하네. 지금 서대륙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 PK를 해서 얼마나 벌 수 있을 거 같아? 우리가 그냥 무차별 PK를 하는 머더러(살인자)PK단도 아닌데 거기서 이익을 낼 수 있을 거 같아? 철저히 계산된 PK를 해서 한 번 털 때 제대로 안 털면 안 된다는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미녹성 주변에 넘쳐나는 상급 유저들을 안 털고 안전한 지역에서 하급 유저들이나 털어먹자고? 우리 영업은 소문나면 끝이라는 걸 잘 아는 놈이 그런 소리를 하냐.”
두덴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뚜비를 바라보았다.
뚜비의 말만큼이나 두덴의 말도 정확하게 맞는 말이었다.
각종 기발한 수법을 이용, 정당한(?) PK를 통해 영업을 하는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소문이 나면 절대 더 이상 같은 방법으로 영업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힘들게 일을 하는 것일지 몰랐다.
하지만 ‘One’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꾸준히 PK를 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들은 어렵더라도 이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으음…….”
“정 안내키면 넌 빠져라. 솔직히 나도 하기 싫은 놈하고 억지로 같이 하기는 싫다.”
두덴은 최후의 수를 던졌다.
두덴이 그렇게까지 나오자 뚜비도 더 이상은 반대를 할 수 없었다.
“……알았어, 하자 해. 하면 되는 거지?”
뚜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으이구~ 짜식 진즉에 그렇게 얘기할 것이지.”
“일단 준비부터 하자고 손님이 언제 올지 모르는 거잖아.”
이데아는 기지개를 피며 일어났다.
죽음의 산맥 초입.
그렇게 그들은 그들만의 영업을 준비했다.
재미있는 건 이런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군데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 있는 레인보우의 팀원들과 비슷한 생각을 지닌 유저들이 상당수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인 물은 썩는 걸까?
아니면 썩은 물이 고인 물로 흘러들어 온 것일까?
몬스터와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
그 승리의 뒷면에 생긴 그림자.
승리라는 빛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림자 역시 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