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몬스터 몰이 ― 2
* * *
“호오~”
갑자기 뜬 시스템 메시지.
솔직히 이런 것에도 시스템이 반응할지는 몰랐다.
“……보너스라는 건가?”
착한 일을 하면 상을 받는다는 뜻인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차피 해야 할 일을 이렇게 퀘스트로 만들어 준다면 나야 고마운 일이었다.
“그럼 달려볼까?”
150만의 고블린을 막는데 성공했지만 아직도 1,800만에 가까운 몬스터들이 서대륙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을 막아야 했다.
그래야 서대륙을 살릴 수 있었다.
* * *
대이동이 시작되고 대략 한 달(게임시간)이 지났다.
초기에 속절없이 몬스터 대군에게 밀리던 유저들은 갑자기 등장한 한 동영상의 여파로 대륙별로 거대한 연합을 만들어 몬스터들에게 조직적으로 대항했다.
그 결과 동대륙과 서대륙 모두 몬스터들을 죽음의 산맥 근처에 묶어 둘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산발적으로 대륙 이곳저곳에서 작은 몬스터의 무리들이 발견되었지만 그건 연합에 들지 않은 수많은 다른 유저만으로도 처리가 가능한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몬스터 군단의 숫자는 늘어갔다.
하지만 그만큼 유저들의 연합 세력도 커져갔고 결정적으로 유저들은 라이프 스톤이라는 절대적인 도구 덕분에 숫자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지만, 몬스터는 매일매일 치뤄지는 전투 때문에 계속 숫자가 줄어들었다.
물론 줄어드는 숫자보다 추가되는 숫자가 조금 더 많아 조금씩 몬스터들의 숫자도 늘어갔지만 크게 위협적인 숫자는 절대 아니었다.
사람들의 입에선 슬슬 ‘전란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대륙 곳곳에서 ‘마갑’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재미있는 건 이 마갑을 얻은 곳이 바로 몬스터 군단과 전쟁을 치루고 있는 두 개의 유저 연합이라는 것이었다.
몬스터 군단.
그들은 마갑의 설계도와 각종 재료를 떨어트렸다. 처음엔 그게 뭔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유저들도…… 결국 시간이 흐르며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어쩌면 고스트 아머가 이미 보급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 빠르게 알아차렸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래서 연합의 유저들은 연합에 참가하지 않은 유저들보다 더 빨리 마갑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또한 직접 마갑을 얻을 기회도 더 많이 얻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동대륙의 무림맹.
그리고 서대륙의 반 몬스터 연합.
지금까지 ‘대이동’을 수수방관만 하던 수많은 유저가 몰려들었다.
혹자는 그런 유저들을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인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연합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고, 몬스터 군단은 더욱 어려운 전투를 치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계속 되는 전쟁.
‘전란의 시대’라는 말이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륙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도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의 상황보다는 나을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은 단 한 명의 유저도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몬스터들만이 존재하는 죽음의 땅.
난 아직도 죽음의 산맥에 있었다.
“헉헉…….”
뱀과 같이 생긴 인간형 몬스터라고 말해야 하나? 그 생김새가 상당히 혐오스러운 몬스터 중 하나인 오피디언은 대이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원래 무리지어 다니는 놈들이었다.
사실 한 마리, 한 마리를 때놓고 보면 오크 보다 좀 떨어지는 수준의 몬스터였건만 무리를 짓고 있을 때만큼은 미노타우르스 무리와 비슷한 수준의 강력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방금 간신히 오피디언 킹의 목을 따며 억지로 물러나게 만든 70만 정도의 오피디언 무리는 나를 상당히 지치게 만들었다.
“……도대체 몇 가지 독에 중독 된 거야?”
난 독 해제 마법과 독 해제 물약을 동시에 사용하며 투덜거렸다.
열 가지가 훨씬 넘어 보이는 다양한 독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생명력을 계속 없애버리고 있었다.
오피디언들의 끈질긴 저항 덕분에 무려 3시간을 소모하고 나서야 오피디언들의 유일한 지도자인 오피디언 킹의 목을 벨 수 있었다.
덕분에 오피디언들은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할 때까지 적어도 죽음의 산맥에서 꼼짝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해도 그 지도자는 서대륙보단 동대륙을 향해 움직이는 걸 더 선호할 것이다.
왜냐고?
3시간 동안 난 집중적으로 오피디언 종족 중 귀족계열이라 할 수 있는 나이트, 위저드, 어벤져만 죽어라 괴롭혔으니 다음 지도자가 누가 되든 그중 한 놈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놈은 서대륙 쪽이라면 쳐다보기도 싫을 것이다.
아무리 몬스터들이 멍청해도 그 정도 학습 능력은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힘들 게 또 하나의 몬스터 무리를 처리했다.
지금까지 내가 죽을 고생을 하며 처리한 몬스터는 대략 1,400만.
사실 내가 실제적으로 처리한 놈들은 대략 900만이었고 나머지는 내가 처리한 놈들에 휩쓸려 다시 동대륙으로 돌아간 놈들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절대 아니었다.
대략 400~500만의 몬스터 무리가 아직도 위험요소로 남아 있었다.
당장은 서대륙을 향해 움직이는 무리가 포착되지 않았지만 아마 조만간 무슨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특히, 내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건 최상급 몬스터 종족인 데몬을 이끄는 데몬의 대군주 ‘발록’이었다.
꼰정의 정보에 따르면 놈은 이리저리 다른 몬스터 무리들을 자신의 휘하에 끌어들이고 있다고 했다.
놈이 서대륙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80% 이상인 것 같았다.
‘발록’ 과의 전투…….
그 전투는 상당히 힘든 일전이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건 그거고…… 일단 좀 쉬자.”
거의 삼 주 동안 하루도 못 쉬고 뛰어다녔더니 피로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죽음의 산맥에 걸려 있는 ‘어둠의 축복’은 더욱 나를 피곤하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워낙 능력치 뻥튀기가 심한 나였기에 모든 능력치 -10%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페널티였다. 하지만 몬스터들의 능력이 +10% 되는 건 정말 짜증나는 일이었다.
덕분에 난 좀 더 고생을 해야 했고, 그 결과 완전히 지쳐버렸다.
현실에 한 번 나갔다 온 뒤로 피로가 더욱 확연하게 느껴졌다.
즉, 전에는 은연 중에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게임 속 가상공간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피로감’이란 걸 거의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서인지, 전에 느끼지 못한 피로감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다.
반면 좋아진 것도 있었다.
반응 속도라고 해야 할까?
이곳이 현실의 연장이라는 인지가 되기 시작하자 모든 것들이 보다 자연스러워졌다.
마법의 발현, 검의 움직임, 자연스러운 보법, 마치 스킬 숙련도가 한꺼번에 한 단계씩 상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난 이 현상에 대해 꽤 오랫동안 생각을 했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선입견, 또는 인식 하나를 넘어선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난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모험을 경험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아주 별거 아닌 거 같은 ‘선’ 하나.
그 ‘선’ 하나를 넘느냐 못 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
어쩌면 이 세상을 만들어낸 수많은 초월적인 존재가 걸어놓은 제약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제약을 넘어서는 순간, 이곳은 취미삼아 또는 재미삼아,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게임의 세상이 아닌, 실제로 또 하나의 내가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이 되는 것 같았다.
뭐가 되었건, 일단 지금 당장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가상현실을 넘어서 현실과 똑같이 예민한 감각을 가지게 되어 전보다 더 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단 거였다.
물론 나쁜 점도 있었다. 그 대가로 게임이라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기계와 같은 지구력을 잃었다.
여기서 말하는 지구력이란 생명력이나 마력 또는 기력과는 조금 다른 능력이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전에는 집중 상태로 4시간을 움직여도 게임 속이라는 이유 때문에 명상이나 단전호흡 스킬을 이용해 잠깐만 휴식을 취하면 금방 원래대로 회복 되었지만, 이제는 그 스킬들을 사용해도 육체적인 피로감은 회복될지 몰라도 정신적인 피로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즉, 이곳이 가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걸 인지한 순간 게임에는 존재하지 않던 능력치인 ‘정신’ 관련된 능력들이 하나 둘 생성되었다는 뜻이었다.
물론 캐릭터 창이나 스킬 창에 표시가 되는 능력은 아니었다.
단지 느낌으로 알 수 있는 능력이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 다루기 힘든 능력일지 몰랐다.
“휴~ 이제 마지막 한 방만 막으면 되는 건가?”
데몬의 일족들과 발록.
그리고 놈들이 이끄는 대규모 몬스터 군단.
이걸 막으면 아마도 난 히든 퀘스트를 완료하고 서대륙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거 뭐, 졸지에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라도 된 거 같은데?”
웃음이 나왔다.
어릴 때 보았던 영화나 만화 속 히어로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난 나름의 목적과 보상을 보고 움직이고 있다.
히어로가 나처럼 이렇게 계산적이라면 아마 히어로는 더 이상 히어로라고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도 또 한 번 멋지게 싸워보자고.”
드래곤급은 아니었지만 거의 그 바로 아래 등급 정도는 되는 최상급 보스 몬스터 발록.
그리고 놈이 이끄는 데몬 일족과 그 일족의 떨거지들.
쉽지 않은 전투가 되겠지만 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적어도 그들을 다시 동대륙으로 돌려보낼 수는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내 목표는 놈들의 진격 방향을 서대륙이 아닌 동대륙으로 돌리는 역할만 할 뿐이었다.
절대 놈들을 전멸 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사실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으라찻!”
힘을 실어 시원하게 소리를 질렀다.
이제 남은 건 노력 그리고 또 노력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