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몬스터 몰이 ― 1
* * *
죽음의 산맥.
유저들이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게 되면서 이름 그대로 죽음만이 존재하는 몬스터들만의 땅이 되어버렸다.
지금 나는 그 무시무시한 곳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몬스터들을 피해서가 아니라 대규모 몬스터 무리를 찾아서 움직이는 중이었다.
흔적은 매우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닌 백만 마리가 넘는 무리의 이동이라 흔적이 안 남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현재까지 내가 파악한 이동 무리는 대략 십여 개. 모두 100만이 넘는 대규모 무리들이었다.
모두 서대륙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놈들.
만약 이놈들이 전부 서대륙으로 몰린다면 미녹성의 방어선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휴우~ 일단 하나씩 차근차근해야겠군.”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들을 다시 동대륙으로 향하게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한 방에 골로 가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철저히 준비한 후, 하나씩 차근차근 방향을 돌리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일단 난 몬스터 무리들의 대략적인 위치와 이동속도를 파악한 후 가장 앞에 있는 몬스터 무리부터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숫자가 대략 150만 정도로 추정되는 이 무리는 고블린과 그들이 부리는 마수계열 몬스터들이 많은 무리였다.
간간이 중급 보스 몬스터이자 한 고블린 일족의 장이라 할 수 있는 홉고블린이 보이기도 했고, 열 마리 이상의 홉고블린을 부리는 고블린의 왕, 고블린 로드도 3마리 정도 보였다.
한 마디로 고블린의 무리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고블린은 비록 하급 몬스터였지만 그 숫자가 150만이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특히 고블린들의 특징이 단체전이었기 때문에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놈들은 강해졌다.
흔히 오크 1마리는 고블린 10마리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데, 만약 나보고 오크 15만 마리와 고블린 150만 마리 중 어떤 놈들하고 싸우겠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난 오크 15만 마리를 선택할 것이다.
설사 오크가 20만 마리라고 해도 난 오크를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고블린은 집단생활을 하는 몬스터답게 뭉쳐서 싸우는 능력이 강력했다.
그래선 난 이 150만 마리의 고블린 무리를 상대하기 위해 내가 알고 있는 최상급 진법과 최상급 마법진, 그리고 최상급 마도지식을 이용해 한 가지 거대한 함정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 이미 고블린 무리의 이동 방향을 예측한 후 놈들을 앞질러 자리를 잡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150만이라는 숫자는 사실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내가 비록 7천만에 가까운 몬스터 무리에도 뛰어든 적이 있는 용자(?)라지만 그땐 내 뒤에 500만이 넘는 유저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지금은 오로지 나 혼자뿐이었다.
나 혼자 150만을 상대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더욱 준비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었다.
당연히 150만과 정면으로 싸우는 건 아주 멍청한 짓이었다.
최대한 놈들을 분산시킨 후 각개격파 시키고, 최종적으로는 홉고블린 몇 마리와 고블린 로드 한 마리 정도를 제거해 서대륙에는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걸 머릿속에 각인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150만을 전멸시키는 건 나라고 해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적당히 놈들을 후퇴하게 만드는 건 가능했다.
“휴우~”
약 30분간의 작업.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중간중간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정도 규모의 특수 트랩은 드래곤 레이드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일단 기본 바탕은 150만이나 되는 고블린들을 분산시킬 수 있는 최상급 진법 ‘천지팔진도(天地八陣圖)’ 였다.
그리고 그걸 받쳐주는 마법진은 ‘인피니티 일루젼(Infinite Illusion)’ 이었다. 물론 이것 역시 최상 등급의 스킬이었다.
천지팔진도에 인피니티 일루젼을 곁들이면 완벽한 환영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여기에 최상급의 고대 마도지식 중 하나인 ‘리얼리티’ 기술이 첨가 되면 고블린들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일단 고블린들을 단체로 환각 상태에 빠져들게 하면 그 뒤는 내가 직접 나설 생각이었다.
아마도 환각 상태에 빠진 고블린들에게 나는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로 보일 것이다.
그런 존재가 자신들을 위협하고, 족장과 로드를 죽인다면?
고블린들은 분명히 다시 동대륙으로 돌아갈 것이다.
“일단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시간도 시간이지만 이 함정을 만들기 위해 지출한 재료 아이템들만 해도 어지간한 대형 길드의 일주일 운영비만큼은 될 것 같았다.
이래저래 대 출혈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솔직히 아까운 건 아까운 것이었다.
“일단 첫 시작이 중요해…….”
내가 지금 하는 건 일종의 몬스터 몰이였다.
몬스터를 잘 몰기 위해서는 놈들의 습성을 잘 알 필요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몬스터들은 다른 몬스터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오크 한 마리를 몰면 주변에 있던 고블린이나 마수 몇 마리도 덩달아 오크와 같이 움직이는 것처럼 몬스터들은 자신의 생각보단 주변의 환경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마도 인공지능, 아니 실제로 지능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그렇기에 첫 몰이를 잘 성공시켜야 이어서 할 몰이들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게 몇 개의 무리만 잘 몰면, 아마 다른 무리들은 대부분 덩달아 같이 움직일 가능성이 컸다.
이게 바로 멍청한 몬스터들의 한계였다.
콰과광!
고블린들 중엔 간혹 마법을 쓸 수 있는 놈들이 있다. 이런 놈들은 보통 족장인 홉고블린이 직속부하로 데리고 다니면서 부려 먹었는데, 다른 놈들과 달리 마법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녀석들을 고블린 메이지라 불렀다.
지금 서너 마리의 고블린 메이지가 자신이 따르던 홉고블린이 사망하자 거의 반은 미친 것 같은 상태가 되어 마구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그래봤자 3서클 이하의 하급 마법이었지만 그래도 이럴 땐 그냥 놔두는 게 제일 좋았다.
[키엑!!]
[키리리!]
시끄럽게 떠드는 고블린들.
난 그런 놈들을 보며, 들고 있던 두 자루의 총을 다시 그들을 향해 겨누었다.
“굿바이~!”
퍼퍼퍼펑!
집중포화(集中砲火) 스킬이 사용되며 가로세로 20m의 정도의 정사각형 지역이 초토화 되었다.
순식간에 지워진 고블린 떼.
이로써 150만 마리 중 거의 5만 마리 정도를 해치운 것 같았다.
그중에는 홉 고블린이 4마리가 있었고 고블린 로드도 한 마리 껴 있었다.
“이제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되었는데…….”
100명 중 1명이 고개를 돌리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1,000명 중 10명이 고개를 돌려도 거의 마찬가지다.
하지만 10,000명 중 100명이 고개를 돌린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100명의 효과.
그 효과는 다른 이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결국 똑같은 100:1의 비율이지만 그 1의 비율이 많아질수록 다른 이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은 커진다는 얘기였다.
하물며 만 명 중 백 명의 효과가 저런데 150만 중 5만의 효과는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설치한 ‘천지팔진도’에 빠져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150만의 고블린.
하지만 그 와중에도 동료들이 당하고 있다는 건 홉 고블린과 고블린 로드의 동족 동화 능력 때문에 또렷이 인지하고 있었다.
[구메아?]
[구메아!! 구메아!]
[그라락투 구메아!!]
동요하는 고블린들…….
그렇게 시작된 동요는 마치 전염병처럼 다른 고블린들에게도 전염되어갔다.
아주 빠르게 퍼져나가는 동요.
특히 남아 있는 고블린 로드 두 마리가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죽은 고블린 로드와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놈들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일지 몰랐다.
난 고블린 로드들이 서로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블린 로드 잡을 때 철저한 힘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주었다.
그 효과가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디오두 마르카!!]
[디오두 마르카!!]
이제는 두 마리밖에 남지 않은 고블린 로드가 동시에 외쳤다.
내가 여러 가지 언어를 골고루 배우긴 했지만 고블린 어까지는 모르기 때문에 뜻을 정확히는 몰랐다. 대충 짐작하자면 후퇴하자는 뜻 같아보였다.
이유인 즉, 그 말과 함께 고블린들이 계속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주춤주춤.
계속해서 물러서는 고블린들.
100만이 넘는 고블린들이 일순간에 뒤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모습은 나름 장관이었다.
‘휴~ 일단 첫 번째 단추는 제대로 끼웠군.’
이정도면 거의 대성공이었다.
고블린들은 잔뜩 겁을 집어 먹은 상태로 다시 동대륙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미 ‘천지팔진도’에 ‘인피티니 일루젼’과 ‘리얼리티’를 가미하며 서대륙은 절대 동대륙보다 만만치 않다는 걸 머릿속 깊숙이 새겨주었기 때문에 아마도 다시 서대륙을 향해 고개를 돌릴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이제부터 시작이겠지?’
고블린 무리는 내가 다시 동대륙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무리들 중 가장 약한 무리에 속했다.
사실 진짜 고생은 지금 부터라고 할 수 있었다.
띠링,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 히든 퀘스트를 발동시킵니다.
띠링, 히든 퀘스트 ‘서대륙을 보호하라.’를 받았습니다.
띠링, 본 퀘스트는 특수한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을 때만 등장하는 히든 퀘스트입니다. 퀘스트 성공 확률은 3%, 성공시킬 경우 S급 타이틀 ‘서대륙의 영웅’과 한 가지 보상품을 얻게 됩니다.
띠링, 행여 실패할 경우에도 AA급 타이틀 ‘대륙을 지키려 한 자’ 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띠링, 서대륙으로 몰려들고 있는, 그리고 몰려들 가능성이 있는 몬스터는 모두 1,945만입니다. 이 중 1,500만 이상을 동대륙으로 돌려보낼 경우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띠링, 만약 1,945만 모두를 동대륙으로 돌려보낸 다면 추가 보상품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띠링, 조심하십시오. 당신이 서 있는 이곳…… 죽음의 산맥 전체에는 ‘어둠의 축복 [몬스터 능력치 +10%, 유저 능력치 -10%)]’ 효과가 발휘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모든 임무를 완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