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변화하는 세상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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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이렇게 동대륙만 안정화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자칫, 몬스터들이 동대륙을 포기하고 모조리 서대륙으로 몰려들 경우 서대륙 쪽은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무림맹은 죽음의 산맥 초입에 크게 진형을 꾸리고 계속해서 몬스터 무리를 압박하는 중이라고 알려졌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있는 이곳에서 그곳까지 가려면 아무리 빨리 가도 최소한 일주일(게임시간)은 걸렸다.
그것도 포탈 시스템이 전부 살아있다는 가정하에 계산된 날짜였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소비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나에겐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단이 하나 있었다.
비록 유지비용이 상당히 비싸지만 그래도 이것만 이용하면 대략 삼 일(게임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쳇…… 최소 유니크 아이템 6개는 날아가겠군.”
SS급 마운트로 진화한 묵.
녀석이 가지고 있는 전력질주 스킬이라면 분명 이동 시간을 대폭 단축시킬 수 있었다.
현실로 돌아와 최대한 빠르게 모든 걸 확인한 난 다시 게임 속으로 접속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상황.
이 상황에선 최대한 빨리 결정하고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 * *
묵의 전력질주 스킬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 못해 대략 스킬 설명에 적혀 있는 내용만으로 상당히 쓸 만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써보니 그 이상의 효율을 보여주었다.
비전투시만 사용이 가능한 이 스킬은 기본적으로 이동속도를 100% 상승시키고 추가로 탑승자의 마력을 공급받아 최대 300%까지 이동속도가 늘어나는 스킬이었다.
가뜩이나 SS급 마운트답게 이동 능력에서 S등급을 기록하고 있던 묵이었는데, 능력이 300%로 뻥튀기되다 보니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내 최대 마력은 이미 어지간한 최상급 마법사 유저 몇 명의 마력을 합쳐 놓은 것만큼 많았기 때문에 묵에게 제공할 마력은 넘치도록 많았다.
그래서 그 300%라는 속도는 거의 유지된다고 보면 되었다.
난 묵을 타고 광속으로 질주했다.
어차피 제물로 삼을 유니크 아이템은 많이 있었다.
달리고 또 달리고…….
중간에 크고 작은 몬스터 무리들을 몇 개 만났지만 철저히 무시하고 달렸다.
박살 내고자 마음먹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이런 몬스터 무리들은 동대륙의 유저들 손으로도 충분히 제어가 가능한 놈들이었다.
지금 중요한 곳은 메인 이벤트(?)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죽음의 산맥 근처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곳에 도착해서 서대륙으로 밀려나고 있는 몬스터들의 균형을 바로 잡아야 했다.
좀 더 빠르게. 더 빠르게.
이용할 수 있는 포탈은 모두 이용하며 난 계속해서 달렸다.
난 그렇게 약 이틀을 조금 넘게 달리고 달려, 드디어 무림맹의 진형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림맹 진형은 매우 분주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
아무래도 그 엄청난 몬스터 무리와의 전투에서 승승장구를 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림맹에 도착한 난 빠르게 꼰정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어차피 무림맹 문제는 내가 나서는 것보다 꼰정을 통해 해결하는 게 좋았다.
물론 나도 무황성의 태상호법이자 일월신교의 비밀호법이었지만 동대륙에서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적인 영향력은 꼰정과 그 일행들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와~ 오빠 이게 얼마 만이에요? 백만 년은 된 거 같은데…… 그나저나 오빠는 미녹성 쪽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캬캬~ 하이.”
“좀 더 지났으면 얼굴 까먹을 뻔했어. 흐흐.”
“동대륙 최고의 신비인 등장인가?”
꼰정과 폴우, 붉은하늘, 붉은장미, 페티.
모두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 사정이 좀 있었어.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넘어오려고 했는데…… 요즘 사정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는 걸 잘 알잖아?”
“하긴 요즘 같을 때 혼자 돌아다니는 건 미친 짓이지…… 특히 이 죽음의 산맥은 말 그대로 죽음만이 존재하는 곳이 되어버렸으니…….”
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대이동’이 시작되고 그 누구도 죽음의 산맥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
몬스터들이 미친 듯이 날뛰며 무리 지어 다니는 죽음의 산맥. 그런 곳에 발을 들여놓을 만큼 간 큰 유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곳은 완벽한 죽음의 땅이 되었다.
“어?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진짜 어떻게 그곳을 통과한 거야? 또 우리가 모르는 신비로운 힘이라도 얻은 거야?”
붉은하늘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나를 향해 물었다.
“하하, 그래…… 뭐 대충 비슷하다고 해두자.”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에 대충 웃음으로 붉은하늘의 질문을 넘겨버렸다.
“근데, 정말 그냥 놀러 온 것은 아닐 테고…… 뭔가 있죠?”
꼰정은 슬쩍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있다. 아주 중요한 일이 있다.”
“서대륙 쪽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던데…… 그 때문인가요?”
꼰정도 귀와 눈이 있었다.
당연히 그녀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대충은 인지하고 있었다.
“맞아, 아무래도 몬스터들이 서대륙으로 몰리는 것 같다. 동대륙 쪽 대비가 너무 완벽해서 아예 몬스터들이 동대륙을 포기하고 서대륙으로 몰려드는 것 같아.”
“으음…… 그 문제는 저희도 생각한 것인데…….”
꼰정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알아, 지금 동대륙이 어떤 상황인지 이미 잘 알고 있다. 이 상황에서 서대륙을 위해 몬스터들을 향한 압박을 줄인다는 건 결국 동대륙이 입어야 할 피해가 커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대부분의 동대륙 유저들이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원래 인간은 욕심을 바탕으로 발전해온 동물이다.
특히 동대륙과 서대륙은 서로 묘한 경쟁 심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대륙의 유저들 대부분은 서대륙이 어떻게 되든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경쟁도 일단 대상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서대륙이 이대로 몬스터들의 천국이 되어버린다면 동대륙 입장에선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언제 다시 세를 불린 몬스터들이 동대륙으로 몰려올지도 모르는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이번처럼 완벽하게 다시 막아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제일 좋은 건 동대륙뿐만 아니라 서대륙도 몬스터들의 반란을 제압하고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이걸 동대륙의 유저들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꼰정아 라이프 스톤, 흔히 소울 스톤이라 불리는 그건 말이야…….”
난 차근차근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던 나였기 때문에 이번 대이동에 관련된 많은 숨은 정보를 꼰정 일행에게 알려주었다.
이들을 설득해야 동대륙의 무림맹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난 어지간한 수준의 정보는 모두 알려주었다.
특히 몬스터들의 대이동 뒤에 숨은 세력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결국 이번의 이 소란은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근원적인 여러 문제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얘기까지 전부 해주었다.
이들은 아마도 이 모든 걸 게임 속의 중요한 퀘스트 정도로 이해했을 것이다.
나 역시 이들이 딱 그 정도로 이해하게끔 정보를 풀었다.
더 알면 뭐하겠는가?
사실은 이 게임이 단순한 게임이 아닌 엄청난 비밀을 지닌 현실이라는 얘기를 해준다고 해서 이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미친놈 취급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렇기에 난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만 제공해주었다.
이해력이 빠른 이들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라면 왜 무림맹이 서대륙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라이프 스톤…….”
“으음…….”
“결국 운명 공동체라는 건가?”
“서대륙이라…….”
꼰정 일행은 제각각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근데 우리가 지금의 압박을 좀 줄인다고 해도, 이미 시작된 몬스터의 움직임을 다시 바꿀 수 있을까요?”
“바뀐다. 아니 바뀔 거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실 꼰정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미 몬스터들은 동대륙을 이탈해 서대륙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동대륙이 더 이상의 압박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몬스터들이 다시 동대륙을 향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난 그들이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믿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가 직접 몬스터들을 다시 동대륙으로 향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설마…….”
꼰정은 내 표정 속에서 살짝 내 뜻을 읽은 것 같았다.
“걱정 마라. 무모한 도전은 아니니까.”
난 그런 꼰정의 머리를 헝클이며 미소를 지었다.
“너는 여기 오빠들하고 지금처럼만 잘 해주면 되는 거야. 오다 보니 무림맹 최고의 보물은 ‘무림의 칼날에 핀 꽃, 꼰정’ 이라는 얘기가 돌아다니던데…… 과연 무신의 도를 능가하겠다고 큰소리치던 아가씨다운걸? 알겠지, 지금까지 아주 잘 해왔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라고.”
“형님들, 그리고 친구야. 부탁드려요. 이대로 계속 동대륙을 지켜주세요.”
난 밝게 웃으며 주변에 있는 폴우와 붉은장미, 페티, 붉은하늘에게 부탁했다.
“걱정 마라.”
“하하, 동대륙 최고의 회복술사가 여기 있다!”
“뭐…… 그냥 이대로 계속 지키면 되는 거잖아?”
“친구의 부탁은 당연히 지키는 것이 인지상정!”
자신 있게 소리치는 네 남자.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한 여인.
“그깟 몬스터들…… 내 도로 박살을 내면 돼요.”
어깨를 으쓱이며 웃는 꼰정.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무신의 도법을 이어받아 동대륙 최고의 도법 고수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그녀의 도는 실제로도 대단했다.
“오케이~ 좋아.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인가?”
무림맹의 협조를 끌어냈다.
그렇다면 이제 무림맹이 도와줄 수 있을 만한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또 한바탕 뛰어다녀야겠군.’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요즘 들어 내가 상당히 착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서고, 대의(大義)를 위해 뛰어다니다니…….
확실히 원래 나란 놈이 가진 사고방식에선 살짝 벗어난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이를 구하는 게 곧 나를 구하는 것이고 대의를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을!
결국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것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