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융합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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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이 네 개나 달렸고 머리도 두 개나 되는 오우거.
녀석은 광란의 계곡이라는 상급 필드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 ‘포핸드 트윈헤드 오우거’였다.
추정 레벨은 대략 600 초반.
적어도 상급 유저들로 이루어진 두 개 이상의 파티가 있어야 사냥이 가능한 놈이었다.
물론 나에게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에 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쾅! 우지직!
아주 간단하게 차 한 대를 박살 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커다란 괴물.
사자의 머리에 곰의 몸 그리고 호랑이의 발을 지는 자이언트 키메라라 불리는 놈이었다.
레벨은 대략 500 후반, 당연히 보스급 레이드 몬스터였다.
그 옆에는 다른 놈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작은 덩치를 지닌 놈이 천천히 구덩이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덩치가 작다고 해서 다른 놈들보다 약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허름하고 작은 은색 왕관을 쓰고 낡은 마법사 로브를 걸친 해골 괴물…… 무려 7서클 마법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레벨 500 중반급의 보스급 몬스터 리치 위자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리 더…… 엄청난 악취를 사방으로 풍기며 천천히 뒤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 놈.
누런 고름을 사방에 흘리며 움직이는 커다란 괴물…… 누더기 골렘이라고도 불리는 어보미네이션들의 우두머리, 무려 레벨이 600대 중반인 어보미네이션 킹이었다.
포핸드 트윈헤드 오우거, 자이언트 키메라, 리치 위자드, 어보미네이션 킹.
하나 같이 보스급의 레이드용 몬스터들이었다.
4마리의 보스급 몬스터들.
난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놈들과 함께 서 있었다.
[크어어어어어엉!]
울부짖는 몬스터들.
현재 놈들은 극도의 흥분상태인 것 같았다.
“꺄아아아아아악!”
“……고, 괴, 괴물이다!”
“으아아아악!”
“사, 사람 살려!!”
흥분을 한 건 몬스터들 뿐만이 아니었다.
광화문에 있던 수많은 사람도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극도의 혼란 상태가 되어버렸다.
갑자기 나타난 4마리의 괴물.
사실 이걸 목격하고 놀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일지 몰랐다.
[크어엉!]
콰광!
포핸드 트윈헤드 오우거가 네 개의 팔 중 하나를 사용해 바로 옆에 있던 자동차를 박살 내버렸다.
이미 그 흉성이 높아 질대로 높아져 있는 놈들인지라 주변에 움직이는 모든 것을 공격하려는 것 같았다.
“젠장!”
비록 내가 정의의 사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일반 사람들이 저놈들에게 무참히 살해되게 놔둘 수는 없었다.
“장비 5번.”
파팟!
아공간에서 빠져나와 내 손에 잡히는 천마궁.
다행히 현실이라고 해서 바뀐 건 없는 것 같았다.
스킬 발동, 난사(亂射)!!!
파파파파팟!
난 놈들을 향해 마나 에로우를 난사했다. 그와 동시에 크게 숨을 들이쉬며 입을 열었다.
“네놈들 상대는 이쪽이다!”
스킬을 사용한 외침이었다. 덕분에
몬스터가 나를 바라보았다.
퍼퍼퍼펑!
간단하게 마나 에로우를 쳐내거나 막아버리는 4마리의 몬스터들.
확실히 보스급 몬스터들다운 위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겁을 먹지는 않았다.
놈들이 강력한 건 사실이었지만 나 역시 강했다.
보스급 몬스터들을 잡아본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 눈앞에 있는 네 놈 중 두 놈…… 자이언트 키메라와 포핸드 트윈헤드 오우거는 이미 잡아본 놈들이었다.
비록 리치 위자드와 어보미네이션 킹은 잡아보지 못했지만 상대하기 힘든 존재들은 아니었다.
단지 까다로운 건 네 마리를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는 것과 이곳이 게임 속이 아닌 현실이라는 점 정도였다. 어쨌든 충분히 상대가 가능한 놈들인 건 틀림없었다.
‘일단 최대한 피해가 적은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었다.
만약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주변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게 분명했다.
‘조상님들에겐 죄송하지만…… 역시 그곳밖에 없다.’
어쩔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의 유물보단 산 사람의 목숨이 더 중요한 법. 난 재빨리 천마궁을 튕겨 몇 발의 마나 에로우를 더 쏜 후 곧장 경복궁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크어엉!]
[키에엑!]
콰광! 쿠쿠쿵!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모두 날려버리며 나를 따라오는 4마리의 몬스터들.
따라오는 것 자체가 거의 재앙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경복궁은 그리 멀지 않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모두 비켜!!!!”
난 ‘억압의 외침’ 스킬을 이용해 전방을 향해 크게 외쳤다.
현실의 존재들에게도 게임 속 스킬의 효과가 작용될지는 몰랐지만 일단 급한 대로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꺄아악!”
“허어억!”
다행스럽게도 효과가 있었다.
황급히 흩어지는 인파들…… 난 곧장 경복궁을 향해 내달리며 몬스터들이 지나갈 길을 만들었다.
‘경복궁에서…… 놈들과 현실을 차단한다.’
내 계획은 일단 최대한 피해가 적을 만한 장소인 경복궁으로 놈들을 유인한 후 그다음으로 놈들을 현실과 차단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불가능할지 몰라도 나라면 가능했다. 내가 익힌 진법들 중에는 실제로 잠시 결계를 쳐 공간을 나누어 버리는 것들도 있었다.
파파팟!
물론 그런 진법을 활성화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미친 듯이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4마리의 몬스터. 저들을 아주 잠깐이라도 잡아놓아야 경복궁에 진법을 설치 할 수 있었다.
‘흑랑 그리고 라르엘!’
최상급 마수인 흑랑과 특별한 소환수인 라르엘이라면 충분히 저놈들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
파아앗!
결정을 했다면 실행은 빠르게.
이게 내 방식이었다. 순식간에 어둠의 문이 열리며 흑랑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내 가슴 언저리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한 마리의 커다란 새가 되었다.
흑랑과 라르엘의 등장.
이것으로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놈들을 막아!”
[크헝!]
[휴~ 무시무시한 놈들이네!]
명령을 받은 흑랑이 빠르게 앞으로 뛰쳐나갔고 라르엘은 살짝 고개를 흔들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나는 눈앞에 있는 경복궁의 문을 오러 블레이드로 날려버렸다.
콰과광!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조상님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며 과감히 경복궁을 망가트렸다.
이정도의 소란이라면 필시 경복궁 내에 있던 관광객들은 모두 멀리 도망가기 바쁠 것이다.
스윽!
들고 있던 두 자루의 검을 아공간으로 돌려보낸 난 재빨리 양손을 만병천의 속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 내 손에 잡히는 몇 개의 진법강침.
난 미련 없이 그것들을 허공에 뿌렸다.
파아앗!
사방으로 비산 되는 다량의 진법강침.
내가 경복궁에서 펼치려는 진법은 상급 진법 중 하나인 ‘환상의 대지’였다.
일종의 공간결계인 이 진법은 어떤 에너지라도 진법 밖으로 나가는 것을 차단했다. 때문에 이 안에서 싸우면 그 피해가 바깥에 미칠 일은 없었다.
단지 내부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건 모두 막아도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건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지금 당장 급하게 펼칠 수 있는 공간결계 중 이만한 효율을 보이는 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파파팟! 촤아아악~!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총 144개의 진법강침을 경복궁 안쪽에 꽂았다.
이로써 ‘환상의 대지’를 만들어낼 준비는 끝났다.
이미 경복궁 앞쪽에선 4마리의 보스급 몬스터들의 공격을 견디지 못한 흑랑과 라르엘이 사정없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나마 라르엘은 보스급 몬스터들과 비슷한 수준의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처절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흑랑은 힘의 차이가 꽤 나는 편이었기 때문에 거의 역소환 되기 직전까지 몰린 상태였다.
하지만 흑랑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라르엘은 또 시킬 일이 있었지만 흑랑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꽈과과광!
무너지는 경복궁의 입구.
동시에 거의 회복불능의 타격을 입은 흑랑이 뒤로 튕겨 나왔다.
난 그런 흑랑을 편안하게(?) 역소환 시킨 후 다시 4마리의 몬스터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콰과광!
두 자루의 검이 만들어낸 반월형 오러 블레이드가 4마리의 몬스터들 사이를 파고들며 폭발했다.
“어이~ 니들 상대는 여기 있다고.”
까닥까닥.
태초부터 존재했을 것 같은 손가락 도발. 물론 몬스터에게 통하는 도발은 아니었지만…… 왠지 이걸 쓰면 어떤 존재도 나를 공격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크어어엉!]
[키에에에에에!]
4마리의 몬스터들은 곧장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몸이 달아오를 때로 달아오른 놈들. 아마도 나를 빠르게 찢어 죽인 후 사방에 보이는 먹잇감들을 도륙할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모를 것이다.
이곳이 자신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놈들이 내가 지정한 영역으로 모두 들어온 그 순간. 난 곧장 ‘환상의 대지’를 활성화시켰다.
스킬 발동, 상급 진법 환상의 대지!!!
파앗!!
강한 빛과 함께 경복궁의 안쪽 지역과 바깥쪽 지역의 공간이 서로 분리되었다.
물론 바깥에서 안쪽의 상황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이 진법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안에서는 바깥으로 그 무엇도 빠져나갈 수 없다. 이게 이 ‘환상의 대지’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난 라르엘에게 그 어떤 것도 이 진법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라고 명령해 놓았다.
무력행사도 허가했지만 살생은 절대 하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라르엘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사람들의 접근을 막을 것이다.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나 대규모 병력이 경복궁을 포위하면 상황이 좀 달라지겠지만…… 일단 그전까지는 라르엘이 자신이 맡은 임무를 확실히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15분? 20분?’
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 정도로 보았다.
어차피 아수라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그 정도가 한계인 것 같았다.
그 안에 끝을 봐야 했다.
“자, 그럼 빠르게 시작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