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200화 (200/250)

200. 진정한 시련

* * *

29분 55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버프를 활성화시켰다. 용마수, 용마안, 용마혈, 지존수호공, 천무신공 등등 모든 특별한 힘이 개방된다.

난 적어도 30분가량은 그 어떤 보스 몬스터보다 강력한 공격력과 방어력, 그리고 생명력과 마력을 지닌 존재가 될 것이다.

당연히 내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는 모조리 소멸된다.

22분 21초.

몬스터들은 마치 자살 공격이라도 하듯 나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전진 속도를 늦출 수는 없다.

사방에 흩어지는 하얀빛 가루만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증명한다.

도륙(屠戮).

난 몬스터들을 처참하게 도륙하며 전진하는 중이다.

20분 01초.

몬스터들의 반응이 변하기 시작한다.

놈들은 나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더 많은, 그리고 더 강력한 몬스터를 나에게 보냈다.

준 보스급 몬스터들이 떼를 이루며 나에게 달려든다.

어깨를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홉고블린의 마법, 옆구리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실버서펜트의 독이빨, 등 뒤에서 느껴지는 그림자 악마의 존재감.

모든 것이 살벌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 피를 들끓게 한다.

날 잡겠다고?

날 막겠다고?

아직은 어림없다. 난 ‘무적자’ 신이다!!

14분 16초.

6,500만은 확실히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제 몬스터들은 미녹성보다 자신들을 양분하며 중앙을 관통하고 있는 나란 존재를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

몇 겹으로 겹쳐서 몰려드는 자이언트 오크들.

마구 쏟아지는 마법형 몬스터들의 공격, 거기에 내 앞의 길을 막는 생명력이 아주 높은 대형 몬스터들.

전진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이래선, 이래선 30분 안에 미녹성 정문 앞에 도달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10분 04초.

남은 거리는 4㎞. 남아 있는 시간을 고려해 보면 너무나 긴 거리가 남았다.

미녹성에 가까이 갈수록 더욱 거세지는 몬스터들의 공격을 감안하면 이대로는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없었다. 결단이 필요할 것 같다.

퀘스트 완수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결단이…….

9분 44초.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전력을 다하려고 마음먹었던 전투다.

어쩌면 애초에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했을 퀘스트일지도 모른다.

‘그것’, 난 마갑 아수라의 사용을 결정했다.

* * *

“묵!!”

내 의지가 묵에게 전해지자 묵은 강하게 땅바닥을 구르며 높이 뛰어올랐다.

파아아앗!

치솟는 묵의 신형.

몬스터들 중엔 당연히 비행이 가능한 놈들도 있었다. 그놈들은 하늘로 뛰어오른 나를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놈들은 나를 공격하지 못했다.

어쩌면 참으로 어리석은 놈들일지도 몰랐다.

특수 소환, 아수라!!

쩌정!!

사방의 마력이 폭발하며 내 몸 뒤에 검은색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그 마력의 폭발에 휘말린 비행형 몬스터들은 당연히 큰 충격을 받고 뒤로 튕겨 나갔다.

허공에 나타난 검은색 덩어리는 마치 액체가 스며들 듯 내 몸으로 빨려들었다.

철컥! 철컥!

그리곤 곧장 온몸을 휘감고 있는 검은색 갑옷으로 변해 버렸다.

힘이 느껴진다.

아수라의 강대한 힘이!!

파앗!

난 허공에서 묵의 등을 박차고 더 높이 뛰어올랐다.

내 발밑에 보이는 작은 점들, 그것들은 모두 몬스터였다.

츠츠츠츠츳!

양손에 모여드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성질을 지닌 기운.

‘이걸로…… 확실히 길을 뚫어주마!’

오른손엔 헬 파이어의 기운이,

그리고 왼손엔 아이스 허리케인의 기운이 맺혔다.

머릿속으로 대략적인 범위를 정했다.

당연히 목표 범위는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몬스터가 되었다.

“압축…… 그리고 융합!!”

번쩍.

합쳐지는 두 개의 강력한 기운.

그 순간 난 그 기운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뿜어냈다.

혼돈의 나락(奈落)에서 끌어올린 파멸의 주문…….

현세강림(現世降臨), 천지소멸파(天地掃滅波)!!

콰아아아아아!

꽈과과과과과과과광!!

점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넓은 길이 생겨난다.

이것이 바로 천지소멸파의 위력.

그냥 천지소멸파도 아닌, 모든 숨겨진 힘을 개방하고 아수라까지 이용해 증폭시킨 천지소멸파였다.

당연히 그 위력은 설명 불가, 측정 불가였다.

“묵!”

난 다시 묵을 불렀다.

그러자 바닥에 착지했던 묵이 다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장비 4번.”

풀썩!

허공으로 뛰어오른 묵에 올라타며 난 다시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아직도 내 앞을 막고 있는 몬스터는 많았다.

“간다아아앗!”

스킬 조합, 정령빙의, 셀리스트(Salist)+정령빙의, 운다인(Undain).

연계 발동, 스킬 조합, 정령빙의, 노임(Noim)+정령빙의, 실라페(Silafe).

특수 스킬 조합, 엘레멘탈 버스터(Elemental Buster) 데몰리션(demolition)!!

엘레멘탈 블레이드에서 뿜어져 나가는 강력한 정령의 기운. 그 기운은 천지소멸파의 영향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몬스터들을 한 번에 쓸어버렸다.

콰과과광!

서서히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천지를 뒤덮고 있던 그 많은 수의 몬스터가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눈동자가 공포에 물들었다.

단 두 번의 공격으로 몇십만의 몬스터를 소멸시켰기 때문일까?

몬스터들은 나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후후, 길을 만들어준다면 환영이지.”

뒤로 물러나 길을 만들어준다면 난 좋았다.

난 묵을 타고 빠르게 뻥 뚫린 길을 달렸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잠깐뿐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갑자기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강력한 마력의 파동.

난 순간 이 기운이 어떤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예전에 한 번 느껴본 기운.

바로 드래곤 피어의 기운이었다.

‘쳇, 그냥 보고만 있지는 못하겠다는 건가?’

드래곤 피어 때문일까?

여전히 공포를 떨쳐 버리지 못한 몬스터들이었건만 그래도 나를 향해 죽어라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별 소용 없다.

얌전히 길을 비켜주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을 텐데, 날 막는다면 내가 가진 힘으로 길을 만들면 그만이었다.

퍼퍼퍼펑!

아수라의 마력 증폭 효과는 엘레멘탈 블레이드에 맺힌 오러 블레이드를 무려 10m 정도로 크게 만들어 버렸다.

마구 쓰러지는 몬스터들.

그들은 절대 나를 막을 수 없었다.

아수라를 만든 건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뒤에 있는 드래곤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몬스터들은 내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크에에엑!

끄아아아!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쓰러지는 몬스터들. 난 그렇게 길고 긴 혈로(血路)를 만들며 미녹성으로 다가갔다.

남은 시간은 1분.

별로 많이 남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제 남은 거리는 불과 50m 정도. 난 여유 있게 미녹성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크어엉!

한 마리의 거대한 자이언트오우거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난 염뇌를 이용해 간단히 재로 만들어 버렸다.

풀썩.

아수라를 사용할 수 있는 가능 시간은 앞으로 10분 정도 남았으니 크게 위험이 될 요소도 없었다.

마갑은 매우 강력하지만 그렇다고 만능은 아니었다.

이 사실은 아수라를 만들어 직접 입어보고 알게 된 사실이었다.

마갑은 강력한 마력 증폭 능력이 있는 대신 사용자의 마력에 따라 사용 시간이 제한되었다.

특히 마갑을 최대 출력으로 사용할수록 그 시간은 짧아졌다.

난 현재 아수라를 120% 최대 출력으로 사용 중이다.

몬스터들에게 절대적인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그리고 어차피 장기전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최대 출력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아수라를 보통의 출력인 70∼80%로 사용할 경우 한 시간가량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대 출력이라면 20분 정도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이게 마갑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마갑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상관없다.

어차피 난 이미 6,500만의 몬스터 대군의 중앙을 완벽하게 관통했다.

그리고 내 뒤를 따라온 반 몬스터 연합의 유저들도 톡톡히 제몫을 하며 몬스터 대군을 사분오열(四分五裂)시켜 버렸다.

대승(大勝)이 눈앞으로 다가온 순간,

난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디며 미녹성 정문 앞에 섰다.

띠링, 히든 퀘스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라’를 클리어했습니다.

띠링, 위업 ‘불가능을 넘어선 존재’를 달성했습니다.

띠링, 타이틀 ‘불가능을 넘어선 존재(SS급)’를 얻었습니다.

띠링, 보상으로 한 개의 스킬북과 한 개의 아이템이 자동 지급됩니다.

띠링, 직업 ‘더 로드’의 5차 전직 퀘스트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숨겨진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띠링, ‘더 로드’ 5차 전직 퀘스트의 숨겨진 마지막 퀘스트 ‘진정한 시련’이 지금 이 순간 바로 시작됩니다.

띠링, 모든 것은 태곳적부터 내려온 운명의 법칙에 의해 일어나는 일. 절대 당황하지 마십시오.

‘응? 무슨 소리지?’

마지막 시스템 메시지가 조금 이상했다.

당황하지 말라니, 지금까지의 시스템 메시지와는 매우 다르게 느껴지는…….

번쩍!!

갑자기 하얀 섬광이 나를 덮쳤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며 머릿속마저도 하얗게 변해 버렸다.

콰과광! 콰광!

“크윽!”

아주 잠깐이지만 내가 정신을 잃었던 기분이 든다. 하지만 잠깐일 뿐이었다.

난 이내 정신을 회복하고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웅성웅성.

“으음?”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조금 다른 사람들이었다.

“게, 게임이 아닌가?”

현실.

어떻게 된 건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현실 속의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서울?! 광화문?”

주변의 건물들은 분명 내가 아는 곳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곳에서도 광화문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이게 어떻게…….”

난 뭐가 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때 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크어어어어엉!

키에에엑!

길게 울부짖으며 움푹 파인 도로에서 기어 나오는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게임 속 몬스터라니…….

그리고 그냥 몬스터도 아닌 각 던전의 최종 보스급 몬스터들이었다.

“이, 이게…….”

나는 내 몸을 살펴보았다.

아수라를 입고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들고 있는 나.

나조차도 게임 속에서 나온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설마…….”

다른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난 다르다.

누구보다 많은 진실을 알고 있는 나.

덕분에 이 상황이 대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차원 융합인가…….”

분명 ‘진정한 시련’이라고 했다.

어쩌면 난 그 누구보다 먼저 차원 융합의 결과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지 몰랐다.

“……아찔하군.”

서울 한복판의 보스 몬스터들.

정말 이것만큼 아찔해 보이는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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