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98화 (198/250)

198. 반격 ― 2

* * *

이게 문제였다.

극단적인 개인 이기주의.

동대륙도 그런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서대륙보단 덜했다.

이것 때문이라도 난 이번 전투에 직접 나설 생각이었다.

‘대이동’.

난 무조건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막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세상이 그 녀석의 뜻대로 흘러가는 걸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많은 초월자가 세상을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나 역시 세상이 더 이상 이 빌어먹을 현상에 휘말리지 않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물론 이런 노력을 하는 이유는 내가 세상의 영웅이 되고 싶거나 대단한 희생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 역시 다른 유저들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이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남보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게 되어있지 않은가?

나도 그런 평범한 인간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단지 난 알고 싶을 뿐이다.

내가 ‘가이아’와 했던 거래, ‘가이아’에게 원했던 간절한 소망, ‘가이아’가 나에게 행한 간절한 시도, 이것들을 알고 싶기에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는 것이었다.

막연한 것이지만 왠지 세상을 원상 복귀시키면 가이아와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라도 ‘전이’라는 놈의 꿍꿍이는 전부 막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이게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면…… 나도 단순한 유저가 아니면 되는 거잖아?”

난 슬쩍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틀 후 있을 대규모 전투에 앞서 이곳에 도착한 수많은 유저가 전투 준비를 하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쟁의 향기를 귀신같이 맡은 각종 상인과 상인 길드는 이미 이 근처에 대규모 노점 구역을 만들고 장사를 시작했다.

확실히 상인 유저들의 눈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은 이곳에 거의 모든 종류의 물건을 가져다 놓았다. 확실히 이런 상인 유저들이 있기에 다른 유저들은 더 편안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사실 나와 버그 스톤, 그리고 이나는 그 누구보다 이번 전쟁을 대비해 오랫동안 준비를 했다.

최고급의 물건들만 취급한다는 용문상회.

그 용문상회가 이러한 기회를 놓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유저들은 서대륙에서 이름 좀 날린다고 소문난 상급의 유저들. 당연히 그들의 소비력은 막강했다.

그동안 이나를 통해 최고급 아이템들을 쏠쏠하게 팔아왔던 용문상회는 이 기회에 상회의 모든 고급 아이템을 팔아치울 생각이었다.

어차피 대부분의 아이템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굳이 가지고 있어봤자 손해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예 이 전쟁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아이템을 모두 처분해 버리고 그 돈으로 좀 더 많은 고스트 아머를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난 이것들 말고도 따로 혼자 준비한 것들이 있었다.

‘대이동’에 대해 미리 알고 있던 난 이번 전쟁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저들이 몬스터를 상대할 때 가장 필수적인 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각종 포션과 시약들 같은 최고급의 소모성 아이템을 대량으로 구매해 놓았다.

상인들은 바보가 아니다.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이 올라가는 게 당연했다.

난 그걸 미리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가기 전에 이미 아주 많은 양의 소모성 아이템을 사재기해 놓았다.

어차피 가격을 올리는 건 다른 상인들이 해줄 것이다.

그럼 나는 그냥 팔기만 하면 끝이다.

솔직히 이미 고스트 아머를 제작해 팔며 막대한 양의 이득을 보고 있는 나였지만 언제나 강조하듯 다다익선(多多益善), 골드는 많아서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특히 최근에 전혀 생산성 없는 일에 돈을 많이 쓴 난 더 신경 써서 골드를 모으는 중이었다.

또 언제 어떻게 골드를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 나올지 모르는 것이니 미리 준비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이나는 노점 구역 중간에 용문상회의 이름을 크게 걸어놓고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버그 스톤 역시 그 근처에서 남아 있던 고스트 아머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버그 스톤은 굳이 용문상회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고스트 아머의 제작은 비밀스럽게 이루어져야 했기에 당연히 길드 이름 같은 걸 내거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미리 사재기한 물건들은 NPC를 이용한 위탁 판매 노점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었다.

워낙 질이 좋은 최고급의 소모성 아이템만 모아놨기 때문에 상급 유저들은 비싸다는 불평 한마디도 하지 않고 열심히 아이템들을 사 갔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전쟁 준비.

그 가운데 용문상회와 난 그 어떤 상인 길드나 상인보다 큰 이득을 챙기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꿩 먹고 알 먹고, 마당 쓸고 돈 줍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석이조의 계책이었다.

* * *

“……너무 적어.”

칼슈타인은 허공에 만들어져 있는 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미러 이미지를 이용해 만들어진 레아 대륙의 모습. 그 영상엔 붉은색 점이 곳곳에 찍혀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진행되는 거지? 내 예상대로라면…… 벌써 양 대륙의 30% 정도는 장악했어야 하거늘…….”

고개를 갸웃거리는 칼슈타인.

그 칼슈타인 뒤로는 형형색색의 머리색을 지닌 네 사람이 조용히 서 있었다.

스윽.

지도를 보고 있던 칼슈타인은 천천히 뒤로 돌았다.

그리곤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이들에게 물었다.

“왜 이런 거지?”

“죄송합니다. 필멸자들의…… 반항이 생각보다 거셉니다.”

골드 일족의 고룡이었던 게르온은 슬쩍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고룡 게르온이 고개를 숙이는 상황.

만약 게르온 앞에 있는 이가 칼슈타인이 아니었다면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을 상황이다.

하지만 칼슈타인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이 아무리 고룡이라고 해도 이곳에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로드, 위대한 로드라 불리는 칼슈타인이 앞에 있는 이상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반항이라……. 필멸자의 반항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핑계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들의 존재 이유가 차원과 차원을 잇는 융합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는 걸 잊은 건가? 원래 반항을 하게 만들어진 놈들이 반항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쯧.”

칼슈타인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이상합니다.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필멸자가 등장하지 않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이지 않나…… 예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블랙 일족의 고룡 카마르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필멸자? 그…… 멍청한 베나인 녀석을 잡았다는 놈을 말하는 건가? 베나인 그 녀석은…… 너무 어리고 멍청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 아니었나? 그리고 사실 반항이 조금 거센 건 당연한 것이다.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이번 차원 융합에 가이아와 우라노스가 직접적으로 관여를 했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특별히 더 확실한 차원 융합을 위해 내 드래곤 하트를 쪼개 ‘일루젼’이라는 신기까지 만들어준 것 아닌가!!”

“으음…….”

“크흠…….”

모든 드래곤이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칼슈타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가이아와 우라노스.

그 최상급 고신(古神) 둘이 나타난 건 절대 작은 일이 아니었다.

“물론 레아라고 했던가? 지구의 신…… 그 녀석도 생각보다 귀찮은 녀석이라는 건 나도 알게 되었다. 그 녀석이 만든 라이프 스톤…… 가이아와 우라노스가 손을 쓴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라이프 스톤은 무조건 제거해야 한다. 필멸자들이 불멸자가 되어 멋대로 날뛰게 놔두면 차원 융합이 차질을 빚는다는 걸 왜 몰랐던 것이냐! 결국 내가 직접 손을 쓰게 만들기나 하고. 쯧쯧.”

칼슈타인은 오랜 세월 동안 가르쳐 놓았던 드래곤 일족들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자 괜히 짜증만 늘어갔다.

이대로 계속 일 처리를 하지 못하면 아주 오래전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을 대신했던 타이탄 종족처럼 철저히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짜증이 더 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차원 융합보다 제약이 심합니다. 심지어…… 필멸자들과 싸울 땐 비행 능력마저 거의 상실됩니다. 그뿐이 아니라…… 필멸자들이 먼저 덤비지 않으면 절대 우리는 힘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주변의 몬스터를 자극해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게 전부입니다.”

실버 일족의 고룡인 자이네르는 살짝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룡인 그가 이렇게 얘기할 정도라면 실제로 제약이 상당하다는 뜻 같아 보였다.

“으음…… 가이아…… 우라노스…….”

칼슈타인은 그 옛날 타이탄 종족이 왜 그분에게서 버림받았는지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 이유는 바로 우라노스의 교묘한 수작 때문이었다.

우라노스는 아주 교묘하게 타이탄 일족을 포섭했다. 타이탄 일족이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닌 이들이라고 해도 최상급 고신인 우라노스의 수작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물론 중간에 그분께서 알아차리고 타이탄 일족을 영원히 세상 밖으로 추방시켰지만 그래도 이 사건 하나만 봐도 우라노스가 대단한 존재라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가이아까지 나선 상황이었다.

두 명의 최상급 고신이 등장한 건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다.

“어쨌든 이번엔 확실하게 끝내야 한다. 좀 더 많은 몬스터를 끌어들여라. 일루젼은 이미 거의 한계에 가까울 정도로 몬스터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너희들은 그 몬스터를 자극해 라이프 스톤을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

‘대이동’. 그것을 계획한 건 칼슈타인이었다.

칼슈타인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특히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라이프 스톤은 생각지도 못한 존재였다.

일루젼의 신성을 억누르고 있는 라이프 스톤의 신성.

덕분에 차원 융합은 생각보다 너무도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래선 안 됐다.

그렇기에 칼슈타인은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비록 제약이 너무 심해 아예 자신은 제대로 현신(現身)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빠르게 차원 융합을 끝내기 위해 자신의 일족을 총동원했다.

언제나 늘 차원 융합을 방해하는 세력은 존재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세력은 증가했다.

지금까지 흡수한 수많은 차원에서 튕겨 나온 초월자들, 그들은 늘 말썽을 부렸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칼슈타인과 그의 일족들이었다.

이 일을 똑바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 옛날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린 타이탄 일족처럼 되리라.

칼슈타인은 그것을 알기에 더욱 열심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크…… 이번 차원 융합은 이래저래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기는군.’

그동안 수없이 많은 차원 융합을 경험했지만 이번만큼 귀찮은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단지 귀찮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차원 융합 자체가 실패할 리는 절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와 그의 일족이 가진 힘의 자신감이었다.

몬스터들의 대이동.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드래곤의 존재.

유저와 몬스터의 전쟁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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