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반격 ― 1
* * *
반 몬스터 연합, 그리고 무림맹(武林盟).
서대륙과 동대륙에 생겨난 두 개의 임시 단체.
거의 동시에 만들어진 이 두 개의 단체는 거의 똑같은 의도로 만들어진 초대형 연합이었다.
이 단체들이 만들진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대이동’.
사방을 초토화시키며 양 대륙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든 몬스터 대군.
그 몬스터 떼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두 개의 연합이었다.
모든 반목과 다툼은 대의(大義)를 위해 잠시 접어두고 오로지 ‘대이동’을 막아보자는 의도로 뭉친 유저들.
물론 그 내면엔 대단한 보상에 대한 욕심이 존재하겠지만 어쨌든 유저들은 ‘One’이 생긴 이후 처음으로 똘똘 뭉치게 되었다.
몬스터 vs 유저.
두 대륙의 미래를 결정지을 그 대단한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 *
“그래서 결국 방법이 없다는 건가요?”
프로이드는 답답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주변에 모여 있는 수십 명의 유저.
그리고 그 뒤로는 또 수천의 유저가 모여 있었다.
이곳은 반 몬스터 연합의 수뇌부들이 임시로 만든 회의 공간이었다.
워낙 많은 유저가 참여한 반 몬스터 연합이다 보니 그 대표만 모여도 수천이 넘었다.
그래서 미녹 근처에 있는 넓은 평야 중앙에 회의 공간을 마련했다.
“어쩔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저쪽은 대략 6천만에 가까운 대군이에요. 그에 반면 우리는 5백만 정도일 뿐입니다. 당연히…… 정면 대결은 할 수 없고…… 결국 남는 건 기습이나 치고 빠지는 전술인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는 건 프로이드 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레이드 팀 에볼루션의 팀장이자 서대륙에서 꽤 유명한 랭커 중 한 명이었던 다크 오크는 고개를 흔들며 얘기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여기에 모인 이유도 뭔가 수를 내려고 모인 것이고요.”
프로이드가 이끄는 헬과 다크 오크가 이끄는 에볼루션은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관계였다.
물론 그 관계를 이 회의장까지 끌어들일 두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서로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일 이유도 없었다.
“밤에 기습하는 건 어떨까요?”
회의장 중앙에 모인 이들이 아닌, 뒤에 서 있던 수천 명의 사람 사이에서 갑자기 의견 하나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바로 그 순간 회의장 중앙에 모여 있던 이들은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 잘 모르겠으면 조용히 계시는 게 좋겠군요. 상대는 몬스터입니다. 밤에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어둠의 종족이란 말입니다. 쯧쯧.”
서대륙 최고의 마법사 길드라 할 수 있는 세인트 길드를 이끌고 있던 다크 위저드 세인트룬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어떻게 할지나 결정하죠?”
지금까지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처음으로 입을 연 남자.
그는 암흑의 성기사라 불리는 에스카였다.
몇몇 최상위권 랭커들에게만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One’의 공식 통합 레벨 랭킹에서 단독으로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이다.
물론 지금은 레벨 699에 멈춰 아직까지 전직 퀘스트를 끝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지만 어쨌든 공동이라도 통합 레벨 랭킹 1위는 맞았다.
그는 천무칠성의 일원이었고, 당연히 강했다.
단지 단점이라면 그의 길드 자체는 별 볼 일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부터 세력 키우기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 거의 친목 길드 수준의 세력만 소유하고 있던 에스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일단 더 늦기 전에 우리가 공격해야 하는 건 확실합니다. 시간이 더 지체되다가 미녹성이 함락되기라도 하면 그땐 정말로 6천만이 넘는 몬스터를 모두 상대해야 합니다. 그들이 미녹성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가 유일한 기회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타격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하는 것이었다.
미녹이 무너지면 다음 목표는 반 몬스터 연합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마땅히 방법이…….”
다크 오크는 또다시 부정적인 얘기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프로이드는 그런 다크 오크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떤 방법이 되더라도 공격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소 격양된 프로이드의 목소리.
하지만 그는 확실히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을 뿐이었다.
“흠흠, 진정들 하시고, 제가 볼 때 어차피 특별한 계책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6천만의 몬스터 대군이라지만…… 우리 쪽도 적은 숫자는 아닙니다. 5백만이면 몬스터 군단의 한쪽 면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겁니다. 중요한 건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몬스터들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는 그놈들은 죽으면 사라진다는 것이고 우리는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니……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화끈하게 밀어붙이면 분명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최근 들어 서대륙뿐만 아니라 동대륙에서도 큰 유명세를 타고 있는 무물 길드.
그 길드의 대표인 클레타는 침착하게 자신의 생각, 아니, 신에게 미리 전해 들은 내용을 풀어놓았다.
물론 이 얘기를 할 타이밍을 잡기 위해 클레타는 계속 좋은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가장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을 때 곧장 입을 열었다.
클레타의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확실히 지금의 타이밍에선 어느 정도 그의 얘기가 먹혀들고 있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과연 누가 선봉에 서려고 할까요?”
상당히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 남자. 그는 위너스 레이드 팀을 이끄는 기무였다.
“적어도 위너스는 아니겠군요.”
프로이드는 그런 기무를 보며 슬쩍 도발하듯 얘기했다.
“아, 그럼 적어도 헬은 선봉에 서겠군요.”
절대 지지 않고 맞서는 기무.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흠흠, 왜 이렇게 자꾸 흥분들을 하십니까. 굳이 선봉을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놈들의 규모를 봤을 때 한 점을 뚫는 것보다는 한 면을 뚫는 게 낫습니다. 상위권 길드들이 앞장서서 면을 뚫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클레타는 한 번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말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6천만이라는 숫자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인트룬.
클레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세상에 죽고 싶은 유저가 어디에 있겠는가?
아무리 탐나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일단 당장은 죽기를 꺼리는 게 당연한 유저의 본능이었다.
“그럼 이대로 수많은 라이프 스톤이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을 겁니까? 라이프 스톤은 그 어떤 아이템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라이프 스톤이 없다면 더 이상 우리도 불멸자가 아닙니다. 그걸 잊지 마세요.”
클레타는 신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말하라고 했던 라이프 스톤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지금이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클레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클레타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유저들이 불멸자가 될 수 있었던 건 라이프 스톤에 영혼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라이프 스톤이 사라진다?
그건 결국 유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되기 시작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죽음의 산맥 같은 경우, 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 근처에 라이프 스톤이 전무했기 때문이지 않은가?
당연히 라이프 스톤의 가치는 아이템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헬 레이드 팀은 무조건 앞장서겠습니다.”
프로이드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쳇, 어쩔 수 없네. 에볼루션도 선봉에 섭니다.”
다크 오크 역시 프로이드와 같은 말을 했다.
“맨 앞은 내가 서도록 하지.”
“휴우∼ 라이프 스톤이라……. 네네, 알겠습니다. 세인트 길드는 특성상 선봉에 서지는 못하지만 바로 뒤에서 화끈하게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스카와 세인트룬도 동의했다.
그들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유저가 전투에 참여하겠다고 나섰다.
이쯤 되자 가장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위너스의 기무도 어쩔 수 없었다.
“쩝, 완전 외통수군요. 우리도 한쪽 선봉을 맡도록 하죠.”
위너스 레이드 팀이라면 그래도 헬과 에볼루션을 바짝 뒤따르는 최상위 팀이었다. 당연히 자존심상 뒤에서 싸우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모두가 공격에 동의하자 그다음부터는 별로 막히는 게 없었다.
공격 시기와 공격 방향이나 여러 기타 사항을 결정하는 건 빠르게 이루어졌다.
D-day는 이틀 후.
시간은 몬스터들이 가장 약해지는 정오.
남은 이틀 동안 유저들은 각각 모든 전투 준비를 끝내기로 했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전쟁의 시작.
그 시작은 동대륙과 서대륙 양쪽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 * *
“이로써 두 대륙 모두 결정 났군.”
난 고개를 끄덕이며 클레타의 메시지를 읽었다.
몇 시간 전 오프라인으로 도착한 꼰정의 메시지에는 동대륙도 이틀 후 몬스터들과의 대전(大戰)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동대륙은 이미 꼰정과 그녀의 오빠들이 상당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의견을 통합하는 게 더 수월했던 것 같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두 대륙 모두 몬스터와의 전쟁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두 대륙의 유저들은 이유가 어떻든 간에 쉽지 않은 전쟁을 선택했다.
아마도 앞으로 당분간은 이 몬스터들과의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동대륙도 서대륙도 상당히 시끄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두 대륙의 상황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서대륙이 동대륙보다 더 많은 몬스터를 상대해야 했다.
대략 서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몬스터의 숫자는 8천만에서 9천만 정도였다.
그에 반면 동대륙은 대략 4천만에서 5천만 정도였다.
거의 두 배 정도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서대륙의 반 몬스터 연합이 동대륙의 무림맹보다 더 강력한 연합인 건 또 아니었다.
동대륙의 유저들은 대부분이 각각 서로 다른 몇 개의 대문파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 잘 뭉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서대륙보다 단결력이 좋았다.
유명한 레이드 팀은 서대륙보다 현저히 적을지 몰라도 그보다 더 큰 개념의 세력으로는 훨씬 잘 뭉쳐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무림맹 같은 경우만 해도 무려 천만에 가까운 유저들이 모여 만든 연합이었다.
서대륙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었다.
그래서 난 동대륙의 상황은 그리 걱정되지 않았다.
이미 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미리 손써놓은 것도 있었고 거기에 동대륙의 실세 중 실세인 꼰정 일행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충분히 이 상황을 현명하게 극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서대륙이었다.
오래전부터 조각조각 나누어져 절대 뭉치지 않던 유저들. 그 유저들을 정말 억지로 모아놓긴 했지만 아직도 불안한 건 많았다.
실제로 서대륙이 동대륙보다 활동 유저가 더 많음에도 아직까지도 눈치만 보며 반 몬스터 연합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유저들이 아주 많았다.
그들은 아마도 반 몬스터 연합이 몬스터 대군과 싸우는 것을 지켜보다가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전쟁에 참여하려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