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대의를 위한 속임수 ― 2
* * *
동영상이 끝나며 정지한 화면.
그 화면엔 초토화된 고요의 숲 모습과 저 문구만이 남아 있었다.
이 동영상은 현재 각종 하이퍼 넷과 인터넷 방송에 앞다투어 소개되고 있는 화제의 영상이었다.
얼마나 화제가 되고 있는지 적어도 ‘One’을 플레이하는, 아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이상은 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단 사흘 만에 이 정도로 퍼졌다.
정확히 삼 일 전에 이 동영상이 올라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또 별거 아닌 쓰레기 사냥 동영상이 올라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동영상은 결코 쓰레기가 아니었다.
이 동영상은 처음 공개된 이후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동영상을 다시 재편집해서 올리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동영상을 분석해서 올리기도 했다.
그 와중에 드디어 하이퍼 넷의 본좌라 불리는 몽몽까지 나서게 되었다.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이 동영상이 진짜 전투 동영상이란 사실을 확인해 준 것은 물론이고 좀 더 동영상이 돋보일 수 있도록 편집까지 해주었다.
몽몽의 개입으로 더욱 확실하게 하이퍼 넷에 퍼지게 된 동영상.
이것을 본 유저들은 모두가 제각각 해석을 내놓았다.
[28594232] 이건 무조건 ‘대이동’에 관련된 영상이다.
[28594233] 몬스터 무리면 답은 하나네.
[28594234] 근데 저 사람 정체는 아직도 안 밝혀진 건가요?
[28594235] 마지막에 저거…… 고스트 아머랑 비슷한 건가요?
[28594236] 확실합니다. ‘대이동’ 맞고요. 제가 볼 땐 마지막에 저건…… 예전에 소문이 한창 돌았던 마법 갑옷 같은데…….
[28594237] 윗님, 그럼 혹시 그 마법 거인도 이번에 얻을 수 있는 건가요?
[28594238] 마지막에 저 검은색 갑옷…… 뽀대만 봐도 딱 레전드 급이네. 대박이다, 대박!!
[28594239] 드디어 레전드리 아이템이 풀리는 건가!!
[28594240] ‘대이동’ 몬스터 무리 습격하는 레이드 팀 구합니다.
[28594241] 파티 단위로는 힘들까? 아, 레전드리 아이템 먹고 싶다.
[28594242] 파티 단위로는 꿈도 못 꿀 듯. 근데 저 동영상 유저가 만든 게 아니라 DH 소프트에서 만든 거 아닐까요?
[28594243] DH 소프트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죠. 그래놓고선 슬쩍 일부러 흘리는 걸로 이벤트 효과를 극대화시키려는 것 같네요.
[28594244] 뭐가 어떻게 됐건…… 전 오늘 당장 ‘대이동’ 이벤트에 뛰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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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게시판에 넘쳐 나는 글들.
그 글들은 모두 이 동영상이 ‘대이동’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 아예 이 동영상 자체가 ‘대이동’ 이벤트를 더 자연스러운 리얼 이벤트로 만들기 위해 DH 소프트가 만들어 흘린 것이라는 의견이 아주 많았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한 검은색 갑옷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유저들이 최소 레전드급 아이템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고스트 아머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지금 그 갑옷의 정체도 고스트 아머와 비슷할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예전에 돌았던 마법 갑옷과 마법 거인에 대한 얘기도 간간이 나오고 있었다.
이 동영상의 등장으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몬스터의 반란’이라고 이름 붙여졌지만 사실 ‘대이동’이라고 더 많이 불리는 이번 업데이트에 불만이 많았던 유저들은 그동안 적극적으로 몬스터들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별로 보상도 없을 것 같다는 이유로 도망 다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레전드급 아이템.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의 마법 거인.
동영상으로 인해 ‘대이동’에 사실은 엄청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유저들은 180도 바뀌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레이드 팀.
그들은 모두 ‘대이동’에 관여할 유저들이었다.
당연히 기존의 레이드 팀들도 모두 이번 일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모든 유저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 시작한 ‘대이동’.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결국 이런 변화는 한 개의 동영상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개의 동영상…….
그것이 시발점이었다.
* * *
너무나 훌륭하게 성공했다.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성공.
중간에 몽몽이 개입해 일을 더욱 크게 확대시켜 줄 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동영상을 만든 건 나다.
그리고 마치 동영상이 ‘대이동’ 업데이트와 관련이 있어 보이게 조작한 것도 나다.
그리고 그런 동영상을 사방으로 빠르게 퍼지게 만든 것도 나다.
뭐, 예전에 있었던 마법 갑옷이나 마법 거인 이야기를 만든 것도 나고 고스트 아머를 만든 것도 나지만 그건 일단 지금 일과 관계가 없으니까 얘기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쨌든 이번 일은 전적으로 내가 계획하고 그 계획을 마가레타와 클레타의 도움을 살짝 받아 실행한 것이다.
따지기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정확하게 말해준다면, 맞다. 이건 사기다.
그것도 ‘One’의 모든 유저를 대상으로 친 엄청난 규모의 사기다.
당연히 몬스터 떼를 습격하고 제거한다고 해서 유저들에게 떨어지는 보상은 없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내가 마지막에 화려하게 보여준 아수라 같은 마갑도 얻을 수 없다.
그저 모든 게 낚시일 뿐이었다.
이 모든 건 당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유저들을 위해 내가 만들어낸 가짜 당근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협박도 통하지 않고 설득도 통하지 않는 유저들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떡밥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크고 맛있어 보이는 떡밥이…….
결과적으로 유저들은 이번 ‘대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되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는 몬스터 떼를 습격할 레이드 팀이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걸로 급한 불은 일단 껐다.
뭐,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유저들도 몬스터 떼를 습격하고 제거해도 보상 따위는 없다는 걸 깨닫겠지만 그때쯤 되면 일단 초기 진압은 확실히 됐을 것이다.
현재 몬스터들은 동대륙은 백호성 근처로 모두 몰려드는 중이었고, 서대륙은 미녹성 근처로 몰려들었다.
두 성을 무너뜨리고 다시 남하할 생각인 것 같았다.
두 성에는 각각 그 성의 라이프 스톤에 영혼을 저장한 유저들이 몬스터들에 맞서 싸우는 중이었다.
라이프 스톤은 영혼을 저장해 주는 용도와 함께 수호석의 용도도 함께하고 있었다.
라이프 스톤의 영향력은 그것에 가까이 갈수록 커졌는데, 보통 성의 크기는 이 라이프 스톤의 영향 범위로 결정되곤 했다.
즉, 미녹성이건 백호성이건 성 안에서 싸우는 유저들은 라이프 스톤의 영향으로 더 강해진 상태로 싸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끊임없이 몰려드는 몬스터 떼를 계속해서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선택해야 했다.
이 엄청난 몬스터 떼를 뚫고 도망가서 다른 곳의 라이프 스톤에 영혼을 저장하든지 아니면 끝까지 싸우며 라이프 스톤을 지켜야 할지.
몬스터들은 라이프 스톤을 타락시킨 후 그것을 깨뜨릴 수 있었다.
물론 평소라면 라이프 스톤의 영향력만으로도 몬스터들은 성에 접근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많은 몬스터들이 한곳에 모이며 그 근처 지역에는 강력한 암흑 마력이 사방에 가득 차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덕분에 몬스터들은 라이프 스톤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자신의 영혼이 저장된 라이프 스톤이 타락해 깨질 그 즉시 영혼의 균열로 인해 레벨이 10%가 떨어지고 현실 시간으로 5일, 게임 시간으로 15일 동안 접속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영혼은 그 시간 동안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라이프 스톤으로 옮겨지지만 중요한 건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가까운 곳으로 영혼이 옮겨지는 것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옮겨진 후 또 라이프 스톤이 깨진다면?
그런 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유저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곳 미녹성이나 백호성을 탈출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미 모든 포탈은 몬스터 대군이 발산하는 암흑 마력으로 인해 작동을 멈춘 상태이기 때문에 빠져나가는 방법은 맨몸으로 몬스터들의 포위망을 뚫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유저들은 치열하게 방어 공성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이래저래 큰 위기에 빠진 유저들.
그들에게 이번 동영상의 등장과 다른 유저들의 전투 참여 소식은 마치 긴 가뭄 후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점점 절망에 빠져가던 그들에게 드디어 희망이 생겼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좀 더 열심히 방어 공성전에 임하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미리미리 손을 써놓은 덕분에 이런 전투를 예상하던 NPC들의 도움 덕분에 좀 더 끈질기게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버티는 동안 남은 유저들은 뒤를 친다.
유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아마 힘을 합칠 것이다. 미련하게 레이드 팀을 만들었다고 곧장 몬스터 대군을 향해 달려들 유저는 없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몬스터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상황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우리가 반격할 차례였다.
반격의 움직임.
그 선봉엔 각 대륙을 대표하는 각종 길드와 랭커들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