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침몰하는 거선(巨船) ― 1
* * *
쾅!
라트마는 신경질적으로 앞에 있던 탁자를 발로 차버렸다.
“아직도 못 찾았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 지역에 투입된 인원만 벌써 7만이야! 그런데…… 그깟 유저 한 명을 못 찾아서 아직도 쩔쩔매고 있는 이 상황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 환영의 숲이 너무 넓어서 수색 작업에 어려움이 있다고? 그걸 지금 핑계라고 대는 거야?”
이곳은 라트마와 그의 측근들이 만든 엠페러 연합의 임시 베이스캠프였다.
그들이 죽음의 산맥에 엄청난 규모의 포위망을 구축한 지 벌써 사 일(게임 시간)이 지났지만 정작 그들은 목표로 삼은 유저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지. 지금까지 놈에게 사망한 숫자가 얼마나 된다고?”
라트마는 옆에 있던 자신의 개인 비서이자 엠페러 연합의 엠페러 수호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카즈를 돌아보며 물었다.
“……천백이십사(千百二十四) 명입니다.”
“놈을 찾으라고 했더니 놈한테 당하고 있는 게 현 상황이다. 내가 지금 이 꼴을 보면서 화를 안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래, 거기…… 홍문(紅門)이라고 했던가? 나와 계약을 할 땐 뭐라고 했었지? 그냥 너희들만 있어도 될 거라고 했던가?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카즈, 홍문의 피해 상황을 말해봐.”
“홍문은…… 현재 십오(十五) 명이 당했습니다.”
“아주 훌륭하군. 아주 훌륭해.”
라트마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박수까지 쳐주었다.
홍문의 마스터 목목연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머지도 다 마찬가지다.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건가? 설마 내가 만만히 보이는 건가? 이 엠페러의 라트마가…… 대명의 주익이…… 지금 장난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대노(大怒)한 라트마.
그런 라트마를 앞에 두고 지금 이곳에 모인 엠페러 연합과 엠페러에 고용된 수많은 길드의 마스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라트마가 화를 내는 건 정상적인 것이었다.
그가 이번 일을 위해 투자한 돈이나 정성을 따져 봤을 때 현 상황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무조건 잡아라. 놈을 잡는…… 아니, 발견해서 포위만 해도 그 길드에겐 그 즉시 만 골드를 주겠다. 원한다면 엘리트 등급의 아이템이나 스킬북도 주겠다.”
라트마는 더욱 큰 당근을 던졌다.
이렇게 된 이상 그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볼 생각이 없었다.
무조건 신을 잡아서 영원히 게임을 못 하게 하겠다는 생각,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대명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앞으로 한 달 안에…… 놈을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리겠다!!”
라트마, 아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대명 그룹의 후계자인 주익의 이름까지 내거는 그가 선언하듯 말했다.
그리고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수많은 유저는 저마다의 이유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트마가 던진 당근이 탐나거나, 아니면 지금 당하고 있는 이 상황이 치욕스럽거나, 그것도 아니면 정말 라트마에게 충성을 하고 있거나, 무슨 이유이든지 이곳에 모인 유저들은 모두 신을 잡기 위해 더욱 노력할 생각이었다.
용문과 엠페러 연합의 또 한 번의 결전.
이것은 죽음의 산맥에서도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고 알려진 죽음의 산맥, 환영의 숲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 * *
“열 놈인가…….”
내 두 눈은 아주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각종 버프 스킬과 높은 기본 능력치로 인해 남들과는 전혀 다른 시력을 지닌 나였기에 2㎞가 훌쩍 넘는 저곳이건만 바로 앞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는 중이다.
스윽.
난 옆에 세워 놓았던 한 자루의 거대한 라이플을 양손으로 잡았다.
이 거대한 라이플은 무려 엘리트 등급의 최고급 아이템이다.
마계의 블러드 타워의 최상층에서 구한 유니크 등급의 라이플을 버그 스톤에게 부탁해 모험적인 업그레이드를 감행했다.
워낙 특수한 옵션을 지닌 라이플이었기에 과감히 최상급 재료를 투자해 완전히 부서질 확률이 90%가 넘었던 스페셜 업그레이드인 ‘레인보우’ 강화를 부탁했었다.
버그 스톤도 처음엔 말렸지만 라이플의 옵션을 확인하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열성적으로 업그레이드를 시도했다.
그러한 버그 스톤의 열성이 통한 것일까? 10%의 낮은 확률을 뚫고 라이플의 업그레이드가 성공했다.
등급은 무려 엘리트 등급으로 오르고 그 특수했던 옵션도 더욱 특수해졌다.
대성공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업그레이드.
덕분에 난 아주 훌륭한 엘리트 등급의 라이플을 내 장비 설정 16번에 등록시킬 수 있었다.
고대의 특수 저격용 라이플 K7[스페셜 업그레이드<레인보우>적용 중.][엘리트(Elite)]<특수 총기류>
고대의 마도 기술로 만들어진 매우 특별한 라이플. 2m에 가까운 큰 크기로 인해 가지고 다니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괴물 라이플. 단, 그 위력은 엄청나 대인(代人)용 저격 라이플이 아닌 대물(代物)용 저격 라이플로 알려져 있다.
능력: 내구도[4320/4400] 민첩[-500] 원거리 공격력[+50%] 원거리 명중률[+50%] 사정거리[+30%] 원거리 치명타 확률[+15%]
세트 효과: 없음.
특이 사항: 장비 착용 시 이동 속도가 절반으로 감소하며, 움직이며 사용할 수 없음. 치명타가 터졌을 경우 치명타 데미지의 70%에 해당하는 데미지가 추가 데미지로 들어감. 총구에 소음 제거 마법진이 그려져 있어 사용 시 99%의 소음을 흡수함.
요구 사항: 장거리 저격용 스킬 습득자.
민첩을 500이나 떨어뜨리고 이동 속도도 절반으로 깎아버리며 거기에 움직이면서 사용할 수도 없는 이상한 라이플.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확실히 보장되는 괴물 같은 라이플.
특히 내가 새롭게 만들어낸 조합 스킬인 ‘원 샷’스킬과 궁합이 너무나도 잘 맞는 아이템이었다.
가뜩이나 사거리가 엄청나게 길었던 ‘원 샷’ 스킬은 이 K7 라이플과 만나며 무려 1.3㎞의 사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뿐인가?
긴 사정거리 때문에 불안정했던 명중 확률도 K7의 명중률 +50% 옵션으로 인해 순식간에 안정화되었고, 거기에 가뜩이나 치명타 데미지가 높았던 ‘원 샷’ 스킬은 치명타 데미지의 70%를 추가 데미지로 환산해 주는 옵션 덕분에 사기적인 치명타 데미지를 지니게 되었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정리한 난 그 자리에 누워 괴물 라이플을 단단히 어깨에 고정시켰다.
저격 자세 중 가장 훌륭한 명중률을 자랑하는 엎드려 쏴 자세.
이 자세를 잡는 것만으로 명중률이 +10% 되었다.
자세를 잡고 시선을 한 점에 고정시켰다.
어차피 ‘원 샷’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선 4분의 정신 집중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미리 목표물의 이동 거리를 예측하고 그 지점을 겨냥하고 있어야 했다.
4분의 정신 집중 후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은 단 15초. 이 안에 무조건 스킬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스킬 시전이 취소되었다.
사실 이러한 점 때문에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던 ‘원 샷’ 스킬이 완벽한 사기 스킬이 될 수 없었다.
이렇게 이동 경로를 예측하고 이동 속도를 계산한 후 한 지점을 결정하는 건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혹시라도 목표물이 중간에 이동 속도를 줄이거나 이동 방향을 바꾸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엄밀히 따지면 ‘원 샷’ 스킬은 효율이 좋은 스킬이 아니었다.
하지만 제대로 한 방 걸리기만 하면 어지간한 레벨의 유저는 거의 모두 한 방에 보내 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분명히 위력적인 스킬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이 ‘원 샷’ 스킬에 적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 건 사실이었다.
특히 목표물의 이동 속도와 경로를 계산해서 예상 타격 지점을 결정하는 건 오로지 내 경험으로만 해야 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엠페러 사냥에 나서기 전에 이 죽음의 산맥에서 일주일이 넘게 이 ‘원 샷’ 스킬을 사용하는 연습만 한 것이었다.
피나는 연습 끝에 이제는 어느 정도 높은 확률로 타격 지점을 정확히 잡아냈다.
스킬 융합, 관찰(觀察)+명상(瞑想)+일격필살(一擊必殺)+저격 모드
연계 발동, 무심안(無心眼).
원 샷(One Shot) 발동!!
지이잉!
정신 집중이 시작되며 내 눈은 오로지 한 점에만 집중되었다. 만약 목표 지점을 바꾸게 되면 자연스럽게 정신 집중이 풀리며 스킬 시전이 취소된다.
이제 남은 건 마음속으로 목표가 이 지점을 통과하기를, 그것도 4분이 지나고 대략 15초 안에 통과하기를 빌어야 했다.
‘걸려라.’
내가 천 명이 넘는 엠페러 연합의 유저들을 게임 아웃시킬 때 사용했던 기술은 오로지 이 기술 하나뿐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예측이 빗나가 놓친 엠페러의 유저도 거의 천 명이 넘었다.
즉 대략 50%의 확률로 저격이 성공하고 있다는 뜻이다.
4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그리고 그 시간을 오로지 한 점만 응시하며 보내는 건 생각보다 많이 지루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냥을 하기 위해선 다소 귀찮더라도 감수해야 할 것이 있는 법.
나는 조용히 호흡을 조절하며 목표물이 내가 쳐놓은 그물에 걸리기를 기다렸다.
지루했던 4분의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갔다.
이제 남은 건 대략 10초의 시간.
난 마음속으로 조용히 숫자 10을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10, 9, 8, 7…….’
바로 그 순간 내 시야의 한구석에 목표물들이 들어왔다.
엠페러 연합 측의 유저들이 확실해 보이는 사람의 그림자. 그들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며 움직이고 있었다.
‘3, 2, 1!! 됐다.’
띠링, 원 샷(One Shot) 활성화 완료. 앞으로 15초 안에 스킬을 사용하세요. 띠이! 15, 14, 13…….
스킬이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열 놈 중 한 놈의 가슴 언저리가 내가 몇 분 전부터 뚫어져라 보고 있던 한 점을 스치고 지나가려고 했다.
‘바로 지금!’
난 미련 없이 괴물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기며 ‘원 샷’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피슛!!
소음의 대부분이 총구에 있는 소음 제거 마법진으로 흡수되며 바람이 새는 것 같은 소리만 들렸다.
그 순간 곧장 한 발의 아다만티움 탄환이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꽝!
그리고 터졌다.
목표 지점을 정확히 꿰뚫고 지나가며 그와 함께 그 지점에 있던 한 유저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내어버리는 아다만티움 탄환.
그 위력은 엄청났다.
“치명타군.”
단 한 방에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 채 게임 아웃되어 버린 그 유저.
치명타가 터져 더 강렬한 임팩트를 보여주었다.
사실 치명타가 터지지 않았어도 대략 아직 마스터 등급이 되지 못했거나 됐어도 갓 됐을 것 같은 저 유저 정도는 한 방에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치명타가 터져 주며 더 확실하게, 더 화려하게 보내 버렸다.
아쉬운 건 각도만 잘 맞았으면 옆에 있던 또 한 놈도 같이 보내 버릴 수 있었던 점이다.
워낙 먼 거리에서 저격하는 것이라 각도와 방향이 미세하게만 빗나가도 한 방에 두 놈을 잡는 건 쉽지 않았다.
갑자기 자신들 옆에 있던 동료가 하얀빛 가루를 뿌리며 쓰러지자 크게 놀라며 무기를 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나머지 유저들.
‘원 샷’ 스킬을 사용해 1분간 아무런 스킬도 사용하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들과는 무려 1㎞가 넘는 거리에 누워 있었다.
즉, 그들은 절대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