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90화 (190/250)

190. 복수의 시작 ― 1

* * *

맹약의 신전을 빠져나온 난 곧장 바람의 이동 스킬을 이용해 버그 스톤이 있는 우타와로 날아갔다.

일단 우타와로 날아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밀려 있던 GA 활성화 작업을 모두 끝내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완벽하게 재정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우타와는 제작 유저들의 천국.

당연히 게임 속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시장이 있는 곳이었다.

분명 ‘대이동’은 한 달 안에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난 그 ‘대이동’을 이용해 아주 개인적인 일 하나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원래는 단지 개인적인 일 하나만 처리할 것이라 그리 급한 게 아니었는데 이번에 전직 퀘스트를 받으며 살짝 계획을 수정했다.

바뀐 계획은 마당도 쓸고 돈도 줍는,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계획이었다.

난 빠르게 버그 스톤의 작업실에서 밀려 있던 다수의 GA 활성화를 끝내고 버그 스톤에게 미리 생각해 두었던 한 가지 특별한 업그레이드 부탁을 한 후 곧장 일명 만물상(萬物商)이라 불리는 우타와의 중앙시장을 찾아갔다.

이곳엔 경매장에서도 구하기 힘든 각종 제작 물품들이 쌓여 있었다.

우타와가 괜히 장인들의 도시, 제작 유저의 천국이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직접 사용할 도구를 고를 땐 절대 대충대충 하지 않았다.

모든 일의 시작은 준비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 준비를 똑바로 하지 않으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법이다.

건물을 지을 때 기초 공사가 중요하듯 준비 역시 굉장히 중요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래서 난 열심히 중앙시장을 돌아다니며 내가 원하는 물건들을 찾았다.

최고급 물약, 최고급 비도(飛刀), 최고급 시약……. 이미 여러 가지 사업으로 일인 기업이라 할 정도로 골드를 긁어모으고 있던 나에게 중요한 건 가격이 아닌 품질이었다.

품질이 뛰어나다면 그 자리에서 쓸어 담았다.

최고의 가죽 장인이 만들고 최고의 인첸트 마법사가 최종 작업을 끝내는 것으로 유명한 샤넬 상가의 마법 가방 다섯 개는 이미 각종 소모성 아이템으로 가득 차버렸다.

그뿐인가?

내가 직접 입고 있는 만병천의에도 물건들을 가득 채워 넣었다.

마법 가방에 만병천의, 그 둘에 들어간 양만 해도 상당했는데 사실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얼마 전 그랜드 마스터 등급으로 오른 ‘언령설정마법(言令設定魔法)’은 나에게 열여섯 개의 장비 설정 능력과 함께 아공간 창고라는 엄청난 특수 스킬을 선물했다.

아공간 창고는 말 그대로 창고였다.

크기는 대략 넓이가 15평 정도에 높이가 5m 정도 되는 작은 창고였다.

하지만 창고치고는 작은 거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인벤토리치고는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급 가상 가방과 비교하면 대략 100배 정도의 수납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런 최고급 가상 가방이 100개 정도는 있어야 이 아공간 창고와 비슷한 양의 아이템을 담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말이 최고급 가상 가방의 100배이지 500골드나 하는 최고급 가방은 아무나 들고 다닐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난 엄청난 것을 얻은 것이었다.

그것도 손쉽게 넣고 꺼낼 수 있는 아공간.

비록 전투 중에는 소환이 불가능한 아공간 창고였지만 어쨌든 굉장한 쓰임새를 지니고 있었다.

가지고 있던 다섯 개의 가상 가방과 만병천의를 가득 채운 난 본격적으로 이 아공간 창고를 채우기 시작했다.

일단 이 창고를 가득 채울 생각은 없었다.

혹시라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약 70%만 채우고 30%는 빈 공간으로 놔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70%만 채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난 중앙시장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최고급 소모성 아이템을 싹 쓰는 것으로도 모자라 경매장에 존재하는 최고급 소모성 아이템도 싹 쓸어버렸다.

심지어 묵을 소환할 때 쓰기 위해 등급은 높지만 인기가 없는 유니크, 레어 아이템들까지 싹 쓸어왔기 때문에 우타와에 재신(財神)이 강림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토록 빵빵한 재력을 자랑하던 내가 가지고 있던 현금이 모두 떨어질 정도로 물건을 샀으니 얼마나 대단한 물량을 쓸어왔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어찌 보면 그 대단한 물량을 이 한 몸에 소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일지 몰랐다.

일반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대형 길드 단위의 지출이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모름지기 준비는 하면 할수록 더 좋은 법. 난 최대한 철저히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중이었다.

우타와에서 며칠 있으면서 완벽하게 준비를 끝낸 난 곧장 포탈을 이용해 죽음의 산맥 근처로 이동했다.

재수가 좋았는지 원했던 물건을 모두 구하고 버그 스톤에게 부탁했던 업그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죽음의 산맥.

이제는 수많은 유저가 길을 뚫어 예전처럼 절망스러운 곳이 아니었지만 여전히 상당히 위험한 곳이었다.

난 그곳에서 한 가지 일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일단 ‘대이동’의 시작은 이곳 죽음의 산맥에서부터였다.

그건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난 그 사실을 적극 활용할 생각이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고?

그건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 * *

“뭐? 그게 사실이야?”

라트마는 크게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사실입니다. 엠페러, 이글아이 길드에서 몇 번이고 확실히 확인을 끝냈습니다.”

엠페러, 이글아이 길드는 엠페러 연합의 정보 길드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정보를 모으는 그들은 라트마에게 상당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몇 번이고 확인한 사실이라면 거의 확실한 정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동안 그렇게 찾지 못하던 놈을 어떻게 찾은 거지? 혹시…… 놈의 함정 아니야?”

몇 번을 호되게 당해서 그런 것일까?

이제 라트마는 그에 관련된 일이라면 확인에 또 확인하려고 했다. 어찌 보면 의심병이 걸린 것 같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절대 함정은 아닙니다. 놈은 상당히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놈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습니다. 칸타빌에서 사냥하던 엠페러, 울프 길드에 속해 있던 한 유저가 놈을 발견하고 이글아이에 연락을 한 후 놈이 죽음의 산맥으로 이동하는 걸 확인한 건 모두 즉흥적으로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흐음…… 울프 길드의 유저는 놈을 어떻게 알아본 거지?”

라트마는 아직도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였다.

“예전 그 전투에…… 울프 길드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유저입니다. 당연히…… 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놈이 변장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변장을 하지 않았다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나? 우리가 그렇게 자신을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의심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라트마는 신이 폴리모프 망토라는 최강의 변신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건 몰랐지만 기본적으로 ‘One’의 유저라면 누구나 가볍게 할 수 있는 변장을 떠올리곤 그걸 지적한 것이었다.

“울프 길드의 유저가 놈의 모습을 확인한 건 칸타빌의 소울 스톤에서였습니다.”

“그런가…….”

소울 스톤이라면 이해가 되었다.

소울 스톤에 영혼을 기록할 땐 무조건 그 사람의 진실된 모습이 보이게 되어있었다.

소울 스톤에 등록되는 건 유저의 진실된 모습과 영혼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다.

예외는 없었다. 심지어 로브를 눌러쓰고 있다고 해도 로브가 투명해지며 얼굴이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그게 소울 스톤의 절대 법칙이었다.

모든 게 확실히 확인된 상태에도 라트마는 절대 성급하게 굴지 않았다. 그는 확실하게 준비를 해서 절대 실수를 하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는 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일단 연합의 모든 유저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을 모두 실행에 옮긴다.”

라트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확실한 정보라면 지금이야말로 기회였다.

복수할 기회! 진정한 승리를 할 기회!!

그동안 이 기회를 기다리며 준비한 것이 수도 없이 많았다.

휘청거리던 연합을 바로잡기 위해 투자한 골드가 얼마인가? 아무리 그가 현실에서 엄청난 부(富)를 축적하고 있었다지만 그런 그에게도 살짝 부담될 정도의 돈이 사용되었다.

그렇게 사용된 돈은 모두 골드로 바뀌었고, 그 골드는 다시 엠페러 연합을 유지시키고 또한 용문에 제대로 복수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데 모두 사용되었다.

“전부 실행에 옮기는 겁니까?”

“그래, 전부. 가계약을 맺었던 그들을 모두 고용한다. 이번엔 정말 확실히 끝낸다. 죽음의 산맥…… 그곳을 놈의 완벽한 무덤으로 만들어 버린다. 칸타빌도 철저히 점령해서 무한 PK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라트마의 눈이 불타고 있었다.

그에게 용문은, 그리고 신은 절대 복수를 해야 할 대상이었다. 지금껏 살아오며 이러한 치욕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번 전투를 통해 무려 35만에 가까운 맹약의 업을 빼앗겼다. 조만간 엠페러 연합의 랭크를 SS로 올리기 위해 모아놓았던 아주 소중한 맹약의 업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크게 분노하고 있는 것이었다.

“준비하겠습니다.”

현실에서도 라트마의 비서였고 심지어 게임 속에서도 비서였던 남자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벌써 10년이나 라트마를 모시고 있던 그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라트마의 기분을 잘 읽는 그였다.

그런 그가 보기에 지금은 자리를 피해줘야 할 때였다.

* * *

“낚였군.”

나는 무물 길드에서 최고급 우편 아이템인 천상의 메아리를 통해 아주 빠르게 넘어온 정보들을 확인하곤 슬쩍 웃었다.

내가 이번에 계획한 일은 복수였다.

엠페러에 대한 복수.

물론 다른 의도도 하나 더 있었지만 그건 보너스로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고 일단은 복수가 먼저였다.

이 복수를 위해서는 일단 엠페러를 움직이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엠페러는 절대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설프게 건드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었다.

그래서 준비를 좀 했다.

미리 무물 길드를 이용해 죽음의 산맥 근처에 있는 마을 중 엠페러 연합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 자주 찾는 마을을 찾고 그중에서도 나와 싸워본 경험이 있는 유저가 있는 곳을 또다시 찾았다.

이 작업은 의외로 상당히 까다로운 분별 작업이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무물 길드에 말을 해놨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오래 걸렸다.

하지만 결국 무물 길드는 그 방대한 정보력을 이용해 가장 알맞은 중급 규모의 마을을 하나 찾아냈고, 그것이 바로 칸타빌이었다.

그렇게 최적의 장소를 찾은 난 일단 그곳으로 이동해 엠페러를 낚기 위한 최고의 연기를 준비했다.

처음 몇 번은 엠페러 연합의 유저들이 주변을 잘 살피지 않아 실패했다.

하지만 대략 일주일(게임 시간)을 고생하며 계속 연기를 펼친 결과 드디어 한 놈이 걸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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