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89화 (189/250)

189. 5차 전직 퀘스트 ― 2

* * *

“아, 아닙니다. 문제는 없습니다. 모두 정상적으로 얻은 업이고…… 지금 당장 사용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NPC 신관은 크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마치 괴물을 보는 것 같은 눈빛. 그는 나를 한동안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죠? 제가 어떻게 이런 맹약의 업을 쌓을 수 있었던 거죠?”

“으음, 일단 신 님이 쌓은 업 중 40만이 조금 넘는 수치는 다른 길드에게서 약탈한 업입니다.”

“약탈이요? 하지만…… 길드전을 그다지 많이 한 건 아닌데…….”

비록 엠페러와 화끈하게 싸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내가 길드전을 많이 한 건 아니었다. 기껏해야 엠페러와 정보 길드 떨거지들을 학살한 게 전부였다.

“더 자세한 것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길드전을 통해 업을 빼앗는 건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길드전을 치르셨는지 모르겠지만…… 빼앗거나 빼앗기는 업은 전투 결과의 차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물론 그래 봤자 각 길드가 가진 업 이상을 약탈할 수는 없기에 보통은 일정 수준에서 끝나는 게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신 님에게 업을 빼앗긴 길드는 엄청난 수치의 맹약의 업을 쌓아놓은 길드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신 님이 이렇게 많이 빼앗을 수 있었던 것일 겁니다.”

NPC 신관은 쉴 새 없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35만에 가까운 업은 신 님이 직접 얻은 것들입니다. 이 업은…… 세상을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얻는…… 일종의 대가입니다. 당연히 치열하고 어렵게 살아갈수록 이 업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신 님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 대단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대가가 이 업에 반영되어 이렇게 엄청난 수치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NPC 신관의 말을 듣자 그제야 대충 이해가 되었다.

내가 해결한 수많은 퀘스트.

하나도 평범한 것이 없었다. 그뿐인가? 난 남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몬스터들을 잡아 왔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러다 보니 내가 쌓아놓은 업도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좋았다.

전직 퀘스트의 난해한 한 가지 조건도 한 방에 해결했고, 거기에 엠페러 놈들에게 엄청난 양의 길드 포인트를 약탈했다고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길드 랭크를 올리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제가 직접 올려드립니다. 어떻게…… 지금 당장 이 업을 모두 업의 정화로 바꾼 뒤 곧바로 길드 랭크를 S등급으로 올려드릴까요?”

NPC 신관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마도 그 역시 F등급의 길드를 한 방에 S등급의 길드로 올려본 적은 없을 것이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거울을 만지는 NPC 신관.

그러자 거울에서는 다시 한번 빛이 뿜어져 나왔다.

띠링, 776,607의 맹약의 업이 776의 업의 정화로 환원되었습니다. 남은 업은 607업입니다.

띠링, 업의 정화 700을 이용해 길드 랭크(F)를 길드 랭크(S)로 바꾸시겠습니까? [Y/N]

난 당연히 Y를 눌렀다.

띠링, 길드 랭크가 S등급으로 변했습니다.

띠링, 길드 하우스[성(Castle)]을 지을 수 있습니다.

띠링, 길드 스킬을 A랭크까지 익힐 수 있습니다.

띠링, 맹약의 신전에서 맹약의 업으로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의 등급이 유니크 등급까지 상승합니다.

띠링, 최대 길드원이 1만 명까지 가능해집니다.

띠링, 던전 개발이 +3등급까지 가능해집니다.

길드 랭크가 오르자 그동안 전혀 불가능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가능해졌다.

이런 기능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정작 내가 이런 것을 사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길드라는 건 나와 거리가 먼 존재였다.

“랭크 상승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로써 신 님의 길드 용문은 17번째 S랭크 길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업의 정화는 76점, 맹약의 업은 607점입니다.”

17번째, 생각보다 S랭크의 길드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용문이 S랭크 길드가 된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단 두 명의 길드원으로 S랭크라니, 누가 들으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S랭크로 길드를 상승시키고도 무려 76점의 포인트가 남았다.

난 문득 76점이라는 포인트가 어느 정도 수준의 것인지 궁금해졌다.

“남은 포인트도 활용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각종 스킬을 등록할 수도 있고…… 아이템을 사실 수도 있습니다.”

“그럼 7만 포인트로 등록할 수 있는 스킬과 아이템은 어떤 것들이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NPC 신관은 또다시 거울을 만졌다.

이번에도 역시 빛을 내뿜는 거울. 그런데 이번엔 놀랍게도 그 빛이 방안을 메우자 방이 기묘하게 변했다.

각종 아이템과 스킬북이 가득 찬 방.

아마도 이곳이 맹약의 업을 이용해 스킬과 아이템을 구입하는 곳인 것 같았다.

“신 님의 등급에 맞는 물건들입니다. 각각 조금씩 가격은 다르지만…… 보통 하나에 일만 포인트 이상은 소모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일만 포인트요? 음…… 솔직히 잘 몰라서 그런데…… 칠만 포인트는 어느 정도나 되는 수치이죠?”

“칠만 포인트라면…… 보통 A랭크 길드가 일 년 정도를 열심히 모아야 얻을 수 있는 포인트입니다.”

“많은 건가요?”

“네, 많은 겁니다.”

NPC 신관의 대답에 난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에 놓여 있는 스킬북과 아이템을 살펴보았다.

여러 종류의 스킬북과 아이템.

그런데 이것들은 개인용 스킬북과 아이템이 아니었다. 길드 포인트를 이용해 사는 것이라 그런 것일까?

개인용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다.

아이템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레어에서 유니크 등급의 물건들이었는데 모두가 개인용 아이템이 아닌 길드 단위에서 사용되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발리스타나 투석기 같은 공성용 무기부터 길드 하우스에 설치해서 쓸 수 있는 기묘한 마법 더미 같은 것들까지 대부분이 길드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이었다.

스킬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규모 인원이 펼칠 수 있는 대형 진법서부터 여러 명의 마법사가 힘을 합쳐 만드는 합동 마법 스킬이나 길드 하우스에 방어 용도로 새겨 넣을 수 있는 방어 마법진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별로 나한테 쓸모 있는 건 안 보이…… 응?’

꼼꼼하게 물건들을 모두 살펴보던 난 이곳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내 눈에 들어온 한 가지 스킬북.

그것이 내 생각을 바꿔 버렸다.

[능력강화(能力强化)][A랭크 길드 스킬]

: 총 700의 능력치를 길드원들에게 고르게 분배한다. 최소 10 이상의 능력치를 분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길드원의 숫자가 많을 경우 랜덤하게 무작위로 분배된다.

분배되는 능력치는 결정할 수 없으며 한 번 사용하면 스킬북은 사라진다.

가격: 업의 정화 70

“700이라…….”

재미있는 길드 스킬이었다.

랜덤하게 능력치를 상승시켜 주는 스킬. 분명 S랭크 이상의 길드만 익힐 수 있는 A랭크의 길드 스킬이었다.

이 얘긴 최소 몇천 명의 길드원을 지닌 길드들이나 사서 익히는 스킬이란 얘기였다.

즉, 기껏해야 한 사람 앞에 10씩, 그것도 랜덤하게 결정된 유저들에게 아무 능력치나 마구잡이로 올려주는 것이라 아마 보통의 길드 마스터라면 절대 사지 않는 길드 스킬일 것이다.

차라리 저걸 살 바에는 그 옆에 있는 길드 제작 스킬[길드 망토] 같은 것을 사겠다.

나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난 조금 달랐다.

내 길드는 용문.

오로지 두 명의 유저만 존재하는 길드.

그 길드에서 저 스킬북을 사용하면??

나와 린이 둘이서 저 700의 능력치를 다 가져간다는 뜻이었다.

이쯤 되면 어떤 이들은, 그럼 길드 등급을 S랭크까지 올린 다음 저 스킬북을 산 후 길드원들을 다 내쫓고 몇 명의 유저만 능력치를 올린 후 다시 길드원들을 받으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잘못된 생각이었다.

기본적으로 이 맹약의 업은 삶을 살아가는 대가이다.

길드에 쌓이는 업은 길드원들이 삶을 살아가며 얻어낸 것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만약 길드원들이 그 길드를 나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맹약의 업은 사라진다.

설사 맹약의 업을 다 쓰고 없더라도 변함없었다. 설사 업의 정화로 바꿔 놨다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맹약의 업이 사라져 마이너스가 되면 그 길드는 그동안 맹약의 업, 즉 길드 포인트로 구입했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당연히 길드원을 전부 자르면 그 순간 그 길드원들이 쌓아놓은 업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얘기였다.

그렇기에 방금 말한 그러한 편법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난 편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정식으로 이 700의 능력치를 얻을 수 있었다.

유일한 길드원인 린과 나눈다고 해도 350이었다.

단지 무슨 능력치가 얼마나 오를지 모른다는 게 조금 걸리는 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어떤가?

무려 350이 오르는데 그 어떤 능력치가 오른다고 해도 이득이었다.

난 미련 없이 이 스킬북을 구입했다.

처음에 내가 이 스킬북을 고르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던 NPC 신관도 이내 자신이 보았던 내 맹약의 업 내역을 기억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제 남으신 업의 정화는 6점입니다. 더 사용하시겠습니까?”

“아니요.”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몇 가지 쓸 만해 보이는 스킬이나 아이템이 조금 보이긴 했지만 더 이상 사용할 길드 포인트도 없었고, 굳이 지금 그것들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원하는 일을 모두 끝낸 난 재빨리 NPC 신관에게 인사를 하곤 곧장 맹약의 신전을 빠져나왔다.

정말 예상외의 소득을 엄청 얻었다.

아주 어려운 전직 퀘스트의 조건 중 하나였던 S랭크 길드마스터 등극을 클리어했고, 아주 쓸 만한 길드 스킬북 하나를 구입했다.

“좋아, 좋아.”

행운이 함께하는 것일까?

정말 일이 술술 풀려만 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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