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아수라 완성 ― 2
* * *
“헉!!”
난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타이틀 융합이라니!
이런 게 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비록 단 한 번만 가능한 타이틀 융합이라고 해도 이건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물론 타이틀 설명에도 나왔지만 융합을 한다고 해서 모든 능력치가 합쳐지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사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능력이 합쳐지지 않고 단지 일부만 합쳐진다고 해도 이건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잘만 조합한다면 어쩌면 A급 타이틀 세 개만으로도 충분히 SS급에 육박하는 타이틀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타이틀 융합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SS급 타이틀을 두 개나, 그리고 S급 타이틀을 다수 가지고 있는 나에겐 완전히 대박 중 대박이었다.
“……신의 장난인가?”
아니면 신의 배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 당장 타이틀을 융합할 생각은 없었다. 좀 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최대한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조합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정말 행복한 고민이군.”
이것보다 더 행복한 고민이 있을까?
이건 정말 그 어떤 아이템을 얻는 것보다 더 즐거운 보상이었다.
하지만 즐거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새롭게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두 가지 스킬.
이 스킬들 역시 그랜드 마스터 스킬만이 가지는 특수한 두 가지 능력을 나에게 선물했다.
[마도공학이론(魔道工學理論)]
: 마도공학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 이 지식이 높을수록 마도공학으로 만들어진 모든 물건에 대한 지배력이 강해진다.
숙련도: 200.
효과: 마도공학이 관련된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특이 사항: 없음.
특수 효과(그랜드마스터 효과): 마도안(魔道眼)을 얻게 된다. 마도안은 일종의 깨달음으로써 언제라도 마도공학과 관련된 것이라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더불어 영구히 최대 마력의 10%가 상승한다.
등급: 상급(A급).
[마력 제어(魔力制御)]
: 마력을 제어하는 기본적인 능력. 섬세한 마력 조정 능력을 결정하는 패시브 스킬이다.
숙련도: 200.
효과: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마력을 다루는 능력이 상승한다.
특이 사항: 없음.
특수 효과(그랜드마스터 효과): 당신의 의지가 곧 마력 제어를 결정하게 되었다. 아무리 미세한 양의 마력이라도 당신의 의지를 벗어나지 못한다[모든 스킬의 소모 마력이 10% 줄어든다].
등급: 상급(A급).
그랜드 마스터가 된 스킬은 마도공학 이론과 마력 제어 이렇게 둘이었다.
둘 다 패시브 스킬이었지만 요즘 들어 상당히 급상승한 스킬들이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지는 나도 모르고 있었다.
아수라 제작을 통해 얻은 특수 수련 경험치 효과에 타이틀 ‘더 로드’의 효과가 곱연산으로 적용되며 일어난 일이라지만 어쨌든 다소 황당한 소득이었다.
하지만 분명 두 가지 스킬의 그랜드 마스터 효과는 매우 쓸모 있는 것들이었다.
최대 마력이 오르고 모든 스킬의 마력 소모가 줄어들었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평소에 세이브할 수 있는 마력의 양은 아주 크게 증가할 수 있었다.
마갑 아수라를 얻고 SS급의 대박 타이틀을 얻은 후 그랜드 마스터 스킬 두 개를 얻었다.
즐거울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마냥 즐거워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즐겁지 않은 것을 확인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것.
전.직. 퀘.스.트.
무려 5차 전직 퀘스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
난 살며시 호흡을 정리하고 조심스럽게 퀘스트 창을 활성화시켰다.
물론 그 순간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쉬운 전직 퀘스트를 부탁한다고.
Quest [더 로드: 5차 전직 퀘스트]
그 어떤 미사여구로 당신의 업적을 표현하겠습니까. 그저 말을 줄이는 것으로 당신의 대단함을 대신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당신은 진정한 ‘더 로드’가 된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더 로드’는 단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아니라 아예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역사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니, 꿈꿀 수도 없는 그런 경지에 오르십시오. 그것이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련입니다. 당신이 이 어려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면 어쩌면 당신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당신은 더욱 위대해질 것입니다.
필요 조건: 달성 위업 세 개 이상 기록, 통합 레벨 랭킹 1위 달성, 통합 PvP 포인트 랭킹 1위 달성, S랭크 이상의 길드마스터 등극(그 길드의 마스터 지위를 1년[게임 시간] 이상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어야 함). 숨겨진 미션(미공개)[앞의 조건들을 만족시키면 자동으로 실행되는 비밀 미션].
진행 상황: 통합 레벨 랭킹 1위 달성(나머지 조건들은 진행 중).
기간: 무제한.
쿠쿠쿠쿵!
머릿속에 천둥이 친다.
엄청난 보상들로 인해 들떴던 마음이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망할.”
기도는 소용없었다.
난이도는 거의 최강으로 보여졌다.
위업 세 개, 통합 레벨 랭킹 1위, 통합 PvP 포인트 랭킹 1위, S랭크 이상의 길드마스터 등극.
아마 다른 이들이 이 퀘스트 내용을 들었다면 곧장 퀘스트를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단지 듣는 것만으로 엄청난 충격을 전해줄 만한 퀘스트.
그나마 나는 현재 위업을 두 개 달성한 상태이고 통합 레벨 랭킹은 공동 1위(아직까지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로 전직한 유저는 없었기 때문에)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퀘스트 포기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었다.
통합 PvP 포인트 랭킹도 엠페러를 학살하며 2위까지 올라갔다 현재 조금 떨어져 4위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조금만 노력한다면 1위는 분명히 쟁취할 수 있었다.
문제는 모자란 위업 한 개와 S랭크 길드의 마스터 등극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정보도 없는 숨겨진 미션 하나였다.
위업을 달성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이미 두 개를 달성한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S랭크 길드의 마스터 등극이라니, 현재 용문의 랭크는 초기 생성 랭크인 F랭크…….
S랭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해서 S랭크 길드에 들어가 마스터에 오르는 건 더욱 불가능했다.
A랭크, 아니, C랭크 정도만 돼도 규모가 몇 백 명에 가까웠는데, 그러한 기존의 길드에 들어가 마스터 자리를 차지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결정적으로 1년 이상 마스터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으니 결국 답은 용문의 길드 랭크를 S등급으로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길드 랭크를 올리는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었다.
길드원을 받아들이거나 길드 전쟁을 치르며 조금씩 얻을 수 있는 길드 포인트.
이 포인트를 맹약의 신전에 바치면 포인트에 따라 등급을 올려주었다.
물론 상당한 양의 포인트가 필요했다.
특히 이 포인트는 그 용도가 다양해서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대형 길드일수록 이 포인트 관리가 엄격해 설사 길드 마스터라고 해도 길드원들의 동의 없이 함부로 포인트를 사용하지는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난 한 번도 맹약의 신전에 가지를 않았었네.”
한참 좌절을 느끼고 있던 난 갑자기 내가 맹약의 신전에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길드 포인트를 확인하려면 무조건 여러 대도시에 있는 맹약의 신전을 찾아가야 했다.
“한…… B급까지는 올릴 수 있으려나?”
길드 관리 쪽에는 영 관심이 없는 나였기 때문에 내가 쌓은 길드 포인트로 어느 정도까지 길드 등급을 올릴 수 있을지 몰랐다.
단지 신규 길드원을 전혀 받지 않은 용문이었기 때문에 쌓여 있는 길드 포인트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길드원이 많을수록 쌓이는 포인트는 많아지고, 길드 전쟁에서 상대방의 길드원을 많이 잡을수록 포인트를 많이 뺏어올 수 있다는 것 정도밖에 모르고 있었다.
“……엠페러 놈들을 그렇게 많이 잡았으니 그래도 분명 B급까지는 올릴 수 있을 거야.”
왠지 희망이 생겼다.
F등급에서 S등급까지 올리려고 생각했을 땐 까마득했지만 잘하면 B등급까지는 한 방에 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니 이번 퀘스트도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위업은 또 달성하면 되는 것이고…… 숨겨진 미션이야 뭐 그때 가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했다.
그리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어차피 받은 5차 전직 퀘스트.
내가 임의로 이 퀘스트를 변경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이상 그대로 받아들이고 노력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맹약의 신전을 찾아가자. 그리고 위업 달성과 용문을 S랭크 길드로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보자.”
아수라도 완성한 이상 어차피 당분간은 할 일이 없었다.
본격적인 ‘대이동’이 있기 전에 최대한 전직 퀘스트를 수행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후우∼”
난 길게 심호흡을 한 후 연구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 보헤닌의 연구실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대이동’은 아마도 몇 달 안에 분명히 일어날 것이고, 그 여파는 전 대륙에 퍼져 나갈 것이다.
어차피 ‘대이동’ 그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저 대비할 뿐이었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도 어쩌면 그러한 대비 중 하나일지 몰랐다.
이미 은밀하게 퍼진 소문에 의하면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로 전직하는 전직 퀘스트는 상상을 초월하는 난이도를 지녔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만큼 황당한 난이도를 지닌 전직 퀘스트를 받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웃긴 건 나 자신이 이 황당한 난이도의 퀘스트를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난 내가 그토록 원했던 ‘일인군단(一人軍團)’의 경지에 거의 도달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 황당한 퀘스트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몰랐다.
“……뭐, 상관없잖아.”
그렇다.
별로 상관없었다.
설사 내가 진짜 일인군단의 경지를 완성했으면 어떤가?
더 높은,
더 강한,
내가 정복해야 할 경지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난 그 경지들을 향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었다.
일인군단을 넘어서는 ‘일인무적(一人無敵)’, 그것이 현재 내가 꿈꾸는 경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