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82화 (182/250)

182. 프로토타입(Prototype) 마갑 ― 1

* * *

게임 시간으로 두 달 하고도 보름.

동대륙과 서대륙을 넘나드는 엄청난 거리의 이동.

그냥 현실로 따져도 25일가량의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그 강행군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엄청난 숫자의 NPC들의 은밀한 변화.

나중에는 아예 내가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이미 소문을 듣고 조심스럽게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개척민들도 있었다.

또한 개척민이거나 개척민 출신의 NPC가 아닌 NPC들도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에 조금씩 동참하고 있었다.

특히 동대륙의 경우는 이미 무황성(武皇城)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이용해 거대한 세력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꼰정과 그녀의 파티원들 덕분에 더욱 일을 쉽게 진행시킬 수 있었다.

아예 이 기회에 그녀와 폴우,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무황’ 길드를 용문 길드의 정식 동맹 길드로 받아들였다.

무황성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무황 길드는 유저와 NPC 모두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길드였다.

현재 동대륙에 공개된 비밀 세력은 총 다섯 개였다.

첫 번째로 공개되었던 무당검문(武當劍門)을 시작으로 나와 꼰정 파티가 공개시킨 무황성, 그리고 또 내가 직접 공개시킨 일월신교(日月神敎)가 공개되었고, 최근에 거의 동시에 공개된 소림권문(少林拳門)과 혈독당문(血毒唐門)이 있었다.

이들은 동대륙 NPC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그중 무황성과 일월신교가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동대륙에서 NPC를 설득하는 건 오히려 서대륙에서보다 더 수월했다.

특히 일월신교의 교도들은 음지에 은밀히 숨어있었는데 천마의 후예 타이틀을 달고 그들을 만나면 그들은 내 말을 하늘처럼 받들었다.

물론 서대륙에서도 드워프와 엘프 종족의 봉인을 내 손으로 풀었지만 그 성격이 조금 달랐기 때문에 영향력 자체는 동대륙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이미 서대륙은 드워프와 엘프를 시작으로 오크, 트롤, 고블린, 마지막으로 섀도우 일족까지 나타난 상태였다.

서대륙에 남은 비밀의 신비 종족은 오로지 하나만 남은 상태였다.

어쨌든 이런저런 도움으로 인해 NPC 설득 작업은 생각보다는 일찍 끝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양 대륙을 넘나드는 나의 움직임은 다른 이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아무 은밀한 것이었다.

오로지 이 계획을 짜고 실현시킨 나만이 눈치챌 수 있는 그런 움직임. 덕분에 나는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일단 NPC 선동 계획은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유저들 쪽뿐이었다.

유저들 쪽 계획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심하게 꼬여 버린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계획한 건 모두 실행에 옮겨볼 생각이었다.

다행히 얼마 전 무물 길드를 통해 들어온 소식을 들어보니 그나마 몇몇 사람들이 ‘마법 갑옷’과 ‘마법 거인’이 단순한 아이템과 소환수의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얘기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아직도 여전히 수많은 유저가 레전드급의 갑옷과 소환수를 찾아야 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실정이었다.

일단 유저들의 의식 수준은 만족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계획했던 것들은 그대로 진행시킬 생각이었다.

원래 계획은 무물 길드를 통해 마갑과 자이언트의 존재를 어느 정도 눈치채게 만든 후, 버그 스톤에게 만들도록 부탁한 물건들을 조금씩 유저들에게 풀 생각이었다.

내가 직접 설계하고 버그 스톤과 꾸준히 의견을 교환한 후 조금씩 만들어내기 시작한 이 물건은 바로 마갑이었다.

물론 보통의 마갑과는 다른 반쪽짜리 마갑이었다.

난 아수라 프로젝트를 진행 시키며 마도공학자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많은 양의 지식을 쌓았다.

그리고 그 지식을 이용해 단순히 아수라 프로젝트만 진행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실험적인 물건을 직접 설계해 볼 수 있었다.

단지 제작 기술이 평범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설계한 물건을 현실성 있게 제작하는 건 버그 스톤의 도움을 빌려야 했지만 어쨌든 난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전혀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난 이것의 이름을 고스트 아머(Ghost Armor)라고 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마갑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마도공학 지식이 뛰어나다 해도 마갑을 새롭게 만들어낼 능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보통 마갑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신비한 힘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개조하거나 개량하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새롭게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설사 마갑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당장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하급의 마갑이라고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의 제작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내 계획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양산형 마갑이었다.

하나의 자아를 지닌 일종의 에고 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마갑이 아닌, 에고는 없지만 기본적인 시스템은 마갑과 유사한 그런 갑옷을 만들 생각이었다.

고스트 아머는 일종의 추가 장갑이라 보면 되었다.

몇 가지 기능이 추가된 갑옷 위에 입는 또 하나의 갑옷.

마갑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능력인 마력 증폭 능력은 거의 없지만 추가적으로 각종 속성 및 마법, 그리고 물리 방어력을 늘려주고 거기에 몇 가지 마법 인챈트를 통해 능력치까지 상승시켜 주는 그런 갑옷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마정석이라 할 수 있는 루비(Ruby)와 기본적인 금속 재료인 강철(鋼鐵)이 주재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제작비가 그리 비싸지는 않았다.

단지 일일이 대마법 방어진이나 각종 속성 방어진을 새겨 넣는 게 귀찮은 일이었지만 최대한 간결하게 축소시킨 방어진을 새겨 넣으면(물론 방어력은 떨어진다) 제작 시간을 대폭 단축시킬 수 있었다.

의외로 가장 귀찮은 건 내가 일일이 마정석인 루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것들은 대부분 버그 스톤이 다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특별한 고스트 아머를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활성화 작업은 뛰어난 마법적 능력과 높은 마도공학 지식을 필요로 했다.

당연히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건 나뿐이었다.

난 버그 스톤의 작업실로 찾아가 그동안 버그 스톤이 만들어놓은 이 프로토타입 마갑들을 일일이 활성화시키는 중이었다.

이 물건은 앞으로 용문상회의 주력 판매 상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사람들은 더욱 마법 갑옷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큰 이득을 안겨주는 동시에 일종의 연결 고리도 될 수 있었다.

곧장 마갑이라는 새로운 물건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워낙 그 체계가 기존의 아이템들과는 다른 물건이 마갑과 자이언트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쉽게 마갑과 자이언트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프로토타입 마갑은 충분히 유저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아마도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 물건은 충분히 틈새시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많은 유저들은 마갑 이전에 이 프로토타입 마갑을 이용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곧 나에게 엄청난 이득을 안겨줄 것이다.

아마도 이 물건은 유저들에게 유행처럼 번져 나갈 것이다. 생각해 봐라! 아이템을 공짜로 하나 더 착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비록 적응이 안 되면 움직임에 살짝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그건 적응만 되면 말끔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오히려 얻는 이득이 많았기 때문에 너도나도 적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은 곧 자연스럽게 마갑의 적응에도 도움이 된다. 난 프로토타입 마갑만 생산할 생각이 아니었다.

앞으로 차근차근 준비해 비록 하급일지라도 마갑의 양산 체계를 갖출 생각이었다.

그때가 된다면 아마 더 큰 돈을 벌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유저들의 전투력을 더욱 상승시켜 ‘놈’에게 크게 한 방 먹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계책이었다.

안 되면 되게 한다.

‘대이동’으로 인해 대륙이 크게 혼란스러울 것이라면 그만큼 준비를 하게 만들면 되었다.

NPC는 그들 나름대로, 그리고 유저는 또 유저 나름대로!!

대신 그 준비 과정을 절대 들켜서는 안 됐다.

마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흐름인 것처럼 최대한 인위적인 모습을 감춰야 했다.

그래서 이 프로토타입 마갑 역시 아주 천천히 아무런 광고나 소문도 퍼뜨리지 않고 시장에 풀 생각이었다.

어차피 팔릴 물건은 알아서 잘 팔리게 되어있었다.

당연히 물건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사전 작업도 필요 없었다.

아마도 이 프로토타입 마갑은 엄청난 인기를 끌 것이다. 그리고 마치 하나의 흐름처럼 굳어질 것이다.

뭐, 뒤늦게 몇몇 마도공학자가 이 물건을 흉내 내서 만들어도 상관없었다.

만들기도 힘들겠지만 만약 그런다고 해도 절대 내가 만든 이 물건만큼의 퀄리티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짝퉁 물건들 때문에 내 물건이 더 인기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원래 선점이 가장 중요했다.

내가 이 마갑 시장을 선점한 이상 그 누구도 나를 따라올 수는 없을 것이다.

* * *

“이건 좀 별론데?”

버그 스톤은 눈앞에 있던 한 프로토타입 마갑을 툭툭 치며 얘기했다.

현재 이 프로토타입 마갑들의 이름은 ‘GA-1’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일단 ‘GA-1’은 모두가 같은 성능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모든 걸 직접 수작업으로 만든 물건이라 그런지 하나하나가 약간씩 능력의 차이를 보였다.

성능이 뛰어난 것이야 대충 ‘GA-1S(스페셜)’로 명명한 후 팔면 되었는데 문제는 성능이 떨어지는 것들이었다.

특히 아예 성능이 떨어지는 건 그냥 폐기하면 끝이었지만 지금처럼 살짝 기준에서 모자라는 건 좀 고민이 되었다.

“흠…….”

난 앞에 있던 마갑을 들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물리 방어력이나 마법 방어력, 또는 속성 방어력 같은 방어 계열에서는 별 문제가 없는 물건이었다.

단지 인첸트 마법진이 잘못 새겨졌는지 기본 능력치 상승이 거의 되지 않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보통 등급의 GA(고스트 아머)들이 총합 50∼60 정도의 능력치를 상승시켜 주었는데, 이놈은 겨우 30의 능력치만 상승시켜 주었다.

그것도 가장 인기 없는 매력으로만 30이 올라가는 놈이었다.

차라리 힘이나 민첩으로 30이 올라갔다면 어떻게 상품으로 내놓았겠지만 매력으로 30은 좀 무리가 있었다.

랜덤 인첸트 마법진이 이럴 땐 좀 아쉬운 감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고급 인첸트 마법진을 사용해 원하는 능력치만 오르게 만들고 싶었지만 그 시간과 효율을 따져 볼 땐 역시 랜덤 인첸트 마법진이 답이었다.

“일단…… 염가 상품으로 분류하고…… NPC들한테 넘기는 걸로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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