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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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닌에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연구를 시작한 지 벌써 한 달(게임 시간)이 흘렀다.
이젠 마갑 아수라가 거의 70∼80% 정도는 만들어져 있었다. 아직 마무리 공정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 부분은 모두 완성시킨 후였다.
이 속도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였다.
아무래도 이렇게 빠르게 아수라를 만들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연구실 중앙에 아수라와 나란히 걸려 있는 ‘다크 스타’였다.
이제는 외부 장갑과 내부 장갑까지 모두 벗겨진 헐벗은(?) 마갑이 되어있었지만 어쨌든 이 녀석 덕분에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아수라 프로젝트를 여기까지 진행을 지킬 수 있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건 아직도 ‘다크 스타’에서 ‘다크 문’을 소환할 수 있는 자이언트 소환 마법진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크 문’만 강제로 소환시킬 수 있다면 자이언트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역시 ‘마나 소울’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부분이라 그런지 좀처럼 그 비밀을 공개해 주지 않았다.
어쨌든 아수라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난 모종의 이유로 잠시 연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이곳 연구실에서 아수라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번처럼 아예 바깥소식을 듣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듣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 드디어 내가 기다려 왔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자연스럽게 [The One Part2: 우라노스의 반격]으로 이어지는 대변화를 불러올 이 움직임.
그 움직임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 ‘대이동’, 또는 ‘몬스터 대란(大亂)’이라 불리게 될 이 움직임은 앞으로의 ‘The One’의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일이었다.
동대륙과 서대륙에 존재하는 수많은 몬스터가 무리를 지어 마을이나 도시들을 습격하고 유저들에게 빼앗긴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게 된 이 사건. 내가 적어놓은 기록이 정확하다면 이 사건으로 인해 기존의 마을과 도시 중 50%가 파괴될 것이다.
이 움직임의 배경에는 드래곤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내가 적어놓은 정보에도 이 움직임에 대한 것은 많지 않았다. 단지 최초 어떤 일들이 일어나며 이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얘기와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은 상위 10%의 도시, 또는 마을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 움직임으로 유저들이 크게 피해를 입기 시작할 때 드디어 [The One Part2: 우라노스의 반격]의 시작을 알리는 또 한 번의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움직임의 조짐은 바로 죽음의 산맥에서 들려온 대규모 몬스터 무리의 등장이었다.
최초 죽음의 산맥의 몬스터들이 무리를 지으며 유저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 그러한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죽음의 산맥에서 포착되었다는 정보를 들었다.
몬스터들의 대이동이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죽음의 산맥에서의 이 움직임이 있다고 해서 지금 당장 ‘대이동’이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아직 그 대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상당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아무리 변수가 생긴다 해도 적어도 7∼8개월(게임 시간) 정도는 있어야 본격적인 대이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많다고 해서 계속 연구를 진행시킬 수는 없었다. 연구가 중요한 건 맞지만 이 큰 변화를 앞에 두고 계속해서 아수라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수는 없었다.
당장에 이 보헤닌만 해도 분명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을 게 분명했다.
아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난 미리미리 준비할 게 아주 많았다.
[The One Part2: 우라노스의 반격]이 본격적으로 유저들에게 퍼지기 전까지는 이번 ‘대이동’의 여파로 유저들이 굉장히 큰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몬스터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규모의 몬스터들이 유저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고 있던 유저들은 아주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유저들보다 NPC들이 더 많은 피해를 입을 것이다. 유저들은 그래도 라이프 스톤이라는 절대적인 존재 때문에 다시 살아날 수 있지만 NPC는 그게 불가능했다.
이 부분이 나를 더욱 신경 쓰이게 했다.
내가 나름대로 오랫동안 고민해 본 결과 이건 결국 그놈, ‘전이’의 수작일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드래곤들이 이 일의 배경이라는 점과 각종 안배의 시작이자 중심이라 할 수 있는 NPC들이 큰 피해를 입는다는 점은 이번 변화가 평범한 게임 속의 변화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주었다.
그래서 난 더욱 이번 변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생각이었다.
이미 마계의 파수꾼으로부터 이 세상의 비밀들을 듣고 난 후부터 이번 변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나다.
그리고 그 생각 끝에 나름대로 몇 가지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바쁘게 움직여야겠군.”
죽음의 산맥에서 대규모 몬스터 무리가 발견되기 시작한 지금, 이제는 더 이상 이 연구실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볼 때 [The One Part2: 우라노스의 반격]은 뒤늦은 사후약방문 같은 것이었다.
이미 큰 피해를 입은 뒤 반격을 해봤자 그 효과는 클 수가 없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보단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난 그 외양간을 고치는 일을 할 생각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내가 아무리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떠들어봐야 사람들이 그걸 믿어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유저들 스스로가 움직이게 만들어야 했다.
“일단 그림자 남매가 시킨 일을 잘 처리했는지 확인해 봐야겠군.”
난 연구실에서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그림자 남매와 이나, 그리고 버그 스톤에게 몇 가지 일을 부탁해 놓았었다.
그 일은 일종의 씨앗이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약 한 달의 시간은 그 씨앗이 싹을 틔우는 데 충분한 기간이었다.
지금 난 바로 그 싹을 확인하러 갈 생각이었다.
난 이번에도 역시 바람의 이동 스킬을 이용해 한 번에 그림자 남매가 주로 활동하는 문 글로우(Moonglow)로 이동했다.
내가 바람의 이동 스킬로 설정해 놓은 장소는 보헤닌, 문 글로우, 그리고 우타와였다.
우타와에는 용문상회의 두 마스터 중 한 명인 버그 스톤이 대규모 업그레이드 연구실을 열어놓고 있었고, 문 글로우에는 그림자 남매가 이끄는 무물 길드의 총단이 있었다.
난 일단 이 문 글로우에 있는 무물 길드 총단을 찾아왔다.
내가 한 달 전에 그림자 남매에게 맡긴 간단한 부탁은 바로 한 가지 거짓 정보를 동대륙과 서대륙 전체에 아주 은밀하게 퍼지게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그건 바로 마갑과 자이언트에 대한 은밀한 소식이었다.
물론 정확하고 세밀한 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정확하고 세밀한 소문을 내면 거짓 정보로 의심받을 수 있었고, 또 괜히 큰 소란만 일으킬 수도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난 단지 하나만을 원했다.
바로 관심.
유저들의 작은 관심이면 충분했다.
많이도 필요 없었다. 아주 작은 관심, ‘그게 뭐지?’ 하는 정도의 관심이면 되었다.
그래서 아예 그런 작은 관심을 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정보만 풀었다.
무물 길드의 정보망을 이용해 두 대륙 전체에 치밀하게 퍼뜨리라고 말해 놓았다.
한 달 전에 그렇게 말해 놓았으니 아마 지금쯤 내가 생각한 정도의 관심은 충분히 생겨났을 것이라고 믿었다.
“뭐?”
난 클레타를 향해 다시 한번 물었다.
“일이 생각보다 커졌다고요. 분명 우리는 형이 알려준 그 정보만을 퍼뜨렸는데…… 자꾸 이상한 헛소문이 거기에 덧붙여지면서 괴상한 소문이 되어버렸어요.”
클레타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얘기했다.
“그걸 되돌려 보려고 이리저리 손을 써봤는데…… 헛소문의 전파가 훨씬 강력하고 빨라서…….”
마가레타 역시 씁쓸한 표정이었다.
“으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괜히 과도한 관심을 끌어내면 놈(전이)이 또 어떤 수작을 추가할지 몰랐다.
네파루만 해도 놈이 추가한 수작이 확실했는데 이번에도 수작을 추가하면 별로 좋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어떤 헛소문인데?”
일단 헛소문의 정도를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저희가 퍼뜨린 건 몇 가지 전설에 등장하는 마법 갑옷과 마법 거인의 얘기 몇 가지인데…… 지금 전 대륙에는 전설의 갑옷과 전설의 거인 소환수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가 있다는 소문이 났어요. 유저들은 전설의 갑옷이 레전드급 유물 아이템이고 거인 소환수는 최상급 정령과 비슷한 수준의 소환수일 것이라고 얘기하는 중이에요.”
“크으…….”
이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의 확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