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연구 시작 ― 1
* * *
“무적자라…….”
난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나에게 붙은 한 가지 별칭, 이 별칭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무.적.자.
난 이미 무적자에 대해 알고 있었다.
물론 그가 누구인지, 어떤 인물인지는 아무것도 몰랐다.
단지 천무칠성의 일원이자 굉장히 신비하고 매우 강할 것이라고 소문난 천무칠성의 가장 윗자리인 천좌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불사마군 한림.
투신 천위강.
전능자 프로이드.
대마법사 가웨인.
검은 마녀 린.
암흑의 성기사 에스카.
무적자.
이게 내가 알고 있는 천무칠성이었다.
난 마지막에 등장하는 무적자를 제외한 여섯 명의 유저에 대해서는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건 지금까지 나머지 여섯 명의 유저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많이 했으면서도 정작 마지막 한 명, 가장 특별한 천무칠성이었던 무적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적자라는 이름이 천무칠성 중 한 명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도 나에게 무적자라는 별칭이 붙은 것을 알았을 때다.
불현듯 마치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처럼 떠오른 천무칠성의 일원인 무적자.
마치 내 기억 속의 가려져 있던 한 부분이 살짝 드러난 느낌이었다.
어쨌든 난 무적자가 천무칠성의 일원이란 건 알았지만 그에 대한 다른 정보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나에게 무적자라는 별칭이 붙었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머릿속. 이 호칭의 일치는 단지 우연히 일어난 일일 뿐인가, 아니면 뭔가 관계가 있는 것인가? 정말 어지러울 정도로 엉킨 느낌이었다.
“그럼 내가 알고 있는 무적자는 어디에 있다는 건가?”
꼬일 대로 꼬여 버린 상황.
그나마 많은 비밀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아니면…… 설마 내가 무적자였던 건가?”
예전이었다면 전혀 생각하지 못할 상상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난 이제 거의 확실하게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과거로 돌아오지도 않은 내가 어떻게 미래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단지 그 과정에서 ‘가이아’라 불리는 초월적인 존재와 얽혔고, 그 때문에 난 스스로 과거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렇기에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그 무적자가 다름 아닌 나일 수도 있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물론 무적자가 다른 존재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오류가 존재하기 때문에 일단은 드러난 현실을 그대로 믿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머리가 아팠다. 마치 누군가 머리를 계속 두들기고 있는 것처럼 계속 지끈거렸다.
이미 마구 엉켜 버린 기억…….
내 기억 속에서 무적자라는 단어는 절대 평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확히 그것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일지 몰랐다.
“무엇이 진짜 진실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만약 다른 무적자가 존재한다면 언젠간 나타날 것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 날카로운 송곳은 언젠간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일단 지금은 머리가 너무나 지끈거리는 이 주제를 잠시 잊는 게 먼저인 것 같았다.
“휴우∼ 그나저나 너무 한가하군.”
게임 속에서 난 죽었다.
비록 다른 플레이어에게 사망한 것이 아니라 역혈천마대법의 페널티 효과로 스스로 죽은 것이지만 어쨌든 죽은 건 죽은 것이었다.
덕분에 난 한동안 게임에 접속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하이퍼 넷을 열심히 뒤지며 ‘One’에 관련된 정보를 모았지만 그것도 하루 정도 하니까 더 이상 얻을 정보도 없었다.
결국 난 정보 모으기를 마무리하고 하릴없이 하이퍼 넷을 둘러보았고, 그 와중에 나와 관련된 다수의 동영상과 소문을 모두 확실히 파악했다.
“편집, 죽이네.”
내 스스로 동영상을 만들어도 이렇게는 못 만들 것 같았다.
몽몽이라고 했던가?
확실히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더니 이 동영상 하나만 봐도 그의 남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난 다시 한번 며칠 전의 전투를 제 3자의 시선으로 조용히 지켜보았다.
괴력을 발휘하며 수많은 엠페러 연합의 유저를 쓸어버리는 나의 모습.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난 살짝 내가 너무 오버했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사용했다.
덕분에 엄청난 괴력을 보여줄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당연히 난 무적자라는 칭호를 얻었다고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짐을 하나 어깨 위에 올려놓은 것 같아 별로였다.
“무적자…… 천무칠성…….”
난 ‘One’에서 가장 특별하다고 소문난 일곱 명의 유저 중 한 명이 되었다.
그것도 가장 특별한 천좌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도 난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적자라지만 분명 난 엠페러 연합에게 졌다.
아무리 내가 그들을 많이 괴롭혔다고 해도 최종 결과는 나의 죽음, 즉 패배였다.
내가 원하는 건 진정한 무적의 일인군단이었다.
파수꾼이 다시 한번 강조해 줬듯이 놈은 강하다. 그냥 강한 게 아니라 아주 강하다.
그런 놈과 대립하며 이 세상의 진정한 진실을 알려고 하는 나였기에 더욱 강한 힘이 필요했다.
“……부족해.”
더 많은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난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이 아수라 프로젝트에 더욱 집중할 생각이었다.
마갑과 자이언트.
그것이야말로 현재 내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힘이었다.
잠깐 아수라에 대한 생각을 하는 순간 드디어 화려한 동영상의 마지막 장면이 펼쳐졌다.
내가 역혈천마대법을 사용하고 수많은 방어선을 뚫은 후 엘레멘탈 블레이드로 라트마의 머리를 쳐버리는 모습, 그리고 곧장 무릎을 꿇고 정신을 잃는 나.
이걸로 동영상은 끝이 났다.
저 장면에서 난 생각지도 못한 타이틀을 하나 얻었다.
무려 S급의 타이틀인 ‘최강의 학살자’.
정확히 어떤 타이틀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분명 PvP에 특화된 타이틀 같았다.
어쨌든 타이틀은 얻었지만 그다지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첫 죽음.
남들과는 다르게 생명의 제한이 있는 내가 첫 죽음을 당했다. 그것은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이었다.
난 한동안 말없이 어두워진 배경 화면 속에서 조용히 검에 기대어 눈을 감고 서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복수를…… 해야겠지?”
나는 원한을 잊지 않는다.
하물며 나에게 첫 죽음을 선물한 그들을 잊을 순 없었다.
“엠페러.”
그나마 나의 희생을 끝으로 그들은 린을 잡지 못했다. 오히려 린의 신출귀몰한 움직임 때문에 돈으로 고용한 용병들이 모두 전멸했다.
물론 내가 미리 그림자 남매와 버그 스톤, 이나에게 린을 도와달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었지만 어쨌든 개인적으로 나는 패배했지만 길드 전체를 놓고 봤을 땐 용문의 승리였다.
엠페러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들은 한꺼번에 엄청난 숫자의 전력이 이탈하며 수많은 곳에서 손해를 보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당연히 무물 길드를 이용해 가볍게 작업을 해놓았다) 다른 경쟁 길드들이 엠페러를 물어뜯었기 때문이다.
거의 열흘(게임 시간)간 무장 해제를 당한 것처럼 되어버린 엠페러는 그런 경쟁 길드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워낙 대형 길드 연합인 엠페러인지라 이 정도로 막은 것이었지, 만약 다른 곳이었다면 아마 이대로 완전히 해체되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엠페러는 그렇게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일단 공식적인 발표는 전혀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처럼 당당하게 대응하는 엠페러.
그런 기민한 대응 덕분에 기존의 길드원들이 대거 이탈하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전과 비교해 몇만 명은 연합을 탈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몽몽이 수많은 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특히 몽몽에게 한 번 털리고 더욱 보안에 신경을 썼다고 하는) 엠페러 연합의 메인 하이퍼 넷 서버를 해킹해 얻은 각종 동영상을 그대로 하이퍼 넷 이곳저곳에 뿌리고, 그걸로도 모자라 자신이 직접 편집해 만든 동영상마저도 뿌린 덕분에 안티 엠페러 연합의 숫자는 급속도로 증가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엠페러 연합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로 작용하는 중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더 이상 그 거대한 덩치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엠페러는 절대 이대로 망하지 않는다.
라트마 그라면 분명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은 선에서 이번 일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솔직히 그러길 바란다.
이대로 힘없이 무너진다면 아마 크게 실망할 것이다.
모름지기 복수란 자기 스스로 직접 하는 게 제일 좋다.
절대 남의 손을 빌려서는 안 된다.
내 손으로 직접 아주 처절하게 복수를 해주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엠페러가 살아남아 줄 필요가 있었다.
“살아남아라, 그리고 더욱 성장해라.”
그냥 살아남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더욱 성장을 하길 빌어주었다.
기쁨이 크면 절망도 큰 법이다.
난 엠페러가 다시 한번 절정의 세력을 자랑할 때 확실하게 직접 끝없는 절망을 선물하고 싶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꼭 그렇게 해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