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77화 (177/250)

177. 무적자(無敵者) ― 2

* * *

츠리릿!

촤아아아아아아!!

또 한 명의 허리를 가르는 엘레멘탈 블레이드.

오로지 허리의 회전력과 왼팔의 힘만으로 펼친 중단 가르기의 한 수. 목표였던 유저의 생명력이 거의 없었던 것일까? 이 대단치 않은 공격에 그 유저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않았다.

마력이 너무나 부족해 오러를 사용하지 못한 지도 벌써 한참이 지났다.

‘몇 명째일까?’

초반에 한 천여 명 정도까지는 대충이나마 세어본 것 같은데 그 뒤로는 세는 것을 아예 포기했다.

입에선 단내가 났다.

가상현실이라고 해서 현실과 다른 건 별로 없었다.

지금처럼 극도로 힘든 상황이 오면 온몸의 기운이 빠지고 입에선 단내가 나는 게 당연했다.

“헉…… 헉…….”

일단 내 눈앞에 보이는 적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아주 많이 줄어든 것이다.

지금은 대략 수천 명 정도의 적이 남아 있었다. 이 징글징글한 엠페러 연합 놈들과 싸운 지 벌써 열 시간이나 흘렀건만 아직도 놈들은 개떼처럼 남아 있었다.

물론 쓰러진 놈들도 개떼처럼 많았지만, 그래도 결국 여전히 개떼는 개떼로 남아 있었다.

“……징그럽게 많이도 긁어모았네.”

난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양손으로 잡고 옆구리에 밀착시켰다.

사실 어쩌면 나보다 내 앞에 있는 이 녀석들이 더 징그럽다는 생각을 할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나 한 명을 잡기 위해 2만에 가까운 이들이 동원되었는데 그중 만이 훌쩍 넘는, 대략 만 칠천에 가까운 이들이 쓰러졌음에도 나를 잡지 못했으니 질릴 만도 했다.

특히 한 30분 전쯤에 완전히 나를 코너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한 엠페러의 친위대 녀석들이 나를 향해 모든 공격을 쏟아부었을 때, 때마침 불사(不死)의 반지가 그 특수한 옵션을 활성화시키며 나를 죽음으로부터 구원시킨 그 순간 나를 포위하고 있던 수많은 엠페러 연합의 유저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었다.

특히 엠페러의 군주 라트마와 친위대의 우두머리 엘렌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어쨌든 이런저런 능력을 활용하며 난 살아남고 또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 보였다.

마력과 생명력도 거의 바닥났고 전투를 유지시킬 만한 기력도 다 떨어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준비했던 시약도 거의 다 떨어졌고 암기는 바닥난 지 오래였다. 미리 준비해 놓았던 카드 마법들도 사용 횟수를 모두 채우고 현재는 재사용 대기시간에 걸린 상태였다.

그나마 간간이 흡성대법을 사용하고 압축 물약을 먹으며 버텨왔지만 이젠 압축 물약도 다 떨어졌고 흡성대법도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다. 아껴두었던 용마혈(龍魔血)의 힘과 무신의 내공도 모두 사용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젠 포위를 두려워해 바깥쪽으로 돌면서 전투를 하지도 않았다. 그냥 서서 버티고 또 버텼다.

신법을 사용하기보단 보법을 사용하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전투를 이어갔다. 마력이 거의 바닥나면서부터는 움직임을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게 가장 중요했다.

정말 너무나도 힘든 전투의 연속.

하지만 이젠 정말 그 전투를 끝낼 때가 찾아온 것 같았다.

‘이제 마지막 불꽃을 태울 때인가?’

이미 ‘영웅의 포효’나 ‘용마수’ 같은 각종 특수한 버프들은 중간중간 모두 사용했다.

그뿐 아니라 미리 소환해 놓았던 묵과 라르엘도 중후반 즈음에 큰 충격을 받고 역소환되었다.

2만이란 숫자는 정말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난 모든 것을 다 사용하여 버틸 수밖에 없었고,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단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마지막 순간에나 사용이 가능한 금단(禁斷)의 비술(秘術)이자, 역천(逆天)의 대법(大法)인 ‘역혈천마대법’이었다.

‘그래…… 적어도…… 저 녀석만큼은…….’

난 고개를 들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나를 공격하라고 소리치는 라트마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불꽃의 화려한 폭발이 대충 머릿속에 그려졌다.

긴 문장의 마침표를 찍고 용의 눈동자를 그리듯 그 어떤 불꽃보다 화려하고 멋진 폭발이 될 것이다.

꽈아악!

손에 들고 있던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더욱 강하게 움켜잡았다.

내 첫 죽음이다.

이 죽음을 다른 이에게 맡길 생각은 없었다.

내가 죽을 장소와 시간은 내가 정한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다.

“……자…… 죽어보자.”

특수 스킬, 역혈천마대법(逆血天魔大法)!!

역천의 힘이 몸 안으로 빨려들어 오며 지금까지의 피로가 한 번에 날아간다.

이것이 바로 금단의 마력이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피어오르게 해줄 강력한 에너지이다.

그렇게 난 붉고 뜨거운 거대한 겁화(劫火)가 되었다.

* * *

전설이란 말은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어설프게 전설이란 말을 사용하면 오히려 무시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동영상만큼은 아마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전설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의견에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것만큼은 정말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의 시야로 찍힌 수없이 많은 같은 종류의 동영상을 한데 모아 유명 해커 몽몽이 직접 편집해서 만든 하나의 동영상.

일명 ‘무적자(無敵者)’ 동영상의 시작은 한 유저의 절규로부터 시작된다.

괴성을 내지르며 허공에서 두 자루의 총을 뽑아 드는 그 유저.

그 유저는 한때 용문(龍門)의 전신(戰神)이라고도 불렸고, 또 회색의 학살자라고도 불렸다.

합쳐서 천살이성(天殺二星)이라고 불렸던 두 존재.

그 두 존재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이 공개된 그 순간 무적의 전설이라 불릴 그 전투가 시작되었다.

대형 권총과 장총.

이 두 자루의 총이 불을 내뿜기 시작하자 그를 포위하고 있던 엠페러의 길드원들이 큰 데미지를 입고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시작된 마치 유령(幽靈)과도 같은 움직임.

엠페러 길드의 유저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정작 그를 제대로 공격하는 유저는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의 유저가 그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몽몽이 수많은 동영상을 모두 편집해서 이 ‘무적자’ 동영상을 만든 후 가장 먼저 했던 말이 최초 한 시간가량의 전투 동영상을 만드는 게 가장 힘들었다는 말이다.

그만큼 초반의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 신묘했다.

아마 수천 명의 유저가 동시에 동영상을 촬영하지 않았다면 이 동영상을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라트마의 개인적인 욕심(천살이성의 주인공을 잡는 장면을 찍어 자랑스럽게 공개하려던 욕심) 덕분에 이루어진 수천 명의 동시 동영상 촬영.

덕분에 이 동영상이 존재할 수 있었다.

라트마는 결국 이 동영상이 만들어지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 되었다.

그의 전투는 너무나 화려했다.

그는 화끈한 듀얼 거너(Gunner)이기도 했고, 노련한 저격수이기도 했으며 백발백중의 궁사이기도 했다.

그뿐인가?

그는 뛰어난 사냥꾼이자 도적이었으며 대단한 마법사이자 술법사이기도 했다. 또한 진법의 달인이자 마법진의 마스터였고, 강력한 독을 다루는 독의 대가(大家)이기도 하면서 강력한 독립형 소환수와 마수(魔獸)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소환, 기술의 달인이기도 했다.

거기에 그는 누구보다 강력한 검술을 사용하는, 그것도 쌍검술, 양손 검술, 한손 검술, 비검술 등등으로 거의 모든 종류의 검술을 사용하는 절정의 검객이었다.

그밖에도 와이어를 이용한 기묘한 전투술, 적재적소에 발휘되는 완벽한 체술, 동대륙과 서대륙의 기술이 한꺼번에 녹아 있는 각종 치료술, 어떤 버퍼도 흉내 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버프 기술 등등.

특히 그 수많은 기술 중에서도 단연 발군은 신법(보법)이었다.

그의 신법은 지금까지 공개되었던, 심지어 자기 자신의 대표적인 동영상인 ‘용문의 전신’ 동영상과 ‘회색의 학살자’ 동영상보다도 더 대단했다.

마치 한줄기 가벼운 바람처럼, 또는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때로는 노도(怒濤)와 같은 강력한 물줄기처럼 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몸 어딘가를 부여잡고 주저앉거나 아예 게임 아웃이 되어 사라지는 유저들뿐이었다.

사실상 그의 공격을 제대로 막는 유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만약 엠페러 연합의 유저가 지금 숫자의 70%, 아니, 80%만 되었어도 아마 정말 엄청난 대반전의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엠페러 연합의 숫자가 많았다.

거의 2만에 가까운 숫자, 누군가 정확히 19,427명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19,427명이나 2만이나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 숫자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는 완벽한 죽음의 상황에서도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났고, 순간순간 유저의 한계를 벗어난 것 같은 괴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마지막에 보여준 그의 압도적인 무력은 절로 감탄이 나오는 모습이었다.

엠페러 유저들이 필사적으로 만든 수십 겹의 방어선을 뚫고 라트마의 목을 베어버린 절대적인 무력.

심지어 마지막엔 라트마가 발악을 하듯 대군주의 권능까지 사용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폭풍과도 같은 돌진.

그리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엠페러의 유저들.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증유의 힘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하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단 한 번의 칼질로 라트마의 머리를 통째로 날려 버린 그.

그리고 의연하게 땅바닥에 검을 꽂은 상태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서 있는 그의 모습.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입에선 절로 무적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모든 것을 날려 버릴 것 같은 강력한 그의 힘은 단지 보는 것만으로 가슴 떨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엠페러의 대군주를 제거하고 천천히 움직임을 멈췄다.

그렇게 한동안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한동안 아무도 그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정확히 그는 금단의 대법인 역천혈마대법의 페널티로 인해 서서히 생명력이 제로(0)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순간이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마지막 결정타를 날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숨을 죽이고 지켜만 볼 뿐이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누구도 그를 죽이지 못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는 스스로 죽었다.

무적자(無敵者)!!

그 이름과 너무나도 어울리는 죽음.

결국 동영상의 마지막을 장식한 건 멍하니 그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는 2천가량의 엠페러 연합 유저들뿐이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분명 엠페러 연합의 승리였다.

하지만 아무도 엠페러 연합이 승리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유저를 잡기 위해 2만여 명의 유저가 동원되었고, 그중 살아남은 유저는 2천이 조금 넘었다.

무려 1만 8천의 유저가 죽었다.

이것이야말로 일인군단(一人軍團)이자, 일인무적(一人無敵)이었다.

그 누가 감히 그에게 대적하겠는가?

동영상이 공개된 후 그에게 붙은 무적자라는 별칭은 너무나도 그와 잘 어울렸다.

물론 최초 이 동영상의 원본 동영상이 공개되고 수많은 엠페러 연합의 유저에 의해 그에 대한 소문이 알려졌을 때는 모든 사람이 한목소리로 버그를 이용하는 유저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그러한 유저는 무조건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며 한목소리로 DH 소프트를 압박했다.

너무나 강렬한 동영상의 모습 때문일까?

그 압박도 지금까지의 어떤 압박보다 강력했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DH 소프트는 상당히 빠르게 이번 일에 대한 해명을 내놓았다.

그들의 해명은 간단했다.

‘버그는 없습니다. 동영상의 유저는 정당한 방법을 통해 아주 특별한 한 직업을 얻었을 뿐입니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The One’에서는 강한 힘을 얻으면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르게 됩니다. 당연히 그 유저가 얻은 특별한 직업은 절대 쉽지 않은 성장 과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봤을 때…… 동영상 속의 유저는 그 모든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 최고 수준으로 그 직업을 키워낸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DH 소프트의 간단한 해명.

물론 너무나 간단한 해명이라 큰 반발이 있었지만 더 이상 DH 소프트는 추가 해명을 하지 않았다.

마치 말할 것은 다 말했다는 것 같은 태도였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유저들은 이제 다른 각도로 동영상 속의 유저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특히 최상급의 탑 랭커들은 DH 소프트의 발표처럼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고 해도 그만큼의 페널티가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아마도 동영상 속의 유저는 그 페널티를 매우 훌륭하게 극복한 유저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랭커들은 이 의견에 동의했다.

자신들도 간접적으로 겪어본 ‘One’의 절대 법칙이었기에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최상급의 랭커들이 그렇게 의견을 정리하자 일반 유저들의 의견도 점점 버그 유저라는 쪽에서 엄청난 노력으로 특별한 직업을 더욱 빛나게 한 대단한 유저라는 쪽으로 흘러갔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거의 모든 유저가 ‘무적자’의 존재를 인정했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유저로 인정받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천살이성을 얘기하지 않았다.

천무칠성(天武七星), 또는 세븐스타(Seven Star)에 대해 얘기했다.

동대륙과 서대륙을 합쳐 가장 강하고 특별한 일곱 명의 유저…….

물론 그중 가장 빛나는 천좌(天座)의 자리는 단 한 명에게만 허락되었다.

이름은 모른다.

다만 모든 사람은 그를 ‘무적자(無敵者)’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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