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76화 (176/250)

176. 무적자(無敵者) ― 1

* * *

나를 향해 날아오는 몇 갈래의 공격.

정확히 말하자면 다섯 방향에서 열두 가지의 공격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관찰 스킬과 함께 오감증폭(五感增幅)의 업그레이드 버전 스킬인 초감각(超感覺) 스킬이 극대화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나에겐 모든 공격의 라인이 확연히 보였다.

난 유수행 보법과 몇 가지 신법을 이용해 라인이 중복되지 않는 몇 안 되는 루트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스윽.

아주 단순하고 작은 몇 번의 움직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파파파팟!

내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공격. 남들이 보았을 땐 아깝다고 외칠 만한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나에겐 여유 있는 회피 동작이었다.

그렇게 공격을 피한 난 곧장 만병천의에 손을 넣었다 빼며 양팔을 좌우로 뿌렸다.

촤아아악!

양쪽으로 뿌려지는 작은 구슬들.

이것은 맥가이버가 만들어낸 걸작 아이템 중 하나인 삼색연막탄이다.

퍼퍼퍼펑!

연막탄 구슬들이 동시에 터지며 몇 가지 색의 연막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어차피 이렇게 연막을 만들어봐야 엠페러의 마법 부대가 순식간에 제거했지만 그래도 아주 잠깐 시야를 제한시킬 수 있었다.

어차피 만병천의에는 이러한 각종 암기와 아이템이 수없이 많이 숨어있었다. 그뿐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개의 상급 마법 가방 속에도 상당량이 들어있었다.

아끼면 똥이 되는 법.

일단 내 능력이 될 때 이런 물건들을 최대한 사용해 주는 게 좋았다.

연막탄을 이용해 잠깐 시야를 묶어버린 난 곧장 마법총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한 가지 마법을 발현시켰다.

스킬 발동, 블리자드 바인드(Blizzard Bind)!!

쩌저저정!

사방을 휘감는 얼음 회오리. 적어도 50명 이상의 엠페러 유저들이 이 회오리에 움직임을 제한당했다.

수인(手印)을 통한 단순한 마법 발현이 아닌, 시약을 모두 사용해 발현한 마법이라 그 효과는 확실했다.

수(水) 속성의 친화력이 낮다면 최대 15초까지 온몸을 꼼짝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

난 이 강력한 마법을 수인을 이용해 마법 발현 속도를 극대화시킨 퀵마법만큼이나 빠르게 사용했다.

만병천의를 얻고 가장 획기적으로 변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만병천의의 수많은 수납공간은 각종 암기와 비도를 수납하기에도 좋았지만 그와 함께 마법의 종류별로 시약을 분류해 놓는 것도 매우 좋았다.

아무리 익숙해진다고 해도 가방에서 시약을 빠르게 꺼내 마법을 발현하는 것보단 아예 시약이 마법의 종류별로 나누어져 있어 그저 꺼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거의 모든 마법을 시약까지 사용해 발현한다.

속도는 거의 퀵마법과 맞먹었지만 위력은 마법 본연의 그것을 잃지 않았다. 한 마디로 위력을 유지한 퀵마법이라 할 수 있었다.

시약이란 바로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켜 주고 마력의 소모도 줄여주는 마법 재료들이다. 사용할 수만 있다면 사용하는 게 좋았다.

어쨌든 가뜩이나 각종 아이템으로 인해 위력이 증폭된 마법 능력에 시약까지 정확히 사용하자 내 마법은 기존의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전체 마법 등급으로 따지면 중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 블리자드 바인드도 상급 이상의 상태 이상, 또는 이동 제한을 풀어주는 해제 스킬을 사용해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말이 상급 해제 스킬이지 그 스킬을 익힌 유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즉, 한 번의 마법 발현으로 20명의 유저 대부분이 멍하니 무기를 들고 나를 쳐다만 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당연히 난 그런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블리자드 바인드를 발현함과 동시에 빠르게 손에 있던 마법총서를 천마신궁으로 바꿔 든 난 천마궁술 중 가장 익히기 어려우면서 동시에 가장 뛰어난 광역 공격 기술인 천마궁 12초식 중 열 번째 초식인 귀마난사(鬼魔亂射) 스킬을 사용했다.

나를 중심으로 360도의 전 방향으로 강력한 마나 에로우를 뿌리는 이 기술은 정확성과 사거리는 짧았지만 잘만 사용하면 아주 강력한 광역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특히 지금과 같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다수의 목표물에 사용할 때는 그 위력이 극대화될 수 있었다.

파파파파파팟!

커다란 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뿌려지는 마나 에로우. 빠르게 몸을 회전시키며 마구 활시위를 당겨서 완성시키는 기술이었기 때문에 정확도는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제자리에 묶여 있는 목표물들에겐 정확도 따윈 필요 없었다.

마나 에로우에 적중당하는 수많은 유저.

“크억!”

“으악!!”

“…….”

몇몇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몇몇은 큰 충격을 입은 상태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블리자드 바인드 때문에 아무런 방어 행동을 못했던 그들은 그렇게 큰 타격을 입고 게임 아웃당하거나 생명력이 큰 폭으로 깎여 나갔다.

지금까지의 전투는 거의 이런 식의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30분 정도가 지났지만 엠페러의 유저들은 나를 제대로 건드려 보지도 못했다.

난 나의 가장 뛰어난 무기인 절정의 신법을 이용해 엠퍼러의 유저들에게 포위당하지 않고 바깥쪽으로 돌며 치고 빠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그걸 막기 위해 엠퍼러의 유저들은 온갖 방법으로 나를 압박했지만 아직까진 내 움직임이 그런 그들의 수작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2만이 넘는 이들의 광범위한 포위는 뚫고 도망가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으로 접근하는 이들은 어느 정도 따돌릴 수 있었다.

그걸 알기에 멀리서부터 나를 포위하며 접근했지만 아무래도 많은 숫자의 유저들이 너무 넓은 범위에서 포위망을 유지하다 보니 가까이 오면 올수록 포위망은 허술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절대 나를 완벽하게 포위할 수는 없었다.

이 말은 2만이라는 숫자로 만든 거대한 그물로 나의 도주를 막을 순 있었지만, 그 그물 안에서 나를 한쪽 코너로 몰아넣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특히 일찌감치 소환해 놓은 묵과 라르엘은 엠페러 유저들의 시선을 계속해서 분산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움직이는 데 더욱 도움이 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소환수를 부려서 엠페러의 유저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었지만 소환수를 부리는 건 생각보다 많은 마력을 소모했기에 엄청난 장기전을 예상할 수밖에 없는 지금 상황에선 딱 라르엘과 묵만 사용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대략 칠백여 명의 유저를 바닥에 눕혔지만 아직도 내 앞에 있는 엠페러의 유저들은 그대로였다.

한마디로 티도 안 나는 상황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면서 확실한 전술이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고 했던가?

나는 새삼 머릿수의 위력을 느끼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설사 내가 여기서 쓰러진다고 해도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더 많은 저승길의 동무를 만들 생각이었다.

혼자는 너무 외롭다.

더 많이! 더 많은! 저승길 동무가 필요했다.

내가 귀마난시를 통해 주변의 엠페러 유저들에게 큰 타격을 입히던 그 순간, 나를 노리던 수많은 다른 엠페러의 유저가 나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하지만 난 이미 그들의 공격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두 발자국.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한 발자국.

마지막으로 허리를 살짝 돌리며 몸을 기울이면…….

콰광! 꽈과광!

몇 갈래의 공격이 내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어차피 2만이란 숫자가 나를 동시에 공격할 수는 없었다. 내가 상대하는 이들은 많아 봐야 겨우 백여 명 정도였다.

그 이상은 그저 뒤에서 넓은 포위망을 구축하는 게 전부였다.

즉, 생각보단 나에게 여유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가볍게(?) 공격을 피한 난 다시 한번 만병천의에 오른손을 넣었다 빼었다. 그리고 허공에 작은 암기를 한 주먹 뿌렸다.

촤아아아!

사방으로 뿌려지는 포이즌 스파이크.

세 개의 바늘이 솟아나 있는 이 둥근 작은 암기는 내가 직접 열대우림 지대에서 구했던 강력한 여러 가지 독을 발라놓은 것들이었다.

독 제조 스킬을 이용해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위력은 약하지 않았다. 단지 위력이 조금 랜덤해서 어떤 것의 독은 치명적인 도트(DOT: Damage of Time) 데미지를 안겨주었지만 또 어떤 것은 간단한 마비 증상만 일으켰다. 하지만 적어도 무시할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미 몇 번 이 암기에 당해본 엠페러의 유저들은 재빨리 사방으로 물러나며 암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노린 건 이런 거였다.

약간의 거리.

그것이 확보되자 난 곧장 천마궁 대신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곧장 물 흐르듯 또 다른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조합, 정령빙의, 셀리맨더(Salamander)+정령빙의, 운디네.

연계 발동, 스킬 조합, 정령빙의, 노움(Gnome)+정령빙의, 실프.

특수 스킬 조합, 엘레멘탈 버스터(Elemental Buster)!!

꽈과과과광!!

내 손에 들려 있던 엘레멘탈 블레이드에서 터져 나오는 강력한 섬광.

내 앞쪽에서 우왕좌왕하던 많은 숫자의 유저들은 고스란히 이 공격에 노출되었다. 워낙 숫자가 많아 오밀조밀하게 밀집되어 있다 보니 이러한 광역 공격의 위력은 매우 강력해졌다. 적어도 이것만큼은 좋았다.

손맛이 난다고 표현해야 맞는 걸까?

귓가에 어지럽게 울려 퍼지는 음악 데이터 ‘광란(狂亂)’은 나를 더욱 흥분시켜 주었다.

“으아아악!”

“크어억!”

“…….”

마구 쓰러지는 엠페러의 유저들.

회복부대의 유저들이 그들의 생명력을 다시 채워주는 것보다 내 공격이 생명력을 모두 깎아버리는 속도가 더 빨랐다.

난 아예 회복 부대 자체를 우선 목표로 선정하고 최우선적으로 그들을 공격했다.

이미 내가 잡은 칠백의 유저들 가운데 반수 이상이 회복 부대 유저들이었다.

엄청난 장기전이 예상되는 이번 전투에서 내가 정한 공격 순서는 회복 부대, 마법 부대, 원거리 공격 부대, 암습 부대, 근거리 딜러 순이었다.

나머지 몸빵용 가드 부대들은 천천히 정리하는 게 제일 좋았다.

깔끔하게 생(生)을 포기하고 나니 오히려 더욱 힘이 났다.

깔끔하게 또 한 무더기의 유저들을 정리한 난 곧장 땅바닥을 굴렀다.

그 짧은 순간에 등 뒤로 마구 쏟아진 공격을 피하기 위해선 이게 제일 좋은 회피 방법이었다.

콰과광!

또다시 헛되이 허공을 가르고 땅바닥을 가격하는 엠페러 유저들의 공격.

그들의 공격은 이렇게 늘 실패했고, 반대로 나의 공격은 늘 성공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가 일찌감치 불러놓은 두 녀석도 크게 활약하는 중이었다.

[염화비행(炎火飛行)!!]

사방을 불태우며 낮게 날아다니는 라르엘. 녀석은 거의 최상급 환수의 능력에 가까운 힘을 마구 쏟아내며 엠페러 연합의 유저들을 괴롭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더 신난 건 묵이었다.

특히 엠페러의 연합에서 정예들만 뽑혀 와서 그런 것일까? 놀랍게도 고대의 비밀이라 불리는 그 특별한 힘을 지닌 이들이 꽤 많았다.

묵은 현재 그런 힘을 사용하는 이들을 암습하는 중이었다.

확실히 고대의 비밀은 고대의 비밀끼리 끌리는 것 같았다.

크허헝!!

그림자와 그림자를 숨어다니며 미친 듯이 사냥을 이어가는 묵.

벌써 녀석이 흡수한 고대의 비밀만 20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 물론 대부분이 D급이었지만 그중엔 C급 몇 개와 B급도 한 개 정도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라르엘도 묵도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나와 라르엘, 그리고 묵.

이 셋이 엠페러 연합을 압도하는 상황.

애초의 상황이 어쨌건 현재까진 엠페러가 나를 잡는 게 아니라 내가 엠페러를 잡고 있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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