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75화 (175/250)

175. 역습, 그리고 위기

* * *

꽤 오랫동안 생각을 계속 이어가던 난 어느 정도 그 수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파수꾼이 남긴 ‘다크 스타’를 챙긴 후 무간지옥을 빠져나왔다.

중간에 역혈천마대법의 부작용 덕분에 생명력이 매우 위험한 수준까지 내려갔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었기에 간신히 버텨낼 수는 있었다.

무간지옥의 출구는 무간지옥의 마지막 지옥수호병인 지옥야차를 잡고 작은 통로로 내려가면 존재했다.

난 그 통로를 이용해 팔열지옥을 빠져나왔다.

70일(게임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있었던 팔열지옥, 쉽지는 않은 던전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상대했던 그 마혼은 정말 강력했다.

어찌어찌 간신히 이기기는 했지만 사실 내가 졌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전투였다.

처음엔 단순히 마갑 ‘다크 스타’만 얻기 위해 찾아간 팔열지옥. 그런데 의외의 정보를 얻으며 머릿속이 상당히 복잡해졌다.

왜 마계가 동대륙이나 서대륙보다 더 불편한 곳인지 대충 이해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동대륙과 서대륙을 유지시키는 건 놈, 바로 ‘전이’의 힘이었다.

그런데 마계는 그놈의 힘이 약해지다 보니 유저들로서는 더욱 불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 혹시…… 네파루는 놈의 힘이 강한…… 놈이 직접 만들어낸 영역인가?’

왠지 그럴 것 같았다.

마계가 놈에게 대항하는 수많은 신이 만들어낸 장소라면 네파루는 놈이 직접 만들어낸 장소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겠군.’

대충 설명이 가능할 것 같았다.

약간은 복잡했지만 이젠 어느 정도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리가 되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전이’라 불리는 놈.

이놈이 모든 일을 만들어내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행시키고 있는 원흉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초월적인 존재들, 천마나 천화신도, 이그니스, 성화, 백무량 등등, 이들은 ‘전이’에 대항하는 존재였다.

그 밖에도 동대륙과 서대륙에 곳곳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퀘스트와 던전은 모두 각각의 사연이 있는 크고 작은 안배였다.

‘전이’라는 놈이 얼마나 많은 차원을 집어삼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수많은 차원에 존재하던 여러 초월자들은 각각의 방법으로 이 서대륙과 동대륙에 권능의 조각을 심어놓았다.

유저들은 지금 그 권능의 조각들을 모아 힘을 키우는 중이었고, 훗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도 그 힘이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았다.

어쨌든 대충이나마 설명이 가능해진 현재 상황.

그 부분에서만큼은 답답함을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물론 내 개인적인 부분에서는 답답함이 오히려 늘어났지만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이 해결된 건 반가운 소식이었다.

어차피 파수꾼의 말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까지와 같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계에서 얻어야 할 ‘다크 스타’를 얻었으니 이제 남은 건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 아수라 프로젝트를 마저 끝내는 것이었다.

‘다크 스타’를 얻었지만 마혼이 풀파워로 마구 사용하는 바람에 ‘다크 스타’를 다시 사용하려면 적어도 보름(게임 시간)은 필요할 것 같았다.

보름 후에도 마갑을 사용하는 데 적응하는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실상 ‘다크 스타’를 사용하려면 20일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 시간 동안 마계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차피 내가 ‘다크 스타’를 얻은 건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다크 스타’는 단순한 연구 자료였다.

아마도 조만간 이것은 내 손에 의해 분해될 것이다.

원래 그런 용도로 찾은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마갑은 오로지 아수라뿐이었다.

한 개의 마갑에 주인으로 등록되면 복수 등록은 불가능하다. 만약 다른 마갑을 소유하고 싶으면 기존 마갑의 마스터 등록을 해제해야 한다.

이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특히 등급이 높은 마갑일수록 복잡한 과정을 통해 등록해제가 가능했다.

어떤 경우엔 등록해제 과정에서 마갑이 폭발하기도 했다.

매우 위험하고 복잡한 등록해제 과정. 그래서 함부로 마갑의 마스터로 등록하는 건 좋지 않았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라도 난 마계를 떠나 연구실로 돌아가야 했다.

마계를 떠나는 데 필요한 악마의 룬은 이미 넘치도록 많았으니 떠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저 악마의 룬을 이용해 조디악의 포탈을 활성화시키면 끝이었다.

그런데…….

난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음에도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바로 ‘무물’ 길드의 그림자 남매가 급하게 전해온 긴급 메시지 때문이었다.

[엠페러 연합 용문(龍門) 척살령 발동. 엠페러 연합의 모든 길드가 정예 길드원들을 마계로 집결시킴. 현재까지 파악된 숫자만 1만.]

그림자 남매는 내가 엠페러와 충돌한 줄 알고 다급하게 이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라트마는 내가 용문 소속이란 것을 몰랐다.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팔열지옥에 있던 내가 엠페러의 정보망에 걸려들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뿐이었다.

‘린!’

엠페러는 린을 발견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무차별 길드전을 선포했을 것이다.

척살령이 떨어졌다는 건 지금 그녀가 엠페러의 추격을 받고 있거나 엠페러와 싸우고 있다는 뜻이었다.

‘젠장!!’

아무리 린이 강하다고 해도 엠페러 연합의 정예 1만은 너무나 많았다.

라트마가 정말 작심을 한 느낌이었다.

1만이나 되는 정예를 오로지 나와 린을 잡기 위해서 동원했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린을 이대로 놔두고 마계를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용문의 하나뿐인 길드원을 포기한다면 나 스스로 용문의 마스터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꼴이었다.

‘일단 정보가 필요해.’

팔열지옥에 있는 동안 온통 신경을 ‘다크 스타’에만 쏟는 바람에 밖의 상황을 너무 등한시했다.

그 결과가 엠페러의 역습으로 나타났다.

정보가 부족한 난 일단 ‘무물’ 길드의 그림자 남매에게 황급히 연락을 시도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보유하고 있는 오프라인 정보망도 풀로 가동했다.

엠페러의 역습.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날아온 펀치가 의외로 정타로 적중한 느낌이 들었다.

* * *

간신히 정보들을 끌어모은 난 한 번 더 놀랐다.

1만?

아니었다.

엠페러가, 정확히 말하자면 라트마가 동원한 병력은 1만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일단 엠페러의 정예만 거의 2만에 가깝다는 믿을 만한 정보가 있었다.

거기에 라트마는 유저들의 사설 용병단들과도 무차별적으로 계약하고 그들을 이번 길드 전쟁에 투입했다.

그 숫자만 무려 5천 정도였다.

총 2만 5천.

그에 반해 그들과 싸우는 우리 용문의 길드원은 나와 린, 단둘이었다.

2만 5천과 두 명의 싸움.

아무리 내가 일인군단을 목표로 힘을 길렀지만 이 차이는 너무 무지막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린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현재 엠페러 길드와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이미 두 개의 중급 용병단을 박살 낸 린은 마계의 서쪽 지역으로 이동 중이었다.

일단 난 길드 메시지로 린에게 합류 지점을 알려주었다.

나중에 린이 이 메시지를 확인하면 분명 그 지점으로 찾아올 것이다.

합류 지점을 결정한 난 그다음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우선 시선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들 모두가 린을 쫓으면 결국 린은 포위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난 최대한 그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유도할 생각이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기 제일 좋은 방법은 내가 직접 나타나 라트마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난 목표물을 정했다.

목표물은 엠페러 연합에서 꽤 높은 서열의 길드 중 하나인 ‘엠페러 라이온’이었다.

현재 린을 추격하며 마계 서부 지역으로 이동 중인 이 녀석들을 철저하게 박살 내 버리며 내 등장을 알리면 아마 라트마는 상당수의 병력을 나에게로 돌릴 것이다.

일단 그렇게 해서라도 병력을 분산시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2만 5천이라는 무시무시한 병력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아찔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난 최대한 빠르게 엠페러 라이온을 향해 움직였다.

시간이 없었다.

속전속결.

스피드야말로 내가 그들에 비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장점이었다.

* * *

촤아아아악!

동시에 두 사람의 가슴과 허리를 가르고 지나가는 거대한 한 자루의 검.

이 강력한 마지막 일격에 끝까지 버티던 두 유저도 결국 쓰러졌다.

그들은 대 엠페러 연합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엠페러 라이온의 길드 마스터와 부 길드 마스터였다.

쿠쿵! 털썩!

억울한 눈빛으로 쓰러지는 두 사람.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그들 주변에는 엠페러 라이온의 모든 정예 유저들이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헉…… 헉…….”

단 20분 만에 100여 명의 유저를 쓰러뜨린 남자.

한때 200여 명의 유저도 쓰러뜨린 경험이 있는 그였지만 그때보다 지금 상대한 적들이 더욱 강했다.

그래서인 것일까?

그는 상당히 피곤함을 느꼈다.

사실 팔열지옥을 빠져나온 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단 며칠 만에 여기까지 달려온 그다.

그렇기에 더욱 피곤했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휴식을 취하고 움직였어야 맞았다. 하지만 워낙 급하게 돌아가는 상황 때문에 휴식을 취할 시간이 없었다.

어쨌든 간신히 엠페러 라이온을 전부 몰살시키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이제 조만간 이 보고가 라트마에게 올라갈 것이고, 그러면 라트마는 그를 잡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움직일 것이다.

그걸로 1차 작전은 성공이었다.

그 후에는 다시 한번 그를 추격하는 병력들을 계속 끊어주면서 시간을 벌면 되었다.

어차피 정면 대결은 무리였다.

방법은 하나 철저한 게릴라전을 통한 병력의 분산을 노려야 했다.

“일단…… 조금 쉬어야겠군.”

1차 작전을 빠르게 성공시킨 신에겐 어느 정도 휴식을 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이제 적어도 라트마가 추격 부대를 보낼 때까지는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건 신의 계획이 모두 정확히 성공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완벽하게 1차 작전을 성공시켰다고 믿었던 신.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하하하하하하! 아주 제대로 물어주었군.”

갑자기 사방에서 나타나는 그림자.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신을 멀리서부터 포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람들과 함께 들려온 이 웃음소리는 신도 익히 알고 있는 남자의 것이었다.

‘설마……!’

“확실히 계략분과 애들이 헛돈만 먹는 놈들은 아니었군.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대어(大魚)를 낚아주었으니 나중에 두둑하게 보너스라도 줘야겠어. 흐흐흐흐.”

계속해서 늘어나는 사람들. 마치 벽을 쌓아도 될 것 같을 정도로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라트마의 미소도 더욱 커져만 갔다.

“……왜 그리 어두운 표정을 지으시나? 용문의 전신이라 불리는 최강의 PvP 유저께서 설마 당황하신 건 아니겠지? 뭐, 원한다면 용문의 전신이 아닌 회색의 학살자라고도 불러줄 수 있는데…… 그렇게 해줄까?”

라트마는 신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애초에 린에게 길드전을 신청하며 그녀가 용문이라는 것을 알아냈을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그다.

“……멋진 계략이었군.”

이건 함정이었다.

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교묘한 함정. 라트마가 부리는 계략분과의 유저들이 고생고생해서 만들어낸 치밀한 함정이었다.

“그런가? 칭찬을 해주니 고맙군. 애초에 미끼를 한 50개 정도 뿌려놓았거든. 너는 단지 그중에서 하나를 물었을 뿐이니 너무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랬다. 라트마는 아예 50여 개의 희생양 길드를 만들어서 신을 유혹한 것이었다.

“애초에 목표가 나였나?”

이런 계략을 썼다는 건 린보단 나를 더 잡고 싶어했다는 뜻이다.

“당연하지. 검은 마녀…… 그년도 그년이지만 난 너를 꼭 잡고 싶었다. 특히 네놈이 용문의 전신이자 회색의 학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더욱 그랬고. 천하의 천살이성을 내 손으로 잡는다!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크하하하하하하하!”

크게 웃은 라트마.

그는 진정으로 즐거운 표정이었다.

“아∼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어차피 그 검은 마녀 쪽에도 적당히 용병들을 붙여놨으니…… 조만간 깔끔하게 제거될 것이다.”

“…….”

신은 조용히 라트마를 바라보았다.

“자∼ 이제 우리 사이의 빚을 해결해야겠지?”

라트마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족히 수천은 넘을 것 같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추가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숫자를 세기도 힘든 엠페러 연합의 유저들이 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많군.”

“하하, 당연히 천살이성을 한꺼번에 잡는 자리인데…… 이 정도는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크크크크크크.”

라트마는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할지 몰랐다.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이 수적 차이는 너무나 심했다.

가뜩이나 신은 지쳐 있는 상태였다. 이래저래 최악의 상황. 이런 경우를 두고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래, 죽어주마.”

신은 살기를 포기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살기를 바라는 건 무리였다.

“대신!!”

살기는 포기했지만 한 가지만큼은 포기하지 않은 게 있었다.

“……니들도 죽는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죽음에는 죽음.

그것이 바로 신의 선택이었다.

신의 몸에서 뻗어 나온 살기(殺氣)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살기와 함께 마구 요동치는 마력. 신은 그 마력을 온몸으로 느끼며 웃었다.

그런 그의 귓가로 들리기 시작한 ‘광란(狂亂)’이라 불리는 음악 데이터.

그 순간 전투의 개시를 알리는 괴성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훗날 그 자체로 전설이 될, 수많은 사람에게 두고두고 계속해서 언급될 그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대는 아는가?

무적(無敵)의 전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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