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74화 (174/250)

174. 마계의 파수꾼 ― 2

* * *

“헉…… 헉…….”

스으으으으으.

폭발의 여파가 서서히 가시며 드디어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서서히 일어나는 검은 그림자.

자이언트, 그것이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끝났군.’

난 이걸로 패배가 결정되었다고 생각했다.

생명력은 어느 정도 남아 있었지만 마력은 말 그대로 완전히 바닥났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뜻이었다.

“……네가 이겼다.”

난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과연 자이언트의 위력은 대단했다. 어쩌면 이런 대단한 힘을 지녔기 때문에 내가 더욱 아수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난 최선을 다했다.

그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단지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끼이이이익! 쿵!

자이언트가 아주 힘겹게 몸을 전부 일으켜 세웠다.

“마혼이라고 했던가? 인정하지, 넌 강하다.”

자이언트의 능력만큼이나 마혼의 능력도 강했다. 이것 역시 내가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이제 남은 건 패배를 결정짓는 것뿐이었다.

천천히 올라가는 자이언트의 손.

저 손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지면 길고 길었던 전투는 끝날 것이다.

조용히 마지막을 준비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동력…… 오프(OFF)…….]

치이이이이익!

갑자기 자이언트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곤 외부 장갑 곳곳에서 뿌연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력 고갈로 인한…… 봉인 해제.]

철컥! 철컥!

그그그그그그그그!

자이언트의 장갑이 열렸다.

그리고 그 징글징글했던 강철 거인은 조용히 공간의 일그러짐 속으로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시에 마혼이 입고 있던 마갑 ‘다크 스타’도 강제로 착용 해제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쿠쿠쿵!

남은 건 검은색 안개로 어렴풋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마혼의 본체뿐이었다.

[……봉인 코드 해제…….]

스으으으.

그 마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혼의 분위기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특히 붉은색 눈동자가 푸른색으로 바뀌며 지금까지 느껴지던 그 적대적인 느낌이 전혀 없었다.

띠링, S+ 급 퀘스트 [‘암흑의 별’을 지키는 수호자] 퀘스트를 해결했습니다.

띠링, ‘암흑의 별’을 수호하는 마혼(魔魂)의 정신 지배 봉인이 풀리며 ‘마계의 파수꾼’으로 돌아왔습니다.

띠링, ‘마계의 파수꾼’이 당신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응하시겠습니까? (Y/N)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죽지 않았다. 오히려 퀘스트를 클리어했다.

결국 내 마지막 일격이 성공한 것이었다.

일단 난 ‘Y’를 누르며 호흡을 정리했다.

마계의 파수꾼이라면 지금까지 내가 만나왔던 천마나 이그니스와 같이 초월적인 존재일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곧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뜻.

최대한 내가 얻어낼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얻어낼 필요가 있었다.

[대단하군. 나에게 걸린 정신 지배는 상당히 강력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풀어내다니. 너의 능력은 한계를 초월한 지 오래겠구나.]

마혼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당신은 누구시죠?”

[나는 마계가 탄생했을 때부터 마계를 지켜온 파수꾼. 수많은 신의 의지가 모여 만들어진 ‘신들의 염원(念願)’이다.]

“신들의 염원? 그게 뭐죠?”

[서둘지 마라. 이곳은 차원과 차원의 틈바구니에 교묘히 숨겨져 만들어진 장소. 놈의 영향력은 이곳에서 매우 작아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놈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난 너에게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세 가지 진실을 답해줄 수 있다. 신중히 결정해라.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아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단 세 가지, 내가 너에게 알려줄 수 있는 진실은 정확히 세 가지뿐이다.]

파수꾼은 마치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얘기했다.

그리고 난 그의 얘기를 듣는 순간, 나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정적이 이어졌다.

파수꾼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내가 질문하기를 기다렸다.

그 고요함이 조금 더 이어졌을 때 난 결정을 내렸다.

“……그놈이라는 존재는 도대체 누구죠?”

[……놈은 이 모든 뒤틀림을 만든 녀석이다. 정확히 놈을 지칭하는 말은 없다. 단지…… 놈은 최초 전이(轉移)라는 권능으로 불렸다. 그 뒤 놈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원을 먹어치우며 신성(神性)을 얻었다. 신성을 얻은 놈은 스스로가 얻은 힘을 이용해 더 많은 차원을 뒤틀림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 과정에서 놈은 계속해서 더욱 강해지고 또 강해졌다. 이제 놈은 스스로를 ‘유일한 존재’라고 칭하고 있다. 놈은 이대로 계속 모든 차원을 하나로 만들고 오로지 자신만이 존재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는 놈을 가리켜 ‘The One’이라 부른다.]

“‘The One’…….”

이제야 알겠다.

왜 이 게임이 단순한 게임이 될 수 없던 것인지, 모든 것은 최초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럼 당신은…… ‘신들의 염원’은 뭔가요?”

[나는, 우리는…… 그동안 놈에게 흡수당한 수많은 차원에 존재하던 초월적인 존재들이다. 이 마계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권능을 남겨 만들어낸 땅이다. 우리들은 최대한 놈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했다. 놈의 영역에 우리의 안배를 남기기도 하고…… 아니면 직접 남은 힘을 가지고 놈의 영역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존재도 있었다. 하지만 놈은 강하고 우리는 약했다. 그래서 우린 이렇게 우리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놈에게 대항했다. 이 마계를 만든 우리들의 염원이 조금씩 모여 만들어진 존재가 바로 나다.]

지금 내 눈앞에 존재하는 이 ‘마계의 파수꾼’은 결국 파수꾼인 동시에 신들의 전령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와 우리를 번갈아 사용하며 나에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럼 저는 누구인가요?”

어쩌면 내가 가장 알고 싶은 질문이 이것일지 몰랐다.

난 누구인가?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신이란 사람이 내가 맞는 것일까? 요즘엔 내 존재에 대한 의문마저 들고 있었다.

[……너는 류신. 최초 ‘전이’를 만들어냈던 가이아가 선택한 존재. 가이아는 너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었고…… 너 역시 가이아의 간절한 시도를 허락했다. 때론 진실도 거짓이 될 수 있고 거짓도 진실이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하라. 절대 자신을 부정하지 마라. 지금처럼 계속 노력하라. 그렇다면 언젠가 너는 모든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실을 알았을 때 넌 어쩌면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건 너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파수꾼의 대답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은 대답. 난 만족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가이아라뇨? 그 가이아가 왜 절 선택한 것이죠?”

[……나는 더 이상 너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놈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건 여기까지가 한계다. 아무리 마계가 차원과 차원의 틈바구니에 숨겨진 장소라고 해도…… 결국 차원의 한구석에 소속되어 있기에…… 놈의 힘은 여기에도 적용되고 있다.]

파수꾼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얘기했다.

그리곤 천천히 나를 향해 팔을 들어 올렸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어쩌면 더 빨리 운명의 시간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 더욱 강해져라. 그 옛날 ‘전이’가 닥치는 대로 차원을 집어삼켜 힘을 키웠듯이…… 너 역시 수많은 신이 남긴 그들의 조각난 권능을 네 것으로 만들…….]

파수꾼이 점점 희미해졌다.

흩어지는 검은 연기, 그와 동시에 파수꾼의 음성도 끊겼다.

“젠장! 대답은 끝까지 하고 가야지!!”

답답한 마음에 크게 소리쳤지만 파수꾼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었다.

띠링, 마계의 유물 ‘암흑의 별’을 얻으셨습니다.

띠링, 마계의 숨겨진 비밀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이제 ‘마계의 방문자’가 아닌 ‘마계의 수호자’가 됩니다.

띠링, ‘최초의 마계의 수호자(S급)’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띠링, 레벨이 10 올랐습니다.

…….

…….

시스템 메시지가 마구 울려 퍼졌다.

내가 원하던 ‘다크 스타’도 얻었다.

그리고 레벨도 오르고 S급 타이틀도 얻었다.

하지만 난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파수꾼이 알려준 세 가지 진실, 그것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도대체 가이아는 왜 나를 선택한 것일까?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한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큰 비밀을 몇 가지 알았지만 아직도 난 궁금증에 목말랐다.

진실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욱 궁금한 건 많아지는 느낌이었다.

“……운명의 시간이라…….”

무엇일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제 미래는 나에게 각종 기연을 안겨다 주는 보물 창고가 아니었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의문의 상자.

나에게 미래는 딱 그런 존재가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는 진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거짓도 아니었다.

내가 가이아에게 원했던 건 무엇일까? 그리고 가이아가 나에게 원했던 건 또 무엇일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 그래서 더 답답해진다.

이미 진실과 거짓이 마구 섞이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미래는 점점 사라져 가는 중이었다.

아마 앞으로의 미래는 더욱 심하게 변할 것이다.

그것에 대비해서 파수꾼은 나에게 강해지라고 했다.

그 말은 천화신도도 했던 말이다.

왜 강해져야 할까?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앞으로의 미래가 절대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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