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마혼(魔魂) ― 2
* * *
이것이 유저와 몬스터가 가지는 가장 큰 차이였다.
물론 상급 몬스터일수록 이 차이가 거의 없어졌지만 그래도 아예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혼은 마치 자신은 몬스터가 아니라는 것처럼 그 차이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유저보다 더 유저 같은 모습으로 전투를 치렀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공격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움직임과 방어 기술.
모든 게 놀라웠다.
특히 마혼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나조차 감탄하며 나중에 연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단언컨대 마혼은 도저히 몬스터라 부를 수 없는 존재였다.
솔직히 어떤 실력 좋은 유저가 현재 마혼을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그만큼 마혼의 전투 능력은 뛰어났다.
바로 지금과 같은 공격!
파파파팟!
나의 아주 작은 허점을 놓치지 않고 곧장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그의 이 날카로운 오러 블레이드는 이제 너무나 익숙해졌다.
까가가가강!
난 재빨리 아쿠아를 짧게 회전시켜 놈의 오러 블레이드를 막았다.
조금만 무리를 해서 공격하면 놈은 그 순간의 틈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무서운 놈.’
한 시간이나 가까이 싸웠지만 정작 서로에게 정확한 타격을 입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치열한 싸움.
그 옛날 용과 호랑이가 싸우는 모습이 이러했을까?
정말 용호상박(龍虎相搏)이란 말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대결이었다.
[……제거…… 한다…….]
한 시간 동안 놈은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하는 중이었다.
비록 서로에게 정타를 꽂아 넣지는 못했지만 이래저래 데미지는 많이 누적시킨 상태였다.
놈도, 그리고 나도 둘 다 상당히 지쳐 있었다.
거의 30%대로 떨어진 생명력.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놈도 나와 비슷한 30% 수준까지 생명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스읏!
난 유수행 보법과 패스트 워크 보법을 조합시켜 빠르게 놈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그리곤 곧장 마법총서를 꺼내 들고 마법을 난사했다.
하지만 놈도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빠르게 붙으며 내가 쏘아내는 마법을 모조리 오러 블레이드로 쳐내 버렸다.
퍼퍼퍼퍼퍼펑!
‘끈질긴 놈.’
이런 식이었다.
조금이나마 이득을 보기 위해 아웃 파이트(Out Fight) 형식으로 원거리 공격을 하며 힘을 빼놓으려고 해도 놈이 워낙 거리를 잘 좁히는 바람에 거의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난 울며 겨자 먹기로 놈과의 정면 대결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까가강!
마법총서 대신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꺼내 놈의 오러 블레이드를 막았다.
인 파이트(In Fight)가 자신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인 파이트 형식의 전투를 펼치면 내 생명력도 어쩔 수 없이 조금씩 깎일 수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생명력이 마혼보다 낮은 나였기 때문에 이렇게 치고받고 싸우는 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조금 더 이득을 보면서 전투를 이끌어왔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놈과 나의 생명력이 비슷하게 남은 것이었다.
강적(强敵).
난 처음으로 강적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심지어 200여 명의 유저에게 둘러싸였을 때도, 그리고 엠페러의 정예들에게 포위당했을 때도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만큼 마혼은 나를 강하게 압박하는 중이었다.
스킬 조합, 상급 보조 마법, 블링크(Blink)+중급 주술 은월몽(隱月影)
문 블링크(Moon Blink)
흐릿!
그나마 잠깐이라도 놈과 거리를 벌릴 수 있는 신법은 이 블링크 계열과 내 주특기 중 하나인 로스트 팬텀뿐이었다.
로스트 팬텀은 생각보다 마나의 소비가 컸기 때문에 되도록 이 문 블링크를 이용하는 중이었다.
아주 잠깐 놈과 거리를 벌린 난 곧장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이렇게 해서라도 놈을 지치게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겼을 때 끝장을 보기 위한 내 마지막 패를 꺼내 들어야 했다.
꽈과광!
내가 쏘아낸 강기를 오러 블레이드로 막은 놈은 그 특유의 귀신같은 신법을 이용해 바로 나에게 역습을 감행했다.
“장비 2번.”
드드드드득!
난 두 개의 방패를 이용해 놈의 공격을 무산시켰다.
처음엔 나 역시 오러 블레이드에 대항해 오러 블레이드(강기)로 놈의 공격을 막았지만 이내 놈이 ‘다크 스타’란 마갑을 입고 있다는 걸 깨닫고 곧장 가장 효율적인 방어를 하기 시작했다.
마갑은 기본적으로 마력을 증폭시켜 줄 뿐만 아니라 마력의 효율성도 높여 준다.
가뜩이나 나보다 더 많은 마력을 지닌 것으로 예상되는 마혼이었는데 그의 공격이 나보다 효율성이 더 좋다면 결론은 나보다 더 오랫동안 힘차게 싸울 수 있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현재로써는 마갑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난 그에 대비해 더 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방패를 이용하면 아주 적은 양의 마력으로 만든 오러로도 놈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땐 무조건 방패를 들었다.
꽝! 꽈광!
놈은 사납게 나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난 침착하게 놈의 공격을 막으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억지로 놈의 공격을 막으려고 하기보단 그 공격 흐름에 맞춰 슬며시 흔들어주는 게 좋았다.
마치 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놈의 공격 흐름을 온몸으로 흘려보냈다.
덕분에 난 무척 효율적인 방어가 가능했다.
이렇게 방어를 하다 틈이 보이면 반격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놈과의 전투는 짧게 끝나는 단기전이 아니었다.
밀고 당기고, 다시 당기고 밀고를 반복하는 일진일퇴의 공방전.
당연히 방어와 공격이 번갈아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놈의 오러 블레이드가 아주 빠르게 일곱 번 공격했다. 놈이 자주 사용하는 일곱 번의 연속 찌르기 공격!
처음에 이 공격에 당했을 땐 살짝 당황해 방패를 놓칠 뻔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아니, 익숙해진 것을 넘어서 아주 미세한 틈까지 발견해 놓았다.
꽝! 꽈광! 꽝!
일곱 번째 오러 블레이드가 방패를 때리는 그 순간, 난 재빨리 호흡을 들이마시며 오른손에 들고 있는 거인의 철벽 방패를 앞으로 들이밀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거두어지는 정확한 타이밍을 파고든 방패 밀치기 공격.
그냥 방패 밀치기가 아닌 온몸의 힘이 일순간에 한 점에 집중되어 터져 나가는 금강철벽(金剛鐵壁)의 한 수였다.
콰광!
마혼은 황급히 오러를 뭉쳐 방어막을 만들었지만 황급히 만든 오러의 방어막은 금강철벽을 완벽하게 막아낼 수 없었다.
주르르르륵!
급격히 뒤로 물러나는 마혼.
아주 미세했던 틈이 이 금강철벽의 한 수로 상당히 커졌다.
‘지금!!’
“장비 3번.”
촤르륵!
내 손에 있던 방패가 사라지며 묵혼사가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난 그 묵혼사를 마혼을 향해 뿌리며 재빨리 로스트 팬텀 신법을 극성으로 발휘했다.
휘리리릭!
마혼의 오른팔을 빠르게 휘감는 묵혼사.
원래 목표는 마혼의 몸 전체였지만 마혼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면서 그의 오른팔만 묵혼사에 휘감겼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미세했던 틈을 금강철벽으로 벌어지게 만들고, 다시 묵혼사를 이용해 그 틈을 고정시켰다.
그렇다면 다음은…….
그동안 벼르고 있던 내 비장의 한 수를 꺼낼 때였다.
특수 능력, 용마수(龍魔手)!
특수 능력, 용마안(龍魔眼)!
특수 스킬, 영웅의 포효!!
특수 스킬, 천무신공(天武神功)!!
특수 스킬, 지존수호공(至尊守護功)!!
퍼퍼펑!
엄청난 힘이 한곳에 몰려들며 강력한 마력의 폭풍이 사방을 휘감았다.
힘의 개방.
최후의 한 수로 숨겨놓았던 그 힘이 개방되며 나는 초인(超人)이 되었다.
“으아아아아아!”
난 손에 감겨 있던 묵혼사를 강하게 당겼다.
그리고 그 탄력을 이용해 곧장 무릎으로 마혼의 머리를 가격했다.
빠악!
강력한 맹호슬(猛虎膝)의 일격.
우드드득!
순간 마혼의 팔이 뒤틀리며 마혼의 몸 전체가 뒤로 젖혀졌다.
아무리 마혼이 강하다고 해도 최후의 힘을 개방한 나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난 필승을 자신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봉인…… 제거…….]
우우우우우우우웅!
마혼의 붉은색 눈동자가 강하게 빛나며 그가 걸치고 있던 다크 스타가 변하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르륵!
갑자기 장갑의 형태가 변하는 ‘다크 스타’.
마갑의 장갑이 마구 열리며 요상한 선들이 튀어나왔다.
지이이이잉!
그리곤!!
한순간에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사방으로 폭사 되었다.
쿠쿠쿠쿵!
마력의 파동과 함께 공간의 한 면이 일그러졌다.
그 일그러진 공간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커다란 강철 인간.
정확히 말하자면 속이 텅 빈 강철 갑옷이었다.
“설…… 설마!!”
내 생각이 맞는다면 이 강철 갑옷의 정체는 한 가지뿐이었다.
마갑과 함께 세상의 가장 강력한 마법 무구(武具)로 취급받는 존재.
오로지 마갑에 의해서만 소환되고 움직이는 존재.
절대 자격이 되지 않으면 소환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존재.
바로 자이언트(Giant)
그 강철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젠장!”
난 설마 마갑에 이어 자이언트까지 등장할지는 몰랐다. 마혼이 진짜 유저도 아닌데 자이언트를 소환할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다.
철컥! 철컥!
쿠쿠쿠쿠쿵!
다크 스타를 걸치고 있던 마혼의 몸이 소환된 강철 갑옷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러자 열려 있던 강철 갑옷의 외장갑이 모두 닫혔다.
지잉!
붉게 빛나는 강철 거인의 눈동자.
드디어 자이언트가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그 크기는 대략 4m 정도. 당연히 지금까지의 마혼과는 또 다른 기세를 내뿜었다.
내가 최후의 힘을 풀어내자 놈도 기다렸다는 듯이 자이언트를 소환했다.
이렇게 되자 승부의 방향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각종 특수 버프 스킬로 초인의 능력을 얻은 내가 이길 것인가?
아니면 자이언트를 소환해 강력한 힘을 얻은 마혼이 이길 것인가?
그건 지금부터 싸워봐야 알 것 같았다.
1라운드 대결이 끝나고 시작된 2라운드 대결.
절대 질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상대가 자이언트라고 해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난 일인무적(一人無敵)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