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마혼(魔魂) ― 1
* * *
콰과과과과광!
커다란 굉음과 함께 검은 기둥이 폭발했다.
엘레멘탈 버스터, 데몰리션의 강력한 힘은 역시 대단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구구구구궁!
산산조각나며 무너져 내리는 검은 기둥.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내 선택이 옳았다면 지금부터 뭔가 변화가 시작되어야 했다.
하지만…….
폭발의 여파가 가시며 드러나는 모습은 왠지 나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건 산산조각나 무너져 내린 검은 기둥의 조각밖에 없었다.
그 어떤 것도 ‘다크 스타’와 관련되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죽인가?”
밥이 아닌 죽이 된 것인가?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결국 ‘다크 스타’는 나와 인연이 없는 것 같았다.
“아쉽군.”
아쉽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인 것을…….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
드드드드드.
무너진 검은 기둥의 잔해에서 강한 진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간지옥 전체에 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이이이이이이이잉!
묘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이 소리.
그런데 이 소리는 놀라운 일을 만들어냈다.
갑자기 이 소리를 들은 무간지옥의 모든 몬스터가 갑자기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쿵!
쿠쿵!
몬스터들이 쓰러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쓰러진 몬스터들은 모두 검은 연기로 변하며 사라졌고, 그 검은 연기는 빠르게 검은 기둥의 잔해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이상한 변화.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나쁜 변화는 아니었다.
‘제대로 답을 고른 것이었나?’
내가 고른 답이 오답이 아니라 정답일 가능성은 매우 커졌다.
점점 들썩이는 잔해. 당장이라도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다!!’
난 손에 들고 있던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가슴 쪽으로 바짝 끌어당기며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다음 상황에 대비했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은 기둥의 잔해가 폭발하며 기둥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꽈광!
난 엘레멘탈 블레이드에 마력을 주입해 오러를 만든 후 나에게 날아오는 그 조각들을 모조리 쳐내 버렸다.
쾅! 콰광!
갑자기 일어난 변화.
그 변화의 끝에 존재하는 건 놀랍게도 전신을 감쌀 것 같은 검은색의 갑옷이었다.
스으으으.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잔해를 날려버리고 등장한 검은색 갑옷.
더 놀라운 건 그 갑옷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띠링, S급 퀘스트 ‘암흑의 별’을 강제 발동시키셨습니다.
띠링, 강제로 퀘스트를 발동시켰기 때문에 ‘암흑의 별’을 수호하는 마혼(魔魂)이 살아납니다.
띠링, 마혼은 매우 강력한 마력의 집합체입니다. 마혼이 존재하는 이상 ‘암흑의 별’은 마혼의 명령에 따를 것입니다.
띠링, S급 퀘스트의 난이도가 S+ 급 퀘스트의 난이도로 바뀝니다.
띠링, 본 퀘스트는 오로지 단 한 번만 활성화되는 특별 퀘스트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한다면 ‘암흑의 별’은 영원히 사라집니다.
‘됐군!!’
정답이 맞았다.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저 검은색 갑옷이 바로 ‘다크 스타’였다.
물론 그 다크 스타가 요상한 검은색 연기로 이루어진 놈에게 입혀져 있었지만 어쨌든 내가 다크 스타를 찾은 건 확실했다.
검은색 연기 위에 마갑 ‘다크 스타’가 얹혀 있었고, 그 검은색 연기의 머리 부분에서는 두 개의 붉은색 눈동자가 보였다.
[……넌 자격이…… 없다…….]
우우우우웅.
붉은색 눈동자가 살짝 빛나며 마혼의 뜻이 허공에 울려 펴졌다.
이건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의념을 허공에 뿌렸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스으으으.
천천히 손을 드는 마혼.
갑자기 사방의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강하다!’
시스템 메시지에서 언급된 S+ 급 난이도의 퀘스트. S급만 되어도 장난이 아닌데 거기에 +가 더 붙었다.
당연히 마혼이 대단히 강하다는 뜻이었다.
[……제거…… 한다…….]
우르르릉! 꽝!
마혼의 오른팔에서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폭발하듯 튀어나왔다.
“쳇!!”
난 재빨리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거꾸로 세우며 온몸에 힘을 주었다.
꽈과광!
나를 휩쓰는 마력의 파동!
하지만 난 그 마력의 파동을 그대로 갈라 버렸다.
파앗!
결국 내가 ‘다크 스타’를 차지하려면 저 마혼을 쓰러뜨려야 했다.
“마지막 전투…… 끝장을 보자!”
마력의 파동을 갈라 버린 난 곧장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가로로 그었다.
츠츠츠츳!
앞으로 쏘아진 반월형 강기!
어차피 쉽게 얻을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강제로 퀘스트를 연결시켰으니 그 대가를 확실히 치르고 가져가면 되는 것이다.
‘다크 스타’를 뒤집어쓴 마혼도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그 검은 검이라기보다는 그냥 오러 블레이드 그 자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검의 모양을 한 검은색 오러 블레이드.
마력의 집합체답게 사용하는 무기도 참 화려했다.
퍼퍼펑!
그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러 내가 쏘아낸 검강을 가볍게 와해시켰다.
[……제거…… 한다…….]
계속 같은 의념을 허공에 흘리는 마혼.
마치 한 가지 명령이 입력된 로봇 같은 모습이었다.
“장비 6번.”
철컥! 철컥!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레드, 이글로 교체하며 빠르게 백스텝을 밟아 뒤로 물러났다.
일단 난 저 마혼이라는 놈이 어떤 녀석인지 잘 몰랐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건 놈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관찰 스킬은 현재 극성으로 펼쳐 놓은 상태였다.
꽝!
이글을 샷건 모드로 바꾼 후 강력한 한 방을 쐈다.
돌격 모드, 샷건 모드, 저격 모드, 유탄 모드, 이렇게 네 가지 모드로 변경이 가능한 이글.
물론 위력은 뒤로 갈수록 강해졌고, 연사력은 아래로 올수록 빨라졌다.
어차피 저격 모드와 유탄 모드는 한 손으로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레드와 함께 사용할 때는 샷건 모드까지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파앗!
작은 알갱이로 변해 비산되는 마력탄.
하지만 마혼은 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 오러 블레이드를 가볍게 회전시키면 이 작은 마력탄의 알갱이를 모두 소멸시켜 버렸다.
퍼퍼퍼퍼퍼펑!
그리곤 곧장 나를 향해 그 오러 블레이드를 뻗었다.
순식간에 길게 늘어나는 오러 블레이드!! 생각지도 못한 놈의 반격이었다.
“웃!”
왼쪽 옆구리에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
난 재빨리 왼손에 들고 있던 레드를 옆구리로 옮기며 충격에 대비했다.
꽈광!
“큭!!”
급한 대로 레드에 오러를 맺히게 만들어 방어했건만 완벽하게 막지는 못했다.
검은색 오러 블레이드에서 전해진 강력한 충격은 가볍게 내 몸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주르륵!
억지로 버텼지만 힘에 의해 살짝 뒤로 밀려났다.
그 순간 또 한 번 느껴지는 좋지 않은 감각.
이번엔 오른쪽 어깨 쪽이었다.
‘피해야 한다!’
본능적으로 이번 공격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난 곧장 오른손에 들고 있던 이글의 방아쇠를 당겼다.
꽝!
허공에 쏘아진 마력탄.
하지만 이건 공격을 위해서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난 이글로 마력탄을 쏘며 얻은 탄력을 이용해 그대로 몸을 회전시켰다.
당연히 유수행의 움직임도 작용되었다.
휘릭!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동시에 살짝 뒤로 눕혔다.
그 순간 강력한 오러 써클이 내 오른쪽 어깨를 살짝 스치듯 지나갔다.
치잇! 꽈과과과광!
오러 블레이드도 아닌 오러 써클이었다.
오러 써클은 다른 말로 강환(罡丸)이라고도 불린다.
오러 블레이드와는 또 다른 새로운 경지의 힘. 흔히 그랜드 마스터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기술이었다.
마혼은 한 손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면서 또 한 손으로는 오러 써클도 사용했다.
즉, 놈의 경지는 그랜드 마스터를 능가한다는 소리였다.
“젠장…….”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힘든 상대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제거…… 한다…….]
여전히 같은 말만 계속하고 있는 놈.
아무리 놈이 강하다고 해도 나 역시 아직 보여주지 않은 수가 많았다.
“그래, 한번 해보자.”
화악!
난 폴리모프 망토를 벗어버리며 웃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전력을 다해 놈을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 * *
마혼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S급 마갑을 입은 그랜드 마스터 급의 전사였다.
내가 전에 말했듯이 마갑은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마갑을 그랜드 마스터 급의 전사가 입고 있었다.
당연히 강력했다.
그냥 강력한 게 아니라 엄청 강력했다.
일단 오러를 너무나 자유자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공격의 위력과 정확도, 그리고 속도가 너무나 좋았다.
차라리 보통의 레이드 보스 몬스터들처럼 위력적인 공격을 해도 정확도나 속도가 느리면 내 특유의 빠른 움직임으로 회피 탱킹을 하며 계속 전투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이 마혼과의 전투에서는 회피 탱킹이 잘 되지 않았다.
결국 난 대부분의 공격을 막거나 흘려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피할 수 있는 공격을 별로 많지 않았다.
덕분에 데미지는 계속 누적되었다.
물론 다행히도 마혼은 다른 레이드 보스 몬스터처럼 무지막지한 생명력을 지닌 것 같지는 않았다.
대충 내 생명력의 두 배 정도?
그 정도의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놈을 쉽게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놈은 생명력이 적은 대신 다른 능력들이 거의 최상급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대단한 능력을 지닌 다른 ‘유저’와 싸우는 느낌이었다.
전투에 대한 인공지능도 매우 뛰어났고 그 움직임도 유기적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싸워본 어떤 유저보다 강력한 1: 1 능력을 지닌 마혼.
그 녀석과 벌써 한 시간이 넘게 싸우는 중이었다.
이제는 내가 몬스터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도 잊었다. 그저 아주 강력한 유저 한 명과 PvP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와는 전혀 다른 전투 패턴을 지닌 마혼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사실 아무리 대단한 몬스터라고 해도, 심지어 그 대단했던 드래곤도 아주 큰 범위에서 보면 일정의 행동 패턴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드래곤은 강력한 꼬리 공격을 하기 전엔 꼭 몸을 어느 방향으로든지 살짝 돌렸다. 그뿐 아니라 용언 마법을 사용할 때도 꼭 일정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즉,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공격이 예측 가능하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