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70화 (170/250)

170. 무간지옥 ― 2

* * *

이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다크 스타가 이곳 무간지옥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중간의 중요한 과정이 빠져 버리면 다크 스타를 얻을 수 없었다.

결국 문제는 그 잃어버린 과정을 복구하는 것이었다.

출발점과 도착점이 정해지면 두 지점을 잇는 선은 수천, 수만, 아니, 무한대로 증가한다.

난 그 선 중 단 하나.

도착점으로 오는 가장 올바른 선 하나를 찾아야 했다.

대충 생각을 정리한 다음 일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성급하게 마구 달려들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곤 내가 가진 출발점인 고대의 석판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했다.

그렇게 일단 문제를 제대로 잘 읽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문제에 숨겨진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다음에 이어질 과정을 머릿속에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다시 도착점이라 할 수 있는 고대의 기둥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선이 이어져서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전투는 그치지 않았다.

난 계속 반복되는 전투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선을 만들고, 지우고, 수정하고, 다시 만들고를 반복했다.

분명 퀘스트는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이어진다.

지금까지 수많은 연계 퀘스트를 해본 나는 이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찾는 건 바로 이 흐름이었다.

작은 고대의 석판에서 시작된 흐름, 그리고 검은 기둥으로 이어진 흐름.

두 흐름을 동일하게 맞추며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게임 시간)이 흘렀다.

* * *

두 달(게임 시간) 동안의 무간지옥 생활.

누군가 나에게 어땠냐고 묻는다면 난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할 것이다.

‘죽을 것 같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그만큼 지겹고, 힘들고, 답답했다.

물론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워낙 힘들게 진행되어서 그런지 나에게 이득이 되는 건 분명 있었다.

특히 그중 두 가지는 나에게 아주 큰 이득이 되었다.

일단 레벨.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투는 내 레벨을 어마어마하게 상승시켜 주었다. 물론 그 대가로 거의 지쳐서 쓰러질 것 같은 피곤함을 선물해 주었지만 어쨌든 한동안의 폐관 수련(도서관 연구) 때문에 뒤처졌던 레벨을 한 방에 따라잡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바로 분석 능력.

그중에서도 퀘스트에 대한 분석 능력은 이제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예 나보고 퀘스트를 디자인하라고 해도 앉은 자라에서 퀘스트 몇 개는 뚝딱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분석 능력이 상승한 것은 모두 이 검은 기둥과 내가 가진 작은 고대의 석판 사이에 존재하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퀘스트들을 내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난 아예 내가 연계 퀘스트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두 물건 사이에 존재했을 것 같은 수많은 퀘스트를 전부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드디어 한 달 만에 검은 기둥에서 지금까지는 찾지 못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붉은 강에 사는 거대한 물고기 얘기가 적혀 있던 고대의 석판.

그리고 이해하기가 힘들 정도로 난해한 문장들이 마구 뒤섞여 적혀 있던 검은 기둥.

난 하이퍼 넷에 떠도는 각종 정보와 무물 길드를 통해 얻은 수많은 정보를 이 둘 사이에 하나하나 맞춰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붉은 강에 사는 거대한 물고기 이야기는 서대륙의 북부 용암 지대와 동대륙의 동부 화산 지대의 NPC들에게 전해지는 몇 가지 전설에 나오는 환상 속의 존재와 비슷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북부 용암 지대의 마그마 스네이크(Magma Snake)나 동부 화산 지대의 만년화리(萬年火鯉)가 딱 그것과 비슷했다.

또한 그것과 유사하게 느껴지는 글귀가 검은 기둥의 한쪽 구석에 적혀 있기까지 했다.

시작은 거기서 부터였다.

난 그 뒤로 계속 그것들과 관련 있는 정보를 찾으며 그 정보들을 다시 검은 기둥과 연관 지어 살펴보았다.

계속된 검색과 비교.

그렇게 난 하나하나 조금씩 없어진 선을 이어갔고, 드디어 오늘 그 선을 완전히 완성시켰다.

한 달(게임 시간)간의 무식한 작업이 이제야 꽃을 피운 것이다.

이것은 하이퍼 넷과 무물 길드를 활용해 오프라인에서 정보를 모으고 다시 그것을 온라인으로 끌어들여 온라인에서 일일이 모든 걸 비교해 보는 작업을 반복한 끝에 얻어낸 값진 결과물이었다.

‘다크 스타’는 일종의 유물이자 징표였다.

특히 퀘스트를 역추적하던 나는 최근 들어 등장한 마계의 여행자들이 퍼뜨리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이야기가 이 검은 기둥과 큰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사실 마계는 레아 대륙이 아닌 크로노스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차원의 조각이고, 그 차원의 조각인 마계에는 크로노스 대륙의 징표들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

또한 그 징표를 찾으면 마계의 파수꾼을 만날 수 있는데 그 파수꾼들은 마계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다크 스타’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대륙의 징표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검은 기둥에는 그 대륙의 징표라는 말이 여러 군데에 등장했다.

시적인 표현으로 숨겨져 있지만 분명 여러 군데에서 수없이 많이 언급되었다.

또한 그것들을 자세히 살피며 그것들은 모두 한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바로 파(破).

장애물을 파괴하고,

근본을 깨뜨리고,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상식의 틀을 부숴 버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한 모든 것을 종합한 나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 그것은 바로 검은 기둥 그 자체였다.

모든 사실들은 검은 기둥을 파괴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검은 기둥을 공격해 보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 시도는 최초에도 살짝 해보았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서 진짜 부숴 버리겠다는 의도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중요한 정보가 될 것 같은 고대어들이 빽빽이 적혀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강도를 지니고 있는지, 혹시 마력에 반응하지 않는지 정도만 살펴본 것이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살짝 건드려 보는 정도가 아닌, 아예 부숴 버릴 생각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혹시라도 내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냥 미련을 깔끔히 날려버렸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이 판단이 틀렸다면 더 이상 시간을 투자할 생각도 없었다.

“후우∼”

방금까지도 나를 향해 달려들던 야차 한 마리와 악귀 두 마리를 깔끔하게 정리한 난 조용히 숨을 고르며 검은 기둥을 바라보았다.

두 달 정도의 시간 동안 징그럽게 보고 또 보았던 검은 기둥. 적어도 이 기둥을 시원하게 부숴 버린다는 점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꽈악.

들고 있던 엘레멘탈 블레이드를 더욱 강하게 잡았다.

한 방에 끝장을 내버릴 생각이었다.

정령들의 기운이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불과 바람, 그리고 물과 땅.

이 네 가지 속성의 기운이 서로의 존재감을 뽐내며 내 몸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스킬 조합, 정령빙의, 셀리스트(Salist)+정령빙의, 운다인(Undain).

연계 발동, 스킬 조합, 정령빙의, 노임(Noim)+정령빙의 실라페(Silafe).

서로 뒤엉키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견제하며 더욱 강하게 반발하는 네 가지 기운.

난 이것들을 모아 한줄기의 기운으로 만들었다.

서로 뒤엉켜 꼬여 버린 네 가지 기운.

이 꼬여 버린 기운을 곧장 엘레멘탈 블레이드로 밀어 넣었다.

우우우우웅!

가늘게 떨리는 엘레멘탈 블레이드.

다른 검이었다면 어쩌면 이대로 폭발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엘레멘탈 블레이드는 말 그대로 정령의 검답게 미친 듯이 요동치는 이 네 가지 기운을 견뎌낼 수 있었다.

“뭐가 됐건…….”

어차피 이게 마지막이었다.

“이걸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분명 결과는 나온다.

“끝을 보자!!”

그걸로 만족이었다.

최선을 다했는데 죽이 나온다면? 뭐, 그건 내 운명인 것이다.

특수 스킬 조합, 엘레멘탈 버스터(Elemental Buster) 데몰리션(demolition)!!

꽈과과광!

강력한 한줄기의 기운이 검은 기둥을 향해 폭사 되었다.

이것은 절대적인 파괴의 기운.

아무리 검은 기둥이 강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다고 해도 이 기운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건 파(破).

검은 기둥이 파괴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지겨운 나날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크 스타를 얻고 팔열지옥을 떠나든지,

아니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팔열지옥을 떠나든지.

이제 곧 이 둘 중 하나가 결정될 것이다.

후회는 없다.

적어도 선택은 내 스스로 했기에 후회를 할 생각은 없다.

후회란 건 선택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기회를 날려버리는 바보들이나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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