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팔열지옥 ― 2
* * *
이건 말린다고 될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난 길드 메시지에 엠페러 길드의 움직임을 자세히 남겨주며 조심하라는 말고 함께 일이 생기면 메시지를 남기란 말을 해주었다.
그나마 그녀는 마계의 가장 오지 중 하나인 남부 지역 끝을 향해 떠났기 때문에 엠페러 길드에서 그녀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설사 엠페러 길드와 조우한다고 해서 그녀가 쉽게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원래 강했던 그녀는 나와 석 달 동안 함께하며 더욱 강해졌다.
수없이 많이 이루어진 나와의 대련, 그리고 계속된 패배.
그녀는 그 패배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그동안 패배보단 승리가 훨씬 많았던 그녀였기에 이번 패배들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의 검은 더 날카롭고, 은밀하고, 빠르고, 끈질기고, 강해졌다.
그래서 난 그녀를 믿었다.
엠페러 따위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실히 믿었다.
그렇게 그녀를 믿은 나는 엠페러의 감시망을 가볍게 피하고 조디악으로 들어왔다.
한시가 급했다.
누구보다 일찍 팔열지옥에 입장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팔열지옥의 입구는 여러 군데에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조디악의 입구는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조디악의 외곽 지역에 있는 커다란 공동묘지.
그곳에 팔열지옥으로 가는 입구 중 하나가 존재했다.
공동묘지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납골당 중 하나가 바로 그 입구였다.
물론 그 입구를 열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관 장치를 찾아내고 마법진을 활성화시켜야 했지만 나에게 그 일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관찰 스킬을 통해 입구로 보이는 납골당을 찾은 후 다시 관찰 스킬과 내 기관에 대한 지식, 그리고 마법진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팔열지옥으로 가는 입구를 개방했다.
어둠 저편에 희미하게 빛나는 음산한 마법진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가 존재하는 걸 보니 다행스럽게도 아직 팔열지옥으로 들어간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난 어두컴컴한 계단을 이용해 팔열지옥으로 연결된 순간이동 마법진을 향해 걸어갔다.
단 한 번의 도전만 허락하는 던전.
그렇기에 더욱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는 던전이었다.
척.
마법진 위에 올라갔다.
그러자 음산한 기운이 내 발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띠링, 마계의 숨겨진 던전 팔열지옥을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띠링, 본 던전은 오로지 한 번의 도전만 허락된, 특별한 규칙이 적용되는 비밀 던전입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N’을 눌러주세요.
띠링, 팔열지옥에 입장하시겠습니까?(Y/N)
당연히 ‘Y’였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온 내가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난 지그시 ‘Y’를 눌렀다.
띠링, 팔열지옥으로 이동합니다.
띠링, 최초 발견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음산한 기운이 나를 완전히 감싸며 마법진이 강하게 빛났다.
마법진의 작동.
난 그렇게 팔열지옥의 첫 번째 지옥인 등활지옥으로 이동했다.
* * *
팔열지옥은 던전 크기로만 본다면 그다지 넓지는 않았다.
하지만 크기가 작다고 해서 던전의 난이도가 하락하는 건 아니었다.
팔열지옥은 상상 속의 지옥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곳이었다.
당연히 던전 내부는 보통 사람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열기가 휘몰아쳤다.
물론 나에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확실히 다른 유저들이었으면 골치가 좀 아팠을 것 같았다.
등활지옥은 뜨거운 열기와 함께 화귀(火鬼)들이 마구 달려드는 곳이었다. 그리고 화귀를 다 처리했다 싶으면 다음엔 차가운 바람과 함께 풍귀(風鬼)들이 등장했다.
그렇게 화귀와 풍귀가 번갈아 가며 등장해서 유저들을 괴롭히는 지옥.
하지만 나에겐 별로 어렵지 않은 구간이었다.
난 당연히 빠른 속도로 등활지옥을 통과했다. 그리곤 화풍귀(火風鬼)라 불리는 지옥수호병도 가볍게 쓰러뜨린 후 다음 지옥으로 넘어갔다.
다음 지옥은 흑승지옥.
이 지옥은 특별한 몬스터는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각종 함정들이 유저를 괴롭히는 곳이었다.
특히 뜨겁게 달구어진 쇠사슬과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 같은 거대한 톱니형 칼날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끝장을 내버릴 것 같은 위력을 보여주었다.
함정의 연속. 하지만 각종 기관과 진식에 통달한 나에게 이런 함정은 별로 두렵지 않았다.
난 이번에도 역시 가볍게 통과했다.
마지막에 등장한 흑승대변환 지옥수호틀이라는 함정은 살짝 나를 긴장하게 했지만 거의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가까워진 유수행 보법 덕분에 작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통과할 수 있었다.
흑승지옥과 이어지는 다음 층은 중합지옥이었다.
이 중합지옥은 간단히 말하자면 등활지옥과 흑승지옥의 결합이었다.
각종 함정과 그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화귀와 풍귀.
당연히 난이도는 급상승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다지 난이도 변화가 없었다.
어차피 여유 있게 통과한 등활지옥과 흑승지옥이었다. 그 두 지옥이 합쳐졌다고 해서 문제 될 건 별로 없었다.
무난한 통과. 마지막 장애물인 중합지옥귀까지 간단히 정리했다.
이렇게 전반 3층을 끝냈다.
그나마 전반 3층은 아주 어려운 난이도가 아니라 대략 5일(게임 시간) 만에 모두 통과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후반 4층의 시작인 규환지옥.
난 조심스럽게 규환지옥으로 들어섰다.
규환지옥은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지옥이었다.
각종 지옥 곤충들이 마구 달려들어 다양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완벽하게 모든 곤충을 피할 수는 없었다.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는 있어도 무효화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어느 정도의 데미지는 허용해야 했는데 이게 문제였다. 개미, 모기, 파리, 풍뎅이, 지네 등등 각종 곤충은 사정없이 달려들었고, 자칫 잘못했다간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 가랑비 같은 공격에 쓰러질 수도 있었다.
특히 중간중간 울려 퍼지는 괴상한 귀곡성(鬼哭聲)은 유저들의 움직임을 자꾸 둔화시키는 작용을 했다.
이게 바로 일종의 음파 공격이었다.
난 최대한 집중하며 강력한 정신력과 몇 가지 방어 스킬을 사용해 이 음파 공격을 방어했다.
자칫 음파 공격에 계속 당하기 시작하면 지옥 곤충들의 무차별 공격에 힘없이 쓰러질 수도 있었다.
음파 공격을 방어하면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규환지옥을 통과했다.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어차피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계속해서 데미지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벗어나는 게 최고였다.
이러한 내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난 최소한의 데미지만 입고 규환지옥을 빠져나왔다.
당연히 마지막에 등장해 주신 대형 지옥 곤충은 화끈하게 토막 내어주었다.
징글징글한 규환지옥의 통과.
그렇지만 사실 진짜 규환지옥은 지금부터였다.
규환지옥을 빠져나오자마자 곧장 시작되는 대규환지옥.
더 많은 지옥 곤충이 등장하고 더 길어졌으며, 더 강력한 귀곡성이 울려 퍼지는 곳.
당연히 규환지옥보다 몇 배는 더 공략이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략 방법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난 규환지옥 때보다 더 빨리, 더 집중해서 공략을 시작했다.
당연히 내가 느끼는 고통도 증가했다.
어쩔 땐 귀곡성에 몸을 맡기고 그냥 쉬었다 가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더욱 집중하고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난 온몸으로 시원하게 지옥 곤충들을 때려죽이며 결국 끝까지 돌파할 수 있었다.
차라리 마지막에 나타난 대형 지옥 곤충 떼는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그만큼 대규환지옥은 쉽지 않은 구역이었다.
어려운 규환지옥의 구간이 끝나자 이제 나를 기다리는 건 초열지옥 구간이었다.
초열지옥은 분명 규환지옥보다 더 어려운 구간이었다.
사방을 뒤덮고 있는 지옥의 불길,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서 등장하는 염귀(炎鬼).
화귀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이 염귀는 상당히 강력한 몬스터였다.
그리고 사방을 뒤덮고 있는 이 지옥의 불길은 유저들이 아무 짓을 하지 않아도 조금씩 생명력을 소비하게 만들었다.
피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는 강력한 함정이었다.
진정한 지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이 초열지옥은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던전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예외였다.
초열지옥의 가장 무서운 점인 온몸을 태울 것 같은 열기(熱氣)가 나에겐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가장 큰 장애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오히려 난이도는 전보다 내려갔다.
규환지옥이나 대규환지옥보다 쉬운 초열지옥. 당연히 그다음 지옥인 대초열지옥 역시 별로 어렵지 않았다.
사방은 더욱 뜨거워지고 더 사나운 혈염귀(血炎鬼)가 튀어나왔지만 여전히 나에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열기일 뿐이었다.
그저 약간 뜨겁다는 느낌 정도?
다른 이들이라면 뜨겁다는 느낌을 넘어서 온몸이 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겠지만, 그래서 각종 방법을 통해 온도를 낮추려고 노력했겠지만 난 전혀 그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층 중간에 등장하는 지옥수호병 초열염마(焦熱炎魔)와 대초열염마(大焦熱炎魔)도 강력한 화염의 힘을 사용하는 몬스터인지라 나에겐 별로 어렵지 않았다.
너무나 간단히 통과해 버린 초열지옥과 대초열지옥.
결국 난 12일(게임 시간)이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전반 3층과 후반 4층의 일곱 개의 지옥을 모두 통과했다.
이제 남은 건 최후의 한 층인 무간지옥.
팔열지옥 중 가장 어렵고 힘든 지옥. 각종 야차(野次)들과 악마(惡鬼)들이 공격을 멈추지 않고 흑승지옥의 함정보다 몇 배는 무서운 함정들과 초열지옥의 화염보다 더욱 뜨거워진 화염이 마구 튀어나오는 곳.
이 무간지옥에 내가 찾는 그 물건이 있었다.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단지 이곳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
어차피 기회는 이번 한 번뿐.
난 무간지옥을 샅샅이 뒤져 그것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다크 스타’, 또는 ‘암흑의 별’이라 불리는 그것.
그것만 얻을 수 있다면 아수라는 더 완벽해질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무간지옥은 끊임없이 몬스터와 함정이 새롭게 나타나기 때문에 쉴 수 있는 틈이 없었다.
일단 무간지옥에 들어온 이상 계속 그것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러한 끊임없는 견제는 나를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하지만 원래 이게 세상의 이치였다.
고생한 만큼,
노력한 만큼,
딱 그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법.
무간지옥에서의 이 고생은 결국 멋진 보상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