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팔열지옥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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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영웅 견갑[엘리트(Elite) 세트(Set)4/8]<판금 방어구류>
불멸의 영웅이라 불리는 이가 있었다. 그는 이미 전설이 되었지만 그가 사용하던 무구(武具)들은 아직도 세상을 떠돌고 있다. 분명 그 무구들을 모두 모아 그 무구들의 봉인을 푸는 이는 불멸의 영웅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능력: 내구도[무한] 힘[50] 마력[50] 매력[50] 스킬[일갈(一喝): 크게 소리를 질러 주변 적들의 사기를 낮춘다] 사용 가능. 재사용 대기 시간 일갈[5분].
세트 효과: 2세트 효과[모든 능력치 +40]
3세트 효과[생명력, 마력 +5%]
4세트 효과[공격력 +5%, 방어력 +10%]
특이 사항: ‘불멸의 영웅이 남긴 무구’ 퀘스트를 자동으로 받습니다. 무구를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봉인되어 있던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암흑의 가죽 건틀릿[유니크[Unique]]<가죽 방어구류>
어둠의 전사가 사용한 가죽 장갑. 매우 단순한 디자인의 장갑이지만 그 쓰임새는 다양하다.
능력: 내구도[1000], 민첩[90], 마력[20].
특이 사항: 없음.
블러드 엑스[유니크[Unique]]<양손 도끼류>
수많은 블러드 뱀파이어를 두 조각으로 쪼개 버렸던 그 전설의 도끼. 블러드 뱀파이어 로드가 나서서 도끼의 주인을 죽였지만 여전히 도끼는 뱀파이어들을 쪼개 버릴 것 같은 기세를 내뿜고 있다.
능력: 힘[80].
특이 사항: 뱀파이어와 수인족에게 추가 데미지를 입힌다.
마법서(魔法書) [아이스 허리케인(Ice Hurricane)]
북풍한설(北風寒雪)의 추위를 능가하는 강력한 얼음의 회오리바람. 천지를 얼릴 것 같은 이 강력한 한기는 마력의 흐름마저 멈춰 버리게 할 정도로 강력하다.
마법(스킬): <아이스 허리케인>.
숙련도: 0.
효과: 좁은 범위에 매우 강력한 얼음의 회오리바람을 생성한다.
특이 사항: 없음.
등급: 상상급(AA급).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S급]<마정석류>
붉은색의 커다란 다이아몬드. 강력한 마력이 응집해 있는 최상급 마정석이자 신비로운 매력을 뽐내는 값비싼 보석. 가공만 잘할 수 있다면 더 대단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음.
능력치: 알 수 없음
특이 사항: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음.
요구 사항: 없음.
…….
…….
뱀파이어 로드는 상당히 좋은 최고급 아이템들을 많이 떨어뜨렸다. 그중에서도 내 눈에 가장 띄는 건 불멸의 영웅 세트였다.
이미 3세트를 맞추고 있던 나였기 때문에 4세트를 맞춰줄 ‘불멸의 영웅 견갑(肩鉀)’은 탐나는 아이템이었다.
그 밖에도 8클래스 마법인 아이스 허리케인(Ice Hurricane) 마법서가 눈에 들어왔고, 최상급 마정석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마정석으로 평가받는 블러드 다이아몬드도 눈에 띄었다.
그 밖에도 몇 가지 최고급 아이템이 있었지만 그다지 나에게 필요한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뱀파이어 로드가 떨어뜨린 제일 중요한 아이템은 이런 것들이 아닌 하나의 수정 펜던트였다.
아마도 시스템 메시지에서 알려준 중요한 퀘스트를 시작할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인 것 같았다.
한 달이라는 시간제한이 있는 중요한 퀘스트.
느낌상으로는 무척 중요한, 상당한 보상이 있을 것 같은 그런 퀘스트였다.
하지만 시간제한 때문이라도 난 포기할 수밖에 없는 퀘스트였다.
내가 마계에 온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닌 ‘다크 스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팔열지옥이라 불리는 마계의 최고 난이도 던전에 들어가야 했다.
석 달(게임 시간) 정도의 블러드 캐슬 지역 사냥으로 내 레벨은 607이 되어 있었다.
레벨은 이미 충분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벌써 난 그 던전에 진입했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서 혹시라도 누군가 팔열지옥을 먼저 발견하고 입장하게 되면 나로서는 큰 낭패였다.
멋도 모르는 유저들이 팔열지옥에 몰려들기라도 하면 내가 언제 입장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마음 편하게 남들보다 먼저 최초로 입장하는 게 좋았다.
그렇기에 이 퀘스트를 진행할 수 없었다.
이건 딱 봐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해 보이는 연속 퀘스트였다.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퀘스트라는 말이었다.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하는 게 좋았다.
괜히 그런 것에 미련을 가지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수정 펜던트는 린에게 주었다.
그녀 역시 별로 관심 없다며 받으려 하지 않았지만 난 애써 이 퀘스트의 중요성을 설명해 주면서까지 억지로 넘겨주었다.
그 밖에 불멸의 영웅 견갑과 아이스 허리케인 주문서, 그리고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제외한 모든 아이템도 다 린에게 주었다.
어차피 나에겐 필요 없는 아이템들. 물론 용문상회를 이용해 팔면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물건들이었지만 굳이 욕심내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린 역시 극구 사양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몇 개의 아이템을 제외한 나머지를 다 다시 나에게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져가 봐야 창고에서 썩을 물건이라며 절대 필요 없다는 걸 강조했다.
결국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둘 모두에게 필요 없는 아이템들은 모두 내가 가져가게 되었다.
대신 난 현재 가지고 있던 골드를 거의 전부 그녀에게 억지로 넘겨주었다.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이것들을 가져가는 건 싫었다. 당장 가지고 있던 골드가 그리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도 대가를 치러야 마음이 편할 거 같았다.
특히 함께 고생한 린에게 미안해서 더 싫었다.
어쨌든 그렇게 정리를 끝내고 이젠 헤어질 때가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같이 이렇게 대련과 사냥을 반복하면서 지내고 싶었지만 나에게 ‘One’은 단지 게임일 뿐인 게 아니라 할 일을 해야 했다.
“얼마나 마계에 계실 건가요?”
린은 적어도 이제 나에게는 조금 자유롭게 말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짧게 대화를 하는 건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글쎄요…… 아마도 한 달 이상은 더 있을 거 같네요.”
팔열지옥의 후반 층 난이도를 생각하면 한 달 정도는 충분히 걸릴 것 같았다.
“좀…… 아쉽네요.”
그녀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그녀. 특히 뭔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아련함 때문이라도 한동안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뭘까?
이 느낌은…….
하지만 궁금함은 풀리지 않았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속 저 바닥에서 미약하게 전해져 오는 떨림을 정확히 뭐라고 구분 지을 수는 없었다.
“조만간 또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난 애써 그 이상한 느낌을 무시하며 미소 지었다. 굳이 억지로 알려고 노력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이대로 계속 기분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럴까요?”
“당연하죠. 아…….”
난 문득 그녀가 용문에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라면 언제라도 환영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그녀라면 충분히 용문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었다.
“혹시…… 길드에 가입할 생각 있으신가요?”
“길드요?”
“네, 작은 길드입니다. 길드원은 현재…… 저 혼자입니다.”
버그 스톤과 이나는 용문상회를 만들며 그 길드로 자리를 옮겼다.
애초에 무물 길드와 마찬가지로 용문상회도 그런 식으로 운영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 둘의 이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현재 용문의 길드원 숫자는 다시 1이 되어 있었다.
만약에 린이 들어온다면 2가 되는 것이다.
“……네, 들어갈게요.”
린은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가입을 결정했다.
“하하, 환영합니다. 비록 달랑 마스터 혼자만 있는 허약한(?) 길드지만…… 적어도 어디 가서 무시는 당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 하나뿐인 길드원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길드마스터가 있으니 언제라도 길드 메시지를 이용해 마스터를 찾아주세요.”
난 기분 좋게 웃으며 린의 가입을 환영했다.
“네, 감사합니다.”
린 역시 밝게 미소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천 송이의 꽃이 한꺼번에 만개하면 이런 아름다움이 느껴질 수 있을까?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극한의 미가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린의 얼굴에 또 한 명의 린이 겹쳐 보였다.
‘음?’
난 이 이상한 현상에 놀라 고개를 흔들며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자 이중으로 겹쳐 보이던 린의 얼굴이 다시 하나로 돌아와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이라도 부셨던 건가?’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만큼 린의 아름다움은 절대적이었다.
검은 마녀 린의 용문 가입.
트러블 메이커라 불리며 이곳저곳에 적을 많이 만든, 그리고 만들 예정인 그녀. 하지만 적어도 이제 용문의 일원이 된 이상 그녀의 적은 내 적이 될 것이다.
예외는 없다.
어차피 독보(獨步)의 길엔 수많은 적이 존재하는 법. 거기에 좀 더 많은 적이 추가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쨌든 이렇게 나와 린은 길다면 길 수도,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재회의 시간을 끝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만남이 있기에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기에 만남이 있다고. 이 말처럼 또 시간이 되면 린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 믿었다.
* * *
내가 조디악으로 돌아왔을 땐 마계에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다. 그 난리의 원인은 나와 린 때문이었다.
엠페러 길드.
라트마는 생각보다 끈질긴, 아니, 찌질한 놈이었다.
녀석은 엠페러 길드의 대규모 군단을 이끌고 다시 마계로 넘어왔다.
그리곤 나와 린을 찾아 마계를 쥐 잡듯이 뒤졌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마계가 마치 자신들의 구역인 것처럼 행세를 하며 행패를 부렸다.
당연히 여기저기에서 충돌이 일어났지만 엠페러는 특유의 물량 공세로 그 충돌을 모두 강제로 진압했다.
덕분에 여기저기에서 원성이 터져 나왔지만 라트마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 문제가 될 것 같은 상황이 생기면 골드나 협상을 이용해 문제를 조용히 무마시켰다.
결국 죽어 나가는 건 힘없는 일반 유저들이었다.
오죽하면 반 엠페러 연합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나와 린에겐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일단 우리가 뱀파이어 타워에 있는 동안은 당연히 엠페러 길드에서 우리를 찾지 못했고, 나와서도 그들의 능력으로는 우리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사실 나보단 린이 살짝 걱정이었다.
나야 대충 더러운 똥을 피하는 심정으로 엠페러의 감시망을 피하면 그만이었지만 린은 성격상 절대 엠페러 길드를 피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