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66화 (166/250)

166. 뱀파이어 로드 ― 2

* * *

허공을 가득 메운 수백 개의 검영(劒影).

하나하나가 모두 강력한 위력을 지닌 검의 그림자들. 그 그림자들이 폭풍처럼 사방을 휩쓸었다.

꽈과과광!

이 기술은 린의 비기(秘技) 중 하나였다.

그녀가 가진 몇 개 안 되는 광역 기술 중 가장 강력한 이 기술은 뱀파이어 로드가 소환해 놓은 많은 수의 키메라들을 모두 휩쓸어 버렸다.

이미 나의 엘레멘탈 버스터와 절망의 폭풍을 맞고 체력이 많이 깎여 있었다지만 그래도 쉽게 쓰러지지 않을 놈들이었건만 그녀는 한 번에 모두 쓸어버렸다.

“좋아!”

그 순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레드, 이글을 아공간으로 되돌려 보내며 다시 소울 블레이드와 아쿠아를 양손에 들었다.

벌써 뱀파이어 타워에 들어온 지 50일 정도가 흘렀다. 이미 뱀파이어 로드가 있는 최상층 첨탑을 제외한 모든 층을 깨끗이 정리해 놓았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뱀파이어 로드뿐이었다.

우리는 철저한 준비를 끝내고 그동안 거의 완벽에 가깝게 다듬은 서로의 호흡을 믿고 뱀파이어 로드와의 레이드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다.

확실히 뱀파이어 로드는 강했다.

하지만 우리는 더 강했다.

이미 뱀파이어 로드의 주력 기술을 전부 파악하고 있던 나는 그것들에 대한 대비를 모두 해놓았기 때문에 그녀와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특히 뱀파이어 로드의 각종 정신 공격은 절대 우리에게 피해를 줄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레이드의 난이도가 내려갔다.

단지 좀 짜증 나는 점이 두 가지 있었는데, 그 두 가지만 아니었다면 아마 벌써 놈을 잡았을 것 같았다.

뱀파이어 로드의 생명력 자체는 레이드 보스 몬스터치고는 무척 낮았다.

하지만 워낙 기본적으로 데미지 감소가 많이 되는 육체를 지닌 놈이라 공격을 계속 성공시켰건만 아직도 쓰러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자칫 방심하다 공격을 당하면 그 데미지를 흡혈의 권능으로 흡수해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버렸다.

뱀파이어의 로드답게 아주 적은 데미지를 흡수해도 상당량의 생명력을 회복했다. 그렇기에 나와 린은 아예 공격을 성공시키는 것보다 놈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는 걸 우선시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스킬 조합, 크로스 블레이드+검기난무(劍氣亂舞).

블레이드 익스플로젼(Blade Explosion)!

콰과광!

뱀파이어 로드의 몸을 스치며 터지는 폭발.

아마도 아주 약간의 데미지만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중요한 건 데미지의 크기가 아니라 데미지를 계속해서 누적시키는 것이었다.

그 어떤 나무라 해도 계속 찍으면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면 스무 번을 찍으면 되는 것이고, 스무 번을 찍어서 안 되면 마흔 번을 찍으면 되었다.

찍고 또 찍고.

린과 나는 서로 공격과 방어를 번갈아 하며 계속해서 뱀파이어 로드를 공략했다.

[크아아아!]

실제로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뱀파이어 로드의 생명력은 거의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뱀파이어 로드는 발악하며 다시 한번 그 특유의 강력한 마법을 뿌렸다.

츠츠츠츠츳!

사방을 얼릴 것 같은 강력한 한기(寒氣)가 나와 린을 덮쳤다.

하지만 우린 절대 당황하지 않았다.

굳이 얘기하지도, 그렇다고 눈빛을 교환하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녀와 나는 서로를 교차하며 어깨를 맞대고 섰다.

그리고 동시에 검을 뻗었다.

심연의 마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색 오러.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 두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색 오러.

너무나도 완벽한 대처였다.

꽈광!

한기는 우리를 집어삼키지 못했다.

우리가 만들어낸 오러와 함께 허공에서 폭발했을 뿐이다.

그렇게 뱀파이어 로드의 공격을 막은 우리는 또다시 물 흐르듯 움직였다.

이번에는 그녀가 앞에 서고 내가 뒤에 섰다.

그리곤 다시 한번 그녀의 검이 움직였다.

스팟!

허공을 가르는 그녀의 검.

그 마검에선 커다란 반월형 검강이 전방으로 쏘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검을 휘둘렀다.

물론 내 앞에는 그녀가 있었다. 하지만 난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고 그녀의 등 뒤로 두 개의 검을 교차시키며 십(十)자로 휘둘렀다.

서로 교차하며 날아가는 두 줄기의 오러 블레이드.

그랜드 크로스(Grand Cross)의 발현이었다.

바로 그 순간 린이 슬쩍 옆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허리를 뒤로 젖혔다.

파앗!

그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그랜드 크로스!!

마치 묘기라도 부리는 것 같은 우리의 모습.

이건 서로를 100% 믿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검은색 검강과 내 그랜드 크로스는 진행 방향이 일치했다.

목표는 둘 다 뱀파이어 로드였다.

치잉!

뱀파이어 로드는 재빨리 마력을 이용해 쉴드치며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그가 착각한 게 하나 있었다.

아니, 잘못 본 것일까? 어쨌든 그는 린의 검은색 검강만 신경을 쓰고 그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던 내 그랜드 크로스는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나와 린의 그림과 같은 합격 덕분이었지만 어쨌든 그 결과는 뱀파이어 로드에게 매우 좋지 않은 것이었다.

꽝! 쩌저정!

감당할 수 없는 충격으로 인해 깨져 버린 마력의 쉴드.

그 결과 린의 검은색 검강과 내 그랜드 크로스는 고스란히 뱀파이어 로드의 몸에 적중되었다.

퍼퍼퍼펑!

[크아아아아악!]

뒤로 밀려나는 뱀파이어 로드.

그의 몸에서 검은색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저 안개는 그를 구성하고 있는 마력의 실체였다.

마력의 실체가 밖으로 흘러나온다는 뜻은 뱀파이어 로드의 육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마무리를 하죠!!”

자칫 놈에게 시간을 주면 뱀파이어의 가장 지랄 같은 권능 중 하나인 흡혈의 권능으로 다시 생명력을 회복할 수도 있었다.

마무리의 기회가 왔을 때 끝을 내야 했다.

“장비 9번.”

촤악!

두 자루의 검이 아공간으로 사라지며 내 손에 마법총서가 잡혔다.

동시에 린도 심연의 마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그녀의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갑니다.”

그녀는 간단명료하게 한마디의 말을 하곤 곧장 눈을 감았다.

상단의 자세로 검을 잡고 눈을 감은 린.

이것은 그녀가 가진 천암류 검술 중 가장 강력하고 난해한 검술을 사용할 때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말하길, 천암류 검술의 모든 오의(奧義)가 이 한 번의 칼질에 담겨 있다고 했다.

하늘을 가두는 어둠의 칼질이라 불리는 이 검의 특징은 바로…….

스읏!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고,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는,

이것은 천지를 어둠으로 가두어 그 존재를 완벽하게 숨기는 검술이었다.

그녀의 검이 어느새 허공을 대각선으로 갈랐지만 사방은 여전히 고요했다.

그렇게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뱀파이어 로드가 갑자기 괴성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

퍼퍼퍼퍼퍼퍽!

뱀파이어 로드의 허리를 파고드는 강력한 한줄기 기운. 이것이 바로 검은 마녀 린이 뿜어낸 그 천암(天暗)의 기운이었다.

촤아아아아아!

마치 바람이 새는 풍선처럼 뱀파이어 로드의 허리에서 검은색 안개가 더욱 많이 뿜어져 나왔다.

진정 끝이 보였다.

난 린이 하늘을 가두는 어둠의 칼질을 하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양손을 어지럽게 움직이며 수인을 완성시키는 중이었다.

허공에 흩날리는 수십 개의 시약. 내가 준비한 마무리는 마법이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마법!!

마법적인 능력이 굉장히 상승한, 그리고 여러 능력으로 인해 캐스팅 속도가 50% 이상 빠른 나도 무려 30초 이상을 캐스팅해야 간신히 완성시킬 수 있는 최고급 마법.

화르르륵!

내 가슴 언저리에 피어나는 강력한 이 화염은 그 마법의 근원이었다.

“이걸로…….”

난 뱀파이어 로드를 바라보며 천천히 양손을 하나로 합쳤다.

퍼펑!

마법총서와 함께 강하게 타오르는 화염.

“끝이다!!”

내 말과 함께 그 화염이 폭발하듯 앞으로 뿜어졌다.

최강의 대인 멸살 마법이라 불리는 헬 파이어! 그 위대한 마법이 내 손에서 펼쳐졌다.

그 어떤 유저가 감히 궁극의 9클래스 마법을 사용하겠는가? 대마법사라 불리는 가웨인도 지금 겨우 8클래스 마법 몇 가지를 사용하고 있는 게 전부일 것이다.

물론 난 약간은 기이한 마법 체계를 지니고 있어서 정작 7클래스와 8클래스의 마법들은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유저들은 거의 상상 속에서나 사용할 수 있다는 그 9클래스의 마법을 내가 사용했다.

심지어 굉장한 마법 능력을 지닌 뱀파이어 로드도 8클래스까지의 마법만 사용할 뿐 9클래스의 마법은 사용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린다는 겁화(劫火)가 순식간에 뱀파이어 로드를 집어삼켰다.

콰과과과광!

뱀파이어 로드와 함께 타워의 천장에 커다란 구멍을 내버린 헬파이어.

과연 최강의 대인 멸살 주문다운 파괴력이었다.

헬 파이어를 완성시키기 위해 비상용으로 놔두었던 무신의 내공을 거의 모두 사용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걸로 끝이었다.

아무리 뱀파이어 로드라고 해도 나와 린의 이 마무리 공격 두 방을 견뎌낼 수는 없었다.

고오오오오∼

타오르는 뱀파이어 로드의 방.

[……크으…….]

쿠쿠쿵!

그리고 쓰러지는 뱀파이어 로드.

이로써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던 나와 린의 뱀파이어 로드 레이드가 끝을 맺었다.

띠링, 블러드 뱀파이어의 왕 뱀파이어 로드 ‘엑서스’를 쓰러뜨렸습니다.

띠링, ‘뱀파이어 로드 슬레이어(AA급)’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띠링, 엑서스를 쓰러뜨리며 블러드 뱀파이어의 구속력이 약해졌습니다. 이것은 기회입니다. 당신들은 블러드 뱀파이어들에 의해 이 세상에서 쫓겨난 다른 뱀파이어들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띠링, 마계의 남쪽 끝에 존재하는 고대 뱀파이어의 유적을 찾아가십시오. 당신들이라면 충분히 그곳에서 뱀파이어의 숨겨진 비밀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띠링, 한 달(게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블러드 뱀파이어의 로드가 탄생합니다. 그럴 경우 블러드 뱀파이어의 구속력이 정상으로 돌아와 비밀은 다시 어둠 속으로 묻히게 될 것입니다.

띠링, 레벨이 3 올랐습니다.

띠링, 헬파이어 스킬 숙련도가 0.127 올랐습니다.

띠링, 유수행 스킬 숙련도가 0.980 올랐습니다.

…….

…….

뱀파이어 로드는 각종 아이템을 남기고 재가 되어버렸다. 헬 파이어는 아예 로드의 최종 방어 수단이었을 안개 변신마저 허락하지 않고 모든 걸 태워 버렸다.

“휴우∼ 끝났군.”

워낙 방어에 신경을 쓰며 전투를 진행해 생명력은 거의 그대로였지만 피로도와 마력은 완전히 바닥이었다.

린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만큼 우리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여 뱀파이어 로드를 깔끔하게 잡아냈다.

놈이 죽으며 뭔가 퀘스트에 관련된 메시지가 떴지만 대충 대충 읽고 창을 닫아버렸다.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일단 지금은 쉬는 게 먼저였다.

이런 피곤한 레이드 전투를 겪은 후에는 그저 푸욱 쉬는 게 제일 좋았다.

나와 린은 대충 뱀파이어 로드가 떨어뜨린 아이템을 모두 수거한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동시에 로그아웃했다.

어차피 한 달 동안은 뱀파이어 로드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안전지대를 설정하고 로그아웃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둘이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인 게 전부였다.

린도, 그리고 나도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달콤한 휴식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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