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뱀파이어 로드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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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타워는 예상보다 더 어려운 던전이었다.
나와 린이 최초로 뱀파이어 타워를 발견하면서 여러 가지 보너스를 얻었다는 건 좋은 소식이었지만 타워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몬스터는 상당히 강력했다.
상급 뱀파이어는 물론이고 그들이 부리는 특수한 수인족들이나 마수들은 굉장히 강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특수한 수인족은 일종의 키메라로서 각종 수인족의 특징을 세 개 이상씩 가지고 있었다.
어떤 놈은 호랑이의 머리에 독수리의 날개, 그리고 곰의 발톱을 지녔고, 또 어떤 놈은 악어의 머리에 사자의 발톱을 지니기도 했다.
다양했지만 강력한 키메라 수인족.
그보다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좀 더 강하게 개량된 다수의 마수들.
모두가 방심할 수 없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제일 무서운 건 역시 상급의 뱀파이어였다.
그들은 중급이나 하급의 뱀파이어와는 전혀 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각 층마다 존재하는 각종 함정과 마법진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했다.
이 뱀파이어 타워의 난이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S급, 또는 S+ 급이었다.
그만큼 어려운 던전이라는 뜻이었다.
분명 어려운 던전,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나와 린에게 딱 알맞은 던전이었다.
내가 어렵다고 얘기한 건 일반적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춘 것이다.
나와 린은 오히려 이런 던전이 좋았다.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시켜 주고 때론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위험한 순간을 연출시켜 주는, 이런 환경이야말로 우리를 더욱 성장시켜 주었다.
특히 아주 훌륭한 경험치와 각종 최고급 드랍 아이템은 더욱 우리를 기분 좋게 해주었다.
총 44층으로 이루어진 뱀파이어 타워.
현재 우리는 30층 정도를 돌파한 상태였다. 거의 하루에 한 층은 돌파하는 것 같았다.
위로 올라갈수록 던전의 넓이는 줄어들었지만 나오는 몬스터의 질이 급상승했기 때문에 한 층에 하루라는 공식은 거의 계속 유지되었다.
즐거운(?) 린과의 파티 사냥.
뱀파이어 타워는 그렇게 우리에게 완벽하게 정복당하는 중이었다.
* * *
‘The One’이 공전절후의 히트를 치며 전 세계인이 접속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으로 취급받는 지금,
그것에 아주 큰 반사이익을 얻은 이들 중 하나인 게임 방송.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시청자를 보유하게 된, 게임 방송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방송은 바로 GTV였다.
그러한 GTV 메인 스튜디오에서는 현재 재미있는 토론이 한창 이어지는 중이었다.
GTV의 채널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GTV―One.
그 채널의 인기 코너 중 하나인 ‘금주의 동영상 분석’이라는 코너가 생방송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란슬롯 님은 천살이성 중 회색의 학살자의 실력이 더 좋다는 의견이신 건가요?”
이 코너의 진행자이자, 요즘 그 어떤 연예인의 인기가 부럽지 않은 이슬은 풍류검사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란슬롯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듯 물었다.
“네, 제 이름을 걸고 확신합니다. 용문의 전신(戰神)은 회색의 학살자와 비교하면 아주 약간 실력이 떨어집니다. 물론 용문의 전신이 약간은 실력을 감춘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마 학살자보다 강하지는 않을 겁니다.”
W4의 일인으로서 나름대로 강력한 PvP 능력을 지닌 란슬롯이 그렇게 확신하듯 말했다.
방청객들이나 몇몇 패널들은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의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면, 란슬롯만큼이나 유명한 랭커였던 어던은 그의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현재 세계 굴지의 그룹인 LT그룹의 프로게임단 에이스였던 일루젼 아처 어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전 란슬롯 님과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회색의 학살자가 대단한 PvP 능력을 보여준 건 사실이지만…… 제가 볼 땐 용문의 전신을 능가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용문의 전신이 보여준 그 무빙 캐스팅과 신기에 가까운 검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는 진정한 마검사(魔劍士)인 동시에 최고의 PvP 플레이어입니다. 회색의 학살자가 두 자루의 총을 들고 최고의 아웃복싱 PvP를 구사하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그가 그렇게 특별하게 돋보일 수 있었던 건 검은 마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화끈하게 접근전을 펼쳐 줬기 때문에 회색의 학살자가 그렇게 마음껏 휘젓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죠.”
어던의 반대 의견.
하지만 란슬롯 역시 그 의견에 절대 찬성할 수 없었다.
“노노. 그건 아니죠. 용문의 전신이 상대한 200명의 유저는 사실상 중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들입니다. 그에 반면 아무리 검은 마녀와 함께였다지만 회색의 학살자가 상대한 이들은 현재 최고의 위세를 떨치고 있는 엠페러 길드의 정예들이었습니다. 무려 철혈의 군주 라트마와 그의 오른팔인 엘렌도 함께했죠. 이것만 봐도 용문의 전신과 회색의 학살자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확언하십니까? 그건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는 이상 절대 알 수 없는 겁니다.”
어던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대체로 란슬롯의 의견이 조금 더 인정받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어던의 의견에 동의하는 이들이 많이 적은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팽팽히 맞서고 있는 두 의견.
이 대립은 현재 하이퍼 넷에서 가장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요. 일단…… 용문의 전신과 회색의 학살자가 현존하는 최고의 PvP 유저라는 사실은 두 분 모두 동의하시는 거 맞죠?”
열기가 과열되자 진행자인 이슬은 특유의 미소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며 란슬롯과 어던을 향해 물었다.
“당연합니다.”
“물론이죠.”
적어도 이 사실만큼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최강자들과 비교한다면 어떨까요?”
다른 최강자라는 얘기는 바로 천살이성이 등장하기 전 유저들에게 일찌감치 대륙의 하늘을 빛내는 별로 불렸던 이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별들과 새로운 별, 천살이성의 비교.
이것 역시 요즘 한창 논란이 되는 것이었다.
이슬은 예정된 수순대로 요즘 논란이 되는 얘기들을 차례대로 다루는 중이었다.
“음…… 그 범위를 PvP에만 둔다면 전 천살이성 쪽의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흐음, 저도 조금 힘든 비교지만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천살이성을 꼽겠습니다.”
란슬롯과 어던의 의견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통일되었다.
“호오∼ 대단한데요. 그렇다면 투기장의 최강자라는 투신 천위강도 천살이성보다 한 수 아래라는 건가요?”
“한 수 아래라고 말하는 건 좀 그렇고…… 아주 조금 아래라고 말하고 싶네요. 사실 천위강이 투신이 된 건 투기장이지 않습니까. 투기장은 보통 필드와는 다른 전투 방식이 적용되기 때문에 적어도 그는 투기장에서는 최강이겠죠. 하지만…… 필드 PvP라면 천살이성이 아주 조금 앞서지 않을까요?”
란슬롯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편의상 기존의 별들이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들은 천살이성보다 더 많은 이슈를 만들어낸, 그리고 현재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One’의 최강자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물론 최근 들어 천살이성이 그 위세를 위협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른 별들의 포스가 그에 부족한 건 아니었다.
단지, 천살이성이 최근에 급속도로 주목받고 있을 뿐이었다.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천위강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필드 PvP 부분에서는 천살이성이 워낙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준지라…….”
어던 역시 조심스러웠다.
“다른 건 몰라도 두 사람의 움직임은 거의 환상(幻想)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사실상 그들의 강함은 그 움직임에서 나오는 것이죠. 그렇기에 적어도 필드에선 그들이 최강이라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란슬롯의 말에 어던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인정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분 역시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어떤 유저들은 용문의 전신과 회색의 학살자가 동일 인물일 수도 있다고 말하던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슬은 불현듯 완벽한 야설(野說)로 취급받고 있는 소문 하나가 떠올라 그것에 관해 얘기했다.
하지만 그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말도 안 됩니다.”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젓는 란슬롯과 어던.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패널들과 방청객마저 전혀 가능성 없는 헛소문일 뿐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런가요?”
“당연하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One’의 게임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최강의 마검사가 최강의 거너 능력을 가지고 거기에 체술까지 최상급이고 소환수까지 부린다고요? 이게 가능하면 무조건 버그입니다. 당연히 개발사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요.”
란슬롯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얘기일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제가 알기론 현재 ‘One’에서 가장 다양한 스킬을 사용하는 이가 전능자(全能者)라 불리고 있는 프로이드입니다. 그런 그도 주력으로 사용하는 상급 스킬은 대략 다섯 종류일 뿐입니다. 나머지는 효율이 떨어지는 보조일 뿐이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프로이드는 저렇게 최강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스킬들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용문의 전신은 아마 듀얼 클래스일 것이고, 회색의 학살자는 더블 클래스일 것입니다. 거의 확실합니다.”
어던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얘기했다.
사실 그의 의견은 이미 하이퍼 넷에서 거의 정설처럼 굳어진 내용이었다.
“역시 헛소문이었군요.”
이슬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하지만 이슬은 비록 헛소문이었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헛소문이 사실이라면…… 천살이성은 천살일성이 된다면…… 진정한 최강의 유저는 그가 될까요?”
대본에는 없었던 질문. 이것은 순수하게 이슬 본인의 궁금증이었다.
“최강? 그것으로도 부족합니다. 이 경우에는 아마도 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겁니다. 그냥 무적(無敵)…… 딱 이 한 단어로 표현 가능하겠네요.”
“하하, 무적!! 아주 어울리네요. 제가 봐도 더 이상의 표현은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란슬롯과 어던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호, 그런가요?”
이슬은 시간이 별로 없으니 빨리 다음 얘기를 진행하라는 프로듀서의 몸짓을 보곤 고개를 끄덕이며 이 얘기를 그만 마무리 지었다.
계속 이어지는 ‘금주의 동영상’ 코너.
그 뒤로도 계속 회색의 학살자가 사용한 스킬에 대한 분석과 검은 마녀와 회색의 학살자가 무슨 관계인지에 관해 얘기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