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64화 (164/250)

164. 팀 ― 2

* * *

서걱!

짚단을 베는 모습? 아니었다.

대상은 짚단이 아닌 뼈와 살이 존재하는, 아주 강력한 근육도 존재하는 수인족, 그중에서도 다섯 개의 특별한 수인족 중 하나인 호인족(虎人族)이었다.

하지만 그런 호인족들도 린의 검을 버텨내지는 못했다.

전보다 더 날카롭고, 빠르고, 은밀하고, 끈질기고, 강력해진 그녀의 검.

덕분에 죽어 나가는 건 수인족들이었다.

난 현재 그녀와 같이 블러드 캐슬 외곽 지역을 청소(?)하는 중이었다.

엠페러 길드와의 격전이 끝난 후 며칠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린과 함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특히 엠페러와 싸우며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이었다.

다시 한번 천무칠성의 특별함을 깨닫게 해준 그녀.

덕분에 난 또 한 번 아주 훌륭한 대련 상대를 구할 수 있었다.

어차피 그녀를 다시 만나면 한 번쯤 다시 대련하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딱 그녀를 만났으니 이것보다 좋은 상황은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녀도 나와 곧장 헤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나와의 재대련을 계속해도 기다려 온 눈치였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라도 그녀와 나의 동행은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전처럼 무작정 대련만 하면서 지낼 수는 없었다.

그건 나도 그녀도 똑같이 동의했다.

그래서 우린 아예 파티를 맺고 같이 사냥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서로 대련을 했다.

벌써 그렇게 지낸 지 5일(게임 시간)째였다.

그녀는 확실히 전보다 강해졌다.

하지만 이젠 폴리모프 망토를 착용한 상태에서도 그녀보다 살짝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의 발전에 크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녀 특유의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의 대련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려고 했다.

사실 레벨로만 본다면 난 그녀에게 한참 부족했다.

그녀의 레벨은 벌써 630대였다.

그에 반면 난 겨우 550에 오른 상태였다.

무려 80의 차이.

하지만 난 그 레벨의 차이를 따라잡았다. 아니, 아예 넘어섰다.

이것이 바로 ‘더 로드’의 힘이었다.

“이놈이 마지막이죠?”

린은 자신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검은색 검을 살짝 털며 뒤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그녀와 함께 팀을 이루어 사냥하니 그 속도가 엄청났다.

덕분에 원래 계획보다 더 일찍 블러드 캐슬 내성 지역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네, 이제 여기 사냥은 마무리 짓고 내성으로 갈 준비를 하죠. 그런데…… 그 검은 어디서 구했어요?”

‘심연의 마검’은 보면 볼수록 그녀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죽음의 산맥이요.”

“죽음의 산맥?”

“네.”

그녀다운 짧은 대답.

하지만 나 역시 더 이상 길게 물어보지 않았다. 죽음의 산맥에는 원래 숨겨진 던전이나 퀘스트가 많았다.

아마도 저 검도 그런 것 중에 하나에서 얻었을 것이다.

대충 주변 정리가 끝나자 그녀는 슬며시 나와 거리를 벌린 후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섰다.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이런 그녀의 행동은 대련하자는 직설적인 의사 표현이었다.

‘못 말리겠네.’

정말 대단한 여인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집념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 역시 그녀와의 대련은 언제라도 환영이었다.

비록 내가 그녀보다 우위에 있다지만 그녀와의 대련은 나에게도 아주 훌륭한 수련이었다.

스윽.

철컥, 철컥.

이번엔 레드, 이글을 이용해 상대해 줄 생각이었다.

양손에 총을 들고 싸우는 듀얼 거너(Dual Gunner) 스타일의 전투 방식은 흔하지 않은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녀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챙!

그녀의 검이 나를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와 그녀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뱀파이어들은 상대하기 쉬운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기본 능력들은 모두 유저들을 곤란하게 만들 만한 것들이었다.

그중 가장 곤란한 것은 특수한 공격이 아니면 거의 물리적인 타격을 입지 않는 그들의 육체였다.

물론 흡혈 능력이나 정신 공격, 또는 안개나 박쥐로 변하는 능력 같은 것들도 유저들을 힘겹게 만들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뱀파이어가 가장 무서운 이유는 불멸의 육체 때문이었다.

또한 뱀파이어들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마법 능력과 마법 저항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마법으로는 아무런 상처도 입힐 수 없었다.

그렇기에 뱀파이어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소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야 했다.

검사라면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오러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야 뱀파이어에게 어느 정도 타격을 입힐 수 있었고, 마법사라면 마스터의 경지 정도는 되어야 뱀파이어와 마법으로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어쨌든 이래저래 까다로운 몬스터인 뱀파이어.

난 그 뱀파이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전통있는 블러드 뱀파이어의 소굴인 블러드 캐슬에 들어와 있었다.

그것도 그들의 본성이라 불리는 블러드 캐슬 내성 안이었다.

린과 나는 대단히 호흡이 잘 맞는 팀이었다.

수많은 대련은 서로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 결과, 그 어떤 파티원보다 서로에게 더 잘 어울리는 파트너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말 훌륭한 팀이었다.

스팟!

린의 검이 허공을 가른다.

정확히는 안개로 변해 도망치려는 중급 뱀파이어에게 펼쳐진 강력한 오러 공격이었다.

[크아악!]

안개로 변한다고 해서 모든 데미지를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대략 안개로 변할 경우 70%의 데미지를 흡수할 수 있었지만 방금처럼 강력한 오러가 맺힌 공격은 워낙 기본 공격력이 강력해 충분히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단지 안개로 변할 경우 동시에 환영 효과까지 같이 일어나기 때문에 뱀파이어의 본체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 그것을 찾기가 힘들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안개로 변하고 박쥐로 변해도 나와 린의 시야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특히 평상시에도 늘 관찰 스킬의 효과가 어느 정도 발휘되는 나에게서 도망친다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린이 뱀파이어를 압박할 때부터 미리 준비하고 있던 난 천천히 천마신궁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관찰 스킬을 극대화시키며 주변의 안개를 모두 꿰뚫어 보았다.

나의 시야를 방해하던 안개가 모두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로지 붉은색 점 하나만이 눈에 들어왔다.

“빙고.”

너무나 쉽게 목표를 찾아낸 난 곧장 천마신궁의 활시위를 당겼다.

스킬 조합 저격 모드+결점포착(缺點捕捉)+파워 샷(Power Shot)

일격필살(一擊必殺)!!

피잉! 쯔팟!

천마신궁에서 쏘아진 강력한 한줄기의 마나 에로우가 불완전하게 흩어지고 있던 안개의 중심을 꿰뚫었다.

그리곤 내가 발견한 그 붉은 점에 정확히 명중했다.

퍼펑!

안개로 변한 뱀파이어의 핵(核)을 꿰뚫는 마나 에로우.

이 핵은 지금 안개로 변한 이 뱀파이어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중심이었다.

안개로 변할 경우 이 손톱만 한 핵이 뱀파이어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핵에 타격을 입는다는 건 곧 뱀파이어의 소멸을 의미했다.

[키에에에에에엑!]

괴성을 지르며 사라지는 안개.

이로써 또 한 마리의 중급 뱀파이어가 간단하게 쓰러졌다.

스으으으으∼

안개가 걷히며 뱀파이어가 떨어뜨린 몇 개의 아이템만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린과 함께 블러드 캐슬의 내성에서 사냥을 시작한 지 벌써 보름(게임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뱀파이어와 수인족을 잡으며 레벨을 꽤 올려놓았다.

처음에는 뱀파이어의 요상한 능력 때문에 살짝 당황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요령을 확실히 터득하기 시작했다.

특히 린은 천암류 검술 중에서도 가장 위력적인 몇 가지 초식을 이용해 뱀파이어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법을 선호했다.

반면 난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뱀파이어를 상대했다.

심지어 뱀파이어나 수인족을 길들여 볼 생각까지 했다. 물론 둘 다 테이밍이 불가능한 대상으로 나와 포기했지만 어쨌든 난 여러 스킬을 사용하며 최대한 많은 방법으로 뱀파이어를 잡았다.

그 와중에 라르엘과 묵도 종종 등장해 뱀파이어 사냥을 도왔지만 사실상 가장 듬직한 조력자인 린이 있는 이상 그들의 도움은 별로 필요가 없었다.

린이 압박하고 내가 마무리하고, 또는 내가 흔들어놓고 린이 박살내고. 이런 식으로 사냥이 계속 이어졌다.

물론 중간중간 린과의 대련도 빼먹지 않았다.

바쁘게 지나간 보름.

하지만 아직 우리는 내성의 핵심인 뱀파이어 타워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뱀파이어 타워는 블러드 캐슬 지역에 있는 던전이면서 가장 중요한 내성 건물이었다.

그곳에서는 진정한 뱀파이어라 할 수 있는 상급 뱀파이어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꼭대기 층에는 뱀파이어들의 왕,

뱀파이어 로드가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는 드래곤만큼은 아니어도 꽤 유명한 보스 몬스터였다.

마계의 4대 보스 몬스터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하고 강력한 존재였다.

4대 보스 몬스터를 등급으로 따지면 이제는 나의 수하가 된 묵이 가장 떨어졌고 이곳에 있는 뱀파이어 로드가 가장 높았다.

그만큼 강력한 보스 몬스터라는 뜻이었다.

특히 뱀파이어 로드는 강력한 정신 공격을 펼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정신력이 약한 유저가 있다면 순식간에 세뇌를 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준비를 안 하고 레이드를 하려고 했다간 순식간에 동료가 적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를 잡기 위해선 개개인의 능력만큼이나 강력한 정신력이 필요했다.

덕분에 정신력 부분에서 약점이 보이는 직업을 가진 유저들은 절대 뱀파이어 로드 레이드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건 뱀파이어 로드 레이드의 핵심 중 하나였다.

‘적이 될 동료라면 차라리 데리고 가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뱀파이어 로드 레이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었다.

어쨌든 난 여기까지 온 이상, 특히 린과 함께 팀을 이룬 이상 뱀파이어 로드를 한번 잡아볼 생각이었다.

적어도 나와 린의 정신력은 그 어떤 유저보다 강력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원칙인 ‘적이 될 동료는 데리고 가지 않는다’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워낙 강력한 보스 몬스터였기에 레이드 자체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강력한 조력자인 린이 있는 이상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자∼ 이제 슬슬 뱀파이어 타워를 공략하죠.”

때가 되었다.

마계의 4대 지역 중 하나인 블러드 캐슬 지역.

난 린과 함께 이 지역을 완전히 정복해 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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