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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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에서는 수없이 많은 동영상이 제작되고 유포된다.
몇몇 유저들은 자신의 활약을 동영상으로 찍어 편집한 후 올려 인기를 얻어 큰돈을 벌기도 했다.
그 동영상이 올라온 건 며칠 전이었다.
처음 그 동영상은 편집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다른 인기 동영상들처럼 좋은 음악이 배경음으로 깔리지도 않았다.
단지 화질이 괜찮고 시점이 좋게 촬영된 하나의 동영상일 뿐이었다.
더 재미있는 건 이 동영상을 올린 것이 그것을 직접 촬영한 유저가 아니라 하이퍼 넷에서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One’에 관련된 자료들을 해킹해 전문적으로 올리는 악명 높은 해커 ‘몽몽(夢夢)’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 동영상을 올리며 간단한 제목과 소개 글을 적어놓았다.
[개 발린 엠페러]
‘엠페러 길드 운영진 페이지에서 건진 매우 따끈따끈한 전투 동영상’.
그 동영상은 정확히 사흘 만에 하이퍼 넷 전역에 퍼져 나가며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특히 현재 ‘The One’에서 가장 잘나가는 길드인 엠페러, 그것도 엠페러의 가장 정점에 올라 있는 대군주 라트마와 그의 오른팔 엘렌, 그리고 엠페러의 최정예 유저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동영상이라 사람들의 관심이 엄청났다.
그런데 정말 충격적인 건 그 동영상의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이 동영상을 보고 ‘엠페러의 엄청난 굴욕’, 또는 ‘대군주의 절망’이라고 말했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검은 마녀와 회색 로브의 남자는 엠페러의 정예로 보이는 라트마와 엘렌, 그리고 그 친위대에 맞서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유명한 동영상을 많이 배출한(?) 검은 마녀와 달리 전혀 알려지지 않은 회색 로브의 남자가 보여주는 모습이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그는 권총과 장총을 양손에 들고 엄청난 움직임을 보여주며 엠페러 길드의 정예를 농락했다.
그는 놀랍게도 간간이 소환술로 보이는 몇 가지 능력도 보여주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그의 체술과 각종 전투 기술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이 동영상에서 그는 최상급 거너(Gunner)의 능력과 함께 체술과 소환 능력에서도 상급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한계를 벗어난 것 같은 몸놀림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움직임이라고 평가받았다.
적어도 PvP에 관련해서는 그 누구도 그와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기 힘들 것 같았다.
그나마 간간이 그와 비교되는 게 얼마 전 200 vs 1의 동영상으로 유명해진 전신(戰神)뿐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이 동영상은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200 vs 1의 PvP 동영상과 비교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어떤 이들은 그 두 동영상에 나오는 유저들을 상세히 비교하며 누가 더 강한지 논하기도 했다.
어쨌건 이 동영상은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각종 게임 방송에도 이 동영상을 경쟁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며 도대체 ‘동영상에 나오는 회색 로브의 남자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풀어보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나마 검은 로브의 유저는 검은 마녀라는 게 거의 확실한 사실로 굳어진 현 상황이었다.
하지만 회색 로브의 남자는 얼굴이 공개되었음에도 아무도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검은 마녀보다 더 대단한 모습을 보여준 회색 로브의 남자.
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지만 그의 정체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 대단하다는 하이퍼 넷의 추적자들도 혀를 내두르게 만든 회색 로브의 남자에 대한 정체.
결국 며칠이 더 흘렀지만 아무도 그의 정체에 대해 손톱만큼도 알아내지 못했다.
유저들 사이에서 ‘회색 학살자’라고 불리기 시작한 그.
그는 용문의 전신(戰神)과 함께 ‘The One’의 이대 살성(殺星)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등장한 다른 별들과는 또 다른 별이라고 소문나기 시작한 두 개의 별.
그들은 다른 별들과는 구분되기 위해 천살이성(天殺二星)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같은 별이지만 살(殺) 자가 붙은 또 다른 별.
바야흐로 새로운 최강자의 등장이었다.
덕분에 언젠간 자신 역시 그 별들의 일원이 되겠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던 라트마만 우습게 되었다.
아예 엠페러를 싫어하는 유저들은 대군주 라트마가 아니라 대망신 라트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것은 라트마의 인생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는 치욕스러운 별칭이었다.
꽝!
우지직.
한눈에 봐도 굉장히 고급스러운 책상이었지만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남자가 내려친 주먹을 견뎌내지는 못했다.
“자꾸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이유가 뭐야!!”
남자의 이름은 주익(朱翼).
세계 10대 기업 중 하나인 대명(大明) 그룹의 후계자이자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이었던 그는 중국의 황태자라는 애칭을 가진 남자였다.
그리고 또 하나,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 속에서는 최고의 길드라 불리는 엠페러를 이끌고 있었다.
대군주 라트마.
바로 그가 주익이었다.
물론 최근엔 이 ‘The One’에 집중한다고 개인적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고 핑계를 대며 연예 활동을 완전히 접었지만 그래도 그의 인기는 여전했다.
현실이든 가상현실이든 거의 모든 것을 소유한 그.
그런 그가 지금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의 화를 받아주는 이는 그의 개인 비서였다.
주익은 얼마 전 비서에게 돈을 얼마든지 써도 좋으니까 몇 가지 정보를 얻어오라고 시켰었다.
그런데 개인 비서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소식을 가져왔다.
그동안 원했던 건 그것이 무엇이라고 해도 모두 소유했던 주익에겐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이 몇 가지 일들이 너무나 짜증 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관련된 일은 모두 이런 식이었다.
예상을 빗나가고, 알 수 없고, 복수할 수 없는, 아주 짜증 나는 상황이었다.
“이이이이…….”
주익은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옆에 있던 아주 값비싼 도자기를 집어 던졌다.
와장창!
족히 몇억은 갈 것 같은 도자기였지만 주익에겐 당장의 화를 푸는 게 먼저였다.
“다시 한번 더 찾아봐라. 아예…… 이 기회에 ‘One’에서 활동하는 모든 탑 랭커들의 정보를 전부 정리해서 가져와라.”
주익은 살짝 화를 가라앉히며 다시 한번 개인 비서에게 명령했다.
어차피 화를 낸다고 해결될 일은 없었다.
“네, 네.”
개인 비서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이곳에 더 있어봤자 좋은 소리를 들을 일은 없었기 때문에 재빨리 나가는 게 그에게는 이득이었다.
비서가 나가고 주익은 한동안 의자에 앉아 일어나지 않았다.
그에게 이번 일은 엄청난 굴욕이었다.
그렇게 공을 들여 육성한 친위대가 모두 죽었다.
그뿐인가? 그의 오른팔이자 그의 정인(情人)인 엘렌도 죽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자신도 죽었다.
그것도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엄청난 굴욕을 겪으며 비참하게 죽었다.
모든 건 자신에게 유리했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경험치까지 희생해가며 특수 스킬 ‘대군주의 희생’까지 사용했다.
‘대군주의 희생’ 스킬이 어떤 스킬인가!
SS급 타이틀 대군주에 붙어있는 특수 스킬인 그것은 자신의 경험치를 소모해 주변에 있는 길드원들의 능력치를 최대 30%까지 증가시키는 엄청난 광역 버프 스킬이었다.
물론 길드원 한 명당 3%의 경험치를 소비해야 했고, 최대 100명까지밖에―최대한으로 사용 시 레벨 3 하락―적용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잘만 활용하면 대규모 전투에선 최강의 버프 스킬로 군림할 수 있는 그런 특수 스킬이었다.
유지 시간이 5분으로 비교적 짧은 게 살짝 아쉬웠지만 5분이면 어지간한 적은 모두 쓸어버릴 수 있었다.
원래 희생이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면 경험치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스킬을 사용한 후에는 모든 마력이 1이 되고 생명력도 거의 바닥나 힘을 잃고 쓰러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용만 하면 효과는 확실했기 때문에 늘 최후의 한 수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최후의 한 수까지 사용했다.
그런데도 졌다.
그것도 처참하게…….
그렇기에 주익, 아니, 라트마는 더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하늘을 빛내는 별? 웃기지 마라. 니들이 얼마나 대단한 놈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득.
주먹을 꽉 쥐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주익.
“결국 무엇이 가장 큰 힘을 지니고 있는지 알게 해주겠다. 니들이 별이라면 난 그 별의 빛을 모두 압도하는 만월(滿月)이 되어주마. 지금 이 순간부터 그들에게 나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겠다!!”
마음을 정했다.
이렇게 된 이상 더욱 ‘One’에 집중을 할 생각이었다.
라트마는 그동안 비교적 점잖게(?) 게임을 즐겨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집중적으로 ‘The One’을 공략할 마음이었다.
돈?
당연히 남들이 감히 생각하지 못할 만큼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아예 기존의 프로게이머단, 또는 프로게이머들을 대규모 스카우트해 엠페러의 힘을 더욱 강화시킬 생각이었다.
그뿐인가?
아예 각종 고급 아이템들을 현금으로 대량 구입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대명그룹의 후계자인 자신이 누군가에게 진다는 건 죽는 것보다 싫었다.
그래서 더욱 현실에서의 힘을 가상현실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결국 누가 더 강한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거다.”
강한 놈이 오래 살아남는 게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놈이 강하다는 말을 믿는 주익.
그에게 ‘One’은 더 이상 재미있는 유흥거리가 아니었다.
이것은 경쟁이고 투자였다.
자신의 뭉개진 자존심을 되찾아오는 아주 중요한 투자.
‘최고가 아니면 만족하지 마라.’
이 말은 대명그룹의 후계자들에게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좌우명 같은 것이었다.
주익은 이 말을 지킬 생각이었다.
최고!
그것이야말로 대명그룹의 후계자인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