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엠페러의 굴욕 ― 2
* * *
엠페러 길드의 친위대는 더 이상 제대로 진형을 잡지 못했다. 벌써 세 번이나 내가 진형을 처참히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형에 집착하다가 피해만 더 커져 버린 상황.
친위대 중 일곱 명이 차가운 바닥에 누우며 게임 아웃당했다.
린이 다섯 명, 내가 두 명을 게임 아웃시켰다.
현재 난 굳이 힘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부 드러내지도 않았다.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한 스킬이라고 해봤자 주로 레드, 이글을 사용한 사격 스킬이 대부분이었고 간간이 마법, 술법류 스킬을 사용하며 보조로 버프 계열과 치료 계열 스킬을 몇 번 사용했을 뿐이다.
물론 신법 계열 스킬은 계속해서 사용했지만 이건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어쨌든 20분이란 시간이 흘러 증명된 이 결과는 나와 린을 제외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단, 두 명을 상대하면서 오히려 일곱 명의 친위대가 누웠다.
라트마와 엘렌, 그리고 나머지 43명의 친위대 유저들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특히 라트마는 입을 굳게 닫고 굳은 표정으로 나와 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좀 멍멍 소리가 안 들려서 좋군.”
난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순간에도 친위대의 유저들은 나를 향해 공격을 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라트마와 마찬가지로 잔뜩 굳어 있었다.
스스슷!
난 거의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유수행 보법을 이용해 가볍게 공격을 피하며 슬쩍 오른팔을 뻗었다.
꽝!
“크아악!”
한 친위대 유저의 복부에 정확히 꽂히는 마력탄.
레드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탄은 마치 강력한 펀치가 꽂히듯 그 유저의 복부에 정확히 적중했다.
하지만 불쌍한 그 유저의 고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난 복부에 마력탄이 꽂히며 슬쩍 허공으로 떠오른 그 유저의 겨드랑이에 내 왼팔을 끼워 넣고 그대로 그 유저를 땅바닥에 메다꽂았다.
꽈광!
“으아아악!”
게임 아웃 될 정도는 아니겠지만 아마 스턴 효과 때문에 당분간 움직이기가 힘들 것이다.
나에게 접근했던 유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당해 버리자 친위대 유저들을 다시 거리를 벌리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이 순간에도 린은 그 무시무시한 검술로 몇 명의 친위대 유저들을 계속 뒤로 물러나게 만들고 있었다.
정상적이라면 다수가 소수를 압박해야 했지만 현재 상황은 소수가 다수를 압박하는 상황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가장 충격을 받은 건 라트마였다. 자신이 그렇게나 믿었던 친위대가 이렇게 쉽게 쓰러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빠득.
이를 가는 라트마. 그는 뭔가 결단을 내린 표정으로 조용히 엘렌을 불렀다.
“엘렌, 친위대를 뒤로 물려라. 포메이션 S로 가자.”
“하, 하지만…… 오빠,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요!”
계속해서 공격 마법으로 친위대들과 함께 나와 린을 공격하던 엘렌은 캐스팅하던 것마저 잊고 다급히 외쳤다.
“아니다. 우리가 검은 마녀를 너무 우습게 봤다. 그리고 저 녀석…… 저 녀석의 능력은 우리의 예상을 너무 뛰어넘었다.”
“으음…….”
라트마가 결정을 내렸지만 엘렌은 뭔가 망설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어서!!”
“네, 알았어요. 친위대!! 포메이션 S!! 포메이션 S다!!”
엘렌은 입술을 꽉 깨물며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그런 엘렌을 보며 포메이션 S라는 것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았다.
지금까지 몇 번의 진법을 사용하며 큰 손해만 본 그들이 또 다른 진법을 선택했다.
그렇다는 건 이번 진법은 분명 뭔 특별하다는 뜻이었다.
“린, 일단 붙어요.”
난 살짝 거리가 멀어진 린 쪽으로 붙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도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빠르게 내 쪽으로 붙었다.
파파팟!
마치 썰물 빠져나가듯 나와 린을 놔두고 뒤로 물러나는 엠페러 친위대.
분명 그들은 뭔가 회심의 공격을 하려는 거 같았다.
“……인정한다. 너희들은 분명 강하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개인일 뿐이다!!”
라트마는 무참히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와 린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리곤 양손을 양옆으로 뻗었다.
“대군주의 위대함을 보여주마!!”
스으으으으∼
갑작스럽게 요동치는 마력.
라트마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양옆에서 커다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우어어어어!”
…….
…….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친위대와 엘렌.
그녀와 친위대는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강하게 몸을 떨었다.
나와 린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분명 평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마치 그 사실을 뒷받침이라도 하는 것처럼 양옆으로 팔을 벌리고 강력한 마력의 파동을 뿜어낸 라트마가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쿵!
“……크크크크, 조용히, 뒈져라.”
마치 기운이 전부 빠져나간 사람처럼 힘없이 말하는 라트마. 그는 확실히 뭔가 특별한 기술을 사용한 것이 분명했다.
엘렌과 친위대의 상태는 라트마와는 정반대였다.
그들의 눈동자는 모두 붉게 충혈되었고, 그들의 몸에서 요상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분명 라트마가 그들에게 뭔가 특수한 스킬을 사용한 게 틀림없었다.
아마도 그의 특별한 타이틀 ‘대군주’와 관련된 것일지도 몰랐다.
“이 포메이션을 끌어낸 너희들의 실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너희들은 더욱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엘렌은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퍼퍼펑!
그녀의 오른팔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강력한 화염.
너무나도 빠르고 강력한 이 화염 마법 공격은 지금까지 엘렌이 사용했던 그 어떤 공격보다 위력적이었다.
나와 린은 빠르게 흩어지며 이 공격을 피했다.
꽈과광!
그나마 우리니까 이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지 평범한 유저들이었다면 고스란히 공격을 맞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공격은 위협적이었다.
‘변했다.’
난 이 한 번의 공격으로도 엘렌이 방금까지의 그 엘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린을 바라보며 슬쩍 고개를 흔들었다.
린 역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본능적으로 엘렌의 변화를 눈치챘다.
변화는 엘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친위대 전체가 변했다.
그들이 내뿜는 이 기세는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기세였다.
무엇이 이들을 변하게 했는가?
그 답은 바닥에 쓰러져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라트마가 쥐고 있었다.
그는 힘겹게 상체만 일으켜 세운 후 나와 린을 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이제 게임은 끝났다는 것 같은 미소.
아주 기분 나쁜 미소였다.
‘SS급 타이틀 대군주의 특수 스킬인가?’
현재로선 그것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어느새 친위대가 한꺼번에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초반 기세에서 나와 린에게 밀려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던 친위대.
그런 그들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나와 린을 압박하려는 중이었다.
물론 그건 그들의 의도일 뿐이었다.
그들은 나와 린을 압박할 수, 아니, 완전히 제압하거나 아예 박살을 내서 처참히 죽여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었다.
변화?
그런 게 그들에게만 가능한 것일까?
심지어 린도 실력의 삼 푼 정도는 숨겨두고 있었는데 나는 어떨까?
“……속단하지 마라. 이 게임의 엔딩은 내가 결정한다.”
난 빠르게 타이틀을 바꿨다.
타이틀의 이름은 ‘천마의 후예’.
그리곤 곧장 그 타이틀의 특수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특수 스킬 발동, 천마군림(天魔君臨)!!
스스스슷!
천마군림이 활성화되며 지정된 영역 안에 있는 나와 적대시하고 있는 이들의 능력치가 하락했다.
아쉬운 건 친위대들은 모두 천마군림 효과가 적용된 것 같았지만 엘렌에게는 이 효과가 적용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도 그녀가 나보다 레벨이 조금 높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이건 그냥 서비스(?) 같은 디버프일 뿐이었다.
천마군림을 발동시킨 난 또다시 타이틀을 바꾸었다.
이번 타이틀은 ‘최초의 영웅’.
그리고 또 한 번 타이틀의 특수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특수 스킬 발동, 영웅의 포효!!
촤아아아아!
온몸을 휘감는 강력한 힘.
변화?
진정한 변화는 이런 것이다.
“죽어랏!!”
나를 향해 커다란 도끼를 휘두르는 한 명의 친위대.
난 곧장 유수행을 발동시키며 그 도끼를 오른쪽 어깨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흘려보냈다.
그리곤 곧장 양손으로 그 친위대의 팔과 어깨를 낚아챘다.
“하룻강아지가 범을 무서워하지 않으면…….”
우드득!
힘없이 꺾여 버리는 친위대 유저의 왼팔과 왼쪽 어깨.
“으아아악!”
난 그 상태로 그 유저를 곧장 허공으로 던져버렸다.
퍼퍽!
허공으로 떠오른 친위대 유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내 손엔 레드와 이글이 들려 있었다.
“이렇게 되는 거야.”
스킬 발동, 난사(亂射)!!
꽈과과광!
불을 뿜는 레드와 이글
퍼퍼퍼펑!
그 레드와 이글에서 쏘아진 흑암탄은 고스란히 허공에 띄워진 친위대 유저에게 적중했다.
“커어어억!”
털썩.
정신을 잃은 그 유저는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친위대와 엘렌이 뭔가 특수한 힘을 얻고 나와 린에게 공격을 시작한 그 순간.
나 역시 숨겨두었던 힘을 개방한 후 곧장 친위대 유저 한 명을 걸레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으로 힘의 차이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
멍청한 강아지들을 강력한 투견(鬪犬)으로 변화시켰다고 해서 대호(大虎)를 잡을 순 없는 법이다.
거기다 대호도 가만히 있지 않고 더 특별한 백호(白虎)로 변화해 버리면 승부는 뻔히 결정 났다.
거기다 그렇게 변하는 존재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면 더 이상 얘기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결정적으로 변화를 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검은 마녀 린 역시 그녀의 방식대로 변화했다.
몸에 걸치고 있던 그 무거운 수련용 옷들을 벗어버리는 린. 그 와중에도 가장 무거운 후드 망토는 벗지 않는 걸 보면 어지간히 얼굴 노출을 꺼리는 린이었다.
어쨌든 린도 대부분의 수련용 옷을 벗어버리며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변화한 그녀는 자신을 향한 공격들을 간단히 피하며 전보다 더 강력하고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엘렌과 친위대의 변화.
그리고 곧장 이어진 나와 린의 변화.
라트마는 알고 있을까?
자신이 자신감 있게 만들어낸 그 변화가 결국 헛수고였다는 것을…….
아마도 그것을 알면 그는 꽤 속이 상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은 냉혹한 것을…….
엠페러의 군주 라트마.
지금까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건 적어도 오늘은 그의 날이 아니었다.
아니, 그의 날이 아닐 뿐만 아니라 아주 큰 굴욕이 기다리는 치욕의 날이었다.
내가 그에게 주는 두 번째 굴욕의 순간.
지금부터는 그에게 진짜 지옥을 구경시켜 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