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60화 (160/250)

160. 재회

* * *

블러드 캐슬 외곽 지역에서의 사냥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벌써 일주일 가까이 수인족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늑대 인간, 호랑이 인간, 사자 인간, 쥐 인간, 악어 인간, 독수리 인간 등등 수많은 수인족이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늑대, 호랑이, 사자, 독수리, 악어는 5대 수인족이라 불리는 상급의 수인족이었다.

그들은 육체적 능력만큼은 뱀파이어도 능가할 만한 가공할 위력을 보여주었다.

레벨은 600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우습게 봐서는 안 되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고 더 쏠쏠했다.

특히 묵이 좋아했다. 묵의 말에 따르자면 수인족은 원래 마령의 숲에 존재하던 마수들을 뱀파이어들이 유혹해 만든 키메라 같은 존재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한때 마령의 숲의 지배자였던 묵은 이런 수인족을 변절자라 부르며 매우 싫어했다.

그래서 그들을 상대할 땐 평소보다 더 열심히 움직였다.

비록 지금은 마령의 숲을 떠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때의 기억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묵에게 수인족은 처리해야 할 더러운 변절자들이었다.

그렇게 묵과 라르엘까지 합세해 외곽 지역을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 나갔다.

그동안의 폐관 수련(?)으로 스킬 숙련도는 꽤 많이 올려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사냥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마법과 술법에 대한 이해도가 급상승했다.

시전 속도와 위력 모두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더 빠르게, 그리고 더 강력하게 펼칠 수 있는 마법과 술법들. 이젠 어디 가서 대마법사라고 거짓말을 해도 다 믿어줄 것 같았다.

그런 능력들은 사냥에 큰 도움을 주었다.

바로 지금처럼!!

스킬 융합, 파이어 볼(Fire Ball)+파이어 랜스(Fire lance)+플레임 핑거(Flam Finger)+블레이드 파이어(Blade Fire).

플레임 그레이트 소드(Flam Great Sword)!!

화르륵!

내 손에 거대한 화염의 검이 만들어졌다.

화(火) 속성 친화력이 높은 내가 이런 고급 화염 마법을 사용하면 더욱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합!”

난 가볍게 기합을 넣으며 그대로 그 커다란 화염의 검으로 수인족의 허리를 베었다.

[크아앙!]

화아악!

허리가 잘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몸 전체가 타버리는 수인족. 이 화염의 검은 진짜 검이 아닌 마법으로 만든 검이었다. 당연히 그 사용 용도도 베는 것이 아닌 대상을 완전히 태워 버리는 것이었다.

쿠쿵!

커다란 너구리로 변하고 있던 수인족 하나를 가볍게 태워 버린 난 곧장 몸을 돌리며 오른발을 내질렀다.

스킬 조합, 회전 돌려차기+선풍각(旋風脚)+파워 킥(Power Kick)

허리케인 킥(Hurricane Kick)!!

꽝!

[캐액!]

내 등 뒤로 몰래 접근하던 또 다른 너구리 수인족이 강력한 킥 한 방에 목이 꺾이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사이 묵은 또 하나의 너구리 수인족의 목을 물어뜯는 중이었다.

물론 라르엘도 그런 묵을 돕고 있었다.

너구리 수인족 세 마리와 갑작스럽게 조우했지만 그 대응은 매우 빠르고 확실했다.

그 결과 세 마리의 수인족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일주일간의 사냥이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현재 레벨을 541까지 올려놓았다.

파티해야 잡을 수 있는 녀석들을 솔로 플레이로 무지막지하게 잡아버리는 것을 감안해 보면 그렇게까지 빠른 레벨 상승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직업 특성상 받은 경험치 패널티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패널티가 있다면 그걸 뛰어넘을 만큼 더 노력하면 그만이었다.

“적당히 해라.”

우드득!

난 쓰러진 수인족의 목을 다시 한번 강하게 내려치며 묵을 향해 말했다.

내가 깔끔하게 수인족들을 사냥하는 것에 반해 묵은 아주 터프하게 수인족을 사냥했다.

묵이 사냥한 수인족은 거의 걸레처럼 변했으니 묵이 얼마나 터프한 사냥을 하고 있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크르르…… 변절자들은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묵은 수인족과 만난 후로 흥분된 상태가 지속되는 중이었다. 확실히 그가 마령의 숲을 지배하는 존재였다는 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사실 내 입장에선 묵이 저렇게 사냥에 열을 내서 나쁠 게 별로 없었다.

비록 묵이 잡는 몬스터에서는 경험치를 얻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전리품은 내 것이 되었다. 그리고 묵이 강해지는 건 곧 내가 강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점이 더 많았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 멍청한 수인족 놈들만 잡고 있을 거예요? 저기 저…… 블러드 캐슬에는 언제 들어가실 예정이에요?]

나와 같이 쿠할니스에 들어갔다 오고 나서 부쩍 전과 다르게 ‘생각’이란 것을 자주 하게 된 라르엘.

그래서 난 요즘 웬만하면 라르엘을 소환해 놓았다.

전투에도 도움이 되고 특히 정찰 능력이 뛰어나 이젠 없으면 서운할 정도의 역할은 하고 있었다.

“글쎄…… 한 며칠만 더 눈치 좀 보고 들어가 보자.”

일단은 외곽 지역에서 레벨 550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블러드 캐슬 내부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성곽 안으로 침투해 볼 생각이었다.

아무리 내가 미래를 적어놓은 기록을 보고 블러드 캐슬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았다지만 그래도 실제로 경험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당연히 충분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정찰이나 더 해봐라. 이런 너구리같은 약한 놈들 말고…… 오대 수인족 놈들 좀 찾아봐. 그 녀석들 정도는 되어야 사냥할 맛이 나지 않겠냐?”

[네, 네. 알겠습니다.]

푸드득!

내 어깨에 앉아있던 라르엘은 약간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라르엘이 정찰을 한 후 목표물을 선정해 주면 나와 묵이 최대한 은밀히 접근해 빠르고 정확하게 목표물을 해치우는 식으로 계속 사냥을 해왔다.

의외로 나와 라르엘, 그리고 묵의 호흡은 잘 맞는 편이라 사냥 속도가 꽤 빨랐다. 빠를 뿐만 아니라 무척 안정적이기도 했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 * *

채앵!

그녀의 검이 뽑혔다.

그리고 그 순간 어김없이 한 몬스터의 머리통이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흡사 쥐의 머리와 비슷한 머리.

하지만 쥐의 머리라고 하기엔 너무 커다랬다.

이것은 수인족, 그중에서도 쥐인간이라 불리는 몬스터의 머리였다.

린은 현재 블러드 캐슬 외곽 지역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이곳이 블러드 캐슬 지역이란 걸 몰랐다. 단지 신기한 몬스터들이 보여 접근해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 신기한 몬스터들이 상당히 공격성이 강한 놈들이었다.

그래서 싸웠다.

단순하지만 역시나 그녀다운 행동 패턴이었다.

새카만 로브에 검은 후드 망토까지 뒤집어쓴 린의 모습은 전형적인 검은 마녀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은색 검.

그것은 몇 개월 전 심연의 미궁에서 얻은 엘리트 검 ‘심연의 마검’이었다.

이 검은 그녀와 궁합이 너무나 잘 맞았다.

특히 심연의 미궁에서 같이 얻은 엘리트 장신구(반지) ‘심연의 링’과 세트 효과를 내며 암흑투기를 극대화시켜 주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그녀의 천암류 검술과 최고의 궁합을 보여주었다.

예전에도 강했지만 계속해서 더 강해지고 있는 그녀.

과연 최강의 여인, 검은 마녀 린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작 ‘One’에서 가장 강한 유저 중 하나로 구분되는 그녀는 그런 자신의 강함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One’의 세상을 최대한 즐길 뿐이었다.

탁탁.

조용히 자신의 검에 살짝 묻은 하얀빛 가루를 털어내며 주변을 둘러보는 린.

너무나 빠르고 무시무시한 그녀의 일격에 쥐 인간 수인족 한 마리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본능적인 두려움.

린은 그런 녀석을 굳이 쫓지 않았다.

이게 그녀의 스타일이었다.

자신을 공격하면 벤다.

방해하거나 귀찮게 해도 벤다.

하지만 물러나면 그냥 놔둔다.

검은 마녀만의 철칙. 이 철칙이야말로 그녀를 그녀답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더 이상 눈앞에 쥐 인간은 덤비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는 마계의 이런 점이 좋았다.

철저한 사실감. 대륙의 몬스터들은 이런 사실감이 살짝 떨어졌었다.

네파루의 몬스터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가상현실에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은 그녀였기에 당연히 가장 사실감 있는 가상현실을 원했다.

그래서 더욱 ‘One’에 빠져들었었다.

“좋아…….”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는 보면 볼수록 그녀를 만족시켜 주는 장소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만족스러움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었다.

짝짝짝.

다른 수인족을 찾아 움직이려는 그녀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매우 기분 나쁜 박수 소리.

그녀는 본능적으로 이 박수 소리에 숨겨진 강한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이군.”

목소리.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기억이 나는 목소리였다. 그녀를 가장 귀찮게 하는 놈들의 대장.

바로 대군주 라트마의 목소리였다.

“…….”

그녀는 말없이 라트마를 바라보았다.

“검은 마녀,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이런 걸 인연이라고 하는 건가?”

라트마는 웃고 있었다.

그는 눈엣가시와 같던 린을 여기서 만난 걸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상황은 절대적으로 그가 유리했다. 정예 중의 정예인 선발대들, 그리고 그의 오른팔이자 아주 유명한 랭커 중 한 명이었던 엘렌.

거기에 얼마 전 얻은 자신의 SS급 타이틀 ‘대군주’의 효과라면 아무리 검은 마녀라고 해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꾸준히 당한 굴욕을 한 번에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라트마는 벌써부터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악연이라고 하지.”

린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하하하하하, 인연이든…… 악연이든…… 어쨌든 정말 반갑군! 요즘 유저들이 한창 대륙의 하늘을 빛내는 별들 중 하나로 꼽던데…… 아.주. 영광스럽겠어?”

라트마는 은근히 린을 비꼬며 놀렸다.

요즘 하이퍼 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게 바로 양 대륙의 최강자를 꼽는 것이었다.

유저들은 몇 명의 유저들을 꼽으며 그들을 하늘에서 빛나는 별에 비유했다.

사실 누구보다 그 별의 일원이 되고 싶었던 라트마였다. 하지만 그는 그 일원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별의 일원은 오로지 개인적의 능력만으로 뽑았기 때문에 그는 몇 가지 부분에서 유저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런데 린은 그 빛나는 별 중 하나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라트마는 린을 더욱 싫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딴 건 개나 줘버려.”

린은 정말 그런 쓸데없는 감투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런 감투는 있어도 없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공인으로서 자각이 전혀 없군.”

라트마는 그런 명예로운 지위 따위엔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 린의 모습에 더욱 화가 났다.

어떻게!

그토록 영광스러운 별 중 한 명이 된 걸 저토록 무심하게 무시한단 말인가!!

그의 머릿속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린이었다.

“……변함없이 시끄럽네…….”

스르릉.

린은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심연의 마검을 뽑아 들었다.

챙!

“……그냥 덤벼.”

츠츠츳!

강력한 암흑투기를 사방으로 뿌리며 엠페러 길드원들을 모두 상대할 기세를 내뿜는 린.

그녀는 정말 자신만의 강렬한 색을 끝까지 유지했다.

“오만한 년!”

라트마는 그런 린의 태도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잘못을 빌거나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처참하게 쓰러뜨려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린은 오히려 모두를 상대할 자신이라도 있는 것처럼 먼저 전투적인 자세를 취했다.

늘 수많은 유저를 싸우지도 않고 굴복시켰던 라트마의 입장에선 여간 짜증 나는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라트마는 분명 속이 시원해야 할 장면이었건만 이 순간에도 자신의 속을 긁는 검은 마녀를 보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래 봤자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자신에겐 엠페러 길드의 정예 50명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엘렌도 있었다.

아무리 검은 마녀가 대단해도 이 상황에선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알까?

세상엔 늘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디서 이렇게 멍멍거리는 소리가 들리나 했더니…… 여기였네?”

린의 등 뒤로 어둠을 뚫고 한 남자가 등장했다.

어깨에 붉은색 새가 앉아있는 칙칙한 회색 로브를 걸친 남자.

그는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라트마를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블러드 캐슬 외곽 지역에서 사냥을 즐기던 남자, 바로 신이었다.

“아!!”

린은 한눈에 신을 알아보았다.

신의 모습은 폴리모프 망토를 사용한 상태라 그녀가 알고 있는 본모습과는 전혀 달랐지만 그녀는 특유의 기감(氣感)으로 신을 알아보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계에서는 더 예민한 기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라트마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라트마와 처음 만났을 땐 아예 후드 망토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고 설사 그때의 얼굴을 봤다고 해도 지금의 모습은 폴리모프 망토에 의해 완전히 변해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절대 신을 알아볼 수 없었다.

“웬 놈이냐!”

라트마는 갑자기 등장한 신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 진짜 개소리가 멈추지를 않네.”

빠득.

“뭐, 뭐라고? 개소리? 이런 썩을 놈이…….”

라트마는 이제야 신이 말하는 개소리가 바로 자기의 말을 의미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분노 게이지가 급속히 치솟았다.

“멍멍멍…… 이건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네.”

신은 슬쩍 린 옆으로 다가서며 라트마의 성질을 계속 건드렸다.

“이이이이…….”

라트마가 언제 이런 굴욕을 당해봤던가?

현실에서도, 그리고 이곳 가상현실 속에서도 늘 최고의 자리에만 존재했던 라트마이다.

그는 자신이 원했던 건 거의 모두 가졌다.

그런 그에게 이런 굴욕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누가 감히 자신을 이렇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

라트마가 분노에 몸을 떨자 엘렌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먼저 나섰다.

그녀의 양손에 맺히는 두 개의 화염 덩어리.

확실히 대단한 실력의 마법사답게 별다른 캐스팅 없이도 위력적인 마법을 가볍게 활성화시켰다.

퍼펑!

그녀는 가볍게 두 개의 화염 덩어리를 린과 신에게 날린 후 눈짓으로 자신의 엠페러 길드의 정예들, 일명 엠페러 친위대라 불리는 이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친위대. 그들은 범상치 않은 몸놀림으로 재빨리 신과 린을 포위했다.

퍼퍼펑!

엘렌이 날린 화염구가 폭발했다.

정확히 말하면 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두 번의 칼질에 허공에서 헛되이 폭발했다.

“네년의 검이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결국 쓰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엘렌 역시 검은 마녀의 악명(?)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친위대를 믿었다.

이 친위대 50명은 자신이 직접 뽑고 직접 훈련시킨 엠페퍼의 최고 정예들이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은 엠페러 길드가 특별히 고르고 고른 최상급의 아이템들이었고, 이들이 익힌 각종 스킬 역시 엠페러 길드가 엄청난 돈을 투자해 구한 것들이었다.

그뿐인가?

이들이 함께 연마한 엠페러 친위대 전용 진법들 역시 쉽게 구할 수 없는 상급의 진법들이었다.

이래저래 강력하게 조련된 친위대.

거기에 자신까지 함께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어떤 세력, 또는 길드들이 덤벼도 모두 물리칠 자신이 있었다.

“휴우∼ 무시무시하군.”

신은 어깨를 으쓱하며 조용히 린과 등을 맞대고 섰다.

“……여긴 언제 오신 거예요?”

린은 여기서 신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살짝 놀란 것 같았다.

오히려 엠페러를 만났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과는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한 일주일 정도? 어쨌든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제가 조만간 다시 만날 거라고 했잖아요.”

신은 크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게 정말 인연인 거죠.”

린은 마치 라트마에게 인연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듯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자∼ 회포는 좀 나중에 풀고…… 여기 이 시끄러운 멍멍이들부터 해결하죠.”

“네.”

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심연의 마검을 꽉 잡았다.

그녀는 우연히도 ‘One’에서 유일하게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과 조우했다.

이 우연한 만남은 그녀에겐 참 즐거운 일이었다.

귀찮고 짜증 나는 엠페러 길드를 만나 가라앉았던 기분이 신을 만나며 다시 좋아졌다.

좋은 만남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두꺼운 후드 망토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현재 린의 얼굴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소가 자연스럽게 피어났다.

그녀의 미소를 누군가 본다면 필히 넋을 잃고 바라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얼굴은 두꺼운 후드 망토에 가라져 있었고, 그 결과 아무도 그녀의 미소를 보지 못했다.

보지 못해서 더 애틋한 그녀의 미소.

하지만 적어도 특별한 한 명은 그 미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미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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