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다시 찾은 마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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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는 네파루에 비교하면 그리 큰 지역은 아니었다. 전체 크기를 보아도 네파루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거기에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지형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실제로 느껴지는 크기는 네파루의 1/5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워낙 네파루나 동대륙, 서대륙이 거대했기 때문에 마계가 작아 보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의 ‘One’의 스케일을 감안하면 마계는 작은 크기에 속하는 게 맞았다.
그래서 내가 블러드 캐슬로 이동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마계 특유의 매우 공격적인 몬스터들 때문에 조금씩 지체되기는 했지만 난 깔끔하게 모조리 도륙(屠戮)해 버리며 최단 거리로 블러드 캐슬까지 길을 뚫고 지나갔다.
정확히 3일(게임 시간) 후 블러드 캐슬의 시작 지점이라 할 수 있는 블러드 브릿지에 도착했다.
이곳부터가 바로 벰파이어의 영역인 블러드 캐슬의 시작이었다.
블러드 캐슬의 외곽 지역은 수인족 중에서도 하급에 속하는 일반 수인족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겉보기엔 보통 인간들과 비슷하게 생긴 수인족.
하지만 성격이 난폭하고 적을 보면 각종 동물로 변해 공격하는 몬스터였다.
난 조심스럽게 블러드 브릿지를 건너 블러드 캐슬 외곽 지역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수인족으로 보이는 몬스터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화끈하게 정면으로 길을 뚫었지만 여기서부턴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런 외곽 지역에 있는 수인족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화끈하게 도륙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부터는 블러드 캐슬 지역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되었다.
벰파이어들은 기본적으로 수인족을 정신 지배해 다스렸기 때문에 괜히 여기서 수인족을 학살했다간 벰파이어들이 위기를 느끼고 미리 준비할 수도 있었다.
괜히 그렇게 위기를 느끼게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천천히 레벨부터 올린 후 본격적으로 블러드 캐슬 내부 지역으로 들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외곽 지역부터 차근차근 공략할 생각이었다.
뚜득, 뚜득.
살며시 몸을 풀며 수인족들을 바라보았다.
마계에 도착해 여기까지 이동하며 어느 정도 화끈하게 몸을 풀었지만 아직도 왠지 몸이 근질근질했다.
확실히 너무 오래 쉰 것 같았다.
“자, 그럼 놀아볼까?”
블러드 캐슬에서의 사냥 시작.
그 첫 번째 제물은 하급 수인족이었다.
* * *
마계란 곳이 알려지고 대략 일주일이 흘렀다.
많은 유저들이 마계로 가는 방법을 알아내고 직접 마계로 이동해 왔다.
당연히 가장 먼저 마계를 찾은 건 최상위권 유저들이었다. 그들은 네파루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큰 기대를 가지고 마계로 마구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계에 도착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마계는 네파루와 전혀 다른 곳이란 것을 깨달았다.
썰렁한 카디악.
불편한 사냥터.
거기에 마음대로 귀환도 할 수 없는 환경.
당연히 제대로 준비도 못 하고 온 그들은 크게 당황해 어쩔 수 없이 지인들이나 자신의 세력의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일단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마계에서 떠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계를 탐험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유저들의 마계 탐험이 시작되었다.
그나마 여러 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마계였지만 나름 괜찮아 보이는 사냥터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자 유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런 사냥터에 자리를 잡았다.
특히 대형 길드들이나 최상위권의 랭커들은 의외로 효율이 좋은 몇 군데 사냥터를 선점하기 위해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이들 중 가장 공격적으로 마계를 탐색하는 유저가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세력이 있었다.
엠페러.
이제는 명실상부한 ‘One’ 최강의 길드라고도 불리는 그 엄청난 규모의 대형 길드.
그런 엠페러를 이끄는 라트마는 철혈의 군주, 또는 대군주(大君主)라 불리며 거의 몇십만의 유저들의 정점에 서 있었다.
그런 그가 직접 마계에 왔다.
네파루의 경우 초반에 그가 예측을 잘못해 다른 것을 먼저 신경 쓰고 뒤늦게 직접 찾아가 신경을 쓰는 바람에 이리저리 손해를 많이 봤다고 알려졌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마계가 열리자마자 누구보다 가장 먼저 나서서 선발대를 직접 이끌고 마계로 건너왔다.
물론 그런 그의 정성을 마계가 완전히 무시해 버렸지만,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마계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이득을 얻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라트마가 이끌고 온 엠페러의 선발대는 엠페러 길드 연합에서도 가장 강력한 유저들만이 모여 있다는 엠페러 최강의 길드 엠페러 제 1길드 ‘마스터 엠페러’의 정예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강했다.
마스터 엠페러 길드 자체가 모두 마스터 유저 이상만 들어올 수 있는 엠페러 연합의 정예 길드였기 때문에 당연한 얘기일지 몰랐다.
특히 이번 선발대는 마스터 엠페러 길드의 길드 마스터이자 라트마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대군주의 마법사 엘렌이 직접 자신의 길드에서 뽑은 정예 중의 정예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강했다.
네파루에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 한 수였다.
결과적으로는 그다지 뛰어난 한 수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아무것도 못 얻은 건 아니었다.
마계가 아무리 효율이 안 좋은 곳이라고 해도 그건 네파루와 비교했을 때의 얘기지 동대륙이나 서대륙과 비교하면 거의 비슷한, 아니면 조금 떨어지는 정도의 효율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거기에 마계는 이제 막 공개된 새로운 땅이었다.
당연히 어떤 것이 숨어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라트마 일행은 철저히 마계를 탐색하기로 결정했다.
엠페러는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계에서도 가장 강한 몬스터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마계의 남쪽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몇몇 길드나 유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엠페러의 남하 소식에 모두 방향을 바꿔 버렸다.
그만큼 현재의 엠페러는 강력한 세력이었다.
물론 그런 엠페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이들도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극히 적은 숫자였다.
그렇기에 적어도 대놓고 엠페러의 행보를 가로막는 이들은 없었다.
단지 전혀 그들이 눈치를 보지 않는 유저가 있을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조우(遭遇)한다면 엠페러 쪽에서 더 열을 내고 달려들 유저라고 해야 할까?
오래전 엠페러와 악연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계속 사이가 좋지 않은 한 유저.
그 대단한 길드라는 엠페러와 척을 졌음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는, 오히려 간간이 엠페러를 곤란하게 만들기까지 하는 그런 유저.
바로 검은 마녀, 린이었다.
린 역시 마계로 와 있었다.
다른 이들은 마계에 도착해 모두 당황스러워했지만 린은 좀 달랐다.
오히려 린은 마계가 네파루보다 좋다는 생각을 했다.
왠지 그동안의 ‘One’과 다르게 인공적인 느낌이 나서 네파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린.
그런데 마계는 반대로 ‘One’보다 더 사실적인, 그리고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서 좋아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이런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그래서 당분간 마계를 절대 떠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카디악 근처는 너무 시끄럽고 사람이 많아서 좀 멀리 여행을 다닐 필요를 느끼긴 했다.
그래서 그녀는 가장 끌리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 방향은 마침 엠페러가 움직인 마계의 남쪽이었다.
그녀는 중간에 엠페러에 대한 소문도 얼핏 들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것에 신경 쓸 그녀였으면 애초에 엠페러와 분쟁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히 마계의 남쪽으로 내려왔다.
혹시 엠페러와 마주친다면?
그건 대충 그때 가서 생각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그녀. 확실히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여인이었다.
엠페러와 린.
그렇게 둘 모두 천천히 마계의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블러드 캐슬의 존재를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진행 방향은 정확히 블러드 캐슬 지역으로 향하는 방향이었다.
이대로라면 약 일주일 후 그들은 블러드 캐슬 지역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지역에서 과거 매우 좋지 않은 추억(?)을 가진 이들이 다시 만나게 된다.
엠페러와 린, 그리고 신.
재미있게 꼬여만 가는 마계의 상황.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건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엠페러도 예전의 엠페러가 아니고, 린도 역시 마찬가지고, 결정적으로 신은 정말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과거의 결과가 바뀔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유지될 것인가?
그건 이대로 조금만 더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