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58화 (158/250)

158. 다시 찾은 마계 ― 1

* * *

마계로 가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아직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동대륙과 서대륙의 여러 도시에 어두운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마계의 여행자라는 NPC들이 등장했다.

도시의 어두운 골목 같은 곳에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요상한 NPC들. 마계로 가기 위해선 그들이 꼭 필요했다.

그들은 여행자이자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를 하면 그들은 간단한 몇 가지 퀘스트를 주었다. 바로 그 퀘스트들이 마계로 가는 티켓이었다.

그 퀘스트들을 해결하면 마계의 여행자들이 직접 마계로 유저들을 텔레포트시켜 주었다.

당연히 보헤닌에도 마계의 여행자들이 생겨났다.

난 보헤닌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그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들 중 한 명을 찾아냈다.

난 그 여행자에게 말을 걸었다.

어두운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그들은 왠지 대화하면 안 될 것 같은 NPC들이었지만 그건 단지 분위기가 그럴 뿐이었다.

그들은 아주 간단하게 나의 대화에 응답했다.

“불멸의 인(印)을 지녔지만 사실은 어리석은 필멸자일 뿐인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마계의 여행자들은 보통의 NPC들과는 다른 식으로 얘기를 했다.

그들은 나를 필멸자라고 불렀다.

이건 그들이 뭔가 이 세상의 숨겨진 비밀에 대해 약간이라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계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의심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알고 있는 비밀을 캐낼 수는 없었다.

일단은 마계로 이동하는 것이 먼저였다.

어차피 이들은 마계로 이동하는 게이트와 같은 단순한 존재였기 때문에 많은 비밀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빨리 마계로 이동해 그곳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보는 게 더 좋았다.

“마계라……. 그래, 난 그곳에서 이곳으로 넘어왔지. 마계에 대해 알고 싶다고? 그렇다면 내가 왜 이곳으로 넘어왔는지부터 알 필요가 있을 것 같군.”

마계의 여행자는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리곤 마계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마계란 그렇게 차원의 틈 사이에 만들어졌다네. 여러 가지 힘의 작용으로 만들어졌기에 마계가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고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지. 단지…… 한 가지 확실한 건 현재 서서히 마계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네. 우리 마계의 여행자들은 그런 마계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으로 넘어왔네. 마계의 축을 뒤흔드는 거대한 힘에 대항하기 위해 그 힘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서 몇 가지 공작을 펼치는 중이지. 자네…… 혹시 마계를 도울 마음이 있다면 내 부탁을 몇 가지 들어주겠나? 별로 어렵지는 않을 걸세. 만약 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난 자네를 마계로 보내주겠네. 자네와 같은 필멸자들은 필시 마계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볼 필요가 있을 걸세.

마계의 여행자가 쉴 새 없이 떠든 마계에 대한 이야기.

난 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적어도 나에게 이 이야기는 단순한 게임 속 배경 설명이 아니었다.

‘One’이 더 이상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였기에 이 이야기에 숨은 묘한 사실을 몇 가지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마계는 평범한 곳이 아니었다.

이로써 내가 마계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역시 이번 마계행 결정은 너무나 좋은 선택이었다.

“그럼 제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마계의 여행자에게 간단하게 질문했다.

이걸로 그는 나에게 간단한 퀘스트를 줄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간단하다는 건 중급 이상의 유저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실제로 지금 그가 나에게 말하고 있는 열 가지 종류의 몬스터들을 잡은 후 그들의 마력이 듬뿍 담긴 싱싱한(?) 피를 뽑아 가져오는 이 퀘스트는 중급이 되지 못한 유저들에겐 다소 힘들지도 모르는 그런 퀘스트였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아주 쉬운, 그리고 중급 이상의 유저들에게도 그리 어렵진 않은 그런 퀘스트였다.

난 그의 말을 듣고 착실히 간단한 퀘스트 네 가지 모두를 빠르게 끝내 버렸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아마도 모든 마계의 여행자가 공통적으로 할 것 같은 한마디의 말을 나에게 전하며 나를 마계로 이동시켜주었다.

[차원의 틈바구니에서 당신의 운명을 찾길 비오.]

마계의 여행자가 한 한마디 말.

왠지 그 말이 내 귓가를 묘하게 맴돌았다.

* * *

오랜만에 다시 찾은 마계는 정말 썰렁했다.

내가 처음으로 마계를 찾은 것일까?

마계의 수도라 할 수 있는 카디악은 마치 유령 도시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애초에 이곳의 시민이었던 NPC들은 모두 동대륙과 서대륙으로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그들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나 유저들의 편의 따윈 전혀 생각하지 않은 마계다운 모습이었다.

심지어 소울 스톤도 존재하지 않았다.

즉, 죽으면 동대륙이나 서대륙으로 튕겨 버린다는 뜻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렇게 죽어서 마계에서 쫓겨날 경우 한 달(게임 시간) 동안 마계로 다시 올 수가 없었다.

아예 마계의 여행자들이 조금 쉬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라며 퀘스트를 주지 않았다.

이래저래 최악의 편의성을 보여주는 마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디악이 아무런 쓸모없는 곳인 건 아니었다.

일단 카디악은 정확히 마계의 중심에 위치했기 때문에 마계 어느 곳으로도 이동이 편리했다. 그리고 이곳은 마계에서 유일하게 몬스터들이 활개를 치지 않는 안전 지역이었다.

그 밖에도 카디악 지하에는 거대한 오픈 던전인 팔열지옥(八熱地獄)으로 가는 통로 또한 존재했기 때문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곳이었다.

사실 이번에 내가 가려는 곳도 바로 이 팔열지옥이었다.

등활지옥(等活地獄).

흑승지옥(黑繩地獄).

중합지옥(衆合地獄).

규환지옥(叫喚地獄).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

초열지옥(焦熱地獄).

대초열지옥(大焦熱地獄).

무간지옥(無間地獄).

이렇게 8구역으로 나뉘어 있던 이 던전은 마계에서 가장 특이하고 어려운 던전이었다.

이 던전이 특별한 이유는 오로지 한 번에 한 팀, 또는 파티만 입장이 허락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던전에 한 팀, 또는 파티가 입장하면 그 뒤로는 그 누구도 던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아예 입구가 사라지기 때문에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마치 시험을 보듯 그 입장한 이들이 모두 전멸하면 그제야 다시 입구를 개방했다.

한 번 이 던전의 공략에 실패한 이들은 절대 이 던전에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그게 규칙이었다.

오로지 한 사람당 한 번의 도전만 허락하는 던전.

그렇기에 이 던전이 마계에서 가장 특이한 던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던전이 마계에서 가장 어려운 던전인 것은 각 층마다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기 때문이었다.

초반 구역인 등활지옥, 흑승지옥, 중합지옥은 상급 유저 이상은 되어야 살아남을 수 던전이었고, 규환지옥, 대규환지옥, 초열지옥, 대초열지옥은 거의 최상급에 가까운 유저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당연히 모든 구역이 파티(팀) 사냥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가장 최하층 던전인 무간지옥의 경우는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최고 난이도의 사냥터였다.

내가 찾는 그 ‘다크 스타’는 이 무간지옥에 있다고 전해진다. 정확히 어디서 얻을 수 있다고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어쨌든 무간지옥에서 ‘다크 스타’, 또는 ‘암흑의 별’이라 불리는 마갑을 구할 수 있는 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당연히 무간지옥을 가기 위해서는 위에 일곱 가지 던전을 모두 거쳐야 했고, 각 지옥과 지옥이 연결되는 곳에 존재하는 지옥수호병(地獄守護兵)들을 모두 물리쳐야 했다.

이래저래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게 분명했다.

일단 난 곧장 팔열지옥으로 들어가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전투를 하지 않아 왠지 몸이 무겁다는 느낌도 있었고, 521이란 레벨은 아직 너무 낮아 보였다.

괜히 어설프게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끝장이었다.

한 보름 정도는 마계의 다른 지역에서 사냥하며 최대한 레벨을 끌어올려 볼 생각이었다.

마계에는 여러 지역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지역은 총 네 군데가 있었다.

마령의 숲.

어둠의 계곡.

유령 호수.

블러드 캐슬.

마령의 숲은 내가 이미 경험한 곳이었다. 난 그곳에서 묵을 얻었다. 그곳은 지겨울 정도로 경험한 곳이었으니 당연히 다시 가볼 생각은 없었다.

어둠의 계곡은 각종 마수(魔獸)들과 어둠의 일족이라 불리는 흑마괴인(黑魔怪人)들이 다수 등장하는 지역이었다.

마계가 전체적으로 어두운 건 맞았지만, 이 어둠의 계곡은 마계에서도 가장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덕분에 이곳에선 그곳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보다 그 어둠을 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다음 지역인 유령 호수.

이곳은 유령 계열 몬스터들이 주로 출몰하는 호수 지역이었다. 이곳에 대한 정보는 내가 적어놓은 기록에 별로 없었다.

마지막으로 블러드 캐슬!

일명 혈성(血城), 또는 피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마계의 귀족이라 불리는 뱀파이어 일족이 살고 있는 커다란 성이었다.

도시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커다란 성.

그 성에는 여러 종류의 뱀파이어들이 살고 있었는데, 뱀파이어뿐만 아니라 그들이 부리고 있는 각종 수인족(獸人族)들도 존재했다.

내가 가려고 마음먹은 곳이 바로 이 블러드 캐슬이었다.

뱀파이어들은 상당히 강력한 몬스터였지만 그만큼 높은 경험치와 고급의 보상품을 주는 아주 짭짤한 존재였다.

그뿐인가?

재수가 좋아 블러드 캐슬의 전용 고급 던전이라는 노블레스 타워를 찾을 수 있다면 말로만 듣던 진정한 벰파이어 귀족들을 상대할 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나에겐 블러드 캐슬이 딱 어울렸다.

블러드 캐슬은 카디악에서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야 있었다. 난 대충 내가 준비해 온 물건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곧장 블러드 캐슬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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