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아수라(Asura) ― 2
* * *
어차피 네파루가 등장하면서부터 미래는 완전히 바뀌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현재 내가 만들고 있는 이 ‘아수라’라는 마갑과 자이언트 기술의 최종 진화 단계라고 할 수 있었다.
이미 몇 개월 동안 251권의 고대 지식을 연구하고 미리 적어놓았던 미래에 등장하는 각종 마갑과 자이언트에 대한 내용을 분석한 나는 누구보다 뛰어난 소울 엔지니어가 되어 있었다.
그런 내가 고대로부터 이론적으로만 만들어져 전설의 마갑이자 자이언트로 불렸던 한 존재를 실제로 만들어보려는 중이었다.
물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만드는 것이 아닌, 내가 직접 개량하고 고쳐 전혀 새롭게 만들 예정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내 임의대로 ‘아수라’라고 정했다.
마갑과 자이언트를 만드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보통은 고대의 유물로 동대륙과 서대륙 곳곳에 숨겨져 있는 마갑과 자이언트를 유저들이 획득해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소울 엔지니어, 또는 영혼 기술자라 불리는 유저들도 대부분 그런 마갑들과 자이언트들을 수리하는 역할을 했다.
진정 자기 손으로 마갑과 자이언트를 만들어내는 소울 엔지니어는 거의 전무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몇몇 기술자들이 중, 하급의 마갑과 자이언트를 만들어냈다고 하지만…… 그건 아주 먼 미래의 일이었고. 사실상 고대의 유물로 전해지는 설계대대로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처럼 이런 정도의 특별한 마갑과 자이언트를 직접 제작하는 유저는 아마 앞으로도 등장하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난 남들보다 훨씬 앞선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마갑과 자이언트는 기술력이 있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엄청난 자금과 노력이 투입되는 중이었지만, 그래도 완성만 되면 그 어떤 마갑과 자이언트도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일단 이놈의 뼈대부터 완성시키자.”
난 내 전신을 감쌀 ‘마갑 아수라’의 기본 뼈대를 거의 완성시키기 직전이었다.
드래곤 본을 이용해 만든 이 뼈대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했다.
아수라의 특별함은 사실상 이 뼈대부터 시작되었다. 일단 기존의 마갑들과는 완전히 다른 삼중 구조로 된 뼈대 전부가 드래곤 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내구성과 강도, 충격 흡수 능력이 다른 마갑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보통의 마갑들은 뼈대를 단순 구조로, 그것도 기껏해야 미스릴을 이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드래곤 본을 이용해 삼중 구조로 만든 아수라의 뼈대와는 당연히 비교가 불가능했다.
거기에 난 뼈대 표면에 벌써부터 대마법 방어진과 각종 속성 방어 마법진을 새겨 넣고 있었다.
기초 공사부터 다른 것들과 완벽하게 차별화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이 내가 직접 마갑을 만들면서 얻을 수 있는 큰 이점이었다.
고대의 유물로 전해져 내려오는 마갑과 자이언트들은 절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질 수 없었다.
현존하는 마갑과 자이언트에 대한 기술 중 가장 뛰어난 것들만 골라 하나하나 기초부터 전부 적용시킨 아수라는 당연히 다른 것들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
물론 덕분에 제작 기간이나 제작 단가, 그리고 제작 난이도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올라갔지만, 그래도 난 만족하는 중이었다.
좀 늦어지고 비싸고 어려우면 어떤가?
아수라를 완성할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끼릭.
난 다시 장비를 들고 천천히 뼈대에 손을 댔다.
다소 힘들지만 분명히 나중에 아주 큰 빛을 볼 수 있는 작업. 그래서 난 더욱 힘을 내 이 작업에 매진할 생각이었다.
시간은 정처 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작업의 진도는 여전히 느리게 진행되었다.
처음 아수라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이곳 보헤닌에서 광물을 독점하기 시작했을 때가 대략 11개월(게임 시간) 전이었으니 정말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다.
아수라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확히 진행 상황을 %로 표현한다면, 이제 한 50% 정도 진행된 것 같았다.
그만큼 아수라는 쉽게 만들 수 없는 물건이었다.
특히 내가 현재 고생하고 있는 부분은 아수라의 핵심 부분 중 하나인 ‘마력 증폭 회로’였다.
내가 미리 예상한 증폭률은 대략 4배였다.
하지만 실제로 제작을 하다 보니 증폭률이 1.5배가 간신히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다.
이건 보통의 마갑들과 같은 수준이었다.
도저히 이 수준으로는 제작할 수 없었다. 상급, 또는 최상급 마갑들의 평균 마력 증폭률은 2.5∼3배였다.
현재 난 그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었다.
당연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
매일매일 계속 연구와 분석을 거듭하며 원인을 찾았지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벌써 거의 보름(게임 시간) 동안 이 문제로 고민을 계속하는 중이었다.
“후우∼”
고민은 계속되었지만 답은 나오지 않고, 결국 답답한 마음에 잠시 작업실을 빠져나와 보헤닌의 한 주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뜨거운 보헤닌 전통 술 한잔을 마시는 중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매우 추운 날씨를 자랑하는 보헤닌에서 마시는 이 뜨거운 술 한잔은 답답한 마음을 조금 풀어주는 효과가 있어서 가끔 마시는 편이었다.
“……뭐가 문제인 걸까…….”
뜨거운 한잔의 술로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푼 난 다시 한번 ‘마력 증폭 회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뭔가 비교 대상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냥 평범한 비교 대상이 아닌, 상당히 뛰어난 비교 대상이.
“……비교 대상…… 비교 대상…….”
바로 그때 내 뒤에 앉아서 나와 같은 보헤닌 전통 술을 마시고 있던 몇 명의 유저가 나의 관심을 한 번에 끌어갈 만한 한 단어를 언급했다.
“마계? 그건 또 뭐야?”
“아니, ‘The One Part: 2 우라노스의 반격’이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업데이트야! 이거 DH 소프트가 너무 한 방에 올인하고 있는 거 아냐?”
“미치겠군. 뭐가 이리 한 방에 휙휙 나오는 거야.”
그들의 언급한 한 단어.
‘마계’.
그동안 아수라 프로젝트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던 난 마계라는 단어를 듣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무 한 가지에만 집중하다 보니 외부의 소식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것이 큰 실수였다.
‘벌써 마계가…… 업데이트된 건가!’
마계가 업데이트되었다는 건 최상위권 유저들이 대부분 4차 전직을 끝내고 레벨이 600에 가까워지거나 넘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현재 내 레벨은 521.
그동안 거의 사냥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 여러 가지 스킬 숙련도가 상승하면서 얻은 보너스 경험치로 올린 레벨이었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레벨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뒤처지면 나중에 조금 귀찮아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계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그래, 마계가 있었어!’
마계는 네파루와는 다른 곳이었다.
현재 내가 적어놓은 미래에 대한 기록 중에는 마계에 대한 것들도 꽤 있었다.
당연히 내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새로운 대륙이었고, 그리고 그곳에는 수많은 마갑과 자이언트가 숨어있었다.
그중에는 분명 내가 찾고 있는 비교 대상도 존재했다. 그것도 그냥 비교 대상이 아닌 아주 훌륭한 비교 대상이 있었다.
‘다크 스타(Dark Star).’
최상급 마갑이자 최상급 자이언트 다크 문(Dark Moon)을 소환하는 매개체가 되었던 그것!
그것이 바로 마계에 있었다.
탁.
난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계로 가자.’
뒤에 앉아있던 다른 유저들의 얘기를 마저 들어보니 아마 현재는 마계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돌며 마계로 가는 방법을 찾고있는 상황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일주일(게임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본격적으로 마계로 가는 방법이 알려지고 많은 상급 유저들이 마계로 유입되기 시작할 것이다.
유저들은 마계 역시 네파루와 비슷한 또 하나의 유저들을 위한 친절한 세상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아주 큰 착각이었다.
마계는 절대 네파루 같은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동대륙이나 서대륙보다 더욱 지독한 곳이었다.
가는 건 자유였지만 돌아오는 건 절대 자유가 아니었고, 경매장이나 상점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몬스터들도 하나같이 다 강력한 곳.
어찌 보면 네파루와는 정반대의 특성을 지닌 곳이 바로 마계였다.
내가 적어놓은 기록에도 그나마 마계에 많은 수의 마갑과 자이언트가 숨겨져 있어 상급 유저들이 많이 찾게 되었던 것이지 아니었으면 모두에게 버림받은 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쨌든 그런 마계였기 때문에 미리 확실히 준비하고 가야 했다.
이미 한 번 마계에서 고생했던 경험도 있는 내가 아닌가? 그런 고생을 두 번 할 생각은 없었다.
특히, 마계 출신의 묵이 나와 함께하는 이상 난 그 누구보다 마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잠깐 머리를 식히러 나왔다가 의외의 곳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어차피 너무 레벨이 뒤처지는 것도 반갑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 마계행은 여러모로 나에게 좋은 여정이 될 것 같았다.
네파루의 등장.
‘The One Part: 2 우라노스의 반격’.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계 등장.
모든 것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었지만 유저들 입장에선 이런 계속된 새로운 업데이트가 신기하고 즐거울 뿐이었다.
물론 나는 이게 그저 즐거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냥 이 흐름 속에서 나만의 방법으로 힘을 얻어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