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마갑과 자이언트 ― 2
* * *
그렇게 이나는 동대륙을 향해 떠났다.
이나는 떠났지만 난 아직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특히 이제부턴 슬슬 그것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동안 독점 거래를 통해 모인 광물들은 미리 준비해 놓은 대형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자르듐, 데미움, 미스릴, 코륨, 아만다티움, 강철 등등.
각종 광석이 매우 많이 쌓여 있었다.
이제부턴 이것들을 이용해 몇 가지 특수한 합금을 만들어내야 했다.
내가 이렇게 여러 준비를 하면서 만들려고 하는 것은 바로…… 마갑(魔鉀)과 자이언트(Giant)였다.
마갑은 일종의 갑옷이었다.
물론 그냥 갑옷은 아니었다. 마갑은 자이언트를 탑승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종의 시동 키 같은 것이었다.
자이언트!
이것은 이제 곧 등장할 ‘The One Part: 2 우라노스의 반격’에서 업데이트될 특수 병기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족 보행 로봇’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크기는 대략 3m∼5m.
유저가 탑승해 움직이는 일종의 거대 로봇 장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시스템을 여기서 말하자면 끝이 없었다.
그냥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자면 마갑은 자이언트를 소환해 내는 일종의 매개체였고, 그 자이언트는 마갑에 의해 소환되어 사람의 몸을 감싸는 두터운 장갑이었다.
그 생김새는 모두 천차만별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유저의 몸을 두껍게 감싸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당연히 조종도 유저가 직접 움직이는 것으로 할 수 있었고, 내부에 내장된 여러 시스템에 의해 유저가 낼 수 있는 힘의 몇 배를 내게 해주었다.
일단 마갑 자체가 약간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이언트는 이 마갑의 확장형이라고 보면 되었다.
마갑과 자이언트가 널리 퍼지게 되면 그때부턴 기본 갑옷 위에 마갑을 소환해 입고 또 그 위에 자이언트를 소환해 탑승했다.
탑승이란 말보단 자이언트라는 두꺼운 갑옷을 입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몰랐지만 어쨌든 그런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론 아무나 이 마갑과 자이언트를 소유하는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하이 마스터 이상의 유저들만 이것들을 소유할 수 있었다.
거기에 마갑은 몰라도 자이언트는 컨트롤이 익숙하지 않으면 오히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처박힐 수도 있었다.
의외로 자이언트의 조작은 쉽지 않았다.
오죽하면 자이언트는 골드가 아무리 많아도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존재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자이언트를 가지고 그것을 조종하는 이들을 가리켜 소울 나이트, 또는 영혼기사라고 불렀다.
자이언트라는 또 하나의 영혼을 소유한 존재.
그렇기에 더욱 특별한 존재.
워낙 자이언트의 위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수많은 유저가 이 소울 나이트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마갑만으로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마갑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굉장히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에 굳이 소울 나이트가 아니라고 해도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자이언트는 마갑보다 더 특별한 존재였다.
어쨌든 난 이 특별한 두 가지를 누구보다 더 일찍, 그리고 누구보다도 더 대단한 것을 얻을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해 난 많은 것을 준비했다.
이젠 그 준비한 것들을 그것에 알맞은 재료로 가공할 차례였다.
“섀도우 아이언(묵영철[墨影鐵])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르듐 20%, 데미움 20%, 미스릴 35%, 아만다티움 10%, 코륨 5%, 강철 5%가 필요하고 마지막으로 레드 플래티넘 5%가 필요하다.”
섀도우 아이언은 일종의 마갑용 합금이었다.
마갑은 절대 일반적인 재료로는 만들 수 없었다. 마갑 자체가 소환물이자 매개체였기 때문에 마력을 최대한 흡수할 수 있는 합금 종류로만 만들 수 있었다.
내가 자르듐과 데미움을 그토록 신경 쓴 건 이것 때문이었다. 자르듐과 데미움은 그 자체로는 별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다른 광물들과 섞이면 마력을 흡수하는 성질을 만들어냈다.
물론 미스릴이나 아만다티움, 그리고 코륨도 약간은 그런 성질을 지니고 있었지만 자르듐과 데미움을 따라올 수는 없었다.
섀도우 아이언은 이런 마갑을 만드는 합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었다.
엄청난 마력 흡수 능력과 강력한 변형 능력.
그리고 마력의 흩어짐이 거의 없어 99%의 마력 전도 능력을 지니고 있던 섀도우 아이언.
나도 ‘쿠할니스’에서 무려 30여 권의 책을 연구한 끝에 알아낸 최고의 합금이었다.
물론 최고의 합금답게 만드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나마 내가 미리 예상하고 준비한 각종 재료들 덕분에 큰 고비는 넘겼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아예 없어진 건 절대 아니었다.
특히 이름도 생소한 ‘레드 플래티넘’.
이놈이 문제였다.
일단 난 간신히 이 레드 플래티넘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다. 하지만 알아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이놈을 만들기 위해선 무려 125가지의 재료가 필요했다.
다행인 건 그중 120가지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해도 120가지를 전부 구하려면 꽤 손이 많이 갔다.
하지만 정작 구하기 힘든 건 남은 다섯 가지 재료였다.
일단 자르듐의 핵(核)과 데미움의 심강(心鋼)은 현재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자르듐의 핵은 자르듐 1t(톤)가량을 고온으로 녹이고 또 녹인 후 몇 번의 가공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용광로에서 계속 녹아가고 있는 자르듐. 무려 1톤을 소비해야 작은 핵 하나가 만들어졌다. 대충 마갑을 만들고 나중에 자이언트까지 만들 생각을 하면 자르듐이 40톤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었다.
데미움의 심강도 비슷했다.
데미움을 계속 두들기고 또 두들겨서 만들어내는 이 심강은 대략 데미움 800㎏ 정도를 두들겨야 심강 한 줄기가 생겼다.
용광로에선 자르듐을 녹이고 모루에선 데미움을 두들기며 두 가지 재료를 계속 만드는 중이었다.
남은 세 가지 재료는 최상급 마정석 가루와 드래곤 본 조각, 그리고 오리하르콘이었다.
운이 좋은 건가?
아니면 내가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대가인가?
어쨌든 나머지 세 가지 재료는 다 내가 가지고 있었다.
최상급 마정석 가루는 오래전부터 계속 마정석들을 모아왔기 때문에 당연히 있었고, 드래곤 본 조각은 아예 드래곤 한 마리의 뼈 전부가 내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오리하르콘 역시 버그 스톤을 통해 만들어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어쨌든 난 이렇게 힘겹게 섀도우 아이언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섀도우 아이언은 단지 마갑이나 자이언트를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 중 한 가지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재료 중에서도 중요한 것에 속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마갑과 자이언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밖에도 수많은 재료가 필요했다.
당연히 나머지 재료들도 계속 구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어떤 재료는 구하기가 매우 힘든 것들도 있었다.
그나마 용문상회를 만든 후 무물 길드의 정보원들을 이용해 대륙 전체에 유통망을 깔아놨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재료들을 구할 수 있었다.
다행인 건 마갑과 자이언트에 가장 핵심이 되는 재료들은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미리 모아놨다는 사실이다.
마갑과 자이언트의 주 동력원이라 할 수 있는 각종 마정석들은 이미 내가 직접 모은 것과 경매장에서 사서 모은 것들까지 합치면 굉장한 양을 보유하고 있었다.
거기에 앞에서 언급했던 상당량의 드래곤 본과 그 밖에 각종 시스템 회로에 사용될 여러 종류의 보석과 광물들도 충분히 모아놓았다.
재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주 착실하게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준비는 이런 재료들을 모으는 것이 아니었다.
마갑과 자이언트에 대한 기술.
난 현재 섀도우 아이언을 만들며 그 두 기술에 관련된 고대 지식이 적혀 있는 책들을 열심히 연구 중이었다.
무려 241권의 책을 계속해서 몇 번이고 살펴보면서 마갑과 자이언트에 대한 내 지식을 계속해서 더 넓혀갔다.
마갑과 자이언트를 제작하고 수리하는 이들은 앞으로 영혼 기술자, 또는 소울 엔지니어라 불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등장하는 건 ‘The One Part: 2 우라노스의 반격’이 업데이트되고도 반년(게임 시간)은 더 지나야 했다.
그만큼 이 학문은 어렵고 생소한 것이었다.
그런 학문을 난 벌써 마스터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물론 나에겐 그것을 도와줄 아주 훌륭한 참고 서적들이 있었다.
각종 고대 지식들.
이것들은 나에게 마갑과 자이언트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 넓은 지식을 가지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지 읽고 외우는 것만으로 그렇게 해주는 건 아니었다.
고대 지식은 결국 글로 된 딱딱한 죽어 있는 지식일 뿐이었다.
이 죽어 있는 지식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내 역할이었다.
그 지식들을 활용하고 변환시켜서 나만의 지식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그 지식이 살아서 숨 쉬며 제 능력을 모두 발휘하게 되었다.
고민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등 시간을 아끼지 않고 최대한 노력하는 중이었다.
이 마갑과 자이언트를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나 길어져 레벨 면에서는 최상위권 유저들이 나를 앞서 나갔을지도 몰랐다.
4차 전직이 쉽지는 않았겠지만―그래도 나와 같은 황당한 전직 퀘스트는 없었을 것이다―능력 있는 유저들은 그 관문을 무사히 통과해 지금쯤 꽤 레벨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그들이 아무리 그렇게 레벨을 올려도 결국 그들은 나를 따라올 수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열심히 달려도 이제 날 준비하고 있는 나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마갑과 자이언트.
앞으로 ‘One’의 세상을 지배할 두 가지의 절대적인 아이템.
난 현재 누구보다 높고 멀리 날기 위해 미리 그것들을 준비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