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마갑과 자이언트 ― 1
* * *
너무나도 지겨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라르엘과 난 하루에 몇만 권의 책을 살펴보며 우리가 원하는 책을 찾기 시작했다.
생각 이상으로 정말 지루한 작업이었다.
난 지역 검색에 걸리는 책들을 위주로 관찰 스킬을 이용해 책을 살폈고, 라르엘은 열심히 내가 불러준 단어들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책들을 나에게 가져왔다.
그렇게 벌써 한 달(게임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우린 이 도서관의 책 중 20%도 제대로 못 본 상태였다.
대략 권 수로 따지면 150만 권 정도의 책을 보았다.
눈에서 쥐가 날 정도로 책을 많이 살펴보았지만 정작 내가 원했던 책은 겨우 15권만 찾은 상태였다.
물론 의외의 소득으로 다른 종류의 정보를 담고 있는 책도 10권 정도 찾았지만 어쨌든 그래 봤자 그리 많은 소득은 아니었다.
솔직히 조금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난 드래곤 고기를 아주 약간 풀어 라르엘의 의욕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다시 한번 스스로 파이팅을 외치고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용문상회를 책임지고 있던 이나와 버그 스톤이 본격적으로 용문상회를 굴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미 그들에게 세부적인 것을 모두 지시해 놓았기 때문에 그쪽에 관련되어서는 걱정되는 부분이 없었다.
지금은 오로지 여기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면 되는 것이었다.
집중하고 또 집중하고.
아직도 내 앞에는 800만 권이 넘는 책이 남아 있었다.
* * *
너무나 지겹고도 힘든 시간이 지나갔다.
도서관에 들어오고 총 182일(게임 시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어떤 사냥도, 그 어떤 퀘스트도 이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천만이라는 숫자.
그 숫자는 나의 심신(心身)을 너무나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난 굴복하지 않았다.
노력하고, 집중하고, 힘을 내서 그것을 정복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수적인 소득까지 얻어냈다.
총 427권의 책.
그중 내가 원했던 분야의 책은 241권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부수적인 소득이었다.
물론 내가 원했던 분야의 책 중에는 내가 가장 원했던 그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나는 180일간의 엄청난 집중 끝에 관찰 스킬을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까지 끌어올렸고, 덤으로 천서의 기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며 고대어도 모두 마스터해 버렸다.
또한 비록 내가 가지고 나갈 정도로 대단한 책은 아닐지라도 나름 괜찮은 지식이 가득 담겨 있는 책들을 다양하게 읽으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엄청난 소득을 얻었다.
방대한 양의 고대 지식은 내가 가진 모든 종류의 스킬에 영향을 미쳤다.
마법, 검술, 술법, 진법, 마법진, 신성 마법 등등 내가 가진 수많은 스킬은 고대 지식의 영향으로 그 숙련도가 굉장히 많이 올랐다.
단지 책을 읽었을 뿐인데 숙련도가 올랐다.
그만큼 고대의 지식은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고대에 존재했다는 최고의 마법 물품, 마갑과 자이언트에 관한 지식과 기술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와 관련된 책들을 더욱 집중해서 읽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난 성장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180일이란 시간이 단순히 원하는 것을 찾는 단순 반복 작업이 아닌, 내가 가진 힘 전체를 다스리고 성장시키는 수련의 시간이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언젠가 검은 마녀 린이 언급했던 내실을 다지는 수련을 한 기분이었다.
재미있는 건 달라진 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라르엘.
녀석도 변했다. 고대의 지식들을 읽어가며 녀석은 예전의 최상급 화염 정령이었을 때의 기억을 상당수 복구했다.
물론 그 성격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왠지 모르게 전과 다른 무게감이 느껴졌다.
[바로 떠날 거예요?]
“……그래야겠지.”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 조금 더 남아 좀 더 내실을 다지는 수련을 쌓고 싶었지만 밖의 상황이 나를 더 이상 이곳에 머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이곳에 들어오고 한 달 정도가 흐른 후 시작되었던 ‘천하제일대회’는 무려 한 달 동안 계속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대단한 관심을 끌며 성황리에 진행된 ‘천하제일대회’는 그 규모만큼이나 다양한 이슈를 내며 한 달간의 긴 일정을 끝마쳤다.
대회는 그렇게 끝났지만 대회에 참가했던 일반인들은 쉽게 게임을 떠나지 못했다.
무려 80%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유저로 유입되었다.
내가 적어놓은 미래에 대한 정보 기록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엄청난 변화.
덕분에 ‘One’은 큰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갑자기 한꺼번에 늘어난 신규 유저들은 그 자체로 대단한 세력이 되었고 그 결과 ‘One’의 세상은 큰 혼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명 ‘새로운 물결’이라 불리는 신규 유저들의 유입.
그것으로 인해 ‘One’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세계처럼 되어버렸다.
현실과 거의 동등한.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어버린 ‘One’.
내 입장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특수 스킬 발동, 바람의 이동 [보헤닌].
마음의 결정을 내린 난 곧장 바람의 이동 스킬을 이용해 얼어붙은 땅에 존재하는 얼음의 도시 보헤닌으로 이동했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내가 준비한 것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 * *
“와우∼ 이게 얼마만이야!”
마침 보헤닌에 잠깐 들러 용문상회의 창고들을 점검하던 이나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나를 보며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어라? 왜 여기 있는 거야? 동대륙으로 던전 탐험 간다고 하지 않았어?”
이나나 버그 스톤, 그리고 그림자 남매와는 비록 게임 속에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미 오프라인으로 서로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흐흐, 떠나기 전에 마지막 점검 한 번만 하고 가려고 들렀다.”
확실히 이나는 매우 꼼꼼한 성격이라 이런 관리를 아주 잘했다. 용문상회를 그에게 맡긴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문제 같은 거 없지?”
“뭐, 이제 이곳 얼어붙은 땅은 완전히 우리 용문상회가 장악해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엠페러나 대상도 더 이상 이곳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마도…… 신규 유저들을 새롭게 세력으로 끌어들이고 네파루에 상권을 장악하느라 정신이 없겠지.”
재수가 좋았던 것일까?
용문상회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고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특히 얼어붙은 땅에서 용문상회의 위상은 대단했다.
초기엔 엠페러와 대상의 역공도 있었지만 이미 수많은 NPC 광부를 포섭한 우리를 그들이 당해내긴 힘들었다.
또한 워낙 네파루에서의 일이 확대되었기 때문에 언제까지 이런 오지의 상권에 신경 쓸 수는 없었다.
엄청난 숫자의 신규 유저가 유입되면서 이곳이 아니라고 해도 이미 다른 곳에 수많은 상권이 생겨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의외로 쉽게 이곳을 포기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용문상회는 대륙 최초로 프리미엄 럭셔리 경매의 세계를 개척한 선구자라고도 불렸다.
용문상회가 내놓은 각종 경매 물품들은 상급 유저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나의 미발견 던전 안내 경매나 버그 스톤의 맞춤형 특수 업그레이드 경매는 매일매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팔려나갔다.
물론 내가 조금씩 풀고 있는 각종 최고급 아이템의 인기도 대단했다.
이래저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용문상회.
아마도 이대로 계속 성장할 수만 있다면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상권을 지닌 길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좋아.”
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 정도라면 내가 준비하는 그것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들리는 소문엔 네파루의 수도를 차지하기 위한 대규모 전쟁이 있을 것이라던데…… 우리도 슬슬 네파루 쪽에 진출해야 하는 거 아냐?”
워낙 네파루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은 이나는 아무래도 네파루를 완전히 배제하고 움직이는 게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하지만 난 예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네파루는 없는 곳으로 취급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미 늦었다.
지금 와서 네파루에 뛰어들어 봤자 괜히 손해만 볼 가능성이 컸다.
처음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곳.
그냥 과감히 포기하는 게 가장 좋았다.
“네파루는 잊어. 우린 그냥 우리의 방식대로 우리의 길을 가면 되는 거야.”
난 슬쩍 웃으며 이나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어차피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네파루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네파루보다 더 엄청난 것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참, 메일로 내가 알고 있는 동대륙의 던전들에 대한 정보를 보내놨으니까 한번 살펴봐.”
어차피 내가 소유하지 않을 것들은 과감히 베푸는 게 좋았다. 특히 이나나 버그 스톤, 그리고 그림자 남매에게 이 정도 서비스를 하는 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캬∼ 역시 마스터는 마스터인 건가? 크크, 고맙다.”
이나는 내가 주는 정보들이 얼마나 고급 정보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얼굴에 큰 기쁨이 어렸다.
“고맙긴, 그것들 잘 관리해서 동대륙에도 용문상회의 이름을 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냐? 서대륙이건 동대륙이건 프리미엄 럭셔리 경매는 용문상회가 최고라는 걸 보여주자.”
이나는 이번 동대륙 행에 내가 미리 준비해 놓은 몇 가지 최고급 아이템도 가지고 갈 계획이었다.
용문상회의 정식 동대륙 진출.
이미 동대륙과 서대륙을 사이엔 안정적인 루트가 몇 개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직 중급, 하급의 유저들에겐 여전히 어려운 길이었지만 상급의 유저들은 대규모 파티를 맺고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죽음의 산맥을 왕래할 수 있었다.
당연히 상급 유저인 이나도 파티만 잘 고르면 그다지 크게 고생하지 않고 죽음의 산맥을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왕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이미 몇몇 유저들이 서대륙과 동대륙의 교류를 시작했지만 적어도 최고급 아이템의 교류는 아직까진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무난히 동대륙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가 최고지!”
이나는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웃었다.
최고라는 자부심.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