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용문상회 ― 1
* * *
사람들의 정신이 온통 네파루로 쏠려 있는 지금, 난 열심히 서대륙을 횡단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주로 서대륙에서도 가장 최북단인 얼음의 도시 ‘보헤닌’ 근처에 있었다.
일명 얼어붙은 땅이라 불리는 이 지역은 엄청난 추위와 험한 산악 지형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워낙 춥다 보니 대부분의 유저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곳이었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다.
드워프, 종족 특성상 열기와 한기에 강한 그들은 이 지역을 좋아했다.
특히 얼어붙은 땅에 존재하는 빙백산맥(氷白山脈)은 그들이 좋아하는 각종 특수한 광물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다.
내가 직접 봉인을 풀어 이제는 상당히 늘어나 있는 드워프 유저들과 NPC들은 이곳에 상당수가 정착한 상태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나오는 광물을 가공해 최고급 제작 아이템을 만드는 중이었다.
현재 이 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길드는 두 군데였다.
일단 대륙 최고의 상권을 자랑하는 엠페러가 대략 30%의 상권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다음으로 각종 제작 아이템을 대규모로 취급하는 전문 상인 길드 ‘대상(大商)’이 50%의 상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20%의 상권은 여러 개인 유저들이나 아주 작은 규모의 길드들이 가지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이 지역에서 나오는 광물 중 몇 가지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르듐(흑운철[黑雲鐵]), 데미움(만년한철[萬年寒鐵]), 그리고 미스릴(현철[玄鐵])이었다.
현재 자르듐과 데미움은 아주 희귀한 금속이었지만 그 쓰임새가 많지 않아 거래가 거의 되지 않았다.
몇몇 장인들이 그 금속들을 이용해 제작 아이템을 만들어봤지만 그 희귀성을 고려했을 때 거의 쓰레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에 반면 미스릴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거래량도 많고 취급하는 곳도 많았다.
특히 미스릴은 드워프의 금속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드워프가 애용하는 금속 재료였기 때문에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었다.
일단 내가 원하는 것은 이 세 가지였다.
그중에서도 난 특히 자르듐과 데미움을 더 원했다.
물론 미스릴도 원했지만 앞선 두 가지에 비교하면 미스릴은 그저 보조일 뿐이었다.
솔직히 미스릴은 다른 곳에서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르듐과 데미움은 오로지 이곳 얼어붙은 땅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들을 사용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나마 드워프 NPC 중 몇 명만이 그것의 광맥(鑛脈)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난 이 세 가지 광물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솔직히 이 광물들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것이 필요했다.
사실 내가 용문상회라는 단체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도 이것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얻기 위해서였다.
내가 원하는 건 그깟 엘리트 아이템 같은 것 따위가 아니다.
보다 더 큰, 보다 더 대단한!!
간단히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후우∼ 여긴 진짜 춥네.”
얼음의 도시 보헤닌에 도착한 난 재빨리 멈추지 않는 바람의 영웅 타이틀 효과로 사용할 수 있는 바람의 이동(AA급) 스킬을 활성화시켜 이곳의 좌표를 입력했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오게 될 곳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한적하군.”
가뜩이나 유저들이 별로 찾지 않는 도시였던 보헤닌은 이번 네파루 대륙의 등장으로 거의 유령 도시처럼 변해버렸다.
몇몇 아이템 제작에 미친 드워프 유저들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의 유저들이 네파루 대륙으로 떠났다.
그렇기에 이곳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NPC들이었다.
유저들이 없다는 건 오히려 더 좋은 기회였다.
사실 이 얼어붙은 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광물 재료들은 NPC들이 생산해 냈다.
생산량의 70%를 NPC가 책임지고 있었고, 유저들은 30%, 그나마 개인 광산을 가지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광물을 캐는 유저들이 대략 15%의 생산량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실제 유통되는 광물의 15% 정도만 유저들이 생산해 내었다.
내 목적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광물들의 고정적인 입수 루트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일단 최우선 목표로 잡은 건 자르듐, 데미움, 미스릴이었지만 여차하면 다른 인기 광석들의 입수 루트도 확보할 생각이었다.
늘 말하는 것이지만 수입은 당연히 많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무리를 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사업 확장은 언제라도 환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하는 유저들이 별로 없다는 건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물론 엠페러 길드나 대상 길드, 그리고 다른 중소 규모의 길드들도 광물을 매입할 몇 명의 길드원은 남겨둔 상태였지만 그들은 그저 잔심부름이라 하는 하급 길드원이었다.
당연히 평상시에 상주하고 있던 노련한 유저가 아닌 길드에서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초보 유저였다.
그런 유저들이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그러니까 네파루에서 엄청난 규모의 대단한 이벤트가 열리는 이 상황에서 이 오지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감안하면 지금이야말로 작업(?)을 하기엔 최고의 적기였다.
하지만 난 서두르지 않았다.
보다 확실히 이번 작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준비한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대략 일주일(게임 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 동안은 그저 정보를 모으고 아무도 모르게 물밑 작업을 해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특히 자르듐과 데미움의 광맥을 알고 있는 광부NPC를 찾는 게 가장 시급했다.
“자∼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작전명 ‘용문상회 만들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 * *
그동안 거의 교류가 없던 동대륙과 서대륙이 네파루의 등장으로 활발히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네파루는 그 자체가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
이상하게 대륙의 경매장 시스템이 연계가 되지 않아 위탁 판매가 불가능하고 오로지 유저들 간의 거래로만 시장이 유지됐지만 워낙 많은 숫자의 유저들이 서로 거래를 원했기 때문에 그 시장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다.
‘One’의 경제 중심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네파루.
그 바람에 수많은 길드는 이 네파루의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특히 네파루 전역에 퍼지고 있는 여러 가지 소문은 그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다.
네파루의 상권엔 세금이 없다는 소문, 동대륙의 상권들이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는 소문, 개인 유저들이 연합을 만들어 길드 단위의 상권에 도전한다는 소문.
소문, 소문, 또 소문.
상당히 고급 정보로 보이는 소식들이 소문을 통해 마구 퍼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이가 이런 많은 고급 정보를 소문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인가?
그것의 답은 바로 하나.
서대륙 최고의 정보 길드이자 이제 그 영역을 동대륙까지 확장시키고 있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길드였다.
그들은 정보원들을 통해 교묘하게 소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소문을 통해 더욱 네파루의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클레타와 마가레타.
두 남매에게 주어진 임무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은 열심히 고급 정보들을 마구 풀었다. 특히 그들은 신이 부탁한 대로 ‘엠페러’와 ‘대상’ 길드에 관련된 정보들을 더욱 집중적으로 풀었다.
덕분에 엠페러와 대상은 네파루에서 갑작스럽게 다른 길드들과 유저들의 견제가 늘어난 것에 대해 크게 당혹스러워하는 중이었다.
최대한 그들의 신경을 분산시켜 그들이 얼어붙은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잘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생각보다 네파루가 더욱 큰 가치가 있는 곳으로 부각되면서 남매의 작전은 훨씬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중이었다.
네파루가 가지는 잠재적인 경제 효과를 고려했을 때 엠페러와 대상은 절대 네파루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얼어붙은 땅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지역의 유저들까지 모두 불러들여 네파루의 상권을 장악하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한마디로 정의하지면 네파루는 현재 ‘The One’의 중심이라 말할 수 있었다.
모든 유저가 그 중심을 향해 눈길을 돌리고 있는 지금,
오로지 단 한 유저만 다른 곳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신.
모두가 ‘예’라고 말하는 지금 그는 혼자만 ‘아니오’라고 말하는 중이었다.
* * *
“1골드!!”
난 다소 파격적인 금액을 제시했다.
물론 미래를 생각하면 거꾸로 파격적인 가격이 되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좀 미쳤다고 느껴질 정도로 대단한 가격이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소?”
얼어붙은 땅에서 가장 이름 높은 드워프 광부인 드리미안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당 20∼30 실버에 거래되던 자르듐과 데미움 광석을 세 배가 넘는 가격인 1골드에 사겠다고 하니 믿기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희귀성 때문에 20∼30 실버 가격이 책정되었던 것이지 거의 거래가 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잡철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던 게 자르듐과 데미움이었다.
그런데 그 광물을 돈을 주고, 그것도 상당히 비싼 금액에 사겠다고 나섰으니 놀라는 건 당연했다.
“그 밖에 다른 광석들도 모두 현재 시세보다 1.5배를 쳐주겠습니다. 하지만 대신!! 앞으로의 광물 거래는 무조건 저하고만 해주셔야 합니다.”
“으음…….”
드리미안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고민이 될 것이다. 내가 내건 조건들은 아주 좋았지만 지금까지의 거래를 모두 끊고 오로지 나와 거래를 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역시 다른 광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역시…… 마지막 결정타를 한번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단, 저와의 거래는 앞으로 한 달 뒤 시작하는 것으로 하죠. 한 달(게임 시간) 동안 최대한 천천히 기존에 거래하시던 곳들과 자연스럽게 거래를 끊도록 하세요. 필요하다면 골드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이게 바로 결정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