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사투(死鬪) ― 2
* * *
내가 준비한 화끈한 공격은 단지 엘레멘탈 버스터, 데몰리션뿐만이 아니었다.
“라르엘!!”
난 미리 라르엘에게 피닉스로 변신할 준비를 시켜놨었다. 그리고 엘레멘탈 버스터를 쏘아내며 곧장 명령을 내렸다.
화르륵!
순식간에 커다란 피닉스의 모습으로 변하는 라르엘. 녀석은 이제부터 적어도 한 시간 동안은 상당히 강력한 소환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끼이이이이이!]
라르엘은 길게 울부짖으며 베나인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난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추가 공격을 감행했다.
“묵!!”
묵 역시 라르엘과 마찬가지로 어둠 속에 숨어서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어어헝!]
어둠 속에서 뛰쳐나와 베나인의 등 뒤를 공격하는 묵.
엘레멘탈 버스터와 라르엘, 그리고 묵은 교묘하게 세 방향으로 베나인을 포위하며 공격했다.
도망가지도 못하는 상황.
베나인은 가뜩이나 헬 파이어마저 막혀 정신적 충격을 입은 상태였기에 내 공격에 대한 반응이 조금 늦은 편이었다.
이대로 세 가지 공격을 모두 그대로 맞는다면 아무리 베나인이라고 해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또 한 번 베나인의 주변에 강력한 마력의 파장이 느껴졌다.
헬 파이어만큼이나 강력해 보이는 마력의 파장.
하지만 이번엔…… 공격 계열 마법이 아닌 것 같았다.
꽈광! 콰과과과광!
엘레멘탈 버스터 데몰리션이 베나인(?)과 충돌하며 폭발했다. 그리고 묵과 라르엘 역시 그 폭발과 함께 베나인을 공격했다.
그런데…… 베나인은 멀쩡했다.
세 가지 공격은 모두 무력화됐다. 그 공격들을 무력화시킨 건…… 바로 절대 방어 마법이라 불리는 엡솔루트 실드였다.
베나인의 주변에 광범위하게 펼쳐진 엡솔루트 실드. 베나인은 헬 파이어에 이어 엡솔루트 실드까지 선보이면 가까스로 내 공격을 막아냈다.
묵과 라르엘은 엡솔루트 실드와 충돌한 충격으로 뒤로 튕겨져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베나인이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저런 고급 마법을 두 번이나 연속해서 사용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마도 상당한 마력 소모와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느낄 것이다.
이때가 기회였다.
아이템 스킬, 속보!
아이템 스킬, 질주!!
스스슥!
난 아이템 스킬을 이용해 베나인과의 거리를 단번에 좁혔다.
베나인은 갑자기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나를 보곤 황급히 용언 마법을 이용해 수십 개의 화염구를 던졌다.
하지만 난 유수행을 이용해 화염구들을 유연하게 피하며 계속해서 베나인을 향해 달려갔다.
베나인은 화염구들과 함께 나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 앞발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일종의 광역 지진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주춤하면 다시 베나인에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거리를 줄 수 있었다.
그래서 난 곧장 천마행공을 시전했다.
촤아아악!
순식간에 좁혀지는 나와 베나인과의 거리.
거기에 천마행공을 펼치는 순간, 회피 수치가 크게 상승하며 베나인의 지진파까지 피해 버렸다.
이제 베나인과 나의 거리는 완전히 좁혀졌다.
파팟!
난 거리가 좁혀지자마자 곧장 베나인의 머리를 향해 뛰어올랐다.
스킬 융합, 강권(强拳)+피스트 버스터(Fist Buster)+결점 포착+칠성권(七星拳).
폭렬칠성권(爆裂七星拳)!!
베나인의 미간을 향해 빠른 속도로 일곱 번의 주먹질을 내질렀다.
퍽! 퍼퍽! 퍼퍼퍽!
미간에 중첩되어 쌓이는 데미지!
방어할 타이밍을 놓친 베나인은 강한 충격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크악!]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난 순식간에 일곱 번의 주먹질을 끝내고 공중에서 바닥으로 낙하하며 그 방향 그대로 몸을 돌리며 왼발로 베나인의 머리를 걷어차 버렸다.
용권선풍각을 응용한 발차기였다.
이 두 번의 공격으로 베나인의 그 커다란 몸이 중심을 살짝 잃었다.
내가 노린 건 바로 이것이었다.
난 다시 한번 두 다리로 강하게 바닥을 박차며 힘차게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꽝!
바닥이 움푹 들어가며 난 마치 로켓처럼 베나인의 배 아래쪽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 탄력 그대로 곧장 어깨로 베나인을 들이받았다.
퍼퍽!
“으아아아!”
몸 안에 넘치던 거력을 이용해 있는 힘껏 베나인을 공중으로 쳐올렸다.
나에 비교한다면 베나인의 덩치는 매우 거대했지만 지금의 난 충분히 그 덩치를 허공에 띄울 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순간 베나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아마 그는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의도가 아닌 타인의 의도에 의해 공중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정확한 타이밍에 공격해 중심을 잃게 만들고 그 순간을 노려 베나인을 공중에 띄운 건 모두 내가 의도했던 것들이다.
베나인이 강력한 용언 마법으로 버틴다면 이렇게 아예 마법을 쓸 기회를 주지 않고 끝내 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일단 공중으로 한 번 떠버린 이상 베나인은 더 이상 내 공격을 회피하거나 막기가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난 로스트 팬텀 신법을 이용해 베나인보다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해 베나인에게 무차별 공격을 퍼부을 준비를 끝냈기 때문이다.
“하아아압!”
용마수로 변한 양팔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베나인의 전신을 마구 때렸다.
내가 직접 괴멸무한권(壞滅無限拳)이라 이름 붙여준 이 권법은 한 번 제대로 걸리면 최소 300번의 연환 공격을 그대로 맞아야 했다.
재수가 없으면 900번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거대한 덩치의 베나인은 이 괴멸무한권을 마음껏 펼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대상이었다.
퍼퍼퍼퍼퍼퍼퍽!
무한히 이어질 것 같은 주먹질.
베나인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이 주먹질을 모두 맞았다.
각종 버프 스킬로 공격력이 어지간한 보스 몬스터들보다 더 강력해진 나였다.
그런 내가 마음껏 휘두르는 주먹질은 그 자체로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크륵…….]
베나인의 몸 이곳저곳에서 빛 가루가 흘러나와 허공에 흩날렸다
거의 끝이 보였다.
대략 400번 정도 두 주먹을 내질렀을까?
시간으로 따지면 한 4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 400번이 넘는 주먹질을 베나인의 몸에 모조리 적중시켰다.
우드득!
“으아압!”
괴멸무한권을 적당히 끝낸 난 곧장 양손을 깍지 낀 상태로 곧장 베나인의 등을 내려찍었다.
퍼퍼퍽!
‘심판의 망치’라 불리는 이 기술은 베나인을 땅바닥을 향해 처박히도록 만들었다.
콰과광!
땅속 깊숙이 박혀 버린 베나인.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드래곤의 위상도 땅바닥에 같이 처박힌 것 같았다.
“후우웁!”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
간단히 적용되어 있던 부유 마법을 해제하자 나 역시 중력의 법칙에 따라 바닥으로 낙하를 시작했다.
“장비 4번.”
츠리릿! 스르릉!
허공에서 엘레멘탈 블레이드가 뽑혔다.
그리고 난 곧장 다시 네 마리의 정령을 내 몸 안으로 불러들였다.
스으으으으∼
모여드는 마력들. 난 진짜 이 한 방으로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스킬 조합, 정령 빙의, 셀리스트(Salist)+정령 빙의, 운다인(Undain).
연계 발동 스킬 조합, 정령 빙의, 노임(Noim)+정령 빙의, 실라페(Silafe).
다시 요동치는 정령의 힘.
이 힘을 엘레멘탈 블레이드의 검극에 집중시키며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힌 베나인을 향해 떨어졌다.
특수 스킬 조합, 엘레멘탈 버스터(Elemental Buster).
데몰리션(demolition)!!
꽈광! 콰과과과광!
굉장한 폭발이 일어났다.
베나인도 이번만큼은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
분명 엘레멘탈 버스터 데몰리션은 완벽하게 베나인에게 적중했다.
그와 함께 일어난 폭발.
순간, 난 그 폭발에 휘말려 뒤로 튕겨 나갔다.
쿠쿠쿵!
‘끝났나?’
난 내가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누적된 데미지에 이 정도의 데미지가 추가되었다면, 아무리 베나인이라고 해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그때…….
내 예상을 무참히 깨버리는 괴성이 들려왔다.
[크어어어어어어어엉!]
베나인!
과연 드래곤이 왜 그토록 특별하게 분류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베나인은 살아있었다.
살아있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지만 아직 죽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빛 가루를 통째로 뒤집어쓴 것 같은 베나인의 모습. 두 날개는 꺾여 있었고, 네 다리도 성하지 못했다.
그뿐인가?
두 눈 중 한쪽은 아예 사라져 있었고, 나머지 한쪽도 그다지 좋은 상태인 것 같지는 않았다.
[……주, 죽…… 인…… 다.]
그렇게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여전히 그 포악한 성질은 그대로였다.
스으으으.
그런데 왠지 이상한 위기감이 느껴졌다.
처참히 망가진 베나인. 몇 번의 공격만 더 하면 끝장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묘한 위기감이 내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설마!’
설마가 아니었다.
베나인은 턱뼈까지 드러난 입을 나를 향해 크게 벌렸다.
‘분명 사용할 수 없을 텐데?’
그런 의문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역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콰아아아아!
베나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녹색의 안개!
에시드 브레스라 불리는 그것. 베나인은 마치 자신의 마지막 남은 생명력을 쥐어짜 내듯 나를 향해 강력한 산성 숨결을 내뿜었다.
천지를 녹일 것 같은 그 숨결!
이대로라면 난 한 방에 게임 아웃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피할 순 없다!’
드래곤의 브레스를 피한다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막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난 이 강력한 공격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정의 내렸었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이 공격이 불가능한 때를 기다렸다가 전투를 시작한 것이었다.
찰나의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건 하나였다.
그건 바로 뭐가 되었든 간에 지금 당장 행동에 옮겨야 된다는 것이었다.